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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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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15>

게임의 규칙

***15. 게임의 규칙**

그 이튿날 출근할 때 계단에서 위층에서 내려오고 있는 학 주임과 마주쳤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할 생각으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나의 시선을 외면한 채 내려갔다. 그의 태도는 나로 하여금 일종의 정신적인 우월감마저 느끼게 했다. 결국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시비(是非)를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유 주임이 벌써 와 있었다. 그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군, 일찍 왔네.”

“유 주임님도 일찍 오셨네요.”

“지군, 자네 어제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그런 얘기는 왜 했어?”

“제가 원래 충동적이어서, 일단 무슨 생각이 떠오르면 참지 못하고 말해버리거든요. 어제는 제가 생각해도 역시 너무 현명하지 못했어요.”

“젊어서 그래!”

“그렇지만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청장님께서 말하라고 부추기셔서 했던 건데. 사실 저도 하고 싶은 이야기 반 정도밖에 못했어요. 나머지 반이 남았는데, 유 주임님께 말씀드릴게요.”

그리고는 나는 맨발 의사의 일과, 또 신문에서 본 보도기사 얘기를 했다.

“지군, 자네는 역시 좋은 사람이야. 다만 백면서생(白面書生)의 티를 너무 내서 그렇지. 누구인들 세상만사를 다 맡아서 관리할 수 있겠나? 그 나머지 절반은 나한테 얘기한 것으로 끝내게.”

이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내리쳐 자르는 동작을 했다.

“정부기관에서 일할 때는 그 기관의 생리를 따라야 해. 하고 싶은 소리 다 할 수 없다는 것, 이것도 한 가지 원칙이지. 잘 생각해야 돼, 지군!”

그때 정소괴가 들어오자 유 주임이 곧바로 말했다.

“지군! 가서 물 좀 떠 오게.”

나는 어떻게 마 청장을 대해야 좋을지 몰랐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은 항상 상호적인 것이라고 알고 있다. 내가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좋다고 느끼면 그 사람도 나에 대해 친밀감을 갖게 되고, 내가 그를 불쾌하다고 느끼면 그도 나를 불쾌하게 생각한다. 만약 내가 불쾌하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아예 아무 말 않고 그냥 고개만 끄떡하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마 청장이라면 피해갈 수 있을까?

그날 나는 몇 분 앞서서 출근했다. 복도에서 마 청장과 마주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조금 후 마 청장이 입구를 지나가며 정소괴와 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에 특별한 친밀감이 스며 있었다. 큰 인물들의 어조에는 특별한 의미가 들어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아주 중요한 정보다. 나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정소괴는 들어오면서 과장된 몸짓으로 일종의 우월감을 드러냈다. 나는 못 본 척 눈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속으로 욕을 했다.

“또 꼬리를 흔들기 시작하는군. 조금 있으면 이빨도 드러내겠지.”

이 소인배는 바디 랭귀지(身體言語)를 통해 일종의 정보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나를 꺾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했다. 조금도 지지 말고 맞대응할까, 아니면 아예 상대도 하지 말까. 내가 상대하지 않으면 그 인간은 한 발 한 발 압박해올 것이다.“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고 했다. 맞대응 하자니 그것은 곧 소인배의 방법으로 소인배를 다루는 셈이 된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비참한 경우가 가끔 이렇게 생기는 것이다.

퇴근할 때 막 문을 나서다가 공교롭게도 마 청장과 마주쳤다. 나는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 마 청장이 먼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군, 요 며칠 동안 안 보이더군. 일은 잘 하고 있나?”

“괜찮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다면 좋고. 잘된 일이야.”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손을 살짝 치고 나서 또 다른 사람과 얘기하면서 갔다. 마 청장의 표정과 태도에서 나는 약간 위로를 받았다. 아마도 그는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나에게 화가 많이 났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사태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판한 데다 서 형과 막(莫) 여사가 조성한 어떤 공포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몰아갔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나는 또 다시 마 청장께 친밀감을 느꼈고, 은근히 감동까지 했다. 그 사람들이 나를 향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 보인 것은 모두 윗사람에게 잘보이기 위해서였는데, 마 청장 본인은 오히려 나에게 아무런 편견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마 청장의 방금 전의 태도를 거듭 떠올리고 거듭 분석하면서 내 생각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순간 마음이 가벼워지고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 것 같았다. 동시에 또 마 청장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더는 역시 리더다. 내가 어떻게 그런 책망의 눈빛으로 그를 봤을까? 나를 좋게 보고 청에 남아서 일하도록 하신 분인데, 그 분은 여태까지 나에게 어떤 잘못도 하신 적이 없는데, 내가 배은망덕하게 굴 수는 없잖나! 그래서 나는 또 새로운 심적 부담이 생겼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것이다.

