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다(指鹿爲馬)**
마 청장은 전 위생청 직원을 소집하여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 그는 위생부의 정신을 역설하고, 전 성(省)의 약물관리 업무의 강화를 지시했다. 그는 하북(河北)과 호남(湖南) 지역의 가짜 약으로 인한 인명피해 사례 몇 건을 소개하더니 이마를 찌푸리고 말을 멈추었다. 족히 일 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귓속말을 하던 사람들도 얼른 입을 다물었다.
<사진> '창랑지수' 전 3권이 8월 12일 비봉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마 청장이 말했다.
“우리 성에서 이런 큰 문제가 터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습니까? 나도 감히 보장 못하는데 말입니다. 나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火山) 입구에 앉아 있는 기분입니다. 이렇게 전전반측 밤에 잠 못 드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과거에 모 부서에서 평소 자잘한 부정행위들을 범한 적들이 있었습니다만, 큰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 위생청에서도 굳이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인 이상 어느 정도 실수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실수에는 절대 저질러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 경계선을 일단 넘어서면 그 다음엔 만회할 길이 없습니다.”
이어서 말했다.
“지금 내가 여러분들 앞에서 듣기 거북한 말을 했지만, 문제가 터진 다음에는 이미 늦습니다. 위생청의 명예는 우리 모두의 명예이지, 나 마수장(馬垂章) 개인의 명예가 아닙니다. 감히 위생청 얼굴에 먹칠을 하려 드는 사람, 누구입니까? 그런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까지 생각해보십시오. 쉽게 말해서, 여러분, 이 직장에 계속 남아 있기 싫습니까? 여러분은 이 직장 떠나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어디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좀 심하게 말해서, 그런 과오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면 집에 들어앉아 있지도 못합니다. 형사 책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치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사람 있으면, 어디 손 한 번 들어 보세요.”
그는 사방을 둘러보고 말했다.
“손 드는 사람 없군요. 모두들 이해했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단상 아래에 앉아 이런 말을 듣고 있자니, 한마디 한마디가 다 이치에 맞는 말이기는 했으나 속은 별로 편치 않았다. 심지어 일종의 굴욕감마저 들었다. 청장의 위세가 저 정도로 당당할 수도 있구나! 사건의 심각성을 이용해서 자신의 권위를 분명하게 세우고 있었다. 마 청장도 정말 보통이 아니다. 리더십이 뭔가? 바로 저런 게 리더십이다.
나는 주위 사람들의 안색을 살폈다. 모두들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내 왼쪽에는 위생청 안에서 한가하기로 유명한 안지학(晏之鶴) 선생이 앉아 있었다. 이십 년 전만 해도 위생청의 브레인으로 통했지만, 요즘에는 별 볼일 없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책상만 있었지 하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 종종 근무 시간에 도서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장기를 두고 있기도 했다. 그런대도 그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진지한 얼굴로 단상을 바라보면서 마 청장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이런 상황이 부자연스럽다고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오랜 기간 길들어진 사람들이라 그런지 자신의 역할과 그에 상응하는 마음가짐까지 모두 숙지하고 있었다. 이곳이야말로 사람을 길들이기에 정말 좋은 곳이군. 이곳에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분위기, 어떤 상태에 녹아들게 된다. 왜곡된 가운데서 비틀렸다는 감각을 상실하고, 굳건하던 마음은 마치 오이로 꽹과리를 쳐대는 것처럼 토막토막 잘려져 나가떨어지고 만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윗사람들이 원하는 효과다.
나는 자리에 앉아 어깨를 으쓱하고 입술을 상하 좌우로 움직이며 주위 사람들을 비웃었다. 실눈을 뜨고, 고개를 슬며시 까딱거리면서 희미한 웃음을 웃었다. 나한테는 이런 비판적 사고능력이 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회의를 마치고 안지학 선생이 말했다.
“한 판 죽이러 갈까?”
“갑시다! 근심걱정 떨쳐버리는 데는 장기만한 것이 없죠.”
도서실에 도착하여 장기판을 펼치면서 그가 말했다.
“자넨 아직 젊어서 인생의 맛을 모르네.”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이어서 말했다.
