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용
겨울이었다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 때였다
소읍 장마당에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
윷을 던지고 화투패를 만지고 놀던 날이었다
돼지를 묻으러 가면 돈을 엄청 벌 수 있대
소를 구뎅이에 파묻는데 소 엉덩이를 밀어주면 하루 30만 원을 준대
자네 트럭을 몰고 가자, 포클레인이 없으면 트랙터라도 끌고 가자
장비는 40만 원을 넘게 받는다네
더 몇 해 전에, 4대강 공사가 한창일 때였다
소읍에는 갑자기 활기찬 바람이 불었다
농번기가 왔어도 일깨나 할 만한 남자들은
남한강으로 모두 모래를 퍼담으러 떠났다
보를 막고 시멘트를 붓고 둑을 쌓는 곳으로 몰려갔다
거기에는 겨울에도 일이 있고 야밤에도 일이 끊이질 않는다네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던 사내들은 거기에서 힘쓴 일들을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엊그제 도강훈련을 하던 군인들이 강물에 빠져 죽었다지
해마다 훈련하던 곳인데 강바닥이 깊게 파여 소용돌이에 휩쓸린 게지
거기 그 자리, 우리가 바로 모래를 파낸 자리가 아니었나
하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얼굴도 잊어먹을 고향 친구 녀석
농사도 때려치우고 공사판을 떠돌더니
돈을 벌러 객지로 떠났다고 했다
아주 아랫녘, 거기 가면 아주 좋은 일거리가 있다고
밀양이라는 곳에 송전탑 세우는 일을 한다고
요새 그만한 일당에 그만한 일자리가 어딨냐고
거기 가면 일이 있다고, 거기에는 꽤나 짭짤한 돈벌이가 있다고 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경쾌하고 씩씩한 밀양 아리랑입니다. 전국 팔도의 아리랑 후렴구 대신에 '날 좀 보소'로 시작하는 밀양 아리랑은 일제 강점기 저항의 노래로 불렸습니다.
지금, 밀양의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는 투박한 농민들과 지역 주민들이 엄동을 앞두고 고향 산천과 농토를 지키려고 싸우고 있습니다. 밀양 아리랑이 구슬픈 정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척당한 사람들이 부르는 아리랑은 점점 더 격렬해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11월 30일 밀양 반핵 희망버스를 타고 씩씩하고 경쾌하게 팔도의 아리랑을 우리 함께 불러야 할 때입니다. '밀양을 보소. 밀양을 보소. 밀양을 보소!'
* 이 시는 11월 29일 열리는 '백기완의 민중비나리'의 연대 행사로 기획된 <2013년 저항시선 80인 선집>을 위해 쓰였다. 시를 주신 시인과 기획단에 감사드린다.
임성용 시인은 1965년 전남 보성 출생. 리얼리스트100 회원이며, 시집으로 <하늘공장>이 있다. 제11회 '전태일 문학상', 제1회 '조영관 창작기금'을 받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