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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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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6>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20대 독자분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30대 후반 이후 세대로서 바둑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필시 들어보셨을 것이다.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라는 말로서, 일본 본인방 타이틀을 9연패했던 다까가와 가꾸에이(高川格) 9단이 바둑 시합을 할 때 이 글귀가 쓰여있는 부채를 늘 지니고 있었던 까닭에 널리 알려진 명구(名句)이다.

30대 후반 이후의 바둑 좀 좋아하는 사람 중에 법문사에서 출판된 일본 명인전 전집 시리즈를 펼쳐놓고 바둑판 위에 돌을 놓아보지 않은 분은 안 계실 것이다. 그 책 속에 ‘유수부쟁선’ 의 글귀에 대해 자세히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까가와, 한자로 쓰면 高川인데 직역하면 높이 있는 물이 된다. 그러니 문기(文氣) 넘치는 어느 분이 이 말을 선물했을 것이라고 필자는 추측해 보는데, 다까가와 9단 역시 그 글귀대로 앞을 다투지 않는 바둑 스타일, 이름하여 평명류(平明流)로서 본인방을 그토록 오래 차지할 수 있었으니 그 또한 기이한 일이다.

법문사의 명인전 시리즈는 한국 바둑이 발전하는 데 있어 큰 기여를 한 책이지만, 지금의 신세대 애기가들은 한국 바둑이 세계 무대를 주름잡는 오늘에 와서 더 이상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니 정말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다.

오늘 하려는 얘기는 물론 바둑에 관한 것이 아니다. ‘유수부쟁선’이라는 글귀의 출처인 회남자(淮南子)라는 책에 관한 것이다. 회남자 앞 부분인 원도훈(原道訓)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땅은 낮게 처하여 높이를 다투지 않기에 안정되어 위험한 법이 없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앞을 다투지 않기에 오히려 빨리 흐르고 지체하는 일이 없다.”(土處下不爭高, 故安而不危. 水下流不爭先, 故疾而不遲.) ‘유수부쟁선’은 ‘수하류부쟁선’이란 말을 약간 손본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서로마다 앞을 다투는 시대, 글로벌 경쟁이니 무한 경쟁이니 하면서 뭔가 하고 있지 않으면 남에게 뒤질세라 불안 초조한 시대에 있어,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아도 빨리 흐르고 지체하는 법이 없다는 이 말, 정말 답답한 가슴에 한 줄기 시원한 청량감을 가져다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회남자 속에는 멋지고 우아하며 깊은 지혜를 담은 말들이 가득하다.

회남자는 무위자연을 주장하는 노장의 생각들을 주로 전하고 있지만, 필자가 소개하는 까닭은 음양 오행 사상의 거의 완성된 진수가 이 책에 담겨져 있어서이다. 그러면 먼저 회남자를 제작한 사람에 대해 알아본다.

제작이라고 한 것은 회남자가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의 공동산물이기 때문이다. 회남자란 명칭은 이 책을 공동 집필케 했던 중국 전한의 회남왕 유안(劉安)을 일컫는 말이다. 회남왕 유안은 한고조 유방의 손자로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 부친이 세력을 믿고 방탕한 바람에 결국은 유배 도중에 자살해야 했지만, 한 무제는 유안의 재능을 높이 사 수시로 불러서 의견도 올리게 하고 글도 짓게 했었다. 그는 회남왕으로 봉해진 뒤 천하의 수많은 방사와 술사들을 식객으로 두었는데 그 수가 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회남자는 이처럼 당대의 지식인이자 학문을 좋아했던 그가 당대의 석학들로 하여금 집필케 한 책이다. 저술 시기는 대략 기원전 130년경이다. 주로 담박무위(淡泊無爲)를 종지로 하는 도교 사상을 중심으로 유가와 법가, 음양가의 사상이 집대성된 백과전서식 책으로서 중국 전한 대에 있어 사마천의 사기와 함께 최고의 지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유안은 나중에 반란을 일으켜 실패한 후에 죽었다.

당초 이 책은 회남왕 유안이 홍렬(鴻烈)이라고 명했던 것인데, 나중에 음양 오행 사상을 사실상 최종 정리한 전한의 대학자인 유향이 교정 정리하면서 ‘회남’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책이 오늘날의 형태로 전해진 것은 후한 때이다. 조조가 원소를 격파하고 일약 중원의 패자로 부상한 뒤에 정부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 여러 인재들을 초치하여 다시 나라를 부흥시키던 시기(기원후 200년경, 정확히는 건안 10년)에 대학자 노식(삼국지에서 유비가 한때 사사했던 스승)의 제자 고유(高誘)란 사람이 주해를 달고 정리한 것이다.

회남자에 보면 음양 오행은 도(道)가 나타나고 움직여가는 메카니즘으로 설명되고 있다. 아울러 음양 오행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고로 대장부는 욕심이 없어 복잡한 생각이 없고 담백하여 걱정이 없으니, 하늘을 덮개로 삼고 땅을 수레로 삼으며, 네 계절을 말로 부리고 음양을 어자(御者, 수레부리는 사람)로 삼아 구름을 타고 하늘을 넘나들면서 천지조화와 하나가 된다.”