“무슨 걱정 있어? 걱정도 없으면서 괜히 그런 말하지 말게. 듣기 안 좋아.”
나는 알 듯 모를 듯했다.
“걱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 말이 듣기 거북합니까?”
그가 장기 알을 움직이며 말했다.
“한 판 붙어 보자고!”
위생청에서 약품관리 강화에 관한 문건의 초안 작성에 들어갔다. 유(劉) 주임은 나더러 수원(隨園)호텔에 가서 이 작업에 참여하라고 지시했다. 우선 재무처(財務處)에 가서 비용을 수표로 받고, 퇴근 후 일층에서 차를 타라고 했다. 옆에 있던 정소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안색이 확 변했다. 입을 약간 벌린 채 유 주임을 쳐다보았다. 이전에는 이런 기회가 생기면 모두 자기가 갔던 것이다. 유 주임이 내게 말했다.
“마 청장님이 자네를 직접 지명하셨어.”
이것이 우리 청의 관례였다. 문건 초안을 잡을 때는 사람들을 뽑아 호텔에서 며칠 묵으면서 작업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일종의 특별대우로 생각했다. 호텔에 묵고 안 묵고야 별 문제 아니었지만, 윗사람의 눈에 들었느냐 아니냐 하는 중요한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이런 기회는 모두 정소괴의 차지였다. 그래서 한 번은 나도 유 주임에게 슬쩍 불만을 표시했었다.
“무슨 일 있으면 모두들 돌아가면서 맡도록 합시다.”
“그 친구는 자기가 가는 데 익숙해져서, 자기를 안 보내면 불만스러워 할 거란 말이야.”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나는 뭐, 아무 불만 없을 줄 아쇼?”
나는 너무 군자연하는 게 문제야. 그렇지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랬는데 지금 마 청장님께서 직접 나를 지명하셨다니, 마음이 금세 훈훈해졌다. 역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직에서도 보면 안다니까. 내가 어제 마 청장님께 불경한 마음을 품었던 것이 생각났다. 내 마음가짐이 문제야, 마음가짐이 문제라고!
오후 내내 정소괴는 당나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 보라고 그러는 거냐? 저런 놈은 아예 상대를 하지 말아야지. 그렇지만 퇴근 시간 무렵 아무래도 내가 그의 기회를 빼앗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별로 할 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말을 붙여 보았다.
“어머니 병환은 좋아지셨어?”
“응.”
“퇴원할 때 유 주임한테 차 좀 내 달라고 부탁해봐.”
“응.”
저런 표정을 짓고 있으면 자기에게 기회가 올 줄 아는지. 저 인간은 크든 작든 좋은 것은 전부 자기 혼자 처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하늘의 뜻인 양, 행여 그렇게 못하면 엄청 억울한 일이나 당한 듯이 유난을 떤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냐! 정말 어떻게 떼어버릴 수도 없고 말이야. 도대체 적당한 선에서 그만 둘 줄을 모른다. 피하면 피할수록 낯짝을 들이대면서 상대를 코너로 몰아붙이려고 한단 말이야. 이렇게 된 바에야, 미안하지만, 나도 소인배가 되어서 너하고 정면으로 붙어보는 수밖에 없겠다. 내가 봐줄 줄 아냐?
수원호텔에 온 사람들은 모두 처장, 과장급이었다. 원진해 처장이, 마 청장님은 저녁때나 돼야 오실 거라고, 먼저 식사를 하라고 했다. 요리도 좋았고 술도 좋았다. 이게 웬 떡이냐. 게다가 더 좋았던 것은 이렇게 함께 둘러앉아 담소하는 분위기, 사람을 매료시키는 그런 분위기였다. 직장이 하나의 울타리라면, 그 울타리 안에는 몇몇 핵심 인물들을 둘러싼 또 하나의 작은 울타리가 존재한다. 그 작은 울타리 안에 있는 몇몇 사람들이 모든 이익을 독식하게 마련이다.
포커판이 벌어졌다. 마침 내가 선을 할 차례에 마 청장님이 들어오셨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진해는 카드를 내려놓고 얼른 마 청장을 맞이했다. 마 청장이 말했다.
