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말을 하게 해도 하늘은 안 무너진다**
천 원 가량의 돈이면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천 원의 돈이 없어서 어느 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사실에 매우 강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팔년 동안 의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졸업 후 비록 의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관념은 여전히 뿌리 깊다. 나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여유있는 생활에 파묻혀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능력을 상실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날만 해도, 오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하나같이 길가에 꿇어앉아 동정을 구걸하고 있는 그 사람을 본 체 만 체했다. 나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산골을 벗어난 지 벌써 십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남을 동정할 능력을 잃어버리지는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때때로 이런 종류의 동정심이 현실에서는 너무나 하찮은 것으로 느껴졌다. 동정 외에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화원현에 갔던 날, 나는 길거리에서 귤 파는 노인을 만났다. 한 근에 일 마오(毛:약 16원)였다. 내가 한 근을 팔 푼(分:약 13원)에 달라고 하자, 그는 바로 좋다고 했다. 귤을 고르는 동안 그는 나에게, 자기는 현에서 삼십여 리나 떨어진 곳에 산다고 했다. 나는 차를 타고 왔느냐고 물었다.
“귤 한 근에 몇 푼이나 한다고 차를 타요? 어깨, 어깨 차 태워 왔어요!”
그러면서 손으로 자기 어깨를 쳐 보였다.
귤을 심고, 따고, 시장까지 짊어지고 와서 팔고, 운이 좋아 다 팔면 다시 걸어서 돌아가고,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이 기껏해야 몇 십 위안이다. 그날 귤 열 근을 사고 그에게 일 위안(160원 정도)을 주자, 그는 연거푸 고맙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겨우 귤 몇 근 사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시장에서 물고기 배를 가르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군데군데 터진 손을 반창고로 싸맨 채 두 손을 하루 종일 벌건 핏물 속에 담그고 일을 했다. 그걸 보고 나는 속으로 탄식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무게에 짓눌려 저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숨짓는 것뿐이었다.
맨발 의사의 일을 겪고 나서 나는 새로운 시각으로 돈이란 것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자, 위생청의 돈 낭비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일부 사람들은 얼마나 어렵게 돈을 버는데, 다른 일부 사람들은 얼마나 쉽게 돈을 쓰고 있느냐 말이다.
그 후 호텔에 가서 문건 초안 잡을 일이 몇 번 있었지만, 나는 정소괴에게 미루고 대신 가게 했다. 어차피 그 많은 돈들이 다 쓰여 없어질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돈을 쓰는 데 참여하지 않았다는 나 자신에 대한 위안도 사실은 별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 나는 서 기사를 찾으러 기사반에 갔다. 그는 새 차를 닦고 있었다.
“이것도 위생청 차인가요?”
“응, 내가 요즘 혼다(本田)를 모는데, 역시 느낌이 달라.”
그는 우리 청에서 외제 차 두 대를 더 구입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혼다 한 대 값이 얼마인지 물어보았다.
“삼십만 위안 좀 넘어.”
나는 깜짝 놀랐다.
“왜 그리 비싸요?”
“그게 비싸다고? 옆의 화공청(化工廳)에선 리무진까지 사들였는데. 그나마 그 삼십여 만 위안은 각종 비용이 포함 안 된 가격이야. 거기에 등록비용, 도로사용료, 번호판값, 기름값, 보험료가 들어가고 또 유지보수비와 감가상각비까지 다 포함시켜야 해.”
내가 말했다.
“그리고 또 기사 한 명도 필요하고.”
“그런 것까지 계산에 넣을 수야 있나. 세세한 비용까지 다 계산하면 아마 깜짝 놀라 까무러칠 거야”
“사실 청에는 차 한두 대만 있으면 충분한데….”
“지 군, 자네 위생청에 온 게 언제인데 어째 꼭 미국 화교마냥 중국 사정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말하나? 이렇게 간부가 많은데, 어느 간부든 수시로 움직일 수 있는 차가 있어야 행동이 자유롭지.‘누구는 차가 있는데, 누구는 왜 차가 없냐? ’그렇게 되면 풍파가 일어나게 되지. 결국 탈 차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위생청 내에서 자기 위치가 어느 정도냐 하는 문제거든. 이게 어디 사소한 문제인가?”
