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보신주의(保身主義)**
나는 일이 이런 식으로 마무리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기숙사로 돌아올 때까지 머리 속에서 계속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고, 나를 보고 손가락질을 하는 수많은 얼굴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수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날의 대화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면서 문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찾아보려고 했다. 사전에 나도 마 청장님이 약간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들고 일어나 나를 질책할 줄은 정말이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모두 의학을 공부한 사람들로서 마땅히 최소한의 인도주의 정신은 가지고 있어야 할 텐데, 어떻게 인간된 도리를 그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오늘 비로소,“세상의 원칙이라는 것은 진흙을 빚는 것처럼 빚는 사람들이 원하는 형상으로 빚어낼 수 있으므로, 그것을 빚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원칙을 빚어낸다면 정의(正義)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만약 정소괴 혼자서 들고 일어났다면 나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개 같은 놈이니까 꼬리만 칠 뿐 아니라 사람을 물 수도 있겠지. 만약 개의 조상(雕像)을 다시 만든다면 꼬리 부분만 생동감 있게 표현할 게 아니라 이빨까지도 생동감 있게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학(郝) 주임이 발언할 때는 이빨이 다 하얗게 드러나지 않던가. 그리고 유 주임도, 그 마음씨 좋은 사람이, 앞장서서 그런 식으로 말할 줄은 정말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가장 의외였던 것은 막(莫) 여사였다. 그녀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저녁 식사를 걸렀다. 그런데도 배고프단 느낌이 전혀 없었다. 내 마음이 평정(平靜)한 상태에 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나는 『본초강목(本草綱目)』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참을 읽어도 머리 속은 여전히 멍할 뿐이었다. 글자 하나하나는 다 아는 것들이고, 한 구절 한 구절 다 이해가 되었지만, 그러나 한 단락을 다 읽고 나서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성조(聲調)까지 신경써가며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갔다.
"약의 성질에는 환(丸)으로 만들기에 적합한 것이 있고, 가루(散)로 만들기에 적합한 것, 물에 삶기(煮)에 적합한 것, 술에 담그기(酒漬)에 적합한 것, 기름에 튀기기(膏煎)에 적합한 것이 있으며, 또한 다른 약과 함께 써야 하는 것(兼立), 또 탕이나 술에 담가서는 안 되는 것(不可入湯酒) 등이 있는데, 그 약의 성질에 따라야 하고 그것을 어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 문단을 다 읽고 나서도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힘껏 머리를 한 대 때리자 속에서 텅 비어 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나 지대위가 이런 사소한 일로 심사가 이렇게 뒤틀려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사소한 일에, 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침대에 누운 채로 얼마나 지났을까, 이미 날이 어두워진 것을 깨달았다. 나는 밖으로 나가 답답한 속을 좀 풀고 싶었다. 정문을 나서서 길을 따라 줄곧 동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때 검은색 승용차가 내 옆에 멈춰 섰다. 깜짝 놀라서 보니 서 형이었다. 그는 나를 차 안으로 끌어들이더니 번개같이 앞으로 차를 몰았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차를 몰고 밖에서 돌아다니다니!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요?”
“일단 나하고 같이 가!”
십여 분 정도 차를 몰아 교외에 다다르자 한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그는 나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배 안 고픈데. 나는 배 하나도 안 고파요.”
“배 안 고파도 저녁은 먹어야 할 거 아냐?”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내가 저녁 안 먹은 거 어떻게 알았어요?”
“친구 사이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야. 차 안에서 자네가 내려오기를 몇 시간이나 기다렸어. 올라가서 자네를 찾을 용기는 차마 못 냈지만.”
“나를 찾을 용기가 없었다고요?”
그는 아무 대답 없이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자네 오늘 오후에 무슨 얘길 했나?”
“내가 무슨 얘기한 걸 어떻게 알고 있어요?”
그때 종업원이 다가오자 그는 요리 네 개를 시켰다.
“네 시 좀 넘어서 마 청장님이 기사반으로 오셔서 집에 돌아가겠다고 하시는데, 별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더라고. 가는 길에 청장님이 내게 자네한테 승용차에 관한 일을 얘기해 준 적이 있느냐고 묻더군. 말하는 투가 심상치 않아서 그런 일 없다고 부인했지. 위생청에 돌아와서 유 주임을 만났는데, 그 사람도 나한테 똑같은 걸 묻는 거야. 또 부인했지. 그런데 그이가 나한테 자네가 의견을 제시했던 일을 다 얘기해 주더군. 얼마나 놀랐던지. 대위, 자네 그런 말은 해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양심에 따라 몇 마디 했을 뿐인데요.”
