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꼬리치는 개**
마 청장님이 나와 정소괴를 데리고 안남(安南) 지역으로 검사를 나가게 되었다. 그제야 안지학 선생님이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안남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일곱 시가 넘어 있었다. 차가 위생국에 도착해서 내가 말했다.
<사진> '창랑지수' 전 3권이 지난 12일 비봉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아무도 없는 건 아니겠지요?”
서(徐) 기사가 말했다.
“누가 오느냐에 달렸지. 만약 자네 혼자 온다면 아무도 없겠지만, 오늘은 더 늦게 도착해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거야.”
이층 사무실로 올라가 보니 과연 사람들이, 그것도 여섯 명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마 청장을 보자 은(殷) 국장이 말했다.
“기다리느라 애 먹었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다섯 시에는 오실 줄 알았는데 일곱 시가 되어도 안 오시기에 다들 바짝 긴장했습니다.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해서….”
정소괴가 말했다.
“마 청장님께서 풍원(豊源)에서 아주 멋진 강연을 하시느라 시간이 좀 늦어졌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마 청장 옆으로 가서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마 청장이 말했다.
“여기는 지군이오.”
그리고는 나를 앞으로 불러냈다.
“북경 중의대학 석사 출신이오. 내가 우리 청에 남도록 했지요”
은 국장은 악수를 하면서 나의 손을 힘껏 잡았다. 그 다음에 정소괴하고 악수를 했다. 정소괴는 눈을 내리깔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역시 마 청장님 사람 보는 눈은 있구나. 네가 나를 깔아뭉개려 한다고 깔아뭉갤 수 있을 줄 알았냐?”
누구와 악수를 먼저 하느냐. 사소한 일일 수도 있는 문제가 이런 상황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구나!
저녁 식사 후 은 국장 등 몇몇이 우리를 신록(神鹿)호텔로 바래다주고 호텔 지배인에게 우리를 잘 모시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다. 마 청장은 스위트룸을 사용하고, 나머지 방 두개가 있었다. 정소괴가 혼자 방을 쓰고 싶다고 하자, 서 기사가 말했다.
“코 골아도 괜찮은 사람, 나하고 한 방 같이 쓰지.”
그의 코고는 소리는 유명했다. 코고는 소리가 벽을 뚫을 정도로 시끄러워서 매번 출장 때마다 청장님 옆방은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정소괴가 말했다.
“나도 코를 좀 심하게 골아서.”
다른 사람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내가 말했다.
“그러면 코 고는 사람 둘이서 한 방 쓰면 되겠네. 자기 코고는 소리 자기가 듣는 셈이니.”
정소괴가 말했다.
“그러면 서 형 혼자 한 방 쓰시오.”
서 기사가 딴 방으로 가자 정소괴가 작은 종이상자를 열었다. 두유를 만드는 기계였다. 그는 마 청장님께 드릴 두유를 만든다고 콩을 갈기 시작했다.
“마 청장님은 콩가루 타서 만든 두유는 입에도 안 대셔. 맛이 좋지 않거든.”
정소괴가 콩 국물 끓일 장소를 찾으러 나갔다. 마 청장님은 몸을 씻고 우리 방으로 와서 문을 열고 한번 둘러보았다. 나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마 청장님을 따라 나섰다. 마 청장님이 바둑판을 꺼내며 말했다.
“지대위, 듣자 하니 자네도 바둑을 좀 둔다며?”
“잘 두지는 못합니다.”
그때 정소괴가 뜨거운 두유를 받쳐 들고 들어왔다. 탁자 위에 두유를 내려놓고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말했다.
“마 청장님, 바둑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오늘은 세 점 접어주세요.”
“오늘은 다섯 점 접어주지.”
“그러면 오늘은 꼭 한 판 이겨야겠습니다. 대위, 내가 이기는 것 보라고.”
그러면서 또 말했다.
“우리가 마 청장님하고 바둑을 두는 것은 마치 이귀(李鬼)가 이규(李逵)를 만난 꼴이지.(이귀와 이규 : 둘 다 수호지에 나오는 인물들임--역자).”
