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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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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6>

정소괴(丁小槐)

***6. 정소괴(丁小槐)**

나는 천천히 환경에 익숙해져 갔고, 사람들도 몇몇 알게 되었다. 출근해서 별로 할 일이 없을 때는 종종 대각선 방향에 있는 감찰실(監察室)로 놀러가서 막서근(莫瑞芹) 여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유 주임은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막 여사에게 물었다.

“요 몇 년간 도대체 자리에 앉아서 무슨 일을 했어요?”

막 여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지대위, 겨우 며칠 앉아 있었다고 답답해하는 거야? 십 몇 년, 몇 십 년 앉아 있는 과장들도 얼마나 많은데! 다 겪어야 할 과정이 있는 거야. 몇 달 지나면 성질이 좀 누그러질 거야.”

“사무실이라는 데가 정말로 사람을 개조하는 곳인가 봐요!”

“당신이야 그래도 기대주인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겠지.”

“그럼요, 저야말로 진짜‘기대주’랍니다. 여자들의 기대주!”

그러자 막 여사는 곧바로 여자 친구에 관한 질문을 했다. 또 내가 아직 혼자라는 이야기를 듣더니 얼른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무슨 따지는 조건이라도 있어?”

“그럼요, 세 가지 조건은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지요. 첫째, 사람이어야 한다. 둘째, 여자여야 한다. 셋째, 미혼이어야 한다!”

“정말 하나 소개 시켜줄까? 어때? 우리 바깥양반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원들이 하나같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 얼굴들이 갸름하고 야들야들한 게, 우리 그 양반은 맨날 자기가 너무 일찍 결혼했다고 투덜거린다니까. 결혼하자마자 어디서 그렇게 예쁜 여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지 모르겠다면서.”

농담을 하면서 한참 웃고 있는데, 정소괴가 복도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대위! 지대위!”

얼른 사무실로 돌아오자, 정소괴는 고개도 까딱 않고 신문만 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방금 나를 부른 게 누굽니까?”

“자네가 자리에 없는 걸 마 청장님께서 보시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곤란하지 않겠어?”

음흉한 녀석, 별 짓을 다 하는군. 방금 복도에서 지대위는 근무시간에 놀러 다닌다고 소리소리 질러놓고선. 나는 화가 나서 말했다.

“화장실 가는데 휴가 내서 갈 필요는 없지 않나?”

그는 신문을 뚫어져라 보면서 말했다.

“화장실이 막서근 여사네 사무실에 있나? 그럼 그게 남자 화장실인가, 여자 화장실인가?”

나는 화가 나서 이름모를 불덩이가 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네가 막 여사한테 가서 물어봐라.” 하고 맞받아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런 놈하고는 실없이 말다툼이나 할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매일 그렇게 책상 앞에 앉아 일다운 일은 하나 하지도 않고 시간만 보내려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생각들은 황량한 초원의 잡초마냥 부지불식간에 자라서 차츰 어떤 모양새를 갖추어 나갔다. 그렇게 흐리멍덩하게 몇 달을 보내고 나니 가을이 왔다. 매일 신문이나 뒤적거리고 잡심부름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니, 마음도 영 불안하고 또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에 이런 식으로 월급 타먹는 사람도 있나? 나는 무슨 일다운 일이 내게 떨어지기만 기다리면서 매일매일을 보냈지만, 그 기대는 번번이 빗나갔다. 하루하루 지나갈 때마다 내 마음은 마치 캄캄한 어둠 속에서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뎠을 때처럼 허공으로 떨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한 줄기 빛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다. 그 빛줄기를 따라 보다 밝은 곳을 향해 전진해 가면서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보아야 할 그 빛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주임 되고, 처장 되고,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 내 인생의 빛인가? 내가 앉아 있는 이 책상, 내 눈 앞의 이 자리가 내 인생의 한 줄기 빛이란 말인가? 정말 신기하게도 이전에는 아예 신경도 안 썼던 것들이 어느 순간 내가 추구하는 목표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남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내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지?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사무실은 정말로 사람을 개조할 수 있는 곳 같았다.

마 청장이 원진해 부처장을 데리고 회의 참석차 북경으로 떠나던 날, 위생청에선 유자(柚子)를 한 사람당 두 자루, 백 근씩 나누어 주었다. 정소괴는 나한테, 서(徐)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갈 테니 마 청장 댁에 유자를 갖다 드리러 같이 가자고 했다.