“모두들 노세요, 계속 놀아요.”
그리고는 곧바로 나갔다.
원진해는 뉴스를 봐야겠다면서 카드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정작 몇 분 보지도 않고 나가버렸다. 내가 말했다.
“뉴스 볼 것도 아니면서 카드는 왜 그만 둔 거예요? 방금 기차게 좋은 패가 들어왔었는데.”
소(蘇) 처장이 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 사람들은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자네 바둑 둘 줄 아나?”
“언제 한 수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거 좋지, 좋고말고.”
나는 원진해 처장과 같은 방에 묵었다. 그가 밤에 돌아와서 나를 흔들어 깨웠다. 시계를 보자 한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누가 이겼어요?”
“초보자가 어떻게 감히 고수를 이겨?”
그가 불을 끄고 물었다.
“정소괴 그 인간 어때?”
“그저 그렇지요.”
나는 모호하게 대답했다.
“다루기 힘든 사람이지?”
“너무 자기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지난 이 년 그 인간한테 들볶이느라 애 많이 먹었어. 일마다 다 나서려고 하는데 뭐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지. 그런 놈은 눌러버려야 해! 동풍이 서풍을 누르지 않으면 서풍이 동풍을 누른다고(不是東風壓倒西風, 就是西風壓倒東風). 지금은 동풍이 서풍을 누른 거지?”
“서풍이 되게 불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자기를 부르지 않았다고, 하마터면 크게 틀어질 뻔했어요.”
“그 인간 제일 짜증나는 게 바로 자기 분수를 모른다는 거야. 조만간 자네가 그냥 틀어버려. 그러면 오히려 편해.”
둘째 날 마 청장이 모두를 불러 모아 회의를 열었다. 나는 서기를 맡았다. 마 청장은 요점만 이야기하고는 자리를 떴다. 원진해가 포켓볼을 치러 가자고 했다.
“문건 초안은 작성 안 해요?”
“자네 기록해 놓은 거 있잖아. 나중에 시간 내서 한꺼번에 써.”
그리고는 황 처장을 보고 말했다.
“괜찮겠지요?”
황 처장이 말했다.
“석사 출신한테 보고서 작성을 맡기다니, 소 잡는 칼로 닭 잡는격(牛刀殺鷄)인걸.”
정오에 모두들 낮잠 자는 동안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금방 다 쓰기는 했지만 분량이 세 페이지밖에 안 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겨우 요 정도 성과밖에 못 낸다는 것이 꺼림칙해서 문장 앞에 감상적인 문장을 몇 개 더 써넣었다.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 오후에 소(蘇) 처장이 읽어보고 나서 말했다.
“괜찮군, 괜찮아. 그런데 앞 쪽에 있는 이 서정적인 문장들은 없어도 돼. 우리 위생청 문건의 격식이 있으니까. 창의적일 필요 없다고.”
저녁에 내가 원진해 처장에게 물었다.
“마 청장님 스위트룸은 체크아웃 안 해요? 하룻밤에 백 몇 십 위안, 거의 제 한 달 월급과 맞먹는 돈인데요.”
“그 정도 돈에 위생청이 망하기라도 할까봐? 소농(小農) 의식! 만약 청장님 돌아오시면 뭐라고 말씀드리겠어?”
이튿날 밤에도 마 청장님은 호텔에서 주무시지 않았다. 그 스위트룸은 체크아웃하지 않은 채였다. 나는 속이 매우 언짢았다. 위생청에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이런 식으로 물 쓰듯 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래, 나는 소농 의식이다! 나는 산골짜기에서 십 년을 보냈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다 아는데, 그런 내가 그 극도로 빈곤하고 고된 생활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그렇지만 시골 출신 중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
위생청으로 돌아와 재무처에 회계보고를 했다. 불과 며칠 동안 이만 칠천여 위안이나 썼다. 돈을 이렇게 쓸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고(古) 처장에게 사인을 부탁하면서 나는 속으로 긴장했지만, 그는 그냥 한번 쓱 보더니 순순히 사인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당신네들 그 보고서가 일천 자(字) 좀 넘으니까 한 자당 평균 십구 위안(元) 오 마오(毛)씩 치였군.”
