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맨발의 의사(赤脚醫生)**
하루는 오전에 정문을 막 나서는데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동지, 동지!”
정문 옆에 한 사람이 꿇어 앉아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칼로 살을 발라낸 듯 삐쩍 마른 얼굴을 한 사내였다. 옆구리에는 사기그릇 하나와 젓가락 한 쌍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차고 있었는데, 젓가락이 비닐봉지를 뚫고 삐죽 나와 있었다. 내가 멈춰 서자 그는 내 쪽으로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왔다. 혹시라도 내가 그냥 가버릴까 봐 한 손을 뻗으면서 뭐라고 중얼거렸다.
“동지, 동지!”
내가 뛰어가 그를 부축하며 말했다.
“다리가 불편하세요?”
“다리는 괜찮아요. 다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요.”
수위실의 섭(葉)씨가 말했다.
“그 사람 말이 자기는 원래 화원현의 맨발의 의사(赤脚醫生:농촌 인민공사에 소속되어 농업에 종사하면서 의료, 위생 업무를 담당하는 초급 의료기술자--역자)였는데, 병이 났으나 돈이 없어 치료를 못한다면서 위생청에 들어가 마 청장님을 뵙겠다고 떼를 쓰잖아요. 그게 말이나 되요? 저 사람 벌써 한참을 저러고 앉아 있었어요. 지대위 씨가 유 주임한테 말 좀 해줘요. 저렇게 내버려 두면 보기에도 안 좋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말했다.
“민정국(民政局)으로 찾아가 봐요. 여기에 사흘 밤낮을 꿇어앉아 있어 봐요. 돈이 나오나.”
내가 물었다.
“어떤 병에 걸리셨어요?”
그가 내 손을 잡고 일어서려고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꿇어앉아 있었는지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하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내가 한 손으로 그의 겨드랑이를 받쳐주자 그제서야 겨우 제대로 설 수 있었다. 사내가 고맙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보고 나는 어느 정도 그를 믿게 되었다. 결코 무뢰한은 아니었다. 그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위암입니다. 진단을 받았는데 위암이랍니다. 이미 많이 퍼졌어요.”
그의 더할 수 없이 공손한 눈빛과 말투에 나는 황송하기까지 했다. 그가 인민병원의 진단서를 꺼내어 두 손으로 펴더니 내게 보여주었다. 내가 물었다.
“어디 사십니까?”
“화원현 대택(大澤) 마을에 삽니다."
“내가 화원에서 방금 돌아왔는데, 나를 속일 생각은 하지 마시오.”
그가 곧바로 말투를 바꾸어 화원지방 사투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동지,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는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자기는 집에 있던 물건들을 몽땅 팔아서 마련한 오백 위안을 들고 병을 고치기 위해 도시로 왔다는 것, 돈이 아까워서 밥도 잘 사먹지 않았는데 돈이 금방 다 없어져 버렸다는 것, 의사가 수술을 하려면 일천오백 위안을 더 내라고 했다는 것 등이었다. 내가 말했다.
“돌아가서 방법을 찾아보세요. 위생청은 자선기관이 아닙니다.”
그가 얼굴을 고통스럽게 찡그리며 말했다.
“돌아가서 방법이 나올 것 같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지 않은 이상 누가 이런 추태를 보이고 싶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의 낯짝도 낯짝입니다. 하지만 이런 비천한 처지에 처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집이라고는 누추한 초가집 한 채뿐인데 그 돈을 어떻게 만듭니까? 아들 녀석은 아직 중학교에 다니고 있고, 그나마 딸은 학교에도 못 보냈습니다. 그 아들과 딸을 위해서라도 살고 싶지만, 만약 그 초가집까지 판다면 애들은 어디서 삽니까? 나는 돌아갈 수도 없어요. 죽더라도 밖에서 죽어야 해요. 집에서 죽으면 집안사람들에게까지 화가 미칠 테니까요. 장례조차 치를 형편이 못 되요.”
“당신은 맨발 의사이니, 현 위생국에 가서 방법을 찾아보세요.”
