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꼬리 없는 개**
이튿날 우리는 화원현(華源縣)으로 은(殷) 국장과 함께 갔다. 가는 차 안에서 마 청장이 화원현의 흡혈충(吸血虫) 관련 질병의 현황에 대해서 묻자 은 국장이 설명했다.
<사진> '창랑지수' 전 3권이 지난 12일 비봉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발병률은 요 몇 년 동안 4.12 퍼센트 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더 낮추는 것은 무리입니다. 원래 시(施) 청장님 계실 때엔 5.33 퍼센트 정도였으나, 마 청장님께서 취임하신 후 힘쓰신 덕분에 일 퍼센트 넘게 내려가게 된 겁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리고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닙니다.”
“3퍼센트 이하로 내려가야 내가 발을 뻗고 잘 수 있을 거야. 2퍼센트 정도 더 낮춰야 해. 자신 있나?”
“위생청에서 지원만 해 주신다면 자신 있습니다.”
“내년에 이십만 위안 더 내려 보낼 테니 화원현을 집중 공략하게! 돈이 안 내려간다면 그건 내 잘못이지만, 내려갔는데도 잡지 못한다면 그건 자네 책임일세. 그걸 확실히 잡아야 내가 위생부나 성 정부에 대해 큰소리 칠 수 있지.”
은 국장이 말했다.
“결단코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일년 정도 시간 여유를 주십시오.”
그러면서 또 말했다.
“듣자 하니 홍콩에서 성 정부에 차량을 기부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우리 지역을 좀 배려해 주실 수 없습니까? 질병을 다스리자면 마을 가가호호로 찾아다녀야 하는데, 발로 뛰자면 아무래도 늦어지게 마련이지요. 이래서야 오늘날 이 대대적인 개혁개방의 대세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마음만 조급해지고.”
마 청장이 얘기했다.
“풍원현에서도 이미 말이 나왔어. 아직 내려오지도 않은 차 몇 대를 가지고 그걸 달라는 현이 백 개도 넘어. 누구한테 줘야지?”
은 국장이 말했다.
“풍원현 따위가, 일개 현에 불과한 주제에 감히 입을 열다니요. 우리 지구(地區)도 얼마나 어렵게 드리는 말씀인데. 마 청장님, 지구 차원의 일이 중요합니까, 일개 현(縣)의 일이 중요합니까?”
“자네들 지구가 몇 단계 높기야 하지.”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은강홍(殷江宏) 자네 말에도 일리는 있네. 그럼 내가 위에 보고해 보도록 하지.”
오후에 화원현 위생국의 보고를 듣고, 그날 중으로 안남시(安南市)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 후 마 청장은 지구 위생학교에서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어제 잡힌 스케줄이었다. 본래 마 청장은 그만두자고 했지만, 은 국장이 말했다.
“위생학교 동지들이 마 청장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한테 무슨 일이 있어도 청장님께 말씀드려 달라고 했습니다. 별 수 없습니다. 청장님께서 수고 좀 해 주십시오. 안 그러면 학생들 지금 한창 들떠 있는데 실망하지 않겠습니까? 모두들 얼마나 청장님을 뵙고 싶어 하는데요!”
정소괴가 말했다.
“마 청장님,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학생들로선 손실이 너무 큽니다.”
“나더러 위생학교로 가라고?”
은 국장이 말했다.
“교육국의 위(魏) 국장도 올 겁니다.”
마 청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은 국장이 말했다.
“지구 문교위(文敎衛)의 담(譚) 전문위원도 모시도록 해보겠습니다.”
마 청장은 곧 승낙했다. 나는 한 울타리 안에서 ‘대등(對等)한 격(格)’의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 청장님까지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실 줄은 몰랐다. 위생학교 정문에 도착하자 위 국장과 위생학교 교장, 서기들이 모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위 국장은 마 청장과 악수를 하면서 말했다.
“담 전문위원은 벌써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마 청장은 먼저 나를 소개하면서 말했다.
“북경 중의학원 석사 출신입니다.”
그리고는 정소괴를 소개하고, 모두 악수를 했다. 마 청장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나도 점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결국 누구를 추켜올리는 것인가? 처음에는 마 청장이 나를 지명해서 청에 남도록 한 데에는 뭔가 특별한 의도가 있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어떤 특별한 의도는 보이지 않고, 결국 이런 것이었다. 마 청장이 강당 입구에 도착하자 담 전문위원이 마중 나오면서 말했다.
“마형, 이게 몇 년 만이오?”
이어서 말했다.
“원래 당신 강연을 끝까지 듣고 싶었는데, 갑자기 모임이 생겨서 아마도 조금 일찍 자리를 떠야 할 것 같소.”
“볼일 보셔야지요. 그러십시오.”
마 청장이 강당에 들어서자 교장이 앞장서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강단 위로 올라가 자리에 앉았다. 나는 강단 아래에서 우리를 우러러 보고 있는 얼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모두 여학생들로, 하나 같이 노트를 들고 필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학교장의 소개에 이어 마 청장이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 여러분이 보고 싶어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두 가지만 얘기하겠습니다.