“그들이 묻기에 일단 다 부인했지만, 대위 자네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 하지 마. 안 그러면 나까지 핸들 못 잡게 돼. 높은 사람의 기사가 되면 가장 금기시되는 게 말 많이 하는 거야. 내가 자네한테 차 한 대에 돈이 얼마나 드는지 얘기할 때야 자네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줄 생각이나 했겠어? 진작 알았으면 내가 어떻게든 자네를 막았을 텐데.”
종업원이 요리를 내 왔다.
“정말 못 먹겠어요.”
“억지로라도 몇 입 먹어 둬. 자기 자신을 적이라 생각하고, 자기 위(胃)와 싸워 이겨야지, 하고 생각하면 먹을 수 있을 거야.”
나는 요리를 조금 집어서 천천히 먹었다.
“내가 오늘 자네를 이렇게 오래 기다렸던 것은 두 가지 일이 있어서야. 첫째는 자네가 나를 좀 도와줘야겠네. 내가 이미 부인했는데 자네가 이 얘기를 계속 하고 다니면 모든 게 끝장이야. 그렇게 되면, 나를 기사반에서 끌어내지는 않더라도 차라도 바꾸라고 할 거야. 그러면 나도 견디기 힘들어져.”
“서 형, 서 형은 아직 나를 모르는군요. 오후에 나는 해야 할 말을 한 것뿐이에요.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지는 않아요. 나 혼자 버티면 되는 걸 서 형까지 끌어들여 뭘 하겠어요? 마음 놓으세요.”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말했다.
“두 번째 일은, 내가 자네에게 사과할게. 유 주임이 나에게 오늘 일을 말할 때 나는 당시 내 태도를 밝혔거든. 자네가 그런 식으로 문제를 보는 것은 잘못된 거라고 말이야. 마음씨 좋고 착한 자네를 두고 내가 그렇게 얘기한 것이 마음에 부끄러워. 아예 입 꾹 다물고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던 것이, 그렇게 되면 나까지 혐의를 받게 되거든. 나는 자네가 나의 고충을 이해해 주리라 믿어. 마음속으로 두고두고 원망하지 말게.”
나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서 형은 마음속의 말을 할 권리도 없지만 침묵할 권리도 없다는 걸 저는 이해합니다. 저는 서 형 원망하지 않아요. 정말 원망하지 않아요. 서 형이 제 마음씨가 좋다고 말해 주시니, 저로서는“이해 만세!”하고 소리치고 싶은데요.“이해 만세!”이 말을 저는 북경에서 공부하는 몇 년 동안 입에 붙이고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에서야 이 말 속에 담겨져 있는 고충과 무게를 알 것 같네요.”
돌아오는 길에 그가 말했다.
“대위, 내가 위생청에 있은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됐어. 그 동안 내가 터득한 한 가지 처세 원칙은 모든 것을 덤덤하게 보아 넘기라는 거야. 어떤 사람이 몇 백 몇 천 위안이나 되는 큰 돈을 강에 던져버리더라도 그냥 못 본 척해야 되는 거야. 그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니까. 그 이유도 모르면서 낭비한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말은 절대로 하면 안 돼. 결론은, 자네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자네는 입을 여는 순간, 그 자체로 자네가 잘못하는 거야. 이 이치를 깨닫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져.”
“나도 이제부터는 처세술을 배워야겠네요. 서 형한테 한 수 배워야겠어요.”
그가 내 말의 뉘앙스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말했다.
“상의할 사람 없으면 나한테 와서 상의해도 돼.”
위생청에 거의 다 왔을 때 그가 말했다.
“대위, 자네는 여기서부터 걸어가야겠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생각하지 않도록. 애초에 내가 기숙사로 올라가서 자네를 찾지 않았던 것도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생각을 할까봐 염려해서 그랬던 거야. 위생청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 얼마나 예리한데.”
“상상력도 풍부하십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그는 차를 몰고 앞으로 갔다.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쩌다가 내가 다른 사람들이 기피하는 인물이 되어버렸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마치 손톱으로 문을 긁는 것처럼 아주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내 방 문을 두드리는 건가? 문간으로 가서 귀를 기울여 듣자 내 방 문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했다. 그렇군. 내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군. 내가 문을 열자 한 사람이 번개같이 들어왔다. 막(莫) 여사였다. 그녀는 문을 닫고 말했다.