바둑을 두면서 마 청장이 별 생각 없이 말했다.
“갈아 신을 양말을 가져오는 걸 깜박했어.”
그러자 정소괴가 말했다.
“그럼 제가 나가서 사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얼떨결에 나도 말했다.
"제가 한번 내려가 볼까요?”
내가 돌아와서 말했다.
“전부 문을 닫았습니다.”
이때 정소괴는 이미 한 판 지고 나서 다시 한 판을 더 두려는 차였다. 나는 그냥 방으로 돌아왔다.
밤늦게야 돌아온 정소괴는 다시 세숫대야를 들고 나가더니 한 참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보온병에 물이 떨어진 것을 보고 컵을 들고 물을 뜨러 나갔다가 복도 끝 전기난로 옆에 서 있는 정소괴를 보았다. 그는 나를 보더니 얼른 뭔가를 감추는 것 같았다. 전기난로 위에 놓인 양말 두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정소괴가 마 청장님의 양말을 빨아 말리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나는 못 본 척하고 물만 받아 돌아왔다. 한밤중에 그가 들어와서 물었다.
“여태 안 잤어?”
그리고는 드러누워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흘낏 보니『바둑 첫걸음』이었다. 내가 물었다.
“늦었는데 그만 안 자고 무슨 책을 보나?”
“이 책.”
그가 자기 책을 들어올리면서, 나는 무슨 책을 보고 있느냐고 물었다.
“하몽요(何夢瑤)의『의편(醫碥)』.”
“전공 파고드는 것도 좋지. 나중에 자네가 당대의 이시진(李時珍)이 되면, 나는 회고록에 쓸 제일 좋은 자료를 갖게 되는 셈이니까.”
내가 말했다.
“나도 사실은 바둑을 좀 더 배워두고 싶은데. 배워두면 좋지.”
이튿날 아침잠을 깨자 마 청장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말했다.
"밖에 나가서 양말 파는 데 있나 찾아보고, 있으면 두 켤레만 좀 사다 줘, 순면으로.”
조금 후 내가 양말을 사다 드리자 마 청장이 말했다.
“정소괴 그 친구 말이야, 참 마음씨가 고와. 어젯밤에 내 양말을 빨아다가 말려 놓기까지 했더군. 일어나 보니 어쩐지 양말이 보이지가 않는 거야. 양말 두 켤레가 같이 널려 있던데, 아마 다른 사람 양말하고 같이 빨았나봐. 그런데, 이런 곳의 세숫대야는 쓰면 안 돼. 무좀은 아주 쉽게 전염되거든. 내가 어느 해엔가 호텔 슬리퍼를 신었다가 무좀에 걸린 적이 있는데, 약이란 약은 다 써 봤지만, 하여튼 정말이지 그놈의 무좀균은 일본놈들보다 더 질기더군.”
정소괴는 양말 한 켤레를 가지고 저 유난을 떨면서 마 청장님이 자기를 깔볼까 걱정도 안 되는지 궁금했다. 아침 식사 때 그가 고개를 숙여 마 청장님의 발을 보았다. 자기가 빤 양말을 신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하더니 얼굴이 굳어져버렸다.
오전에 은(殷) 국장의 업무보고를 들었다. 정소괴는 자연스럽게, 또 고의로, 노트를 내 앞에 툭 던져놓았다. 나는 마 청장과 노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마 청장은 못 본 척 고개만 끄덕였다. 어쩔 수 없이 내가 펜을 들고 발표 내용을 기록했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보고를 들으면서 간간히 한두 문제를 물어보았고, 마 청장은 얼굴에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보아 하니, 그는 정말로 마 청장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 침묵해야 하고, 언제 한두 마디 끼어들어도 괜찮은지 훤히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오후에 은 국장이 마 청장님을 모시고 지구 위원회로 간 사이, 나와 정소괴는 부국장들과 함께 구체적인 업무의 세부사항에 대해 상의했다. 무(巫) 부국장이 말했다.