“여러 사람이 같이 쓰면 되잖아요.”
“그렇게 되려면 자네가 청장이 되는 날까지 기다려야 할 거야. 정말 그날이 오면 우리 기사들은 모두 실업자가 되겠군.”
나는 혼다 차를 만지며 말했다.
“멋있기는 정말 멋있네요. 승차감도 정말 좋고. 그런데 아까 그 세세한 비용까지 모두 계산하려면 정말이지 장부 하나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나랏돈인데, 자네가 뭣 때문에 시시콜콜 다 계산하나?”
그는 이렇게 말하고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자세한 내역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차 한 대 값이 31만 위안이니, 십년을 쓴다면 매년 감가상각비가 3만 1천 위안, 31만 위안의 이자가 매년 2만 2천 위안, 도로사용료가 매년 6천 위안, 기름값이 매년 3천5백 위안, 유지보수비는 확실하게 추정하기도 어렵다.
“대충 계산해도 매년 6만 위안이 넘네요. 기사 월급은 아직 계산에 넣지도 않았어요.”
“자네는 언제나 나를 기억해 주고 있군. 그러면 다시 3천 위안을 더해야지.”
“서 형은 퇴직도 안 하고, 집도 필요 없고, 병도 안 나나요?”
“나랏돈인데 그렇게 세세하게 계산할 필요 있나? 이건 원래 돈 잡아먹는 물건이야.”
“이런 물건에다 쏟아 붓는 돈이 매일 거의 이백 위안이나 되니, 나의 한달 월급보다 더 많네요. 그 맨발의 의사를 생각해 보세요, 정문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꿇어앉아 있었는데도 겨우 십 몇 위안밖에 못 받았잖아요.”
“사람이라고 어디 다 같은 사람인가? 비교도 안 되는 사람이야 가서 머리 박고 죽는 수밖에. 누가 그 사람더러 청장 하지 말랬나? 위생청은 아주 좋은 부두이지.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부두에 배를 갖다 대고 의지하기를 원하지. 그 맨발의 의사는 말할 필요도 없어. 내가 인민버스회사에 가서 운전을 하면 고생은 몇 배나 더 하면서도 수입은 반 이하로 줄어들어. 부두가 다르기 때문이야! 변소 안에 있는 쥐들은 똥을 먹고서도 사람만 보면 달아나지만, 창고 안의 쥐들은 곡식을 먹으면서도 사람을 봐도 꼬리만 흔들흔들 하는 거야. 그게 다 자기 배를 어느 부두에 갖다 댔느냐에 따라 다른 거야.”
“어떤 지출은 서 형이 계산해 보지 않아 몰라서 그렇지, 한 번 계산해 보면 깜짝 놀랄 걸요?”
“자네가 청장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걸세. 그런 지출이 없으면 도리어 억울하다고 생각할 걸? 화공청의 양(楊) 청장은 리무진을 타는데, 성(省)에 가서 회의할 때 두 차가 나란히 주차해 있으면, 청장님은 말할 것도 없고 내 마음까지 불편해. 자네는 그 정(鄭) 기사가 리무진을 운전하면서 얼마나 으스대는지 못 봐서 그래. 담뱃불까지 이렇게 붙인다고.”
그리고는 고개를 치켜든 채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시늉을 했다. 이어서 말했다.