나는 혹시 위생청 명의로 편지를 써 주어 가져가게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이미 잘못을 한 번 저지른 적이 있지 않은가! 그는 고개를 숙이고 힘껏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며칠 지나면 암이 완전히 다 퍼져버릴 겁니다.”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한참을 뒤져 편지 한 통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편지도 이미 써 놓았어요. 나는 유랑을 떠나니까 마누라더러 내가 안 보이더라도 애들 데리고 나를 찾아 나서지 말라고요. 사실 이 편지를 식구들이 받았을 때쯤에는 나란 놈은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겁니다.”
섭씨가 말했다.
“이 사람 사기꾼은 아닌 것 같은데, 지 형, 지 형, 윗분들한테 한번 말해 봐요. 윗사람 허락 없이는 나도 이 사람을 감히 들여보낼 수 없거든요."
나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유 주임이 자리에 없기에 정소괴에게 사정을 말하자, 그가 말했다.
“그렇게 무릎 한 번 꿇는다고 돈이 나올 줄 아나? 그 자 사기꾼 아냐?”
“마 청장님께 보고해줘. 그곳에 계속 꿇어앉아 있는 것도 보기 안 좋아.”
“보고하고 싶으면 자네가 직접 보고하게.”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그래도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 생각하고 옆방으로 가서 마 청장님께 보고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그곳에 계속 꿇어앉아 있게 하는 것도 보기에 영 안 좋습니다.”
마 청장이 말했다.
“먼저 그 사람의 신분을 확인해 보고, 정말로 맨발의 의사거든 자네가 재정처에 가서 돈을 받아다 주도록 하게.”
“얼마 받으면 됩니까?”
“고(古) 처장이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또 말했다.
“그에게, 돈 받았다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다시 찾아오지도 말라고 하게.”
나는 정문으로 달려갔다. 그 사람은 아직 거기에 꿇어앉아 있었다. 오가는 행인들도 아무도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일어나세요.”
그는 두 손으로 몸을 받치고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우리 마 청장님께서 당신에게 보조금을 주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돈 받은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겐 절대로 얘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도 마세요. 그럴 수 있지요?”
그는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좋은 사람이오. 마 청장님도 좋은 분이고.”
나는 그에게 현 위생국장의 이름을 물어봤다. 역시 그는 알고 있었다. 섭씨가 말했다.
“당신 오늘 귀인을 만난 거요. 여기서 기다리시오. 저 분이 들어가서 돈을 가져다 줄 거요.”
나는 재정처에 가서 고(古) 처장을 찾아 마 청장님의 말을 전했다. 고 처장이 말했다.
“알았네.”
그는 나를 출납처로 데리고 가더니 말했다.
“십오 위안짜리 영수증을 쓰게. 지군 자네 이름을 쓰고, 청장 특별결제 장부 위에 기록하게.”
그 말을 듣고 나는 황급히 말했다.
“고 처장님, 보세요, 십오 위안으로 뭘 한단 말입니까? 좀 더 주세요. 위생청에선 돈 잘 쓰잖아요.”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지군, 자네는 정말로 마음이 착하군. 자네가 만약 청장이라면 매일 정문 앞에 돈 받으러 온 사람들이 새까맣게 무릎 꿇고 앉아 있겠군 그래. 위생청 정문에 꿇어앉아 있으면 돈을 준다는 소식이 한 번 퍼져나가면 어떻게 되겠어?”
“고 처장님, 보세요. 어쨌든 그 환자도 사람입니다. 사람이라고요! 마 청장님은 항상 사람의 가치가 가장 고귀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인(仁)이란 곧 사람을 사랑하는 것(仁者愛人)이라고요. 조금만 더 주세요. 그게 마 청장님의 뜻에 부합하는 거라고요. 딱 한 사람만!”
고 처장이 또 웃으면서 말했다.