월요일에 출근하자 정소괴는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누구 보라고 저렇게 청승을 떠나? 하긴 나도 이젠 저 인간이 왜 저렇게 유난을 떠는지 알 것도 같았다. 며칠 후에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다음에 호텔에 가서 문건 작성할 일 생기면 자네가 가. 나는 잠자리를 가려서 호텔에서 묵는 게 영 별로거든. 어디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있어야지.”
사실 나는 그런 식으로 돈 허비하는 것을 보아 넘기기 힘들었던 것이다. 차라리 내 눈에 안 띄면 좀 낫겠지. 정소괴가 말했다.
“아냐, 사양할 것 없어. 가야 할 사람이 가는 거지.”
말하는 것 하고는. 정말 재수 없는 놈이다.
그 문건에 기초해서 전 성(省)의 약재 시장에 대해 한 차례 대 정돈을 단행하게 되었다. 현재의 열일곱 개 대형시장 중에서 여덟 개만 남기기로 했다. 어디 어디를 남길 것인가? 청에서는 먼저 사람을 보내 실정을 조사하고 그에 기초해서 다시 지방정부와 협의하기로 했다. 각 지방정부에서 모두 자기네 시장을 남기려 할 것이므로 위생청도 그들을 설득할 증거자료가 필요했다.
나는 정소괴와 오산(吳山) 지역으로 조사 나가게 되었다. 계획대로라면 그곳에 있는 세 시장 중에 단 한 군데만 남길 수 있었다. 기차 안에서 정소괴가 말했다.
“아마 우리 조가 맡은 임무가 가장 쉬울걸. 벌써 대충 결정 났으니까.”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결정이 나다니, 그럼 우린 왜 가는 거야?”
“우리가 일단 가야 사람들이 우리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성 차원에서 결재할 때도 근거가 있어야 하고. 안 그러면 우리 위생청 혼자 힘으로는 어림도 없지. 지방정부에서 온갖 고생해 가면서 세워놓은 시장을 선뜻 철거하려고 하겠어?”
“녹명교(鹿鳴橋), 마당포(馬塘鋪), 가시구(街市口) 세 개 시장 중에서 두 개를 없애는데 지금부터 어디 하나를 정해 놓기에는 너무 이르지. 비밀리에 찾아가 본 다음에야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거지.”
“찾아가 볼 필요도 없어. 다 가짜 약들을 팔아서 화근이 된 거야. 그렇지 않다면 위생부가 이렇게 큰 결정을 내렸을 리 없지.”
“정말이지 모두 다 고만고만한데, 그걸 모조리 다 없앨 수는 없고. 어쨌든 하나는 종자를 남겨두어야지.”
“마당포를 남겨두어야지.”
“마당포는 운봉현(云峰縣)에 있는데, 생각해보니 마 청장님의 본적지가 거기 아냐? 하지만 마 청장님은 그런 것 신경 안 쓰시겠지? 우리한테 그런 뜻을 내비치신 적도 없잖아.”
“말이야 그렇게 하셨지만, 에이, 마 청장님이 현(縣) 공상국(工商局)의 증(曾) 국장이 자기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무슨 문제 있으면 찾아가 보라고 했잖아. 그게 그 뜻이지.”
나는 정소괴가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마 청장 말 한마디를 이리 꼬고 저리 꽈서 분석해서 나름대로는 행간의 뜻을 읽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건 또 뭐람. 높은 사람의 말이라고 다 숨은 의중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닌데, 받아들이는 인간들이 오버하는 바람에 의미심장한 말로 변해버리는 것이지. 내가 말했다.
“마 청장님이 그러실 리가 없어. 얼마나 원칙을 중요시하시는 분인데.”
그러자 정소괴가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나로선 더 할 말이 없네.”
먼저 녹명교에 도착했다. 그곳은 조그만 진(鎭)이었지만 철로에 근접해서 역(驛)이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먼저 여관에 짐을 풀어놓고 곧바로 약재시장으로 향했다. 이 시장은 전국적으로도 어느 정도 이름이 나 있는 곳이었데, 길을 따라 칠팔십 개의 상점들이 영업 중이었고, 다음 골목으로 들어가자 점포가 백여 개 되는 시장이 또 나타났다.
