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여자의 야망**
나는 위생청에서 일어난 일들을 한 번도 굴문금에게 얘기한 적이 없었으나, 결국 그녀는 이런저런 일들을 다 알아내곤 했다. 한 번은 유 주임이 병이 나서 입원하기 전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 사고 쳤었지요?”
나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일임을 곧 알았다.
“다 지나간 일이야.”
“세상 일이 그렇게 쉽다면, 세상 살기 참 간단하겠네요.”
“나를 죽여서 고기라도 팔면 될 것 아냐?”
“당신 하나 죽이는 것쯤은 어려울 것 없죠. 꼭 칼까지 사용할 것도 없이 웃는 얼굴로도 죽일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억울하다는 소리도 못하지요.”
“나야 양심대로 몇 마디 했던 것인데, 듣고 싶으면 듣고 듣기 싫으면 말면 그만이지, 왜 그런 걸 갖고 반격을 하려들지?”
“그런 걸 갖고 반격하지 않으면 세상에 반격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아무리 의견을 제시하고 싶더라도 제 인사이동 문제가 매듭지어질 때까지 기다려 줄 순 없었나요? 저를 조금도 배려해 주지 않는군요.”
“사람들은 맨날 의견 제시를 환영한다고 말해 놓고는 막상 의견을 제시하니…. 젠장, 누가 이런 결과가 생길 줄 알았나?”
“저는 알고 있었어요! 의견을 제시한다고요? 약 잘못 먹었어요? 당신은 어쩌면 이런 일을 저하고는 상의 한 마디 안 해요? 나는 당신이 매우 유능한 사람인 줄 알고 당신한테 의지할 생각까지 했는데, 나 혼자만으로는 너무 무력해서 정신적 지주를 찾고 싶었는데….”
“이제야 내가 믿고 의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걸 알았단 말이지? 아직도 늦지 않았어.”
말하자면 그래도 다들 지식인들인데 이렇게 보신(保身) 철학에만 밝아서야 무슨 희망이 있나? 명철보신(明哲保身)이라더니, 정말 옛 사람들 말이 정확하군!
한참 동안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당신은 몰라요. 당신은 이 바닥이 사실 얼마나 냉혹한지 몰라요. 만날 때는 다들 친한 척 굴지만, 사실은 서로 오고가는 게 있으니까 겨우 그 친분이 유지되는 거예요. 진짜 의리며 우정이라는 건 없어요. 일반 서민들을 보세요. 무얼 가지고 서로 오고 가요? 그러니까 아무런 얘기도 안 하잖아요.”
“당신은 어려서부터 보고 들은 게 있어서 아직도 그런 마음가짐을 못 버렸군. 나한테 의지해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생각이라면 그만둬요. 나는 별 소질 없으니까.”
나는 지금까지 그녀가 부친을 잃은 후 평민의 자세로 세상을 대하는 줄 알았다. 그녀의 마음속에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고 타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것이 나를 무섭게 했다. 그녀가 말했다.
“한 가지 건의하겠어요. 어쨌든 제가 청장 사모님과 친하니까, 저와 같이 한 번 뵈러 가요. 조금 난처하기는 할 거예요. 하지만 조금만 버티고 견디면 이 국면을 만회할 수 있어요.”
나는 곧바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어디로 갔지? 어디에 두었더라?”
그녀가 무얼 찾느냐고 물었다.
“그 고기 자르는 칼 말이요, 그걸 찾아서 나를 찔러버려요. 나더러 가자고 해도 나는 갈 수 없어. 그 문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단 말이요.”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조만간 누군가가 당신을 찔러줄 거예요. 다른 사람이 찌르도록 남겨둘래요. 이렇게 고집불통인 걸 보니, 조만간 당신도 리더라는 게 뭔지 알 게 될 거예요. 리더가 되면 틀린 것도 옳은 게 돼요. 어쨌든 옳고 그른 것도 당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고집을 부리면 당신 한 평생 어떡할 거예요? 당신이 영원히 고치지 않으면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거고, 영원히 그 자리에 있으면 영원히 잘못하는 거예요.”
“그렇게 겁주는 얘기 하지 말아요. 그래도 청장님은 나를 보고 살살 웃었단 말이요.”
“살살 웃었다니! 그 사람은 당신을 계속 짓누르지 않으면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을 수 없어요. 당신도 그의 마음이 독하다고 원망하지 말아요.”