“지군, 자네 정말 진지하군. 그런데 정말 진지해야 할 때 진지하게 나와야 그게 정말로 진지한 거야. 자네가 정말로 그를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말을 마치고는 더 이상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나는 그 십오 위안을 손에 쥐고 정문 쪽으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 처장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이 들었다. 마 청장님이 고 처장에게 전화를 했나? 모르는 일이지. 나는 다시 마 청장님을 찾아가서, 고 처장이 이 돈밖에 주지 않았는데, 그 사람은 이 돈 갖고는 가려고 하지 않을 텐데요, 하고 상의해 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면 마 청장님은 또 뭐라고 하실까?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나는 마 청장을 다시 찾아갈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그렇지만 계단을 오르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고 처장이 그처럼 단호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그게 마 청장님의 뜻을 벗어난 거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내가 다시 마 청장님을 찾아간다면, 그는 내가 계집애처럼 이런 일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때 나는, 그 사람이 정말로 사기꾼이어서 돈 몇 푼 사기쳐서 술 사 마시려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랐다.
내가 내려갔을 때 그는 여전히 그곳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나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무릎 꿇고 있지 않았어요, 꿇어앉아 있지 않았어요. 당신이 그러지 말라고 해서 안 그랬어요.”
나는 그에게 돈을 주며 말했다.
“돈이 조금밖에 안 됩니다.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을 거요. 다른 곳으로 가서 방법을 찾아보세요.”
그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돈을 건네받더니 십오 위안밖에 안 되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역시 이렇게 할 수밖에 없군요.”
나는 그가 돈을 받고도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되면 마 청장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래서 말했다.
“이건 그래도 마 청장님이 특별히 결제해 주신 겁니다. 더 이상은 없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이렇게 할 수밖에 없군요. 그럼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그는 몸을 돌려 가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삐쩍 마른 얼굴이 경련을 일으키며 찌그러졌다. 흘러내린 눈물이 얼굴에 묻은 흙먼지와 엉켜서 흔적을 남기며 굴러 떨어져 수염에 매달렸다. 그는 한 손가락으로 그것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 수밖에 없군요.”
나는 어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 수’라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지? 내가 물었다.
“어디로 가세요?”
그가 피식 웃었다. 얼굴의 주름이 입가에서 눈가로 이어졌다.
“어디로 가냐고요? 저도 모릅니다. 집으로 돌아갈까요? 돌아갈 수는 없고요. 병원으로 갈까요? 역시 들어갈 수도 없고요. 처음에는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들을 볼까도 생각해 봤는데,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애들만 고생시키지 않겠어요?”
말하면서 다시 한 번 웃었다. 오관(五官)이 모두 찌그러져 한 덩어리가 되었다. 나는 마음이 흔들려서 말했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세요.”
나는 기숙사로 돌아가서 봉투를 뒤집어 그 안에 있던 십 위안짜리 지폐 여덟 장을 꺼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 돈과 봉투를 모두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시 정문으로 달려갔다. 섭씨가 그 사람더러 그만 가라고 권하고 있었다. 나는 팔십 위안을 그 사람에게 쥐어주며 말했다.
“여기 돈이 좀 더 있으니 가져가세요.”
섭씨가 말했다.
“지 형 돈입니까?”
“어차피 누가 준 돈입니다.”
그 사람이 돈을 받으면서 말했다.
“집에 있는 애들한테 학비로 부치겠습니다.”
그리고는 미끄러지듯 꿇어앉으면서 말했다.
“제가 절 한 번 하겠습니다. 이 길 밖에는 달리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나는 그를 붙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238병원으로 찾아가 보세요. 거기는 군부대 병원이에요.”
나는 돌멩이로 시멘트 바닥에다 약도를 그려주었다. 섭씨도 옆에서 설명을 거들었다. 그 사람이 말했다.
“찾아가 보겠습니다. 꼭 찾아가 보겠습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섭씨의 손도 잡으려 했지만 섭씨는 몸을 피하며 말했다.
“그만 가세요, 그만 가요!”
그는 물러갔다.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갑자기 호주머니 속의 봉투가 생각났다. 그 안에는 백 이십 위안이나 더 있었다. 다시 달려 나갔지만 그 사람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정소괴가 나에게 말했다.