내가 말했다.

“서 형이랑 둘이 다녀와. 유자 두 자루 나르는데 세 사람씩이나? 세 사람이 백 근 먹어치울 수도 있겠다.”

그러자 옆에서 서 기사가 말했다.

“가지, 왜. 같이 가자고.”

평소 나와 사이가 좋은 서 기사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 나서 같이 가기로 했다. 유자를 받으러 노동조합에 갔을 때, 정소괴는 속을 뒤적거려 큰 것을 고르면서 노조의 황(黃) 주석에게 말했다.

“마 청장님 댁에 갖다 드리려고요.”

황 주석도 고르는 일을 도와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정소괴와 같이 온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이 쓰여서, 나는 한쪽 옆에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유자를 들어서 승용차에 옮겨 실었다. 중의연구원에 도착해서 정소괴와 내가 유자를 짊어지고 위로 올라갔다. 문이 열리자 정소괴가 마 청장 사모님에게 “심(沈) 사모님!” 하고 불렀다. 나도 덩달아 그렇게 불렀다. 정소괴가 말했다.

“황 주석이 도와주어 고른다고 골랐는데, 이번에도 별로 신통치가 않네요.”

청장 사모님이 말했다.

“위생청은 하여튼 제대로 된 유자는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다니까. 돌아가서 황 주석한테, 이런 걸로 보내려면 아예 보내지 말라고 전해요.”

내려오는데 서 기사가 물었다.

“무사히 잘 전달했는가?”

정소괴가 쓴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서 기사가 말했다.

“오늘은 운이 좋군.”

돌아올 때 정소괴가 도중에 차에서 내리자 서 기사가 말했다.

“사모님이 별 말 안 했다니, 오늘은 정말 운이 좋네.”

“우리가 그 고생해 가면서 유자를 짊어지고 위층까지 올려다 주었는데, 차 한 잔은커녕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안 합디다. 그런데 무슨 운이 좋다는 거예요? 오늘 서 형이 같이 가자고 해서 같이 오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오늘 코가 깨져도 아주 형편없이 깨진 날이었습니다.”

“그걸 가지고 코가 깨졌다고? 자네 얼굴을 알리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나?”

이어서 그가 말했다.

“자네가 몰라서 그래. 작년에 정소괴는 거의 인두질당하는 수준이었어.”

작년에 정소괴가 유자를 짊어지고 올라갔을 때 청장 사모님은 유자 알이 너무 작다고 불평하면서 차라리 안 받겠다고 유자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정소괴는 어쩔 수 없이 그 유자를 다시 짊어지고 내려와서 차에 싣고 돌아와서는, 자기 몫의 유자 두 자루 안에서 큰 것들을 골라서 마 청장 댁에 갖다 드릴 자루에 집어넣고, 그 안에서 작은 것은 빼내고, 그런 식으로 골라낸 다음 다시 유자 자루를 짊어지고 올라갔단다. 그제야 유자를 건네받으면서 사모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좋은 건 따로 빼돌려 놓았을 줄 알았다니까.”

내가 말했다.

“어쩐지 정소괴가 나더러 같이 가자고 하더라니. 책임 전가 하려고 그랬나 봐요. 유자를 집까지 갖다 주고도 그런 수모까지 당해야 하다니, 천하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마 청장님은 알고 계십니까?”

“내 생각엔, 이런 작은 일까지야 모르고 계시겠지. 아이, 뭐, 얌체 짓, 별난 짓 같은 거야 다 여자들 성격 아니야?”

“나는 또 정소괴가 마 청장님한테 떨 아부를 나한테 나눠서 떨자고 그러는가 생각했지요.”

토요일 오후 퇴근할 무렵 정소괴가 말했다.

“오늘 좀 일찍 가봐야겠는데. 어머니가 입원을 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잔뜩 쌓여 있거든.”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 어디 있어? 어머니가 입원했으면 오늘 일찍 가는 것도 일찍 가는 거지만, 아예 휴가를 며칠 내지 그래. 그게 낫지 않겠어?”