“당신은 나이도 어리면서 어디서 그런 것들을 배웠소? 나까지 당신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후 그녀는 그 일을 다시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분위기는 도리어 어색해졌다.
나는 그래도 남자인데 여자를 불쾌하게 만들다니, 어쨌든 그녀를 위로해줄 책임이 나한테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도리를 이해는 했으나 그녀를 위로해줄 길이 없었다. 나의 생각을 바꿀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은 얘기를 하면서도, 마치 형체 없는 산이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서로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애써 얘기를 계속해 갔으나 얘기는 겉돌았다. 그녀가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갈래요.”
내가 그녀를 정문 밖까지 배웅해 주자, 그녀가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갈게요.”
“여기 서서 가는 거 볼게.”
“그럼 저는 이만 갈게요.”
그러면서 눈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나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할 일종의 압력을 느꼈다. 아니면 그녀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 청장 사모님을 만나봐? 그러나 나의 이런 태도를 표현할 길이 없어 얼버무리듯 웃고 말았다. 그녀가 말했다.
“갈게요.”
나는 뭔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으나, 그렇다고 딱히 할 말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지대위가 아니게 되는데. 내 성격이 원래 이런데 내가 나 자신을 배반할 수는 없잖나. 나는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마치 심장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어 그 통증으로 마음의 아픔을 없애려 했다. 아파서 못 참을 정도가 되자 비로소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녀가 살짝 웃었다. 그리고 다시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조심하세요.”
그녀의 등 그림자가 가로등불 아래서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기숙사로 돌아와 방문을 여는 순간, 구리로 된 열쇠의 차가운 느낌에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따라 그녀는 “갈게요”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었다. 혹시 다른 뜻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깜짝 놀라 아래층으로 날듯이 뛰어내려 마당을 달려 나가 그녀가 간 방향으로 쫓아갔다. 수십 미터를 달려가다가 나는 멈추었다. 쫓아가서 뭘 어쩌려고? 나는 스스로에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잠시 동안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다가 되돌아 왔다.
나는 그녀가 이번에는 정말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꼈던 그 어색함을 그녀 역시 느꼈을 것이다. 나와 그녀는 사고방식이 서로 다르다. 그녀는 사회적 지위에 따르는 고귀함을 추구하고, 옛날의 영광을 회복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가 결혼으로부터 기대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민의 존엄함, 고귀한 독립을 굳게 지키려고 노력한다. 만약 윗사람이 나를 좋게 봐준다면 뭔가 큰일을 해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외롭게 지낼지언정 정소괴처럼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고귀함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우리 둘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벌려 놓은 것이다. 나의 천성이 이러한데 내가 나 자신을 배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사 서글픈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언정 나 자신을 굽힐 수는 없다. 성격은 바로 운명이다. 성격은 미리 정해져 있으므로, 나는 차라리 운명이 미리 정해 놓은 바대로 따라갈 것이다.
그녀는 여러 날 동안 나를 찾지 않았다. 그녀를 한번 찾아가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가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함께 쇼핑을 가기로 약속하고 나더러 대가락(大家樂) 백화점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이번 일은 그럭저럭 넘어갔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아직도 응어리가 남아 있었다. 감정의 대응원리(對應原理)에 따라 그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날 인사처에서 나오면서 나는 이 일을 그녀에게 얘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만나자마자 바로 그녀에게 얘기하겠다고, 절대로 미루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중의학회로 배치된 것은 나로서는 일종의 충격이었다. 사실 그 인사배치 자체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곳은 한직이기 때문에 책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굴욕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그 속에 담겨 있는 냉대와 징계의 의미 때문이었다. 조직에서 어찌 이럴 수가 있지? 내가 의견을 제시한 것이 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였나? 그들이 나의 동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조직에서 어찌 이럴 수가 있지?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 그 생각을 떨쳐버리려 해도 떨쳐지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마치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듯한 상대방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내가 사무실로 가서 인수인계를 하는데 정소괴가 얼굴에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소인배 놈, 그래 네 맘대로 할 테면 해 봐라. 네 놈의 지금 그 낯짝 하며, 또 남의 말과 안색이나 살피고 아첨을 떠는 실력 가지고 뭔들 못하겠어?
그날 저녁 무렵 나는 천도(天都) 공원 문 입구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옷깃에 맨 흰색 리본이 석양빛에 저 멀리서부터 바람결에 날리는 게 보였다.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는 다가오더니 내 팔짱을 끼고는 공원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작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나는 그 일을 얘기하려고 몇 번이나 작정했으나, 결국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목구멍에 걸려 간질간질 거렸다.