“청에서 온 동지들께 몇 가지 보고드릴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서둘러 말했다.
“보고가 아니라, 다같이 토론해 보도록 합시다.”
정소괴는 단정하게 앉아 손으로 볼펜을 돌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적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하면서 가끔 흠, 흠, 소리나 낼 뿐이었다. 나한테 기록하라는 표시였다. 나는 못들은 척 무시했다. 말하는 도중에 그는 걸핏하면 무 부국장의 말을 자르고 온갖 위세를 부리면서, 이것저것 물어댔다. 비록 마 청장이 우리더러 그곳에 남아서 실무를 논의하라고 하긴 했지만, 그에게 회의를 주재할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저 인간은 뭘 믿고 저렇게 세도를 부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몇몇 부국장들은 나이도 지긋한 분들 같은데, 저 분들 체면을 봐서라도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더더욱 믿기 어려웠던 것은, 전혀 불편한 기색 없이 그를 위생청 간부 대접하는 사람들, 묻는 말에 매우 공손하게 한 마디 한 마디 대답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그런 태도에 한층 탄력 받은 정소괴가 드디어 흥분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머리까지 비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제시되는 문제마다 핵심을 짚어냈고,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자신의 평소 실력을 넘어서기까지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너도 평소에 머리를 쓰기는 쓰는구나. 이렇게 되자 그들은 더욱 정소괴를 대단한 인물로 여기고, 가끔 내가 끼어들어 묻는 질문에도 그를 보면서 대답을 했다. 그는 흥분해서 얼굴까지 발그레해졌고, 상당히 신나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가소로웠다. 뭐가 또 그렇게 신이 나냐? 그래, 네 마음대로 해봐라! 그의 얼굴에 점점 더 윤이 나고 혈색이 좋아질수록 그 사람들의 태도는 더욱 공손해졌으며, 심지어 누군가의 입에선 “정 주임”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는 그 말을 굳이 정정하려 들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한숨을 쉬었다. 그들을 보면서 내가 다 낯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저녁 식사는 호텔에서 하기로 했다. 우리가 먼저 식당에 가서 마 청장을 기다렸다. 지구위원회(地區委員會)의 동(童) 서기도 온다고 했다. 동 서기는 십여 년 전 마 청장과 함께 약 이년간 티베트 구호작업에 참여했었다. 식당 입구에 도착하자 위생국 인사과의 소(肖) 과장이 나오면서 말했다.
“룸이 다 예약되어 버렸습니다.”
무 부국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전에 지시한 일인데 아직도 처리가 안 됐어? 동 서기님까지 오신다고 말했잖아! 좀 있다가 자네가 은 국장님께 말씀드리게. 동 서기님이 홀에 앉아 식사하시게 생겼다고 말이야.”
소 과장이 말했다.
“제가 오전에 방군(小方)에게 지시해서 요리까지 다 예약해 놓았는데, 그만 룸 예약하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내가 말했다.
“다른 식당으로 바꿀 순 없습니까?”
그러자 무 부국장이 말했다.
“웬만한 집은 여기밖에 없습니다. 동 서기님도 손님 접대할 일 있으면 여기에서 하지요.”
내가 말했다.
“홀에 앉아서 먹어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러자 정소괴가 곧바로 말했다.
“대위, 자네 마 청장님을 홀에서 식사하시게 할 생각인가?”
무 부국장이 말했다.
“소 과장, 룸 손님에게 양보 좀 해달라고 부탁해 보지. 동 서기님이 손님으로 오신다고 말이야, 동 서기님께서!”
그러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소 과장이 들어가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방군이 문 앞에서 룸 손님들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룸 손님들은 앉아서 일어날 생각을 않았다. 소 과장이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방 군! 자네 정말 얼마나 큰 사고 친 줄 아나? 동 서기님도 오시기로 했는데, 이따가 자네가 동 서기님께 직접 말씀드리게.”
방 군은 곧장 울어버릴 것 같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정소괴가 방 군이 자기 대학 동기라는 것을 알고 곧장 가서 악수를 청했다. 방 군은 난감한 듯 웃었다. 정소괴가 소 과장에게 물었다.
