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4강 신화에서 유래된 ‘붉은 악마’가 한때 종교 단체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무마되어 이제는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오늘 하려는 얘기는 ‘악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붉은’ 색에 관한 것이다.
축구는 사실 거친 운동이다. 그것은 일종의 모의 전쟁과도 같다. 넓은 필드를 바람처럼 달려가는 공격수의 모습은 갈기를 휘날리며 적진으로 쇄도하는 기마 돌격전을 연상케 하며, 수비들의 옥죄어 오는 플레이는 공성전(攻城戰)을 방불케 한다.
축구는 가장 남성적인 스포츠로서 사람들의 투쟁과 정복 심리를 대리 만족시켜주고 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자본에 의해 숨막힐 정도로 짜여진 산업 사회에서 축구는 대중 심리의 유일한 분출구일 수도 있다. 그래서 축구는 규칙이 있을 뿐, 본질은 전쟁이다. 훌리건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
이 같이 투쟁성이 강한 운동에 우리가 붉은 색을 쓴다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고, 우리 민족의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그러면 왜 우리는 붉은 색을 쓰는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래 전부터 우리 축구 대표팀은 상의는 언제나 붉은 색을 쓰고 하의는 검정이나 푸른 색을 써 왔다. 태극 마크를 상징하고 있지만, 음양 오행상 자연스런 귀결이다. 우리나라는 동방 갑목(甲木)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소나무의 기상을 지닌 우리나라는 마치 나무가 땅 위에서는 태양이 빛나고 땅속에서는 수분이 촉촉하게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잘 자라듯이, 상의는 붉은 색, 하의는 검정이나 청색을 쓴다. 붉은 것은 태양을, 검정이나 청색은 수분과 자양분을 상징하고 있다.
멕시코 4강 신화 때 아래 위 모두 붉은 색을 쓴 적은 있지만, 그것은 당시 운세가 그랬던 것이고 상의는 빨강, 하의는 검정으로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청색도 가능하지만. 검정이 더 좋다. 검정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면 청색은 시냇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검정을 쓰면 따라서 지구력과 끈질긴 면이 강화될 수 있다.
우리 대표팀이 가장 강했을 당시,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의 유니폼 색깔이 바로 짙은 붉은 색 상의에 검정 하의였었다. 그리고 청소년 대표팀은 푸른 색 상의도 잘 입는데 그것은 물이 나무를 배양하고 있으니 아직 자라는 나무라는 의미이다.
이에 반해 일본을 보면 상당히 재미있어진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푸른색 상의와 흰색 하의를 착용하는 나라이다. 일본은 을목(乙木)의 나라로서 우리와 사촌지간이지만, 개성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 푸른 색은 물을 의미하고 흰색은 금의 기운을 뜻한다. 그 뜻은 규율과 단결이다. 바로 일본인들의 장점을 의미한다. 사실 일본 축구는 공격 축구가 아니라, 팀워크에 의한 수비 위주의 플레이를 전통적으로 펼쳐온 것도 바로 그런 그들의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을 서구에 소개한 ‘국화와 칼’이라는 책이 있다. 필자는 그 표현을 상기할 때마다 정말 기막히게 적절한 비유라고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칼은 바로 금의 기운을 말하는 것이고, 국화는 금의 기운이 강한 가을에 피어나는 조용하고 기품있는 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자기 규율을 중시하고 무리를 지어도 떠드는 법이 없다. 꽃꽂이가 일본인들의 예술인 것도 같은 이치이다. 자연의 꽃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꽃에 칼(바로 금의 기운)을 대어서 잘라내고 군더더기로 보이는 잎새들을 정리한 다음에 물이 든 화병에 꽂아놓는 것이다. 그렇게 숨막힐 정도로 정제된 양식은 우리 고유의 정서가 아니다.
이렇게 한일 양국을 비교하면 한국은 신명이 나야 잘한다, 마치 나무가 봄날에 태양을 만나 마냥 자신을 표출하고 분출하여 꽃을 피우듯이. 하지만 일본은 국화처럼 찬 서리가 내릴 때에도 참아가면서 강인하게 자신을 표현한다. 바로 규율있는 단체가 되어야 강한 맛을 내는 나라인 것이다. 같은 나무의 기상을 지닌 나라들이지만 그 성격은 많이 다른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그래서 외톨이가 되는 것은 대단히 무서운 징벌인데, ‘이지메’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 국민들은 이지메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강한 소나무와 같아서 남산 위에 홀로 비바람을 맞아도 굽히지 않는 기상이 있는가 하면, 변변치 않은 나무라도 독불장군의 기세가 있다. 이 같은 성격은 장점도 많지만 단결력이나 조화 같은 것에 신경을 별반 쓰지 않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 단점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승부나 경쟁에서는 당연히 붉은 색을 써야 하는 나라이다. 이를 명리학에서는 목화통명(木火通明)의 기상이라 부른다. 봄날에 나무가 태양 빛을 받아 빛나는 형상으로서, 문명(文明)의 상이라 하기도 한다. 또 사주가 목화통명에 해당되는 사람은 문장력이 뛰어나다. 창경궁에 가면 안 뜰 쪽으로 통명전(通明展)이 있다. 역대 세자들이 학문을 익히던 곳으로서, 비운의 사도 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곳도 이 통명전 앞뜰이고, 장희빈이 사약을 받아 죽은 장소도 바로 이곳이라는 것도 재미삼아 밝혀둔다.
