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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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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18>

구더기는 돌절구를 엎을 수 없다

***18. 구더기는 돌절구를 엎을 수 없다**

그날 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얘기를 꺼낼 적당한 기회를 찾지 못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망설이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지 나 자신도 분명히 말할 수 없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던 차에 마침 호일병이 전화를 해서 차 마시러 가자고 했다. 그는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왔다. 차가 위생청 정문에 도착했다. 유약진도 안에 타고 있었다. 수원호텔에 도착하자 호일병이 말했다.

“내가 방 하나를 한 시간 동안 예약해 놓았어. 우리끼리 조용히 차 좀 마시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십층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서서 호일병이 말했다.

“롱징차(龍井茶) 세 잔!”

종업원 아가씨가 예, 하고 나갔다.

유약진이 말했다.

“일병, 너 한 달에 돈 얼마 번다고 이렇게 폼을 재는 거냐?”

호일병이 말했다.

“너는 내가 돈 낼까봐 걱정하는 모양인데, 너 돈 많은 거 다 알고 있어. 네가 있는데 내가 내겠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바보 같은 짓이지.”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눴다. 유약진이 흥분해서, 자기는 앞으로 이삼 년 정도 시간을 들여서 책을 한 권 쓸 계획이라고, 이미 주제까지 다 정해 놓았다고 했다. 책의 제목은 임시로 『사회변화와 당대(當代) 문화』로 정했다고 했다. 그가 날아갈 듯한 표정으로 얘기를 하자, 호일병이 말했다.

“대위, 저것 보라고. 국가의 운명과 인류의 앞날이 모두 그 책 속에 들어 있어.”

호일병은, 자기는 사업을 시작해서 돈을 벌 생각인데, 세 가지 방법을 계획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방송국에서 육년간 일했는데, 갈수록 김이 빠져. 윗사람들이 자리보전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니까 그 아래에 있는 기자들은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야.”

내가 말했다.

“너희 둘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하나는 이제 차까지 몰고 다니고, 하나는 책도 쓰고…. 나만 퇴보했네.”

그리고는 전후 사정을 모두 다 얘기했다.

“대위, 이봐 너, 너….”

호일병이 한 손으로 머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너 넘어져서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냐? 의견을 제시했단 말이야?”

내가 말했다.

“남이 듣건 안 듣건 그건 그 사람의 자유지만, 나는 어쨌든 해야 할 말은 해야지. 내 말은, 나는 아직도 뭔가를 믿고 있고, 사람에 대해서, 이 세계에 대해서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호일병이 말했다.

“대위, 너 정말 좋은 놈이야. 그렇지만 사람이 너무 좋으면 안 좋은 것과 마찬가지야. 그 사람들은 반석처럼 복지부동에 강철처럼 강인해. 자네 말 한 마디로 누구를 움직일 수 있을 줄 알아?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지.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그러나 지금까지 누군가의 말 때문에 세상이 변한 적은 없어.”

내가 말했다.

“듣건 안 듣건 그건 그 사람의 일이고, 나는 그냥 몇 마디 했을 뿐이야. 내가 법이라도 어겼냐? 나는 그저 대화의 통로를 열어보려 했던 건데.”

호일병이 말했다.

“대화의 가능성은 근본적으로 없어해. 양(羊)이 하류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상류에 있는 이리(狼)가 양이 자기 물을 더럽혔다고 화를 내는 격이지. 대화를 하려면 너 자신도 한 마리 이리로 변하지 않으면 안 돼. 호랑이가 되면 더욱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하다못해 여우라도 되어야지.”

유약진이 말했다.

“대위, 나는 도리어 너한테 감탄했어. 나무는 한 장의 껍질로 살고, 새는 한 입의 먹이로 살고, 사람이 사는 것은 그 기백 하나로 사는 거야. 막말로, 선비는 죽어도 불알이 하늘을 향하도록 해야지 불알조차 안 보이게 엎어져 죽을 수는 없는 거야.”

나는 고무되어서 말했다.

“정말 이 몸이 죽을 때는 불알이 하늘을 향하게 할 거야, 겁날 게 뭐야?”

호일병이 말했다.

“너희 둘 말하는 꼴 보니 이미 경지에 도달했구나.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죽으면 그냥 죽는 거지, 쓸데없이 죽는 거지. 불알이 하늘을 향하든 땅을 향하든 어쨌든 다 똑같이 죽는 거잖아! 죽지 않을 생각을 해야지. 만약 내가 자네처럼 강개격앙(慷慨激昻)한다면, 호일병이 열 명 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쪽 구석으로 처박히고 말아. 현실은 이때까지 불복하는 개인을 겁낸 적이 없어. 복종해야 할 땐 복종해야 하고, 복종할 수 없을 때도 역시 복종해야 되는 거야. 자기 가슴의 뜨거운 피로써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엄청난 실수야. 그리고 그런 혈기로써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더욱 엄청난 실수고.”

유약진이 말했다.

“일병, 너는 그래도 기자잖아. 너에게는 사회의 양심을 대변해야 할 의무가 있어. 그래야 이 세상이 구원을 받을 수 있지.”