“아직도 해결 안 됐습니까? 마 청장님 일행이 곧 도착하십니다.”
소 과장이 방 군을 한 번 째려보더니 아무 말이 없었다.
방 군이 말했다.
“안쪽에 계신 분들은 시 정부 공정국(工程局)의 장(張) 국장이십니다.”
정소괴가 문 입구에 서서 말했다.
“룸에 계신 동지분들, 한 번만 양보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성(省) 위생청에서 오신 마 청장님께서 손님을 접대하시려고 하는데요.”
룸 안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마(馬) 청장? 모르겠는데. 우(牛) 청장이 쟁기를 끌고 갔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소 과장이 말했다.
“일이 그러니까 이렇게 된 겁니다. 지구위원회 동 서기, 동묘(童渺) 동지께서 이곳에서 성에서 오신 손님을 접대하실 생각입니다.”
그 사람이 소 과장의 말투를 흉내 내면서 말했다.
“일이 그러니까 이렇게 된 겁니다. 우리 장 국장, 장효평(張曉平) 동지께서 성에서 오신 정(程) 서기님을 접대하려고 모여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장 국장의 목에서 특이한 소리가 났다. 기침 소리 같기도 하고 거친 숨을 내쉬는 것 같기도 했다. 말하던 사람들이 곧 잠잠해졌다. 장 국장이 말했다.
“정말 동 서기님이 오시는 겁니까? 동묘 서기님? 만약 동 서기님께서 공무를 보신다면 우리가 양보하는 게 당연하지요. 다만, 좀 기다려 보고 동 서기님이 안 나타나시면 여기 있는 우리 가짜 동 서기들이 다 뒤집어엎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방금 말하던 사람의 어깨를 툭툭 쳤다.
소 과장이 말했다.
“설마 여러분을 속이겠습니까. 안남 지역에서 누가 감히 동 서기 이름을 사칭하겠습니까. 호랑이 쓸개를 먹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무모한 짓을 하겠습니까.”
시정국 사람들이 우루루 가버렸다. 소 과장도 나가면서 말했다.
“나는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겠네.”
“저도 가겠습니다.”
방 군도 이렇게 말하며 따라가려고 했지만, 정소괴가 그를 붙잡고 말했다.
“곧 식사를 할 텐데 가기는 어딜 가?”
“나는 유치원에 가서 딸아이를 데려와야 해.”
“벌써 여섯 시가 넘었는데 딸 데리러 간다고?”
방 군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거참, 성에서 온 자네들 하고 비교가 되나? 이런 모임에 내 자리가 있을 턱이 없지. 나야 심부름꾼에 불과한걸. 그때 성에 남으라는 자네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안남에 있는 집안 식구 생각해서 돌아왔는데, 그게 실수였어.”
“내가 나중에 소 과장한테 말해서 자네 사정 좀 봐주라고 할게.”
“그 사람 앉을 자리도 없어. 한 테이블에 자네들 열 명이면 딱 맞아.”
“그럼 은 국장한테 말해보지.”
“부끄럽군, 부끄러워. 오늘 동창을 만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아프다고 핑계 대고 숨어버리는 건데.”
그리고는 정소괴의 손을 뿌리치고 가버렸다.
그때 마 청장과 동 서기가 들어왔다. 시정국 사람들은 홀에서 이쪽을 쳐다보았다. 장 국장이란 사람은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동 서기님!”
동 서기는 듣지도 못한 것 같은데 장 국장은 헤헤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룸에 들어서며 동 서기가 말했다.
“마 형, 오늘 한번 실컷 마셔 봅시다. 왕년에 라싸(拉薩)에서, 그 힘들던 이년도 술로 견뎌냈잖아.”
정소괴가 끼어들면서 말했다
“도수가 높지 않은 걸로 드세요. 요 몇 년 마 청장님 주량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동 서기가 지시했다
“그러면 마오타이(茅台)로 하지 말고 우량에(五粮液)로 하지.”
“여기 우량에 두 병!”