“대위, 자네 돌아왔군.”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작아서, 나도 모르게 덩달아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영화 보러 갔다 왔어요.”
그녀가 말했다.
“굴문금과 같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말했다.
“저 아래까지 서너 번 왔었어. 자네 방에 불이 켜지는 걸 보고 자네한테 사과하러 온 거야. 오늘 오후 원래는 발언할 생각이 없었는데, 입 꾹 다물고 있으려고 했는데, 그런데 우리 학(郝) 주임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만약 태도를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학 주임이 분명히 두고두고 새겨둘 거라고. 입 다문다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태도를 밝히는 것이거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몇 마디 했던 거야. 집에 돌아와서 마음이 정말로 편치 않았어. 자네한테 너무 미안해. 보통 미안한 게 아니라 정말 너무 미안해. 어쨌든 나도 대학도 나왔고 게다가 의학을 공부한 사람인데, 자네가 얘기한 도리에 어떻게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나? 하지만 동의하더라도 마음으로만 동의할 뿐이지 입으로는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혀야 해.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어. 정말 어쩔 수 없었어.”
나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다 이해해요. 당신 원망 안 해요. 정말로 원망 안 해요.”
“대위, 자네가 나의 고충을 이해해 준다니 다행이야. 이런 처지에 놓이는 것이 정말 괴로워.”
“당신은 나를 이해하고, 나 역시 당신을 이해하고. 우리 사이에 이런 묵계가 형성되기도 쉽지 않은 일이지요.
나는“이해 만세!”하고 소리치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걸요.”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말이지 맘이 너무 아파. 그 한 마디 발언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 하며, 막상 말을 하고 나니 내 감정에는 반대될 뿐 아니라 또 친구한테 미안하고. 이런, 사람 마음이 짝 찢어져 두 동강 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자넨 알겠나?"
그녀는 두 손으로 뭔가를 짝 찢는 동작을 취했다.
“내가 여기 오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어. 우선 다른 사람이 보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와, 둘째로 이 문에 들어와서 친구인 자네의 얼굴을 대면할 용기가 필요했지. 난들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았겠나?”
“사실 오지 않았더라도 막 여사의 곤란한 처지 이해해요. 심지어 학 주임, 유 주임까지도 그런 식으로 태도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어쨌든 회의장의 상황을 누군가는 보고하게 될 테니, 나도 그 사람들 원망하지 않아요. 그 사람들 생각도 사실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그저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개인들이 속으로는 동풍(東風)이 불기를 원하는데, 어째서 함께 앉아 있으면 서풍(西風)이 강하게 불게 되느냐 하는 거예요. 나는 그 서풍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모두들 연기자가 되고, 연기도 아주 그럴듯하게 하고.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니까요!”
“이 바닥이 원래 그래. 모두들 말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고(察言), 안색을 살피고(觀色), 말하는 내용을 분석하고(聽話), 말투에서 그 뉘앙스를 뽑아내는 데(聽音) 아주 도가 튼 거지 ."
“내가 그 얘기를 했다고 해서 마 청장님이 정말로 나를 멀리하시지는 않겠죠?”
“청장님 본인은 비교적 관대하다고 하지만, 다른 윗분들까지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니까.”
막 여사는 떠나기 전에 귀를 문에 대고 무슨 소리가 나는지 다 확인한 다음 살살 문을 열고 나가면서, 손가락 하나를 입에 대고, 자기가 나가거든 곧바로 문을 닫고 배웅하러 나오지도 말라는 뜻을 표시했다.
나는 창문 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은행잎을 몇 개 따서 손으로 문질러 보았다. 서 형도 막 여사도 모두들 좋은 사람들이고 또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수칙은 바로 보신(保身)이다. 이 점은 나도 이해한다. 환경에 잘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마음속에 있는 얘기는 감히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가 말하고 싶지 않은 말은 당당하게 하면서,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몰래 숨어서 세심한 계획 하에 하는 것이 보통이다.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 그들은 충분히 총명하다. 하지만 그 총명함 뒤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비애(悲哀)가 숨어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간주하고, 그런 사실조차 당연하게 생각하고 묵과하는 것이다.
어느 때에야 모두들 허리를 곧게 펼 수 있을까? 수천 년은 계속되어 왔을 이런 태도를 고치려면 아마도 앞으로 수백 년은 걸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상(眞相)이다. 더욱 심각하고 더욱 중대한 의미가 가려져 있는 진상이다. 나는 적당한 기회를 봐서 이 진상을 얘기해야만 한다. 나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다. 나는 하늘로부터 입을 열고 진상을 말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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