마음속에 팽팽하게 당겨졌던 줄이 느슨해지면서 나는 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만약 정소괴 이 놈이 또다시 도전해 오면 내 이 놈을 박살내고야 말리라. 그럴 용기가 생겼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리더에게는 정말 신비한 힘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의 말 한 마디, 표정 하나 하나가 사람들로 하여금 용기 백배, 자신감 넘치게 할 수도 있고, 또 사람을 기 죽여 비참하게 느끼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마저 리더의 말 한 마디, 그 표정 하나 하나에 의해 결정되다니, 정말로 신비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나는 그 일이 이렇게 넘어갈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한 차례 풍파를 겪었지만 덕분에 몇몇 사람들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게 되었으니, 이 역시 하나의 수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 나는 최신 토요타 차 한 대가 마당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위생청에 용무를 보러 온 차라고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다가, 수위실의 섭씨가 위생청에서 또 차를 한 대 샀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위생청의 차라는 것을 알았다. 내 마음은 순식간에 암울해졌다. 내가 제시한 의견을 아무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다니! 이 차는 그야말로 나 보라고 산 차였다. 지대위, 불만 있어?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나의 불만에 대한 대답이었다. 나는 기율검사회(紀檢會)의 사람들은 어째서 이 문제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지 의아했다. 내가 기율검사회의 양(梁) 서기한테 직접 말해야 하는 건가.

내가 말했다.

“위생청의 차는 여럿이서 사용하기에 이미 충분해요. 보세요, 지금 차 몇 대가 저기 그냥 서 있는지. 기사들도 저렇게 놀고 있잖아요.”

섭씨가 말했다.

“그건 우리 같은 서민들의 생각이고, 윗분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지요. 높은 사람들은 갈수록 많아지잖아요. 그런 자리에 올라갔는데도 거기에 어울리는 대우도 안 해 주고 전용차도 한 대 없으면 어디 기분이 좋겠어요?”

“최근에 누가 또 지도자급으로 올라갔나요?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지 군, 당신은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어째 나보다도 몰라요? 이제부턴 기율검사회 서기도 부청장 급이에요. 직급이 올랐으면 대우도 따라서 좋아져야지요.”

“그렇게 된 거로군요.”

나는 속이 아주 불편했다. 방금 양 서기한테 가서 한 마디 하려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나 같은 사람은 정말 달리 출구가 없구나. 유일한 출구는 서 형이나 막 여사처럼 장님, 귀머거리 행세를 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 얼마 동안 행세하다 보면 정말로 눈도 멀고 귀도 멀어질지 모르지. 그렇게 되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동화과정(同化過程)이 완성되는 것이다. 내가 양심과 책임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건 말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현실은 그저 현실일 따름이다. 내가 내 머리로 생각을 하건 말건 그것도 마찬가지로 무의미하다. 유일한 차이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고 또한 나 자신을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침묵이 유일한 출구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

다시 며칠 지나서 전 청의 대 회의에서 마 청장이 업무지시를 끝낸 후에 말했다.

“우리의 일부 동지들은, 특히 젊은이들은, 문제를 볼 때 단면적으로 보고 전면적으로 생각할 줄 모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특정 각도에서 문제를 보게 되면, 물론 나름대로 논리가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좀 더 고차원적이고 좀 더 전면적인 각도에서 볼 때, 그 사람의 단면적인 논리는 불충분하고 변증법적 사고가 결여된 것이 드러나 보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고려할 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전면적인 각도에서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나는, 이것은 분명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말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때 홀연히 정소괴가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고, 다른 몇몇 사람들도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녀석! 이런 식으로 나를 음해하다니, 아주 내 가슴에 불을 지르는구나! 화난 눈으로 그를 쏘아보자 그의 눈은 얼른 강단 위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한 방 먹고도 아무 소리 못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 새끼! 아직 과장도 못 된 주제에 이런 악질적인 장난치는 데는 완전히 도가 텄구나. 저 놈은 저런 식으로 상대를 거꾸러뜨릴 기회를 만들어낼 수도 찾아낼 수도 있는 놈이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눈빛을 보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 청장은 정말 나를 지목해서 말한 걸까? 뜨거운 피가 머리 위로 솟구쳐서는 빙빙 돌다가 터지는 것 같았다. 어찌 이럴 수가 있소, 마 청장? 나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적셔졌고 극도로 실망했다. 어찌 이럴 수가 있소, 마 청장?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를 보고 그처럼 웃지 않았소? 사실 나는 이미 그를 이해하려고 상당히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지도자들과의 형평을 유지하기 위해 차 몇 대를 더 샀던 것이라고, 그도 그만의 고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가!“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게 해도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 놓고선 회의석상에서 나를 이렇게 공격하다니. 나의 하늘은 이미 무너져버렸다.