“그러면 나는 그 녀석이 으스대는 꼴을 보고 있을 수밖에. 다행히 우리도 이번에 새 차를 사서 체면을 조금은 만회할 수 있게 됐어.”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이 생각에만 매달려 있었다. 분명히 내 돈을 쓰는 것도 아니다. 돈을 아껴 쓴다고 해서 나에게 한 푼이라도 더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 돈은 어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내가 발견해 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점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가만히 입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의 발견을 모두와 함께 얘기하고, 생각하고, 그런 식으로 일대 충격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위생청 안의 사람들은 대다수가 의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심에 호소한다면 그들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흥분되었다. 심지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양심의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이런 생각을 말로 표현할 기회를 찾으려 하자 마음이 또 묘하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그 정체를 간파할 수도 없는,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원인 모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그런 신비한 힘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신비한 힘을 말로써 설명함으로써 그것의 실체를 분명히 해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몹시 곤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마음은 마치 무딘 톱날로 잘리고 있는 것처럼 아팠다. 나 자신이 지식인이라면 사물의 진상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오히려 장님 행세, 벙어리 행세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겐 그런 천부(天賦)의 책임, 주인공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충분한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양심과 책임감이란 지식인이 자기의 인격에 스스로 갖다 붙인 이름이다. 이것은 또한 아주 오래 전부터 내 마음속에 맴돌던 말들로, 심지어 한때는 이것을 내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을까 하고도 생각했다. 이 말들은 나를 정의감에 피끓게 했다. 그러나 일단 현실에 직면하자 이 말들의 설득력은 그리 충분하지 못했다.
현실은 결국 현실이다. 현실은 사람들에게 책임 전가(轉嫁)의 구실을 미리 마련해 두었다. 한 발짝 한 발짝 물러서기만 하면 곧 그 구실의 비호 아래 숨을 수 있게끔, 거기서 마음은 안정을 찾게끔 된다.
그러나 나는 또 나 자신에게 물었다. 원칙이 만약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지 않느냐. 침묵은 양심에 대한 억압일 뿐만 아니라 자존심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나는 속으로 굴욕감을 느꼈다. 나 자신도 “돼지 같은 인간, 개 같은 인간”들과 실제로는 별로 다를 게 없다. 그저 각자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방식에 따라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나는 일종의 신비한 힘들과 마찬가지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포가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신분(身分)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데 대한 공포였다. 나는 지식인이다. 나 자신이 말하지 않고 누가 대신 말해주기를 바라는가? 내가 만약 침묵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또 누구인가? 나는 초조하게 생각하고 오랫동안 망설였다. 망설인 끝에 나는 결국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평가가 깎이는 일이었지만, 사실 애초부터 나의 내적 우월감은 그 근거가 충분하지 못했다.
시간이 얼마 지난 후, 마 청장이 전체 직원회의에서 한 얘기가 나의 내적 충동을 자극했다. 그 회의에서 마 청장은 회계감사처의 양(楊) 처장을 비판했다. 회계감사처의 한 회계 담당자가 성 인민의원(人民醫院)의 보수공사의 회계심사에 대해 이견을 제시했다고 해서 양 처장이 그녀를 출납계로 옮겨버린 것이다. 마 청장이 회의석상에서 말했다.
“위생청에는 이견(異見)을 들어줄 수 있는 간부가 없습니까? 다른 곳은 내가 관여할 수 없지만, 위생청에는 상하가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통로가 있어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입으로도 마음으로도 복종할 수 있도록 해야 비로소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는 겁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말 좀 하게 한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그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을 못하게 입을 막을 때 도리어 하늘도 무너지고 자신도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양 처장은 곧바로 파면되었다. 그 일은 나에게 아주 큰 충격을 주었다. 나는 내가 마 청장을 너무 속 좁게 봤던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기회를 보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정도의 용기는 갖고 있었다. 신분상실의 공포로 초조했지만, 나는 입을 열고 말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일단 신분을 상실한 사람에게는 지켜야 할 원칙, 져야 할 책임조차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일개 말단 직원에 불과한 나로선 신체의 자유도 없고 출근해서 들어가 있을 사무실도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역시 정신의 자유를 굳게 지켜야만 하고 그것은 신체의 자유보다 더 중요하다. 나는 입을 열고 말을 해야만 한다.