그가 퇴근하자마자 원진해 부처장이 북경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마 청장님이 내일 돌아오실 예정이니 위생청에서 차를 공항으로 좀 보내달라고 했다. 내가 유 주임에게 보고하자, 그가 말했다.

“정소괴는 못 가니까, 내일은 자네가 한번 나가 보지.”

그리고는 손(孫) 부청장을 비롯한 몇 명에게 전화를 걸고는 나와 함께 기사실로 가서 차들을 수배해 놓았다.

내가 물었다.

“아니 두 사람이 오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가요?”

“마중 나가야지, 그럼. 반드시 가야 해.”

일요일 아침 기사실에 들어서자 정소괴가 벌써 도착해 있었다. 그가 말했다.

“듣자하니 원(袁) 부처장이 청장님과 같이 돌아온다고 하기에, 나도 나가 봐야지.”

잠시 후에 손 부청장과 유 주임 등 몇 명이 왔다. 사람이 이처럼 많이 모인 것을 보고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유 주임이 말했다.

“끼어 타면 다 탈 수 있겠어.”

내가 세어 보니, 차 두 대에 기사까지 여덟 명, 게다가 마 청장님과 원진해까지 합하면 열명, 딱 꼭 끼어 앉을 수 있는 숫자였다.

손 부청장이 말했다.

“어떻게 할까, 유 주임? 너무 비좁지 않을까? 짐도 있는데.”

내가 정소괴를 바라보자, 그는 잽싸게 차 옆으로 달려가서 차문 옆에 딱 붙어 섰다. 나야 가든 안 가든 상관없지만, 사람들이 다 이렇게 모여서 나만 빼놓는다는 건 정말 견딜 수 없이 기분 나쁜 일이다. 나는 유 주임이 나와 정소괴 둘 다 빠지라고 한마디 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유 주임이 말했다.

“가요, 다 같이 가요. 좁으면 좁은 대로 가는 거지 뭐.”

나는 감격해서 유 주임을 쳐다보았다.

안내방송을 듣고 우리는 모두 3번 출구 앞으로 가서 기다렸다. 손 부청장이 앞에서 걸어가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어갔다. 나는 처음에 인사처의 가(賈) 처장 뒤에 서 있었는데, 그때 정소괴가 무심코 그러는 듯이 내 앞으로 끼어들어 출구 앞을 가로막고 서버렸다. 그때서야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나는 몇 사람들이 직위에 따라 한 줄로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유 주임과 가 처장은 아직도 서로 앞자리를 양보하고 있었다. 이런 앞뒤 순서를 가지고 서로 양보하고 서로 사양한다는 것 자체가 이것이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 일은 조직이나 울타리 안에서의 자신의 지위와 관련된 일로서, 말하자면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장난 같고 가소로워도 큰일은 큰일이다. 나야 사실 몇 번째 서건 상관이 없었지만, 다만 정소괴 저 놈의 저 닭 창자만한 소갈딱지 하며, 앞으로 달려 나가는 저따위 동작은 정말 그냥 봐주고 넘기기 힘들었다. 매번 양보하다 보면 정말 끝이 없을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서 아주 분명한 충동이 일어났다. 저 놈과 한 번 겨뤄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걸음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 소인배를 따라 나도 소인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가만 두지 않는다”고 했다. 하고한 날 피하기만 해서도 안 되고, 어쨌든 나도 군자연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오늘 돌아가서 얼굴에 철판 깔고 유 주임에게, 나와 정소괴 둘 중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지 분명하게 정해 달라고 요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퍼뜩 정신이 들면서, 내가 어쩌다가 이런 사소한 일에 정신을 쓰고 있는지, 스스로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른 걸까?

차 안에서는 꾹 참고 있다가 위생청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면서 나는 오는 길에 생각했던 말을 정소괴에게 했다.

“다시 병원에 안 가나? 자네 어머니께선 일요일만 기다렸을 텐데, 자네가 이렇게 바쁠 줄 생각이나 하셨겠어?”

정소괴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지만, 내가 자기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그는 실눈을 뜨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관심 가져줘서 고마우이. 우리 어머니를 대신해서 자네한테 고맙다고 인사드리지. 다른 사람의 일에 이렇게 신경을 다 써주다니.”

그리고는 몸을 돌려 가버렸다. 나는 멍하게 서서 속으로 나 자신에게 말했다.