우리는 약재를 사러 온 상인으로 가장해서 한 집 한 집 들러보았다. 정소괴는 중약(中藥)에 대해 잘 모르는지 쉴 새 없이 이 약 저 약을 들었다 놓으면서 내게 눈짓을 했다. 눈짓하는 것을 보아하니, 정소괴는 진짜와 가짜를 전혀 구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십여 개 점포를 둘러보았다. 열등품을 가지고 상등품이라고 한 곳도 적지 않았지만, 내가 약재의 품질을 지적하자 그들은 곧바로 가격을 깎아주었다. 한 점포에서는 황기(黃芪)가 색깔도 이상하고 냄새도 아주 약했다. 맛을 보자 물에 한 번 삶아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약 성분은 없어진 것이다. 점포 주인이 말했다.
“어때요, 맘에 들지요? 여기 황기는 모두 굵은 줄기에서 잘라낸 것들이지요. 이 조각을 한번 봐요!”
정소괴가 말했다.
“그러게요. 조각도 크고 색깔도 좋네요.”
내가 말했다.
“우리 사장님도 좋아하시니 한 근 달아 주시오.”
그가 무게를 다는 동안 나는 장부를 적는 척하면서 점포 번호를 적었다.
이틀간 녹명교에 머물면서 가짜 약재를 파는 점포 네 군데와 가짜 나귀 아교(나귀 가죽을 삶아 만든 아교로, 일종의 영양제---역자) 파는 점포 두 군데를 찾아냈다. 이 정도 큰 시장에 가짜 약재 파는 곳이 이것밖에 안 되다니, 의외였다. 정소괴가 초조하게 좀 더 자세히 조사해야 한다고 우기는 덕에 다시 하루를 더 머물렀다. 가짜 약을 파는 곳 두 군데를 더 찾아냈다. 내가 말했다.
“여기 시장은 관리가 웬만큼 잘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잘 되긴 뭐가 잘 된다는 거야. 별로인걸. 가짜 약을 파는 가게가 여섯 군데나 되는데, 이게 잘 되는 건가?"
마당포(馬塘鋪)에 도착하자 상황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시장에 들어서자 한 장사꾼이 석밀(石蜜)을 판다고 외치고 있기에 우리는 다가가서 물어보았다.
“주인장, 장사 잘 돼요?”
“내 꼴 보세요. 장사는 내 꼴보다 더 엉망이라오.”
그러면서 고개를 양쪽으로 내저었다. 내가 석밀 한 근에 얼마냐고 물어보자, 그가 말했다.
“이건 운남성(雲南省)의 원시림에서 채취한 야산 꿀이오. 암석에 붙어 있던 건데 한 벽이 몽땅 다 꿀로 되어서 삼십팔 층이나 돼요. 당신 지금 기침하시오? 기침하거든 이거 한 덩어리 골라 물에 타서 마셔 봐요. 그 자리에서 기침이 멎을 거요.”
또 중약(中藥) 책에 나와 있는 설명을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내 말은 못 믿어도 책은 믿겠지요? 적어도 내가 인쇄한 것은 아니니까.”
나는 석밀 몇 덩어리가 저쪽에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냄새가 어쩐지 이상했다. 그렇지만 한 층 한 층 포개져 있는 벌집 하며 그 위에 자란 푸른 이끼까지, 벌집은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소괴가 말했다.
“이건 진짜야, 이건 진짜라고.”
내가 다시 한 근에 얼마냐고 물어보자, 주인이 말했다.
“이십 위안.”
“팔 위안 합시다.”
“사장님,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시오? 좋소, 좋아, 한 근에 십 위안! 당신한테 팔아서 한 푼이라도 남긴다면 내가 당신 바짓가랑이 사이에 있는 그 물건이오."
내가 자리를 뜨는 척하자 그가 말했다.
“돌아와요, 돌아와. 팔 위안에 드릴게. 명색이 약잰데 가격이 무슨 썩은 양배추만도 못하구먼, 무슨 놈의 세상이!”
그리곤 칼로 한 근을 베었다. 나는 또 다시 점포 번호를 적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석밀 한 근에 팔 위안.”
