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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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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7>

굴문금(屈文琴)

***7. 굴문금(屈文琴)**

막서근 여사가 굴문금(屈文琴)이란 여자를 소개해 주었다. 성(省) 의과대학을 갓 졸업하고 시(市) 제2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여자였다.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과정은 공식대로였다.

일요일 해질 무렵, 나는 은성(銀星) 극장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막 여사가 그녀를 데리고 와서 나에게 극장 표 두 장을 쥐어 주면서 말했다.

“굴 양(小屈)을 자네한테 맡기고 가네. 섭섭하게 하면 안 돼."

제법 큰 키에, 귀에 닿는 가지런한 단발머리 아가씨였다.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극장 안은 컴컴했다. 벌써 예고편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가 넘어질까봐 걱정이 됐지만, 감히 손은 잡지 못하고 옷소매만 살짝 붙잡고 어둠 속에서 길을 더듬었다. 자리를 찾아 앉은 후에 이름을 묻자, 그녀가 키득거리면서 말했다.

“막 여사가 말 안 해줬어요?"

“알면서도 물을 땐 다 이유가 있죠. 인사 트자는 거지요."

화면에 비친 영상의 빛을 빌어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훔쳐보다가도 그녀의 머리가 살짝이라도 움직이는 것 같으면 얼른 고개를 돌려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와서 그녀의 모습을 자세히 보려고 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후여서 역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자전거에 태워 데려다 주려고 그녀더러 뒷자리에 먼저 앉으라고 했다. 그녀를 태운 후 페달을 밟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말했다.

“먼저 타고 달리세요. 제가 알아서 올라탈 게요.”

웬걸, 그녀가 달리기 시작하는 자전거의 뒷자리에 단번에 뛰어올라 탔다. 나는 속으로 의아해하면서 말했다.

“자전거에 날아오르는 이런 재주가 있을 줄은 정말 몰랐는데요?”

천만뜻밖으로 그녀가 말했다.

“학교 다닐 때 종종 남학생들 자전거 뒤에 타곤 했어요.”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듯한 그녀의 이런 대범하고 시원스런 대답에 오히려 나 자신의 속 좁음이 부끄러워졌다. 그녀가 내 뒤에서 귤껍질을 벗겨 내 입에 넣어주며 물었다.

“달아요?”

“누가 주는 귤인데 안 달겠어요?”

병원에 거의 다 도착해서 그녀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리며 말했다.

“저 혼자 기숙사로 돌아갈게요.”

그리고는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이봐요!”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어때요?”

“그쪽은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녀가 풋,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제 생각은요, 음, 먼저 그쪽 생각부터 보고요.”

“제 생각에는….”

나는 정말로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이 급해지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수요일 저녁 일곱 시에 화평(和平)공원 남문에서 기다릴게요. 당신이 오든 안 오든 나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거요.”

말을 마친 후 자전거에 올라타고 냅다 페달을 밟았다.

다음날, 막 여사가 나한테 소감을 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정말로 자세히 못 봤어요.”

“예쁜 여자 소개시켜줘 봐야 소용없구먼.”

두 번째 만나서야 나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막 여사 말처럼 고운 인물이었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허소만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허소만처럼 유난스런 집안 배경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중학교 교사였고, 아버지는 동평(東坪) 지역의 부(副)책임자였는데, 아버지는 그녀가 대학교 삼학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고는 그녀의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그녀는 모든 것을 깔보는 오만한 분위기나 세상의 좋은 것은 모두 독차지하려는 욕심이 없는 것 같았고, 바로 그 점이 나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었다. 모든 것을 최고로만 갖추려는 여자를 어떤 남자가 견뎌내겠는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에 가졌던 나의 이런 생각들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우리 기숙사에 처음 찾아왔던 날, 그녀가 복도에서 말했다.

“너무 어두워요.”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어둡죠. 그런데 벌써 일년 넘게 살다보니 이젠 익숙해요. 처음 왔을 때는 다른 사람의 밥솥까지 쳐서 엎은 적도 있었는데.”

“이렇게 어두운 데서 얼마나 더 살 생각이세요?”