“역시 안 돼, 너는! 도전을 하려면 몇 수 앞까지 생각을 했어야지. 그리고 체면 구길 용기도 있어야지. 이런 식으로 해서 뭐가 되겠냐?”

나는 역시 군자연하는 것이 몸에 배어서 그렇게 강한 심리적 수용 능력이 없었다. 낯가죽이 너무 얇아서…. 사실 소인배 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연말이 다가오자 정소괴가 나한테 점점 친하게 굴기 시작했다. 별일 없을 때에도 찾아와서 말을 걸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한테 어떤 스타일의 여자 친구를 원하는지, 여자를 소개시켜줘도 괜찮을지 등을 묻기도 했다. 그러더니 구내식당 음식이 너무 형편없다고 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똑같은 음식만 먹었더니 요즘은 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혀질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나야 뭐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구내식당 밥만 먹었으니, 한 십년 가까이 되니까 이젠 아무런 느낌도 없어.”

“먹는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우리도 위 생각 좀 해줘야 하지 않겠어? 음식다운 음식 좀 먹여줘야 될 거 아냐?”

그리고는 자기가 사겠다고 밖에 나가서 밥을 먹자고 했다. 나는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돈이야 나중에 내가 앞서 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같이 가기로 했다. 밖에 나가자 나는 간단하게 먹자고 했지만, 그가 말했다.

“어렵게 한번 나왔는데 위를 실망시키면 안 되지.”

그러더니 나를 끌고 미풍주가(美豊酒家)로 들어가서 한꺼번에 요리를 여섯 접시나 시켰다. 심지어 홍샤오(紅燒) 소스로 요리한 민물생선까지 주문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다.

“요리 두 접시에 탕 하나면 충분할 텐데.”

그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먹자고! 돈이란 게 다 사람한테 서비스 하라고 있는 거 아닌가. 겨울 몸보신에는 민물생선이 최고거든.”

“식당 주인이 그냥 하는 이야기를 믿나? 민물고기가 좋으면 얼마나 좋다는 건지 우리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식사를 하면서 그는 위생청 안에서의 온갖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 말투를 보아하니 그는 청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르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맨날 자네와 같이 붙어 앉아 있는데, 어떻게 나는 그런 일들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지?”

식사 도중에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나와서는 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보았다. 반 달치 식비를 한 끼에 다 먹어치웠다. 계산할 때 나는 미리 준비를 하고 있다가 얼른 카운터로 달려가서 돈을 지불했다. 정소괴가 일어서더니 말했다.

“이게 무슨 경우야? 아예 내 뺨을 치지 그래?”

그러더니 계산대로 얼른 달려와서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계산해야겠다면서, 내 돈을 다시 돌려주었다.

내가 말했다.

“뭘 그리 유난을 떠나?”

“오늘은 내 체면 좀 살려주게. 자네 돈은 남겨뒀다가 다음에 한번 사면 될 거 아냐. 나도 그때는 사양하지 않을 테니.”

밥 한 끼에 남의 돈 얼마를 먹어치운 건가. 나는 기분이 영 찝찝했다.

양력설이 지나자 정소괴가 말했다.

"내일 성적 우수자 심사가 있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나야 온 지 반 년밖에 안 되는데, 무슨 생각이 있겠어?”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 사무실만 빠질 수는 없지 않은가? 누가 우수자로 평가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무실이 지난 한 해 열심히 일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를 못 받는다는 것은 안 될 말이지.”

나는 마음속으로, 설마 저 인간이 자기가 나서려는 거는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 유 주임은?

내가 말했다.

“그래, 우리 사무실에서도 한 명은 받도록 힘써 봐야지. 나야 뭐 자격이 없으니까 그렇다 치고, 유 주임은….”

그가 곧장 말을 이었다.

“자네야말로 정말 좋은 사람이야. 세상에 다투는 일도 없고, 옛 군자의 품격까지 갖추고 있으니 말이야. 나는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지. 당연히 우선적으로 유 주임을 밀어드려야지. 그런데 만약 유 주임이 굳이 사양한다면,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이건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거든.”

“그렇게 된다면 자네를 밀어야겠지.”

그는 약간 부끄럽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 내가 무슨 염치로?”