그곳에서 멀찍이 갔을 때, 정소괴에게 말했다.
“이건 황색 설탕을 가지고 집에서 벌을 쳐서 만든 거야. 내 말을 못 믿겠거든 돌아가서 물에 타서 한 컵 마셔봐. 완전히 설탕물이지. 진짜처럼 잘도 만들었군.”
마당포에 머문 이틀 동안 가짜 약재 파는 점포를 마흔여 곳이나 찾아냈다. 나중에는 증거물 사들이는 것도 귀찮아졌다. 다 가져갈 수도 없었다. 정소괴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번에 돌아가서 뭐라고 보고하지?”
“마 청장님이 딱히 무슨 지시를 내리신 것도 아니니, 사실대로 보고하면 되겠지 뭐. 녹명교를 없애고 마당포를 남기자고?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어쨌든 자네가 알아서 하게. 보고서도 자네가 쓰고.”
다음으로 가시구(街市口) 시장으로 갔다.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풍인과(瘋人果 : 사람을 미치게 하는 과일--역자)를 개여주(羅漢果)라고 속여 파는 곳도 있었다. 사람이야 죽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위생청에 돌아온 후 보고서를 써서 약정처로 넘겼다. 녹명교 시장을 남겨두자고 건의하면서 그 이유로 비교적 양호한 관리상황과 편리한 교통 등을 들었다. 황 처장이 보고서를 보더니 말했다.
“마당포의 상황이 그렇게 나쁘던가?”
오후에 다시 내게 전화를 걸어 잠시 오라고 했다.
“지대위, 이번 보고서 데이터의 정확성에 대해 자신하나?”
“저와 정소괴가 한 집 한 집 돌아다니며 조사한 겁니다. 문제 있는 점포의 번호와 어떤 가짜 약을 파는지도 상세히 적었습니다. 절대 정확합니다.”
“자네가 어디는 대충 보고 어디는 더 꼼꼼히 보고 그랬다던데? 그렇다면 수집한 데이터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정소괴가 뒤에서 무슨 말을 한 거군! 뻔했다. 황 처장이 마당포를 남기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정소괴가 그에 합세한 것이 분명했다.
“누가 제 데이터가 정확하지 않다고 합디까? 누군지 불러다 내 앞에서 말해보라고 하세요! 감히 그렇게는 못할 겁니다.”
“이 자료들은 참고로 하겠네. 그렇지만 개별 지방은 다시 가서 조사할 수도 있네.”
문을 나서면서 속이 몹시 쓰렸다. 정소괴 이놈 자식!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더라도 정도껏 해야지! 사실 노루인지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윗사람이 원하는 것이 노루인지 말인지가 중요하다. 설령 윗사람이 말로써 하지 않았더라도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그 속을 꿰뚫어 보고 알아서 일들을 처리한다. 사실조차 윗사람의 뜻대로 움직이니, 제기랄, 권력이란 얼마나 좋은 거냐!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양심에 따르고 싶다.
그 후에 들으니 세 개 시장이 재조사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 중에는 마당포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했지만 마음이 싸늘해졌다. 세상일이라는 게 너무나 자명한 사실조차 저런 식으로 해석될 수 있구나! 너무나 황당하고, 우습고, 또 너무 무서웠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안 된다고 말해도 이것이 사실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은 녹명교 시장이 폐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루는 장기를 두다가 분을 참지 못하고 안지학 선생께 이 일을 이야기했다. 나를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자네는 뭘 믿고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나? 자넨 내가 누구누구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모르나? 한두 다리만 건너면 바로 그 누구누구의 귀에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나는 기겁을 했다. 공포로 질식해버릴 것 같은 분위기에 짓눌려 피가 몽땅 머리로 솟는 것 같았다.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보아하니, 자네도 머리가 남들보다 못하진 않구먼.”
“그러게, 배운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바른 도리(道理)를 말해야죠.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이 뭐가 되겠어요.”
그가 보일 듯 말듯 웃으면서 말했다.
“도리? 자네가 말하는 게?”
“도리는 도리입니다. 누가 말하든 도리는 도리에요.”
그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한 판 붙어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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