이어서 마 청장이 무슨 이야기인가 더 했지만 내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마치 온 몸에 불이 붙어 곧 타버려 재가 될 것만 같았다. 회의를 마치고 나는 기계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사람들을 따라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그대로 사무실로 돌아가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용기가 안 났다. 유 주임이 나에게 말했다.

“지군, 자네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먼저 돌아가 쉬어. 괜찮아.”

유 주임의 말에서 마 청장이 강하게 암시하였던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단면적인 사고를 하는 청년이 바로 나인 것이다. 하지만 어찌 이럴 수가 있소, 마 청장? 이틀 전에 나한테 그렇게 부드럽게 얘기를 해놓고선. 나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며칠 동안이나 나도 이 일로 얼마나 고민했는데, 당신이 어찌 이럴 수가 있소, 마 청장? 마 청장은 내게 있어서는 곧‘조직’이었고 결코 마수장이란 한 개인이 아니었다. 양심에 따라 자신의 견해를 발표한 것은, 비록 그것이 전면적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잘못을 범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쩌면 역시 굴문금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결국 사람이다! 한 인간이, 특히 그가 거물일 경우,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 듣기를 좋아하다는 것은 어쩌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역시 사람일 뿐이다! 나는, 이전에 내가 인식하고 있었던 세상은 허상이었으므로 세상을 재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공정한 견해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근거로 사람들이 나의 얘기를 공정하게 받아들여 주기를 기대한단 말인가! 나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나도 학습을 통해 아주 총명하게, 정소괴보다 더 총명하게 될 수 있다. 나는 나를 왜곡시키려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그런 상태로 나를 몰아가려는, 그 어떤 힘이 존재함을 느꼈다. 내가 나 자신이어서는 안 되고, 또한 나 자신이 될 수도 없으며, 세상이 원하는 그런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날 나는 도서실에 가서 안지학(晏之鶴) 선생과 장기를 두었다. 관리인 조(趙) 씨는 우리가 나갈 때 문을 잠그고 가라고 말하고는 먼저 퇴근했다. 두 판을 뒀는데 일 대 일이었다. 내가 말했다.

“내일 다시 둬요.”

“삼 대 이로 승부를 결정지으세.”

세 번째 판도 내가 졌다.

“요즘 며칠 마음이 꽤나 혼란스러웠습니다.”

“나처럼 이렇게 마음이 고요한 수면과 같은 사람에겐 그런 일이 없지. 일단 장기판만 눈앞에 펼쳐져 있으면 황제 자리와도 안 바꾸지.”

“선생님 같은 경지에 도달하려면 저는 아직도 수련을 더 해야겠어요. 첫째, 세상을 떠남으로써 세상의 청탁(淸濁)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겠어요. 둘째, 나를 떠남으로써 무지무욕(無知無欲)의 상태에 들어가야겠어요.”

“지군, 자네한테 사실대로 말하자면, 자네 계속 이렇게 가는 건 아주 위험해. 알려고 하고 가지려고 버둥거려도 모자랄 판인데, 기회가 언제까지 자네를 기다려줄 것 같은가?”

“어떨 때는 나 스스로도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건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는데, 결과적으로는 역시 내가 잘못한 것으로 되어버려요.”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다니, 그건 자네 생각이고, 결과적으로 잘못했다면 그것은 바로 자네에 대한 세상의 평가인 거야. 자네가 세상의 평가를 뒤집을 수 있겠나?”

“제 일에 대해 알고 계세요?”

“조금 알고 있지.”

“청에서는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 찾기도 어려워요.”

그리고는 전후 사정을 그에게 다 얘기했다. 그는 다 듣고 나서 말했다.

