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또는 극좌 검인정 교과서와 중도 성향의 국정 교과서. 이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쁠까? 딱히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이다. 그래서 내 생각을 드러낼 용기를 냈다. 정답도 아니지만, 오답도 아닐 테니까.
'SNS괴담'엔 비판, 교과서엔 무비판…그게 가능한가?
나는 국정 교과서가 더 나쁘다고 본다. 설령 그 내용이 내가 품은 이념과 온전히 일치하더라도, 그렇다. 아이들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그들의 교재를 하나로 통일하겠다는 발상 뒤에는 인간의 비판 능력에 대한 불신이 도사리고 있다.
좌파 교과서로 공부한다고 꼭 좌파가 되는 것도, 우파 교과서로 공부한다고 꼭 우파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군사정부 시절 학교를 다니며 강력한 반공교육을 받았던 세대 가운데서 오히려 좌파와 주사파가 많았던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증류수처럼 순수한 이념을 지닌 이들이 오히려 취약한 정신세계를 지닌 경우를 흔히 본다. 정신세계 역시 다양한 자극에 노출돼야 건강하게 유지된다.
책에서 읽은 내용을 한 치 의심 없이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과연 세상살이에 적응할 수나 있을까. 경쟁력 있는 인재는커녕, 정신질환에 걸리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인간에게 제공되는 정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 특히 지금과 같은 인터넷 시대엔 더욱 그렇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되는, 이른바 '괴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은 현 정부의 중요한 국정 목표가 아니던가. 온라인 정보는 믿지 말라면서, 교과서 속 문구는 의심 없이 믿기를 기대한다면, 자가당착이다.
교과서 내용 통일, '창조경제' 싹 자른다
이런 모순은 계속 이어진다. 현 정부는 '창조경제'를 내세웠다. 창조란 결국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뜻일 텐데, 이는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데서 비롯된다. 내 생각과 똑같은 내용의 국정 교과서보다 차라리 극우, 또는 극좌 검인정 교과서가 낫다고 보는 이유다. 설령 편향된 내용의 교과서로 공부하더라도, 이와 다른 교과서가 있다는 걸 안다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학생이 '다른 가능성'에 눈을 뜰 기회가 생긴다.
똑같은 수학 문제를 놓고도, 풀이방식을 달달 외우기만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답안지와는 다른 풀이방식을 떠올리는 학생이 있다. 이 차이가 단지 지능에서만 비롯되는 건 아닐 게다.
지식 활동에는 늘 '다른 가능성'이 있기 마련이라는 믿음 역시 필수적이다. 이런 믿음이 없는 학생과 있는 학생. 창조경제를 이끌 과학자나 공학자, 기업인이 어떤 학생을 제자나 직원으로 받기를 원하겠는가. 답은 명백히 후자다. 교과서가 다양할 수 있다는 믿음을 깨는 건 결국 창조경제의 싹을 자르는 일이기도 하다.
교사를 못 믿는다? 교육부 관료는 어떻게 믿나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을 한 달 여 동안 돌아다닌 적이 있다. 이들 나라엔 국정 교과서는커녕 검인정 교과서조차 없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가 자율적으로 교재를 택한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선 흔한 일이다. 한국, 일본 등이 오히려 예외적이다. 우리에게도 마냥 낯설기만 한 모습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대학 강의는 대부분 교수가 마음대로 교재를 정한다. 학생에게 적절한 교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가장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들을 가르치는 자다. 교사가 선택할 수 있는 수업 교재 선택의 폭을 좁히는 정책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다.
교사를 어떻게 믿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교과서를 통제하는 교육부 관료는 어떻게 믿나? 물론, 나쁜 교사들도 있다. 그들은 학생과 동료교사, 학부모가 가려낼 수 있다. 하지만 나쁜 관료를 보통 시민이 가려내기란 불가능하다. 게다가 한국 교사들의 실력이나 도덕성이 앞서 언급한 선진국에 비해 유난히 뒤쳐진다는 근거 역시 찾기 힘들다. 교사와 관료가 모두 불완전한 존재라면, 그나마 학생과 학부모에게 노출돼 있는 존재, 즉 교사를 믿는 게 낫다.
답이 여러 개인 수학 문제 푸는 스웨덴, 역사 해석마저 통일된 한국
스웨덴의 어느 서점에서 초등학생 수학 교재를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선 '1+1=?'와 같은 문제만 접했었다. 그런데 거기선 '?+?=2'와 같은 문제가 실려 있었다. 전자는 답이 하나인 문제다. 지식이 더 쌓이고 생각이 깊어져도, 여전히 답은 하나다. 그러니까 답을 알아낸 학생은 더 생각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후자는 답의 종류가 무한하다. 처음에는 '1+1=2' 정도만 떠올리던 아이들도 음수, 무리수, 복소수 등 수의 개념이 확장되는 것과 함께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기억이 떠오르면 한숨이 나온다. 한낱 산수 문제 하나를 놓고도, 답이 여러 개일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나라가 있다. 그런데 수천 년 동안 쌓인 거대한 역사를 가르치면서도, 해석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나라가 있다. '창조경제'에 어느 쪽이 더 어울릴지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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