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랑과 사상**
이렇게 나와 허소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불가사의한 일이 이렇게 발생하다니…, 나는 행복한 마음에 이 세계가 하나의 허구(虛構)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결국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멋있는 남학생들도 많은데 어떻게 나를 좋아할 수 있느냐고.
“걔네는 지나치게 똑똑하잖아! 보고 있으면 너무 가벼워서 공중에 떠다니는 애들 같아.”
나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몇 번이나 더 물어보았다.
“좋으니까 좋고,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거지,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그리고 또 말했다.
“내가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는 줄 알아? 두율명(杜聿明)의 딸을 봐! 그 많은 귀공자들이 둘러싸고 있어도 하나도 눈에 안 차 하더니, 결국 평민의 아들인 양진녕(楊振寧)한테 홀딱 반했잖아. 그게 뭔 줄 알아? 그게 바로 안목이라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는 부끄러워졌다. 내 어디에 그런 엄청난 장래성이 숨어 있다는 것인지…. 그 후 나는 흠뻑 취한 듯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있으면 내 손의 열기가 그녀를 녹여버릴까봐 겁이 날 정도였다.
허소만과 사귄다는 사실이 나를 크게 분발시켰다. 무엇이라도 이루어내지 못하면 그녀를 볼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그녀가 화를 내는 모습까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대만의 한 작가가 자기 책에서, 자기 아내가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쓴 것을 읽고, 나는 그야말로 헛소리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작가를 한 대 쳐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그를 용서해주기로 했다. 그 작가는 아마도 북경 중의학원의 허소만을 본 적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허소만으로 인해 나는 몇몇 친구들한테 죄를 짓게 되었다. 그 친구들은 나를 연적(戀敵)으로 생각했다.
오외(伍巍)가 말했다.
“대위, 너 정말 뜻밖이다. 네가 가끔 시험에서 대박 터뜨리는 것은 보았지만, 다른 방면에서까지 대박을 터뜨릴 줄은 정말 몰랐는데?”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생각 못했던 일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가 한심스럽게 여겨졌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녀석한테 왜 나는 아무런 반격도 못한단 말인가? 그래서 얼른 덧붙였다.
“아니 도대체, 누구누구는 누구 거라고 정해 놓은 거라도 있냐?”
왕귀발(汪貴發)이 한 편에서 끼어들었다.
“자식, 생각지도 못했는데 백조를 낚아채다니.”
왕귀발 저 자식은 지난 몇 년간 걸핏하면 나를 놀려먹곤 했다.
한번은 내가 밖에서 돌아왔을 때였다. 기숙사에서 몇몇이 아령 한 쌍을 들고 뭔가 얘기하고 있었다. 왕귀발이 말했다.
“지대위, 방금 우리 중에 누가 두 손에 이걸 들고 십 분 동안 견딜 수 있는지 시도해 봤는데, 아무도 성공 못했거든? 너 한 번 해볼래?”
내가 말했다.
“그게 뭐 어렵다고.”
아령을 받아 들고 약 오 분 정도 지나자 왕귀발이 엄숙한 표정으로 시계를 보며 말했다.
“금방 끝나, 금방.”
그때 나머지 몇 명이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몸까지 앞뒤로 흔들어 대면서 아주 큰 소리로 웃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결국 이를 악물고 십 분 동안 버텼다.
오외가 말했다.
“아, 하도 웃어서 배꼽이 다 아프네.”
그랬던 왕귀발이 지금 또 나한테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불쑥 한 마디 내뱉었다.
“너, 이 두꺼비 같은 새끼!”
그가 약이 바짝 올라서 말했다.
“야, 지대위! 왜 욕을 하고 난리야? 내가 너한테 무슨 말 했다고 그래?”
“그러는 너는. 내가 너 보고 무슨 욕을 했다고 그러는 거야?”
둘이서 싸우기 시작하자 오외가 얼른 뜯어말렸다.