“지군, 자네의 실수라면 기본적인 게임의 규칙을 위배한 거야. 위생청은 하나의 울타리인데, 울타리 안에는 기본적인 게임의 규칙이란 게 있어. 유 주임은 자네가 전면적이지 못하다고 하고, 정소괴는 자네가 편협하다고 하고, 학금귀(郝金貴) 주임은 자네가 누구를 겨냥해서 말한 거라고 하고, 서 기사는 자네한테 매사를 대범하게 봐 넘기라고 하고, 막(莫) 여사는 자네한테 장님, 벙어리 행세를 하라고 했는데,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게임의 규칙이야. 게임의 규칙이란 뭔가? 바로 모든 문제를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거야. 그 사람이 갑(甲)이든 을(乙)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그가 실권, 재정권, 특히 인사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지. 위생청에서 승진 싫어하는 사람 어디 있겠나. 승진을 해야만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거야. 그런데 자네 승진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총리(總理)? 성장(省長)? 아니지. 바로 위생청 내에서 임면(任免) 문서에 서명을 하는 그 사람이야. 그리고 그게 바로 명줄인 거고! 자네가 모든 문제를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그땐 자네도 전면적이고, 편협하지도 않고, 동기 불순하게 어느 특정인을 겨냥하는 것도 아니고, 매사를 대범하게 봐 넘길 줄 알고,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사람이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저의 자아(自我)는 없어지는 거군요. 자신의 생각은 없어지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모습으로 변해 버리는 거잖아요.”

그가 허허 웃으면서 얘기했다.

“그러면 자네는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가? 자네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어느 한 개인이 아니야. 하나의 규칙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지. 만약에 그것이 한 사람이라면, 그 한 사람만 바꾸면 모든 게 다 바뀌겠지.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규칙이기 때문에 누구 한 명 바뀐다고 되는 게 아니야. 자네 지대위가 무슨 큰 능력이 있다고 그 규칙을 바꿀 수 있겠어? 규칙은 고사하고 사람 하나라도 바꿀 수 있겠어? 자네가 지식인이라는 걸 누구 하나 알아주기나 해? 자네가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어. 그 대세가 뭔지는 자네도 분명히 알고 있을 거야. 공자는‘군위신강’(君爲臣綱: 군주는 신하의 벼리이다)을 말했고, 장개석(蔣介石) 위원장은‘한 당(黨)에는 영수(領袖)가 한 명만 있다’고 말했고, 문혁 전에는‘길들여진 도구’(馴服工具)라는 말이 유행했지. 그 후에는 또“이해한 것은 집행해야 하고, 이해되지 않은 것도 집행해야 한다”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 말들은 하나같이 이 게임의 규칙을 가리키는 거야. 이 규칙을 어기게 되면 반드시 벽에 부딪치게 돼. 벽에 부딪치고 난 다음에는 누구를 원망해도 소용없어.”

나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동안 신음을 하고 나서 말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

“불쌍해지기 싫으면 윗자리로 올라가게.”

그는 이어서 말했다.

“지군, 자네는 내 전철을 밟을 생각 말게. 나는 젊었을 때 내 재능을 믿고 다른 사람들을 깔봤어. 평생 동안 벽에 부딪쳐 머리가 터지고 피를 흘렸지. 그래서 늘그막에 이렇게 불쌍한 꼴이 된 거야! 자네는 말이야, 납득되는 것도 납득해야 하지만, 납득 안 되는 것도 머리 터져 가면서라도 역시 납득해야 하네. 내 평생 동안의 경험은, 장님이 되어서는 안 되고, 현실을 분명히 직시하고 현실에 귀 기울이라는 거야. 그러나 벙어리가 되어야 해. 보고 들은 것을 마음 속으로만 생각해야지 절대로 입을 열고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결론부터 말해서, 자네는 입을 열지 말게. 자네가 입을 여는 것 자체가 자네 잘못이야.”

나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생각해 봐야겠어요, 정말 잘 생각해 봐야겠어요.”

그 후 나는 그 일을 두고두고 생각해 보았다. 안 선생님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맞는 말씀이었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장님도 귀머거리도 되지 말아야 하지만 벙어리는 돼야 한다. 그러나 나까지 만약 똑똑해지는 것을 배운다면 그러고도 무슨 양심과 책임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자존심을 내버려야 한다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까지 해야 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 인생에는 무슨 최선의 선택 같은 것은 애시당초 있지도 않고, 어떤 선택이든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의 문제는 자기가 어떤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느냐 하는 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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