은 국장이 주문하자 지배인이 직접 술을 들고 왔다. 종업원 아가씨가 받아들려고 하자 지배인이 황급히 말했다.
“너는 가서 요리나 가져와.”
그리고는 종이 상자에서 술병을 꺼내 술 따를 준비를 했다. 은 국장이 말했다.
“제가 따르지요.”
그는 술병을 받아 동 서기와 마 청장에게 각각 한 잔씩 따랐다. 무 부국장이 술병을 건네받으면서 말했다.
“제가 따르겠습니다.”
무 부국장은 은 국장에게 먼저 한 잔 따르고 나와 정소괴한테도 한 잔씩 돌렸다. 이렇게 술병이 여러 사람 손을 거치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거야말로 학문이구나, 학문. 이렇게 세심한 배려를 사무에 적용시키면 중국은 정말 성공하는 건데.”
곧 요리가 나왔다. 동 서기와 마 청장은 서로 잔을 부딪친 다음 단숨에 다 마시고, 그 잔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며 동시에 말했다.
“쨔오(照: 깨끗이 비운 술잔 밑바닥을 상대에게 보여준다는 뜻 -- 역자)!”
그리고 같이 웃으며 말했다.
“아, 시원하군! 통쾌해!”
분위기가 점점 달아올랐다. 나도 술을 조금 마셨다. 술은 정말로 좋은 물건이다. 이런 자리에 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지게 마련이다. 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고 즉석에서 양조(釀造)된 감정을 진정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정소괴는 불안정한 표정으로 계속 마 청장을 바라보면서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 사람들은 모두 술고래인데, 마 청장님이 어떻게 상대하시지?”
마 청장은 동 서기와 은 국장이 따라주는 술을 마셨다. 무 부국장은 벌써 얼굴에 불그스레한 기운이 퍼졌다. 그는 술잔을 들고 일어서면서 말했다.
“마 청장님, 안남에는 다음엔 언제 오실지도 모르는데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제가 올리는 이 술은 삼 년간 유효합니다.”
“좋지, 좋아!”
마 청장이 대답하며 술을 받자 정소괴가 일어나서 말했다.
“마 청장님의 주량은 다 아시는 대로입니다. 마 청장님 혼자 여러분 모두를 상대하실 수 없으니, 제가 청장님을 대신해서 그 잔을 마시겠습니다.”
무 부국장은 고개를 들고 막 마시려던 차에 그 말을 듣고는 손을 내리고 정소괴와 마 청장을 번갈아 쳐다봤다. 마 청장이 손으로 탁자를 탕, 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자네, 이거 뭐하는 짓인가!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 줄 알고, 내 오랜 친구들이야! 뭐라고? 자네가 날 대신한다고? 흥!”
정소괴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얼굴이 확 벌겋게 달아올라서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제자리에 앉았다.
동 서기가 말했다.
“마 형, 마셔, 마셔.”
마 청장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말했다.
“음, 마시세. 마시자고!”
나는 술잔을 들고 정소괴에게 말했다.
“우리도 마시자.”
그러나 그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내가 쿡 찌르자 그제야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으…응, 마시자.”
단숨에 잔을 비우고 말했다.
“짜오(照).”
은 국장이 맞은편에서 정소괴에게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한 잔 받지, 한 잔씩 받아.”
그리고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들 먼 곳에서 여기까지 어렵게 왔는데 말이야.”
정소괴는 단숨에 잔을 비웠다. 꽤 취했다.
한 끼 식사에 두 시간도 넘게 걸렸다. 마 청장은 취하지도 않고 동 서기와 티베트에서 있었던 일들을 흥미진진하게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동 서기는 돌아가고, 은 국장과 몇몇이 마 청장을 호텔까지 바래다주었다. 은 국장이 호텔에서 나에게 부탁했다.
“이 술은 뒷기운이 세서 누가 좀 돌봐드려야 할거요.”
나는 정소괴를 부축해서 방으로 들어왔다. 그가 지폐 몇 장을 꺼내며 말했다.