허소만과 사귀면서 나는 그녀가 집에서, 또 남학생들 사이에서 응석받이로 자라서 영 버릇이 없고 제멋대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토론의 여지가 없는 절대명령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참았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물론이고 평생을 참으래도 참아야지. 그럼.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가피하게 사소한 충돌이 발생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세상의 억울한 일은 다 당한 것 마냥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러면 나는 남자로서의 고집을 꺾고 웃는 얼굴을 보이며 심각한 자아비판에 들어가야 했다. 나는 그녀가 멋대로 구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그 멋대로의 행동 뒤에 숨어 있는 의미, 즉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그녀가 마치 나에게 무슨 은혜라도 베풀고 있다는 식의 그런 의미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은 그녀의 수직적인 등급 관념(等級觀念)이었다. 그녀의 인생관은, 사람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상급 인간과 하급 인간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 두 부류의 인간은 피와 골수까지도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 차이는 유전인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절대 바뀔 수 없다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나의 인생관은 다분히 평민적인 것이었다. 나는 저 산골짜기의 아이들은 그저 적합한 환경이 주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그 아이들도 다른 어느 누구보다 어리석거나 못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말했다.
“나 역시 산골 출신인데, 그렇다면 나도 하급인간이겠네?”
그녀가 말했다.
“너는 다르지. 그렇지 않으면 고등학교도 안 나온 네가 어떻게 대학 시험에 붙어서 그 동네를 벗어날 수 있었겠니? 다른 사람들은 못 나오고 그냥 사는데 말이야. 그리고 너희 아버지는 대학까지 나오셨다면서? 그런 차별된 무언가가 네 핏속, 머리 속, 뇌수 속에 흐르고 있는 거라고.”
우리는 몇 번에 걸쳐 논쟁을 벌였지만 나는 결국 그녀를 설득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녀가 자기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을 때, 나는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알게 되었다. 그 집은 내가 북경에서 본 집들 중에서 가장 좋은 집이었다. 방 다섯 개, 거실 두 개가 딸린 집이었는데, 전체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집 안을 몇 번이나 둘러봐야 했다. 대학 교수들의 집은 그에 비하면 정말 너무나 초라한 편이었다. 허소만 혼자서 방 하나와 거실 하나로 이루어진, 즉 집 속의 집에 살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가정부가 곧 차와 간식을 내왔고, 이어서 근무병은 뜨거운 물을 아래에 내려놓고 쓰레기통을 들고 나갔다. 나는 눈과 입을 쩍 벌리고 강한 충격을 받은 채 앉아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가 하늘과 땅의 차이보다 더 크구나! 정오 무렵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왔다. 그녀의 손짓이며 발걸음에서 일종의 고귀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히 핸드백을 내려놓는 동작이 너무나 우아해서 내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곳에 앉아서 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데, 허소만이 말했다.
“이 쪽은 지대위, 내가 말한 적 있지요, 엄마.”
나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기가 죽어서 그녀가 물어보는 이런 저런 문제에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횡설수설 얼버무렸다. 가까스로 식사를 끝내고 허소만의 방으로 돌아온 다음에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허소만이 말했다.
“여기가 바로 우리 사랑의 작은 보금자리가 될 거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차라리 빈민굴이 편하겠다.”
몇 달 간 사귀면서 나는 허소만이 나에 대해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녀가 바라는 것은 모두 내게는 신의 뜻과 같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허소만이고 나는 지대위에 지나지 않으니까. 나도 최대한 나를 억누르고 그녀에게 맞춰보려 했지만 반항하고 싶은 충동이 점점 강렬해졌다. 가끔은 내가 어떻게 하면 그녀가 기뻐할지 뻔히 알면서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괜히 엇박자를 놓게 되었다.
그녀의 목표는 나를 상등급 인간으로 길러내는 것, 상류사회의 멋과 감수성을 가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녀 머리 속에 평민의식을 채워 넣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그렇게 끝도 없이 나 자신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설령 그것이 허소만을 위해서라 할지라도…. 혈관을 따라 흐르는 아버지의 피가 이미 나의 체험방식을 결정해버렸다. 신비로운 유전자의 비밀번호가 이미 선택한 방향을 고집하는 이상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허소만으로 하여금 진실된 나의 모습, 비록 가난하고 내세울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의지만은 굳건한 그런 놈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했다. 허소만은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몇몇“잘나가는”친구들과 만나도록 했다. 몇 번은 나도 그녀와 함께 갔었지만, 그들과 내가 도무지 안 맞는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나는 그들의 우월감이 참으로 가소롭다고 생각했지만, 본인들은 너무나 진지했다. 심지어 한 번은 허소만이 그들에게 우리 아버지가 성(省)에서 유명한 한의사이자 한의학원의 교수였다고 소개한 적도 있었다. 당시 나는 속이 엄청 뒤틀렸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거렸다. 나중에 화를 내면서 말했다.