“자네가 자기 돈 팔십 위안을 그 거지한테 줬다면서?”
“그 사람은 맨발의 의사였데. 돈은 저번에 그….”
정소괴가 유 주임 쪽을 향해 입을 삐죽거리는 바람에 나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말했다.
“어쨌든, 자넨 정말 좋은 일 한 거야.”
그는‘자네’라는 말에 특히 힘을 주어 말했다. 내가 말했다.
“그깟 몇 십 원 갖고 뭘….”
유 주임이 말했다.
“지 군, 자네 마음 좋은 건 다 알고 있지만, 다만 그 사람은 그냥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만난 사람이 아니잖아. 다음부터는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유 주임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로 문제가 있긴 있었다. 위생청에선 십오 위안을 주었는데 나는 팔십 위안을 주었던 것이다. 내가 위생청을 어떤 위치에 놓은 것인가? 나는 허둥대며 말했다.
“섭씨 말하는 것 들어보셨지요? 저는 그저 그 사람 사정이 하도 딱하기에….”
유 주임이 말했다.
“그러게, 자네 마음 좋은 건 다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린 신분이 있잖아. 우린 위생청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라고.”
정소괴가 말했다.
“지대위, 나는 자네가 튀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아."
이 말 한 마디가 칼이 되어 내 얼굴에 상채기를 내는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정소괴, 자네 혹시 누가 나를 두고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걸 들은 거 아냐? 그런 얘기하는 사람 있다면 내가 그 사람에게 분명하게 밝혀야겠어. 이 말이 마 청장님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나? 남을 해코지해도 유분수지.”
정소괴가 말했다.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고, 안 그래도 누가 그런 식으로 얘기하기에 내가 자네를 위해서 변명해줬다네.”
나는 누가 그런 말을 했냐고 물었지만, 그는 말해주려 하지 않았다. 이틀 후에 마 청장을 만났을 때, 내가 인사를 하자 그는 고개만 끄떡하고 지나쳤다. 나는 심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꼈다. 평소 같으면‘지 군’하고 한 번은 불러주셨는데, 혹시 그 팔십 위안 일 때문인가? 아니면 마 청장의 표정에는 별다른 게 없는데 나 스스로 신경과민이어서 그렇게 느낀 건가? 나는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저 마 청장의 미세한 동작과 표정이 나에게 이렇게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놀랄 따름이었다.
그 후 마 청장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딱히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지대위, 네가 어쩌다가 너도 모르는 새 다른 사람의 안색이나 살피는 그런 놈이 되어버렸나? 설령 마 청장이 정말로 불쾌하게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나 역시 잘못한 것은 없지 않나. 생각해 보니 윗사람들도 잘못한 게 없었다. 그 사람들은 또 나름대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어떤 일들은 이런 식이다. 잘못되었다고 말하기엔 딱히 누가 잘못했다고 할 수 없는 그런 일들 말이다. 나는 속으로 적잖이 후회했다. 만약 내 결심만으로 그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매우 행복했을 것이고 대단히 큰 성취감도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 혼자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리고 세상 모든 일에 심각하게 대처한다는 것이 가능키나 하겠어? 나는 심각해서도 안 되고 또한 심각할 수도 없다.
반달 좀 더 지난 어느 날, 나는 석간신문에서 보도기사 하나를 읽었다. 어떤 사람이 병을 비관, 강물에 투신자살을 했는데 한 청년 노동자가 강물에 뛰어들어 그를 건져냈으나 이미 너무 늦어 살려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보도기사는 그 청년 노동자를 칭찬했을 뿐 죽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죽은 사람이 바로 그 날 그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날 봉투 안의 나머지 돈을 잊어버리고 그에게 주지 못한 것이 떠올라 몹시 후회스러웠다. 말하자면, 그 일에 관해서는 나는 좀 더 심각했어도 괜찮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너무나 무섭고 또 너무나 절망적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 <창랑지수> 전 3권이 지난 12일 비봉출판사에서 출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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