우리 국민들은 이 같은 불굴의 기상이 있고 특히 혼자일 때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위기의 사전 대처 능력은 비교적 약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치밀한 사전 준비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원래 그런 것이 아니고, 태극기에 그려져 있는 원의 아랫부분, 즉 물을 상징하는 푸른색이 제대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그런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남과 북이 분단되어있는 탓이다. 물이 밑에서 뿌리에 수분을 공급해야 나무가 잘 자라고, 나중에 힘을 쓸 데 가서 쓸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단된 현실에서 붉은 색에 치중하다 보니 너무 자기 주장만 강해져서 온 나라가 시끄럽고 냄비 속 같은 것이다. 음양의 조화가 부족하여, 결국 반쪽 기능만 발휘되는 셈이다.
다시 돌아가서, 우리 대표팀의 유니폼 색깔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유니폼 색상, 더 직접적으로는 그 나라의 국기를 보면 금방 그 나라를 알 수 있다. 색상은 가장 직접적인 정보전달 수단이기 때문이다. 국기의 색상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들이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색상이고 또 하나는 지향하고자 하는 바, 즉 비젼을 나타내는 색상이다.
전자의 예를 들면 한국이나 중국 등이다. 우리가 붉은 색과 청색을, 중국은 붉은 색과 노랑을 사용하고 있다. 또 미국의 경우 성조기는 적과 청이지만, 축구 유니폼은 흰색인데 이는 청교도적인 순결을 의미한다. 일본의 경우 국기는 태양이다. 그러나 태양의 빨강은 일본 천황을 상징하고 유니폼은 청과 백을 써서 규율과 단결, 복종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인들에게 빨강은 함부로 가까이 하기 어려운 색깔이다.
후자의 예를 들어보자. 유럽 국가들은 일조량이 다소 부족한 지역이어서 대다수가 붉은 색을 선호하는 바 그것은 그들의 태양에 대한 희구와 비젼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태양광이 가장 풍부한 나라이고 약간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시원한 물색을 쓴다. 프랑스 또한 삼색기를 통해 그들의 비젼을 나타내고 있지만, 비교적 일조량이 많다 보니 유니폼에서 비중있는 색상은 우아한 청색이다. 더운 사막 나라들은 숲이란 바로 낙원을 의미하기에 초록색을 국기에 반영하고 있다. 이 모두 비젼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색상간에 음양 오행의 원리에 따라 서로 누르고 도와주는 관계-상생 상극-가 있어 어느 나라는 어느 나라에게 강하고 또는 약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고정 불변이 아니라, 해마다 달마다 작용하는 운이 있어서 그것으로 승부를 점쳐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나라마다 유니폼 색상은 기본적으로 같지만 운에 따라 그 색조가 미묘하게 변하면서 그 운을 반영하고 있다.
다시 얘기하지만, 멕시코 4강 신화를 만들 때, 우리 청소년 팀의 유니폼은 아래위가 모두 붉은 색이었다. 그 뜻은 목이 화를 전적으로 생하는 것으로서, 우리 청소년 팀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그 결과 위대한 기록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니폼 색깔을 그렇다고 무조건 아래 위 붉은 색으로 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물어온다면, 그 대답은 ‘아니다’이다. 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러면 이번 대표팀의 색상은 어떤가 살펴보자. 밝은 빨강과 약간 옅은 파랑인데, 이는 서구인들이 좋아하는 색상일 순 있어도 우리 고유의 빨강과 파랑이 아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세계화(미국화)된 색상으로서 월드컵을 통해 우리의 주체성을 높이자는 뜻이 아니라 저들에게 영합하자는 심리가 깔려 있다. 세련되긴 했지만 심지가 굳질 못한 것이다.
좀 더 부연하면 지금의 빨강은 장미 빨강이고 파랑은 그에 따라 톤을 낮춘 파랑으로서 영미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색이지, 우리 고유의 색상은 아니다. 그러나 색상만을 놓고 음양 오행학적으로 설명하면, 옅은 빨강은 주체성이 약하기에 현 대표팀은 확실한 스트라이커가 없고, 옅은 파랑은 후반전에 수비 실수로 인한 실점의 위기를 뜻하고 있다. 유니폼의 색깔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희망적인 점도 있다. 히딩크 감독이 바로 그렇다. 그는 유럽의 대표적인 공격 축구국인 네델란드 출신인데, 야생마와 같이 분방하고 공격적인 우리 기질을 최대한 살린다면 이번 월드컵 16강 진출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궁극적인 희망은 통일 한국이 되는 날, 우리 축구는 태극 마크의 기운이 온전히 발휘되어 반드시 세계 4강에 수시로 들락거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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