“지대위 형! 가서 술 한 병 사다 줘, 우량에(五糧液)로. 오늘 우리도 마음껏 마셔 보자고.”
“자네 취했어, 내가 차 갖다 줄게.”
그러나 내가 따라 주는 차를 그가 밀치는 바람에 뜨거운 물이 몸에 튀었다.
“데지 않았나?”
“차 안 마셔, 술 마실 거야. 술 마실 거라고!”
그렇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바닥에 토하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발 씻는 물통을 침대 앞으로 가져오고 종업원을 불러 바닥을 씻도록 했다. 정소괴는 침대 위에서 한탄을 하면서 말했다.
“지대위 형! 오늘 말이야. 이런 대접 받고도 내가 얼굴 들고 사람 노릇 할 수 있겠어? 사람? 개한테도 이렇겐 하지 않아. 개한테도 꼬리 흔들면 뼈 한 조각이라도 더 던져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준다고! 그런데 나는 뭔가, 나는? 꼬리 좀 흔들었다고 가슴을 발로 차다니!”
“자넨 취했어, 취했다고.”
그의 옷을 벗기고 자리에 눕히려 하자, 그가 내 손을 홱 뿌리치면서 말했다.
“자네도 나더러 취했다고 하는군. 자네까지! 내가 취했으면 정신이 이렇게 말짱할 수 있나? 오늘은 내 평생에 정신이 제일 말짱한 날이야! 여하튼 나는 오늘에야 나 자신을 확실히 알았네. 한심한 물건 같으니라고!”
나는 계속 그의 옷을 벗겨주며 말했다.
“그래, 자네 안 취했어. 한숨 자고 나면 정신이 더 맑아질 거야.”
그는 침대에 누우면서 말했다.
“나 정말 말짱해, 보라고!”
그는 손을 뻗어 책을 잡으면서 말했다.
“바둑 첫걸음, 맞지? 술 취한 사람이 이렇게 정신이 맑을 수 있어? 여하튼 나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간이란 어떤 물건인지 똑똑히 알고 있다고. 한심한 것들!”
“자네 졸리는구나. 취하지는 않았고 졸리는 거야.”
그는 책을 내려놓고 손으로 가슴을 힘껏 쳤다.
“내가 졸린다고? 나는 밤을 꼬박 새워도 끄떡없어. 형씨, 내 마음 속 깊이 숨겨두었던 얘기 하나 할까? 누군들 출세해서 사람답게 살고 싶지 남한테 꼬리나 흔들면서 살고 싶겠어? 어릴 적에 우리 집에 백리(白利)란 개를 키웠는데, 하루는 내가 그 놈을 한참 동안 관찰해 봤지. 이름을 부르면 그 놈의 꼬리가 마치 전기가 통한 듯 흔들리기 시작하는 거야. 왼쪽, 오른쪽, 신나게. 개가 원래 다 저렇지 싶다가도 그래도 꼬리를 치는 걸 보면 그 놈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뼈다귀라도 하나 던져주면 정신 못 차리고 꼬리를 더 세게 흔들어 대. 그런데 가끔 나도 내 자신이 경멸스러워. 꼬리만 안 달렸지 뭐가 틀려?
하지만 꼬리 좀 잘못 흔들었다고 발로 걷어차일 줄은 정말 몰랐어. 집에서 기르던 개도 나는 걷어찬 적이 없어. 차마 발이 안 떨어졌어. 사람이 어떻게 개만도 못해? 오로지 나만 위해 산다면, 나도 작대기처럼 허리 꼿꼿하게 펴고 사나이처럼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집은 첩첩산중 골짜기에 있고,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어. 내가 출세할 방도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책임이 막중하지! 나 같은 인간이 나 말고 누구한테 의지하겠어? 아우들과 누이동생들은 해마다 커가고, 내가 좋은 소식 갖고 돌아오기만 눈 빠져라 기다리는데. 나는 설에 집에 돌아가는 것도 겁이 나. 내가 처장 정도 되어야 그 녀석들도 도시로 나와 식당에서 임시직으로라도 일하거나 위생청 수위라도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비굴한 생활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야 해. 세상살이가 다 이런 거지. 이치가 이런데 나라고 별 다른 수 있겠어? 그저 숨죽이고 따르는 수밖에 없어. 이런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성깔을 부릴 수 있겠어?”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크게 하품을 하더니 몸이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다시 말했다.