이를 오늘날로 옮기면 천지를 하나의 자동차로 보고 브레이크와 악셀, 즉 완급을 음양으로 보며, 엔진을 네 계절(이것이 사실 오행이다)로 삼으니 세상 밖을 넘나들면서 막힘도 골치아픔도 없이 자유자재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회남자에는 이어서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이와 같이 하늘을 수레 덮개로 삼으면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으며, 땅을 수레로 삼으면 모든 것을 실을 수 있다. 사시를 말로 삼으면 만사를 조종할 수 있고 음양을 어자로 삼으면 만반에 대응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는 아무리 세차게 달려도 수레는 요동치는 법이 없고 아무리 멀리 나가도 지치지 아니한다.

무릇 몸을 애써 움직이지 않고 눈과 귀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천지간의 형세를 알 수 있는 것은 어찌된 연고인가? 이는 도의 중추(中樞), 즉 수레바퀴의 회전 축을 장악하여 무궁한 경지에서 자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천하의 모든 일에 억지 조작을 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되어가는 대로 맡기는 것이 좋다. 만물의 변화를 일일이 따라가지 않고 그 궁극을 붙들고 돌아가게 하는 것이 좋다.”

이 글귀들은 음양 오행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변화의 과정을 설명해주고 변화의 끝을 알려주며 다시 새로운 변화가 생겨나는 기미를 말해주는 것이 음양 오행이다. 필자는 이 말들이 단순히 정신수양 차원의 경지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정신적인 수양에서부터 낮게는 아주 실용적인 단계, 또는 노골적으로 말해서 돈벌이에도 극히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지혜가 음양 오행이다.

당장 예를 하나 들겠다. 필자는 작년 9.11 테러 사건이 난 이후 종합주가지수가 463 포인트까지 급락한 후 재미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11월초 어느 날 종합주가지수가 560 포인트까지 회복되는 것을 보고는 3월초 어느 날 주가지수가 840 포인트를 상회할 것이라고 단정을 내렸고 최고 940 포인트 정도까지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 시기는 4월 중순경으로 보였다. 이는 무려 50 % 정도 되는 상승률이다. 그래서 금년 초 나라 운세 전망에서 종합주가지수가 840을 한번 넘어갔다가 올 것이라는 글을 프레시안에 실었다.

왜 그런가 하는 원리에 대해 설명하진 않겠다. 말해주면 세상이 뒤집힐 일이고, 시장이 그 기능을 못하게 되기 때문에 소심한 필자는 두려울 뿐이다. 다만 증시의 움직임은 신도 모른다는 말을 그저 숨어서 빙긋이 웃어줄 뿐이다. 혹자가 필자에게 그럼 돈이나 벌지 왜 그런 글이나 쓰고 앉았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빙긋이 웃을 뿐이다.

증권사 임원으로 있는 절친한 친구에게 주가지수 차트를 보여주며 약간 설명해 줬더니 기가 막힌 표정으로 논문을 써보라고 권유하기에 그저 웃고 말았다. 대강 알면 겁 없이 떠들겠는데, 진짜 알고 나니 말 못한다고 답했다. 다만 여기서는 음양 오행이 쓰이지 않는 데가 없이 유용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잠깐 천기의 단초를 누설했을 뿐이다.

그러나 조심할 점도 많은 것이 음양 오행이다. 가령 증시 예측은 과거 10년간 정도의 데이터가 있기에 어렵지 않게 예측이 되지만, 기초 데이터가 충분치 않을 경우 예측은 쉽지가 않다. 틀리는 경우도 많은데 그럴 때엔 필자 역시 연구와 공부의 부족함을 절감하곤 한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을 때, 음양 오행을 하는 사람은 그 직종이 음양 오행상 무엇에 해당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따라서 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주를 많이 봐서 추론하게 되고 또 검증하게 된다. 먼저 가설을 세우는 연역의 과정을 거친 다음 다시 귀납적인 과정을 거치고 다시 연역하고 귀납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여러 번 반복한 연후에야 판단이 정밀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느끼는 지적 호기심의 충족이 필자가 음양 오행을 연구하는 데서 얻는 주된 보상이다. 증시 예측에 자신이 생긴 것 역시 과거 십 수년의 세월 동안 무수히 연구 검증하고 시행착오를 거쳐온 결과다.

오늘은 회남자라는 책에 대해 아주 간략히 소개해 보았다. 켸켸묵은 책이라 여기지 말고 독자분 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명문당에서 나온 책이 상당히 충실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사과 드릴 것이 있다. 저번 글에서 ‘no cross, no crown'이란 말을 인용했는데 전혀 엉터리 해석이었음을 밝힌다. 강을 건너지 않으면 영예도 없다는 뜻으로 얘기했는데, 완전 빗나간 풀이였던 것이다. 전에 잘 알던 미국 친구로부터 배웠는데, 원뜻은 그게 아니고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월계관을 쓸 수 없다는 말이라고 영어에 해박한 독자 분이 메일을 보내 주셨다. 필자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아울러 고마운 일이기에 직접 전화를 드렸고, 앞으로도 인용하거나 정보를 전달할 때는 반드시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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