“염치없을 것은 또 뭔가? 자네가 안 나서면 다른 부처한테 머리 수 하나 빼앗기는 것밖에 더 되나?”

“그럼 자네만 믿겠네.”

이튿날 연말 성적우수자 평가회의가 실시되었고, 나는 감찰실의 기율검사 위원회 사람들과 한 조(組)에 속하게 되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다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기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야 온 지 반 년밖에 안 되고 또 별로 한 일도 없으니까 이번 평가에서 빠지겠습니다.”

유 주임도 얼른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나야 곧 물러나 쉴 사람이니, 저도 평가에서 빠지겠습니다.”

나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정소괴를 한 번 쳐다보았다. 아니 저 놈은 도대체 어떻게 일이 이렇게 돌아갈 줄 귀신같이 미리 알고 있었는가? 막서근 여사가 빠지겠다고 하자 이어서 몇 명이 더 물러섰다. 둘러보니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칠팔 명 정도 남아 있는데, 그 중에서 세 명만 우수자로 평가될 수 있다. 그 몇 명의 얼굴표정들은 모두 매우 엄숙했다. 정소괴가 한두 마디 농담을 던졌지만 다들 아주 부자연스럽게 웃는 것이 아무래도 그 긴장감을 감출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마침내 두 명의 이름이 추천되었다. 정소괴는 나 쪽을 바라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눈가가 눈에 띌 듯 말 듯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마음이 영 불편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 정소괴를 추천했다.

그가 말했다.

“다른 동지들의 업적이 모두 저보다 뛰어난 분들인데, 제가 어떻게, 하하….”

이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저 인간 저거 쇼하는 것 좀 봐라. 나한테 부탁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겸손한 척하네. 또 누군가가 다른 두 명을 추천하자 정소괴는 안색이 상당히 뻣뻣해지면서 다시 눈가가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나를 원격조종하려는 의도로 보였지만, 나는 그냥 못 본 척했다. 내가 네 똘마니냐? 그러나 곧 마음이 풀려서 추천의 말을 몇 마디 보태주었다. 이어서 유 주임이 정소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자 회의장 분위기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정소괴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렀다.

회의가 끝나자 정소괴가 출구에서 내 손을 툭툭 치면서 고맙다는 표시를 했다. 그들이 먼저 가고 난 후, 막서근 여사가 내게 비꼬며 말했다.

“자네 사무실에 아주 사람 좋은 신입사원 하나 들어왔더군.”

“평가라는 게 뭐 다 그렇고 그런 거지요.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다 받을 수 있는 거고요.”

“그 자식, 제가 무슨 배우라고 모른 척 앉아 있는 꼴이라니, 연기력도 형편없으면서 말이야. 가식적이기는…. 정말 못 봐 주겠더군.”

이어서 말했다.

“당신은 마음이 너무 좋아 탈이야. 몇 달 전에 우리 사무실에 와 있을 때, 그때 그 인간이 당신이 놀러나갔다고 고자질하려고 복도까지 나와서 마 청장 들으라고 당신 이름 시끄럽게 불렀던 것도 기억 안 나? 그런데도 그런 인간을 성적우수자로 추천해줘?”

생각해 보니, 정소괴가 함정을 파놓고 내가 뛰어들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세상에는 정말로 공짜 점심이 없다’고 하더니, 그 녀석이 사는 밥 한 끼에 내 입술이 녹아버린 셈이었다.

“어쨌든, 벌레 똥만한 일인데 뭐.”

“으이구, 지대위 너만 깨끗하고 고상하냐? 이곳은 손바닥만한 자리라도 서로 차지하려고 피터지게 싸우는 그런 전쟁터라고. 총알이 휭휭 날아다니는데 너 혼자 깨끗하고 고상하겠다고? 그런 식으로 하면 다른 사람만 좋은 일 시켜주고 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자네를 받침돌 삼아 밟고 올라서려고 할 거야. 벌레 똥? 그 벌레 똥이 오늘, 내일 계속 쌓여 가면 한 통의 거름이 되는 거 몰라?”

막서근 여사의 이 말은 나의 마음을 썰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 지나면 사람의 마음이 드러나는 법이다. 다들 장님이 아닌 다음에야, 설마. 그렇다고 나 지대위가 소인배를 따라 소인배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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