“이봐요, 아가씨. 이나마 나를 좋게 봐줘서 독방 쓰게 해준 거예요. 일반대학생 출신은 방 하나에 적어도 두 사람, 심지어 세 사람까지도 같이 산다고요.”

방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가 말했다.

“에게, 방이 이게 뭐예요? 위생청의 숙소 사정이 이렇게 빠듯할 줄은 몰랐어요.”

“빠듯하다면 빠듯하고 또 넉넉하다면 넉넉하죠. 그게 다 그가 누구냐에 달렸어요.”

“그쪽은 석사 출신이잖아요.”

“관청이든 어디든, 장(長) 자리 하나 갖기 전에는 소리 내서 방귀도 못 뀌지요. 만약 우리 아버지가 성장(省長)쯤 돼서 나를 이렇게 끌어준다면 모를까.”

나는 다섯 손가락을 모아 집어 올리는 동작을 하며 말했다.

“나도 내 이름 뒤에 장(長) 자 하나만 붙이면 출세하는 건데. 그렇게 되면 이런 어둠 속을 더듬으며 방에 들어올 필요도 없고….”

얘기하는 중에 그녀가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문을 열고 복도 끝을 가리키면서, 화장실에서 설거지며 세수할 물도 받는다고 말했다. 한참 후에야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가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그 공용화장실엔 발 디딜 데도 없어요. 바닥이 온통 오물투성이라 벽돌을 밟고 겨우 들어갔는데, 아휴, 그 정도 냄새면 원숭이도 질식해 죽겠더라. 학교에 다닐 때도 저런 장관은 본 적이 없어요. 별 수 없이 도망쳐 나와 사무실 건물까지 가서 문제를 해결했지 뭐예요.”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야 들어가서 자세히 본 적도 없지만, 좋든 싫든 그게 다 당신네 여자들이 저질러 놓은 일 아닌가요?”

“이런 곳에 어떻게 살림을 차려요?”

“뭐 그쪽에서, 그게 언제가 되었든, 제 2병원에 살림을 차리고자 하면 나는 반대하지 않을 거요. 한 사람이라도 가망 있으면 족하지. 당신 덕 좀 봅시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턱 수염을 깎는 동작을 해보이며 말했다.

“남자가 창피하게, 여자 덕 볼 생각이나 하고….”

“안 될 게 뭐 있어요? 방송에선 맨날 남녀평등을 외치던데.”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고 목을 앞으로 뻗어 귀신같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녹음기를 틀었다. 그녀가 박자에 따라 <달은 나의 마음을 나타내네(月亮代表我的心)>란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나서 그녀가 말했다.

“맞아, 우리 오빠 친구가 성 정부에서 일하는데, 우리 언제 한번 놀러가요, 예?”

“난 싫어요. 거기 사람들은 모두 귀신같아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가까이 가기도 전에 우리 잠방이에 묻은 게 무슨 똥인지까지 다 알아 맞히잖아요. 그런 사람들과 노는 게 무슨 재미가 있어요?”

“재미있어야 정상인데. 다들 그런 재미를 바라잖아요. 저도 대위 씨가 뭐 엄청나게 출세한다거나, 그런 것을 바라는 건 아니에요. 그저, 마르크스도 얘기했잖아요, 남들이 가진 것은 나도 가져야 한다고.”

“그럼 당신이 먼저 해봐요. 당신이 앞장서면 내 당신 발자국을 밟고 따라가리다.”

그녀가 곧장 대꾸했다.

“남자가 돼서 여자를 앞장세우겠다고요?”

“어쨌든 나는 안 가요. 당신이 정 가고 싶다면 내가 정문까지 바래다주고, 문 앞에서 기다리라면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기다리지요.”

그녀가 입을 삐죽거리며 아양을 떨듯 말했다.

“남자로서 져야 할 책임을 여자에게 떠넘기겠다는 건가요, 지금?”

그리고 소매를 걷어붙이는 척하면서 말했다.

“만약 내가 남자라면, 세계라도 정복해서 당신과 모두에게 보여줄 텐데.”