“세상살이, 자네도 얘기해봐. 공평하다고 생각하나? 그건 텔레비전에서 우릴 속이고 놀리려고 하는 소리야. 그렇지?”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이름을 두어 번 불러 보았지만 벌써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잠든 그를 바라보면서 나는 그에 대한 원한이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다. 정말 불쌍한 사람이구나.
누가 문을 두드렸다. 마 청장이었다.
“정 군, 자나?”
“좀 취해서 자고 있습니다.”
“깨우지 말고, 이따가 일어나거든 내가 왔었다고만 얘기해 주게.”
“일어나면 청장님께 가 보라고 할까요?”
“아니, 내가 왔었다고만 얘기해 주게. 나도 일찍 자야지. 오늘 많이 마셨어. 나도 많이 마셔서 일찍 잔다고 말해 주게.”
내가 잠시 책을 보다가 막 불을 끄고 자려는데 그가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면서 말했다.
“술 깼어. 술 깼어.”
내가 말했다.
“마 청장님이 와서 자네를 찾았는데, 안 깨웠네.”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
“왜 안 깨웠어? 아마도 두유…두유…, 아니 바둑 두자고 부르신 게야.”
옷을 찾아 입으면서도 계속 중얼거렸다.
“이런, 늦었네, 늦었어. 어쩌다가 내가 한 순간에 잠들어 버렸지?”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내가 말했다.
“마 청장님도 곧바로 주무실 거라고 했어.”
그는“아이고, 아이고”하면서 뛰어나갔다. 나는 문간까지 따라가면서 말했다.
“마 청장님도 일찍 주무신다고 했어. 오늘 술 많이 드셨다고.”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마 청장님 방 문 앞까지 가서 바닥에 엎드려 문틈으로 방 안에 불이 켜져 있는지 살펴보았다. 저렇게 엉덩이를 치켜들고 엎드려 있는 꼴하고는. 저놈 꼴 좀 봐라! 그가 돌아와서 말했다.
“정말 주무시더군. 난 어쩌다가 그렇게 죽은 듯이 자버렸지?”
그리고는 다시 마 청장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물었다.
“자네한테 그냥 왔었다고만 얘기하라고 했어.”
“또 무슨 말씀 안 하셨어? 그대로 말해 봐.”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원래 말한 그대로? 그건 나도 기억 안 나. 그냥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하셨던 것 같아.”
그는 침대 가에 앉아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청장님은 역시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셔. 마 청장님은 과연 마 청장님이야. 누가 뭐라든 역시 마 청장님이야.”
나는 생각했다.
“정소괴는 과연 정소괴야. 누가 뭐라든 역시 정소괴야.”
그는 자리에 누우면서 말했다.
“방금 전엔 취했어. 취해서 내 성도 모를 정도로 정신을 잃었어.”
나는 하마터면 웃어버릴 뻔했다. 아직 뼈다귀도 안 던져 주었는데….
“내가 취중에 무슨 얘기 안 했지? 내가 원래 술 취하면 하늘땅도 구분 못하고 내 성이랑 이름도 기억 못하거든.”
“자네 안 취했었어. 오늘이 자네 평생 정신이 가장 말짱한 날이었어.”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나? 정말 취했었다니까. 취중에 한 말은 없었던 걸로 치지.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는 걸. 내가 혹시 다른 사람 욕이나 하지 않았는지? 내가 자네 욕을 하던가?”
“안 했어, 안 했어.”
“그렇다면 다행이고. 다른 사람 욕만 안 했으면 됐어.”
그는 불을 끄고 누우면서 말했다.
“그래, 이제 생각난다. 난 아무 말도 안 했었어. 아무 말도. 내가 뭐라고 했었어? 아무 말도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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