첫째, 의료직에 있는 사람은 신성한 사업에 종사하는 것이므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직업윤리입니다. 우선 병자를 향한 인애(仁愛)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공자님께선 말씀하셨습니다.‘인(仁)이란 곧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愛人)’고.…
둘째, 기술 수준이 매우 높아야 합니다. 사람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 존재이므로 실험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실수는 만회할 수가 있지만, 생명에 대한 실수는 만회할 길이 없습니다.…”
마 청장은 강연 도중에 도금된 담배 함으로 손을 뻗어 담배를 더듬어 찾았다. 담배가 없자 담배 싸는 종이를 꺼내 손으로 담배를 동그랗게 말기 시작했다. 정소괴가 재빨리 일어나더니 마 청장 몸 뒤로 가서 마청장의 팔꿈치 아래로 뻗어 담배 함을 꺼냈다. 그리고 자기 손가방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더니 포장을 뜯어 담배 함에 담배를 채우고 그것을 다시 마 청장 겨드랑이 아래쪽으로 슬그머니 밀어 넣었다. 마 청장은 담배 함을 더듬어서 담배 한 가치를 꺼내더니 다시 라이터를 찾았다. 그가 또 날아갈 듯 라이터를 들고 뛰어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동작이 얼마나 날렵하던지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비웃었다.
“정말이지 꼬리만 없군.”
나는 전에 읽었던 산문 한 편이 생각났다. 주인에 대한 개의 충성심을 찬미한 글이었는데, 작가는 그 개의 조상(雕像)을 만들 때 꼬리 부분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작가가 말하지 않았으므로 나도 상상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꼬리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생동감에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조각은 어디까지나 조각일 따름이지만, 정소괴가 마 청장의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슬그머니 밀어 넣는 모습은, 저 인간의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생동감이 넘쳤다. 아마 아무리 위대한 조각가라도 저 기묘한 뉘앙스까지 표현해 내기는 힘들 것이다. 세상에는 “돼지 같은 인간”뿐만 아니라 “개 같은 인간”도 있구나!
마 청장의 강연은 한 시간 넘게 계속되었다. 그 중간에 정소괴는 앞장서서 박수를 쳤고, 그런 식으로 몇 번이나 청중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매번 박수치는 타이밍이 풍원현에서 강연할 때와 똑같이 절묘했다. 이 녀석은 정말로 마 청장을 꿰뚫고 있구나. 이 녀석을 얕봐선 안 돼. 마 청장이 강연을 마치자 교장이 나에게 물었다.
“자네도 한 마디 하지 않겠나?”
내가 말했다.
“저는 그만두겠습니다.”
정소괴가 선뜻 나서면서 말했다.
“그러면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마이크를 자기 앞으로 옮긴 그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마 청장님께서 방금 하신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에겐 참으로 소중한 경험입니다. 평생에 걸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 청장님의 학문은 우리가 평생 동안 따라 배워야 할 정도로 깊고, 인품 또한 매우 고상하셔서, 우리가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한평생 귀감으로 삼고 배워야 할 분이십니다.…”
정소괴가 마 청장과 한 연단 위에서 같이 강연을 한다는 것은 위생청 내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다 밖에 나와서 그럴 기회가 생기자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잡은 것이다. 사람이 저 정도로 일에 달라붙을 줄 알아야지! 용기를 내라고. 겁날 게 뭐 있어? 십 분도 넘는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나는 자리에 앉아 있기조차 힘들었다.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 감상하는 자세로 그의 연기를 관찰하고, 그리고 또 마 청장의 얼굴도 살펴보았다. 마 청장의 얼굴은 오히려 편해 보였다.
위(魏) 국장들은 우리가 차 타는 데까지 바래다주고 마 청장과 악수를 했다. 그리고 정소괴, 나의 차례로 악수를 청했다. 정소괴가 득의양양하고 흥분된 얼굴로 먼저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먼저 악수하는 게 그렇게도 좋거든 먼저 하렴, 그게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줄 아냐?”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묘하게 속이 쓰렸다. 교장은 정소괴 몸에 봉투 두 개를 쑤셔 넣더니 나에게도 하나를 주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나는 분명히 돈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사양하려 했다. 그런데 정소괴가 얼른 그 봉투를 대신 받더니 내 손에다 꾹꾹 쥐어 주었다. 나는 곧바로 마 청장 쪽을 바라보았지만, 마 청장은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차에 올라탄 후 나는 그를 향해 이 봉투 어떻게 할 거냐는 뜻으로 주머니를 툭툭 쳐보였다. 그러면서 서 기사 눈치도 슬쩍 보았다. 정소괴는 아무 소리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텔로 돌아와서 봉투를 열어보았다. 이백 위안이 들어 있었다.
“이렇게 많이 주다니, 내 한 달치 월급보다 더 많네. 나는 연설도 하지 않았는데.”
“주면 그냥 받는 거야. 사양해서 뭘 하려고? 우리 모두 덕 좀 봐야지. 자네가 끝까지 사양하면 교장뿐 아니라 모두들 입장이 난처해져.”
“그 사람들한테 정말 미안하네.”
“자기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 하지 말라고. 일단 아래로 내려오면 자네도 중요한 인물이야. 자네가 저자세를 취하면 오히려 아랫사람들이 더 불편해 한다고.”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군.”
그들이 불편해 하지 않도록 내가 거드름을 피워줘야 한다. 이것도 일종의 배려이고, 일종의 사람 사는 도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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