그 다음부터의 화제는, 그녀가 나름대로 이리저리 돌려 말하긴 했지만, 결국은 내가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듣고 있자니 짜증이 났지만,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사이였으므로 그저 참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끔은 참지 못하고 대들기도 했다.

“내가 남자 야심가는 적지 않게 보아왔어도 여자 야심가로는 강청(江靑)밖에 몰랐는데, 알고 보니 당신도 강청에 준하는 여자 야심가군요. 성공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클 줄이야!"

“세상이 원래 그런 거예요. 별 수 없잖아요. 성공하는 사람이 모든 걸 갖고, 실패하는 사람은 모든 걸 잃게 돼요. 대위 씨, 당신도 성공만 하면 힘들게 이런 어두운 방에서 몇 년 씩 더 살지 않아도 될 거예요.”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별생각 없이 마 청장 사모님이 아프다던데, 하고 전했다. 그녀는 내 말을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드는지 나더러 같이 문병가자고 했다. 내가 말했다.

“당신이 왜 이렇게 흥분해요? 꼭 마 청장 사모님이 아프기를 바라고 있었던 사람처럼.”

“이렇게 좋은 기회가 어디 있어요? 꽉 잡아야죠.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오겠어요?”

그러면서 오른손을 허공에 휙 하고 날려 무언가를 꽉 움켜잡아 다시 끌어들이는 시늉을 했다.

“상대가 우리 위생청 기사 아저씨 정도라면,‘그래 그 아가씨가 문병 왔었지.’하고 기억하겠지만, 마 청장 사모님한테야 문병 오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어? 그 많은 사람들 하나하나 상대할 여유도 없을 거요.”

“그건 병문안 가는 사람의 수준에 달렸어요. 성의 없이 예의상 방문하는 것도 병문안이지만, 진짜 감정이 우러나오는 병문안도 있잖아요. 그런 감정과 정성이 우러나는 정도가 돼야 진짜 수준 높은 병문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청장 사모님이 아니고 만약 과장 사모님 정도만 된다면 나도 갔겠지. 그러나 상대가 청장 사모님쯤 되면, 내가 윗사람한테 너무 친한 척하는 것 같잖아. 뜨거운 뺨을 차가운 엉덩이에 갖다 대는 꼴이라고나 할까.”

“친한 척할 필요가 있을 땐 친한 척해야 되고, 갖다 대야 하면 갖다 대야죠. 너무 도도하게 굴지 말아요. 이전에야 당신 혼자였지만 이제는 이런 저런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남자로서의 책임도 생각해야 하구요.”

“그렇게 친한 척하면서 엉덩이에 내 뺨을 갖다 대는 모습, 당신 보기에 좋겠어요? 그게 남자로서의 책임이라고? 이름은 그럴 듯하네.”

“그렇다면 남자의 책임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어디 한 번 말해 봐요! 당신이 그 책임을 질 용기가 있다면 나도 당신을 위해 힘을 보탤게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이해가 안 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계속되는 권유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에는 같이 가기로 했다.

“이제야 좀 사회생활 해본 사람 같네.”

“아, 어색해.”

“어색하지 않은 일도 해야 하지만, 어색한 일도 어색하지 않은 척하며 해내야 하는 거예요. 이 정도도 못 견디면 무슨 발전이 있겠어요?”

그녀는 이런저런 궁리 끝에 기다렸다가 문병객이 적은 시간에 가자고 했다. 그래야 청장 사모님의 주의가 우리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저녁에, 그것도 시간이 제법 되어서 가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선물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사과나 몇 근 사 가면 되겠지.”

“사과를 청장 사모님한테 선물한다고요?”

그리고는 시장에 막 출하된 신선한 여지를 한 바구니 샀다.

“이런 것은 나도 평소에 비싸서 못 사먹는데….”

“당신이 평소에 먹는 것을 청장 사모님한테 선물해서 뭘 하겠다는 거예요?”

병원 입구에서 그녀는 어떤 사람이 꽃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보더니 자기도 하나 사겠다고 했다.