“내가 언제 너한테 그렇게 말했냐?”
“그 애들 엄청 따진단 말이야. 너희 아버지가 교수 정도도 안 된다고 그러면 아마 너를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그 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자기들이 뭐라고.”
“무슨 걱정이야, 가서 조사해볼 리도 없는데. 제발 나를 좀 이해해 줘.”
아마도 내가 그녀를 이해해줬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 식의 사고방식에 따라 사람을 만나려면 체면처럼 중요한 것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나중엔 그런 식으로 내 배경을 꾸며 말하는 것이 그녀의 입버릇처럼 되어 누구에게나 그런 식으로 말했다. 내가 아무리 화를 내도 소용이 없었고, 그녀 역시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대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나도 친구들한테 뭐든 내세울 게 있어야 할 거 아냐.”
“네가 그렇게 하는 건 나를 불 위에 얹어 놓고 구워대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 상황에 처할 때마다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라고.”
둘이 그렇게 한참 싸우다가 결국 내가 물러서고 말았다. 나는 그녀에게 화를 낼 자격도 없지, 그녀는‘허소만’이니까. 그저 나 자신을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점차 허소만에 대한 나의 감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일종의 불길한 징조였기 때문에 낭떠러지 옆으로 말을 달릴 때처럼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나 스스로를 속일 수 있을까? 하루 이틀이면 모르지만 평생을 그렇게 나를 속이면서 살 수 있을까? 그녀 앞에서 나는 지나치게 수동적이었다. 뭔가 나의 노력을 통해 그런 국면을 전환시켜보고 싶었지만, 그러나 웬만큼 노력해서는 변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여자란 원래 사랑받고 보호받을 대상인데, 보호하고 싶은 연민의 감정이 없다면 사랑의 감정 또한 뿌리를 잃게 마련이다. 꼭 얼굴에 분칠도 안 하고 연지만 찍는 것처럼, 그러니까 기초화장도 안 하고 색조화장만 하는 것처럼 오래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제멋대로 구는 허소만에게 반항하기로 결심했다. 만약 나까지 그녀가 내게 과분한 상대니까 내가 굽히고 들어가야지 하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끝도 없지 않겠는가? 하루는 그녀가 나더러 인민예술극장에 연극 <밝은 달이 처음으로 비출 때(明月初照人)> 를 보러 가자고 졸라댔다. 저녁에 실험이 있다고, 이미 준비까지 다 해놓아서 안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계속 졸라댔다. 이번에는 나도 끝까지 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의외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옥신각신 다투던 중에 그녀가 말했다.
“오늘 네가 안 가겠다는 것은 네 마음속에 내가 없다는 거야. 달리 해석할 길이 없잖아?”
내가 여전히 웃으면서 변명하려 하자, 그녀는 나의 말을 잘랐다.
“그래서? 가겠다는 거야, 안 가겠다는 거야? 자, 하나, 둘, 셋….”
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안 가!”
“다시 한 번 생각해봐. 잘 생각해봐.”
나는 다시 생각해볼 것도 없이 말했다.
“생각 끝났어!”
“네가 날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사랑이 아주 뼛속 깊이 사무칠 정도로 절실하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그리고 덧붙였다.
“나와 같이 가고 싶다는 사람 쌔고 쌨어.”
그녀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가버렸다. 잠시 후, 나는 그녀가 다시 나를 찾아와주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잠시 내가 가서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이런 것까지 잘못이라고 인정해버리면 나는 평생 잘못만 저지르고 살게 될 것이다. 아주 고통스러운 가운데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나는 허소만이 결코 내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지금쯤 그녀도 나 지대위를 위해 희생하겠노라 다짐했던 그 위대한 낭만적 감정으로부터 조금씩 깨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의 혈관 속에는 너무나도 다른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일은 그렇게 끝났다. 왕귀발을 비롯한 친구들은 나에 관해 애매하면서도 정확한, 그리고 악의에 찬 말들을 하고 다녔다. 그러나 나는 못들은 척 참았다. 아버지께서도 그때 이렇게 참아 오셨겠지?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평민도 그 영혼의 고귀함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졸업 후 허소만은 위생부(衛生部)로 갔고, 나는 이불만 둘둘 말아 대학원생 기숙사로 옮겨 새로운 학생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3년 동안 나는 고대의 의서들을 연구하는 동시에 많은 명인들의 책을 찾아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 위대한 인물들은, 굴원(屈原)에서 조설근(曹雪芹)까지, 비참한 운명에 초라한 말년을 보내지 않은 이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특히 아버지의 그 『중국 역대 문화명인 소묘』에 나오는 인물들의 일생을 모두 찾아보았는데, 정말 그 주인공들을 생각하면 내가 다 억울할 지경이었다.