호숫가 전망대에서 차가운 타마린드 음료를 두 잔 시켜 마시면서 그녀는 자신의 대학생활과 동기생들에 대해 얘기하고, 나도 내 대학시절에 대해 얘기하면서 둘 다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달이 떠올라 호수에 비치어 찰랑이는 물 위에 잔잔한 파광(波光)을 반사하고 있었다. 살살 불어오던 밤바람이 그녀 몸에서 나는 매혹적인 향내를 내게 전해주었다. 그런데 한참 대화에 열중하던 그녀가 어느 순간 침울해졌다. 내가 물었다.
“왜 그래요?”
“갑자기 울고 싶어졌어요. 옛날 일들이 생각나서요.”
“옛날 일이라니, 방금까진 좋았잖아요. 왜 갑자기 울고 싶어지죠?”
“보이지 않는 곳에 아픈 사연이 있어요.”
내가 계속 추궁하자 그녀는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삼년 전, 그녀가 대학 3학년일 때,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풍에 돛 단 듯했다. 정말로 바람아 불어라 하면 바람이 불었고, 비야 내려라 하면 비가 내렸고, 원하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부친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날 그녀의 인생은 무너져 내렸다. 부친을 잃은 슬픔이 사라지기도 전에 가슴 아픈 일들이 계속 잇따랐다.
그녀는 원래 과에서 인기가 좋았는데 갑자기 인기가 예전만 못해졌다. 그녀도 일부러 자세를 낮추기는 했지만 마음속은 복수심으로 가득 찼다. 성(省) 인사청의 부청장은 부친의 친구였는데, 일찍이 자기가 그녀의 직장배치 문제를 책임지겠다고, 북경으로 가든 심천(深圳)으로 가든 아무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 쳤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다시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안 된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사귀던 남자 친구가 졸업 후 북경에 남았는데 그녀가 북경에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곧바로 헤어지자고 했던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교통사고 하나로 모든 게 바뀌어버렸어요. 내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현실이 그러하니 나는 현실적으로 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저 역시 한때는 환상을 가졌었지만 모두 물거품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 버렸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녀의 침통한 하소연을 듣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한때 너무 많이, 너무 좋은 것을 가졌던 인간이 지금은 그것을 잃어서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산요(三山坳)의 산촌마을 사람들처럼, 수많은 사람들은 여태껏 무엇을 가져본 적조차 없다. 무대 위에서 주인공 역할에 익숙해진 사람은 조금만 주변으로 밀려나도 이렇게 서러워한다.
그녀가 진정을 찾은 후 내가 말했다.
“나는 권력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가 없소.”
“무엇이든 다 천천히 찾아오는 거예요. 당신은 나를 위해 애쓰지 않더라도 자신을 위해서라도 애를 써야 해요. 조심하세요. 정소괴조차도 당신을 타넘으려고, 기어오르려고 들어요.”
“그 자가 기어오르려면 기어오르라지. 나는 끝까지 허리를 쭉 펴고 사람답게 걸어갈 거요. 기어오르는 법은 배우지 못했어요. 이‘기어오른다’는 뜻의 파(爬) 자가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글자인 줄 오늘 처음 알게 됐어요.”
나는 두 팔을 벌리고 기어 올라가는 자세를 취했다. 그녀가 말했다.
“기어서라도 올라가지 않으면 그럼 어떻게 돼요? 유 주임이 입원하면서 그에게 대리 주임을 맡긴 것은 아주 위험한 징조예요. 그런데도 당신은 초초하지도 않아요?”
“당신은, 여자이면서 권력에 무슨 관심이 그렇게 많아요? 나중에 당신이 청장, 부장 다 해요. 나도 당신 덕 좀 보게.”
“그런 건 원래 당신네 남자들의 일이잖아요.”
“그렇다면 강청(江靑)도 원래 남자였겠네?”
그녀가 히히, 웃으면서 말했다.
“여자가 남자를 찾는 건 정신적 지주를 찾으려는 거고, 의지할 산을 찾으려는 거예요. 산 정도는 돼야 기댈 수 있지 조그만 나무 정도밖에 안 되면 어찌 편히 기댈 수 있겠어요?"
내가 말했다.
“‘산에 기댄다’(靠山)는 말이 이렇게 기품 있는 말인 줄 오늘 처음 알았네. 옛날 사람들이 말은 정말 멋지게 만들어 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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