“그만둬요. 조금만 지나면 시들어서 몇 십 원만 날려버리고 말 텐데.”

그렇지만 그녀가 고집했으므로 나는 별 수 없이 꽃을 사며 말했다.

“이번 달 밥은 당신 따라 제2 병원에 가서 얻어먹어야겠소.”

병실을 들어서자마자 나는 후회막급이었다. 여러 사람이 병상 옆에 서서 마 청장님과 사모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나중에야 그가 제약회사의 구(瞿) 사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마치고 한편으로 비켜섰다. 그런 거물들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기가 좀 뭣했다. 한편, 그녀는 금세 자기 위치를 찾은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마 청장님과 얘기하는 틈을 타 침대머리로 다가가더니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선 병의 상태가 어떤지 자세히 물어보고, 또 어떤 약을 쓰는지 분석해본 후 주의사항을 말해주는 식으로 금방 자기 역할을 연출해 냈다. 나는 그런 그녀 뒤에 서서 별다른 말도 한마디 못하고 줄곧 뻣뻣하게 웃음만 띠고 있었다. 잠시 후에 마 청장님이 그런 그녀를 눈치 채고 말했다.

“지 군이 연애를 하고 있었군!”

사모님이 말했다.

“나는 위생청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시 제2병원에서 일하니까 위생청 사람 맞지요. 마 청장님, 저도 청장님 부하 맞죠?”

그녀에게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이야!

마 청장이 말했다.

“당연하지. 업무상 내가 시 위생국의 양(梁) 국장을 관리하고, 양 국장이 자네 병원의 요(廖) 원장을 관리하고, 그 요 원장이 다시 자네를 관리하니까 말이야."

“장군은 병사를 몰라도 병사는 언제나 장군을 알고 있지요.”

나는 그녀가 이렇게 주눅 들지도 않고 또 말솜씨까지 이렇게 좋을 줄 정말 몰랐다. 마 청장님은 그녀에게 언제 졸업했고, 어느 과(科)에 배속되어 있는지, 일은 힘들지 않은지 등을 물었다.

“요 원장님이 저를 산부인과에 배정해 주셨는데요, 낮도 밤도 없어요.”

그리고 또 말했다.
“사실 원래는 오관과(五官科: 눈ㆍ코ㆍ귀ㆍ입ㆍ몸)에 가고 싶었는데, 그런데 요 원장님께서 동의해 주시지 않았어요.”

요 원장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들 몇 마디씩 주고받았다. 그녀가 말했다.

“마 청장님, 다음에 요 원장 만나시거든 말씀 좀 해주세요. 마 청장님 말씀이면 요 원장도 성지(聖旨) 받들 듯 할 거예요.”

마 청장이 시원스레 웃으며 말했다.

“자네 병원 일에 내가 어떻게 간섭할 수 있나? 천천히 생각해 보지.”

그녀는 뾰루퉁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마 청장님, 저한테 신경 써주실 거죠? 저도 청장님 부하잖아요!”

마 청장이 그녀를 가리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보니, 지군 여자 친구 정말 대단한 걸!”

떠날 무렵, 그녀는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는지 문 앞까지 왔다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청장 사모님과 얘기를 나누었다. 끝까지 무척 아쉽고 섭섭한 표정으로 병실을 떠났다. 병원 문을 나서면서 내가 한 마디도 하지 않자, 그녀가 물었다.

“대위 씨, 기분 나쁘세요?”

“오늘 밤 태도가 너무 지나쳤어요. 꼭 연기하는 것 같았어요.”

그녀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분위기가 어색하기에 당신 체면 깎일까봐, 그래서 일부러 몇 마디 했던 것뿐이지, 당신 역할 가로챌 생각은 없었어요. 만약 당신이 말을 좀 했으면 나도 그렇게까지는 안 했을 거예요.”