수많은 밤을 아버지의 책을 뒤적이며 보냈다. 그 책을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 인물들을, 그리고 정신적 원칙을 절대명령으로 삼으셨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막대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만이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이었다.
3년이란 세월은 빠르게 흘렀다. 그 기간에 허소만이 딱 한 번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이미 결혼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더러 반드시 공산당 입당을 신청하라고 신신당부하기에, 나는 그녀 말을 따라 신청서를 적어냈고, 매우 순조롭게 입당이 받아들여졌다.
하루는 학과의 인사책임자가 찾아와서 나더러 학교에 남을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바라던 바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약리학(藥理學)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네 명 중에 내가 발표한 논문 숫자가 가장 많았던 것이다. 며칠 후에 그와 마주쳤을 때 그가 나를 길가로 끌어당기면서 말했다.
“누가 당신이 맘에 든대.”
그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같은 과의 강(姜) 교수의 딸이었다. 나도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인상이 아주 좋았다. 속으로는 한 번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낌새를 보이기가 영 부끄러웠다. 그는 내가 망설이는 것을 보고 말했다.
“일만 잘 되면 자네한테는 여러 모로 도움이 되지.”
나는 그가 연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저야 뭐 그쪽 전공도 아닌데요.”
그가 말했다.
“학문적인 것도 학문적인 거지만 개인적인 발전, 북경에서의 발전을 생각해 봐.”
강 교수의 말이 얼마만큼의 무게를 갖고 있는지는 나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지도교수님이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해도 강 교수님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내가 학교에 남는 문제와 연결시키다니, 그건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너무 기회주의자 같아 보이지 않을까?
내가 대답했다.
“생각 좀 해보고요.”
그는 매우 뜻밖이라는 듯이 말했다.
“가능한 한 빨리 답을 주게.”
그리고는 애매한 말을 덧붙였다.
“졸업 후 배정 문제를 요 며칠 안에 다 결정해야 하거든.”
기숙사로 돌아와서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그 아가씨와 마음이 맞을지 어떨지 한번 시도는 해 볼 수 있지만, 그건 졸업 후에 생각할 문제이지 그쪽에 신세부터 지고 관계를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 인사책임자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 후 그와 마주쳤을 때, 그가 심문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에 나도 그저 모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싹 가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 달 후에 결과가 발표되었다. 학교에 남게 된 것은 내 동급생이었다. 나는 억울했지만, 그러나 누구를 찾아가서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나는‘벙어리 냉가슴 앓는다’(啞巴吃黃連)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천 가지 만 가지 원칙들이 있어도 그 제1조는 항상 이해관계’라더니,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이 이런 미묘한 데에서 다 결정되는구나.
지도교수님은 내게 약품검사국(藥檢局)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했다.
“저는 성(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나 북경에서 팔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북경에 대한 감정이 남달라졌던 모양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했다.
“북경이 뭐가 좋다고. 북경의 제일 좋은 점은 단지 들어오기 어렵다는 것뿐인데.”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때 내가 만약 조금만 머리를 굴려서 일단 인사책임자의 말에 응했더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랬으면 이렇게 억울한 일은 안 당했겠지? 하지만 만약 그랬으면 나 지대위가 여전히 지대위일 수 있을까?
북경을 떠나기 전날 밤 나는 답답한 마음에 마지막으로 북경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며칠 동안 밤새도록 차분히 생각한 끝에 내 신념은 더욱 굳어져 있었다. 현실 속에서 그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많은 힘들이 나를 둘러싸고 밀어붙이더라도, 아무리 그에 저항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리라. 고독하더라도, 가난하고 초라해지는 것도 겁나지 않는다. 나는 지식인이 아닌가.
여름 밤 나는 북경의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새벽 세시가 지나서야 담을 넘어 기숙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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