한번은, 당 지부의 민주생활 회의에서였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발언을 마쳤다. 그 발언들이라고 해보았자 하나같이 통렬한 것과는 거리가 먼, 가소롭지도 않은, 불만족스러운, 쓰레기 같은 것들, 터럭 하나 건드리지도 못할 말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저도 몇 가지 의견이 있는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 청장은 나를 바라보고 격려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래도 내가 망설이자 이렇게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나.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해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래서 나는 얘기하기 시작했다. 먼저 호텔에 가서 문서 초안을 잡던 일부터 시작해서, 다시 위생청의 승용차 유지비에 관한 세부 내역까지 모두 얘기했다. 끝은 의료 종사자의 인도주의 정신으로 결론을 맺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만 이야기했고, 특정 인물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을 끝낸 후 분위기가 이상해졌음을 발견했다. 아무도 나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이 없었다.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정소괴의 입에는 야릇한 미소까지 감지되었다. 회의장 안이 고요해졌다. 적막감까지 느껴졌다. 그 적막감은 나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다.
마침내 마 청장이 입을 열었다.
“방금 지군이 자기 의견을 말했습니다. 역시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함께 토론을 해봅시다. 찬성 의견이든 반대 의견이든 다 얘기해 보세요. 진리는 토론을 거듭할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법이지요.”
그리고는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나는 성 정부에 가봐야 합니다. 서 기사가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는 가버렸다.
유 주임이 말했다.
“지군의 동기는 매우 좋지만, 그러나 문제를 좀 더 거시적으로 고려할 수는 없을까요? 예컨대 승용차의 경우, 청에서 승용차 몇 대를 굴리는 데 적지 않은 돈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업무에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지요. 이런 종류의 가치는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잖아요.”
정소괴가 이어서 말했다.
“지대위가 사물을 보는 방식에는 약간의 편집증(偏執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청에는 기껏해야 소형차 열 대 좀 더 있을 뿐인데, 저는 그게 많다고 보지 않습니다. 옆의 화공청은 우리보다 몇 대 더 많습니다. 지금 있는 것들도 청장님께서 우리 청의 업무가 모두 환자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란 특수성을 감안해서 마련한 것들입니다. 특히 그 맨발의 의사인가 뭔가 하는 자들에게 돈을 너무 많이 써버려 돈이 부족해져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절약 원칙을 채택한 겁니다.”
그리고 감찰실의 학(郝) 주임이 발언했다.
“내 생각에는 지군의 발언은 구체적으로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한 얘기 같은데, 누구를 겨냥한 건가? 청장님께서는 우리 청의 주택사정이 빠듯하다는 점을 고려해서 매일 당신은 그 먼 거리를 출퇴근하시면서도 동지들이 불편해 할까봐 이사도 오시지 않는데, 이러한 대공무사(大公無私)의 정신은 우리가 배워야 할 모범이 아니겠나?”
그는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흥분해서 나중에는 주먹을 아래로 불끈 내지르다가 하마터면 탁상을 칠 뻔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말했다.
“학 주임께선 그 비용을 계산해 보셨습니까? 고급차 한 대가 일년 동안 잡아먹는 돈이면 집 한 채를 짓고도 남습니다.”
그는 주먹으로 탁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억지 부리지 마, 억지 부리지 말라고!”
분명히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은 자기이면서 도리어 뻔뻔스럽게 내가 억지를 부린다고 우겼다. 저렇게 제멋대로 사실을 왜곡한다면 이 세상 꼴이 뭐가 되겠는가? 회의장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는 더 이상 말을 계속하지 못하고 나에 대한 그의 비판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도 나를 비판했는데, 가장 한심했던 것은 나와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막(莫) 여사까지도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끝에 가서는 나 자신도 내가 너무 단면적이고, 너무 경솔하고, 너무 사리에 어두웠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 주임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여러분들의 의견을 지군도 받아들였을 겁니다. 물론 끝까지 자기 의견을 고집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일시적으로 이해를 못하더라도 천천히 깨닫게 될 겁니다.”
그리고는 회의를 끝냈다. 정소괴는 흥분한 얼굴로 문 밖을 나서자마자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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