“당신은 청장 사모님이 보통 사람들처럼 병문안 와주는 사람에게 하나하나, 무슨 보물이라도 주은 듯이 기뻐하면서,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다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모님은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을 상대하고, 자기 병 상태에 관해서도 아마 하루에 수십 번은 얘기할 거요. 상태를 물어보려면 상태만 물어보면 되지, 무슨 마 청장님하고 친척이라도 되는 듯이…. 나는 마 청장님 얼굴 거의 매일 보지만 당신처럼 친하게 굴지는 않아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청장님과 말 한마디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요? 이런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붙잡아야죠. 이런 기회가 쉽게 오나요?”

“친한 척하려면 당신 혼자 해요.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당신도 너무 그렇게 도도하게 굴지 말아요. 남자가 능력 있으면 목적만 달성하면 돼요. 사실 어떤 방법을 택하느냐는 상관없어요.”

나는 화가 나서 말했다.

“당신에겐 상관없을지 몰라도 나에겐 상관있어요!”

“대위 씨, 사람이 왜 이래요?”

“그래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에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요!”

이미 병원 입구였다. 그녀가 말했다.

“저 그만 들어갈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은 계속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더러 데려다 달라는 뜻이었지만, 나는 모른 척 말했다.

“가세요, 그럼.”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걸었다. 그녀는 한마디 말도 없이 버스에 올라타고 가버렸다.

며칠 후 마 청장님을 만났을 때, 마 청장님이 말했다.

“우리 집 사람 말이, 자네가 여자 친구 데리고 또 병문안 갔었다며? 우리 집 사람, 자네 여자 친구가 무척 맘에 드나봐.”

굴문금이 또 병원에 갔었군. 그냥 대충 대답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솔직하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이 솟았다.

“이번엔 그 친구 혼자 간 겁니다. 저한테는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아, 그래? 자네는 이번에는 안 갔었군.”

그리고 또 말했다.

“그, 자네 여자 친구 이름이 뭐였더라? 깜빡 잊어버렸어. 그녀가 나에게 준 임무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노트를 꺼내 받아 적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 청장이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그녀가 이렇게 유능할 줄이야.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낸다더니, 그녀가 바로 그러했다. 게다가 마 청장 줄을 잡게 되다니. 사실 생각해 보면 별 것도 아닌데, 이런 거부감은 어쩌면 나 자신의 심리적 장애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속으로는 그녀에 대한 원망으로 속이 부글거렸다. 그녀는 일을 이렇게 빈틈없이 처리하는데, 나는 먼지만 뒤집어 쓴 꼴이 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가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이다. 그건 그녀 마음이고, 내가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다른 사람한테도 이렇게 잘 했다면 나도 감동스럽다고, 참 좋은 아가씨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상대는 마 청장 사모님이 아닌가! 나는 도저히 그녀를 좋은 쪽으로 생각해 줄 수가 없었다. 나도 나 자신을 설득하려고 애써 보았다. “무슨 생각이 그렇게 복잡하냐! 심 사모님은 환자잖아!” 그렇지만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나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 도저히 나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나는 굴문금이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뭐 어때. 그렇지만 며칠이 더 지나자 속으로 은근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지금 그녀에 대해 느끼는 원망이나 분노가 사실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했다가 다시 부정하고,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하다 보니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이 정말 어떤 것인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또 일주일이 지나자 그녀가 찾아왔다.

“출장 갔었어요.”

“성 인민 병원으로?”

그녀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벌써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가기 싫어하는 것 같기에 당신 대신 가봤어요.”

“그래요? 당신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네.”

“대위 씨, 그렇게 비꼬지 말아요.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요. 하지만 그분이 최고 높은 어른인데 그럼 어떻게 해요. 당신이 그 어르신한테 잘 한다고, 가까이 가려 한다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걱정하는 거예요? 사실 그럴 필요 없어요. 다른 사람들도 이게 다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그 어르신이 제일 높은 분이고, 그분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당신이 화내고 고집 부린다고 바뀔 일이 아니에요. 물론 저는 당신을 이해해요. 그러니까 당신도 저를 좀 이해해줘요. 어쨌든 서로 얼굴 붉힐 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생각해 보니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이치에 맞는 말이었다. 그녀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어 그 줄을 잡겠다는데, 그것은 그녀의 능력이고 또 나한테도 좋은 일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속의 원망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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