호일병이 말했다.

“걸핏하면 이 세상을 구원하라고 하는데, 그건 환상더러 진실보다 더 진실하기를 요구하는 거야.”

내가 말했다.

“네 말대로라면, 나의 유일한 출구는 정소괴 동지한테 한 수 배우는 것이겠네?”

호일병이 말했다.

“세상에는 정말이지 어렵지 않은 일이 없어. 대위 너한테 말해 주겠는데, 고집부릴 일이 따로 있지,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구더기가 돌절구를 엎을 수 있겠어?"

나는 분명히 돌절구를 엎을 수 없다. 심지어 돌절구가 이렇게 무거운 줄도 몰랐다. 근본적으로 대화의 가능성도 없었고, 대화의 통로도 없었으며, 변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평등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그 다음에 공원으로 가서 굴문금을 만났을 때, 나는 내가 망설이게 될까봐 만나자마자 인사이동 일을 말해 주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대위 씨, 누가 장난친 거예요?”

“누가 장난치다니, 나 스스로 원해서 간 건데.”

“사람들은 모두 중심으로 가서 기대려고 하는데, 당신은 도리어 중심에서 갈수록 멀어지기만 하네요. 저 번에 내 말 듣고 사모님 뵈러 같이 갔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비참하게는 안 됐을 텐데.”

“나는 내가 비참하게 됐다고는 생각 안 해요. 중의학회 일은 좀더 단순해서 떳떳하게 책을 볼 수 있어요.”

“대위 씨,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건 자신을 속이는 거예요. 핵심인물로부터 가까운 곳에 모든 게 있고, 멀리 떨어진 곳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중심으로 비집고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는데, 당신은 그 중심에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밀려나와요?”

나는 불쾌해서 말했다.

“그 핵심인물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뭣 때문에 나더러 그 사람한테 가까이 다가가라는 거요? 그 사람이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면 안 돼요?”

“항상 왕관을 쓰고 앉아 있는 사람도 사람이고, 병들어 죽어도 장사지내 줄 사람 하나 없는 사람도 사람이에요. 당신도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사람이 어떻게 다 똑같아요?”

“나더러 정소괴와 같은 낯짝을 하라고 하면, 나는 못해요. 나더러 그렇게 하라고 요구할 바에는 차라리 닭 목 따듯 나를 한 칼에 죽여주는 게 낫겠어요. 혈관 속에 흐르는 피가 달라요. 나더러 내 피를 바꾸라는 건가요? 분명히 말하지만, 나에겐 나만의 존엄이 있고, 이런 나를 버릴 순 없어요.”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그런 낯짝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어쨌든 자신의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면서 윗사람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 의도를 염두에 두고 일할 필요는 있어요. 목표에 도달하고 싶다면 그 정도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는 불가능해요. 고귀함에 대해 얘기하자면, 세상에는 단 한 가지 종류의 고귀함이 있을 뿐이에요. 위로 올라가면 고귀하지 않은 것도 고귀하게 되고, 아래로 내려가면 고귀한 것도 고귀하지 않게 돼요. 고귀한지 고귀하지 않은지는 객관적 현실에 달려 있지 주관적 감정에 달려 있는 게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속이 싸늘해졌다. 고귀함과 고귀하지 않음이 결국 이렇게 현실적이고 비속할 수도 있다는 건가? 이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는 건가? 병들어버린 건가?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굴원, 사마천, 도연명, 두보, 조설근 같은 분들의 일생은 모두 초라했는데, 그렇다면 고귀하다고 말할 만한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도대체 무엇을 고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 그녀는 나에게 청장 사모님을 함께 찾아가서 이번 일을 만회하자고 했다.

내가 말했다.

“다시 고기 자르는 칼을 찾아야겠군.”

그녀가 고집스레 같이 가자고 졸랐지만, 나는 기어코 가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대위 씨, 상황의 심각성을 똑똑히 알아야 해요. 이런 식으로 꺾이면 몇 년 가요. 몇 년 후에 다시 당신한테 기회가 온다는 보장이 있어요?”

“청장 사모님을 찾아가면 기회가 생긴다고 해도, 나는 안 가요.”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말했다.

“세상에 당신 같은 종류의 사람도 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내가 말했다.

“나는 원래 이런 종류의 사람이오. 당신이 나를 바꾸려 해도 그건 불가능해요. 나 자신도 나를 바꾸지 못하는데, 의사가 수술을 해서 내 혈관 속의 피를 몽땅 바꾼다면 모를까.”

그녀가 말했다.

“당신을 수술해 줄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다른 사람이 바꿔주지 않아도 당신 스스로 바뀌려 할 거예요.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요. 당신 한평생 어쩌려고 그래요?”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금 멀리 떨어진 돌 위로 가서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나 역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 쪽으로 옮겨가지는 않았다. 이렇게 약 삼십분 정도 서로 바라보다가 그녀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저 가겠어요.”

나의 머리는 가로젓는 듯 끄덕이는 듯 가볍게 움직였다. 그녀가 말했다.

“대위 씨, 조심하세요.”

그리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렇게 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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