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이 정의당 심상정 의원으로부터 6일 입수한 '항소 제기 여부 지휘 요청서'를 보면,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1일 "망인과 비슷한 공정에서 일했던 동일 상병의 근로자들에게 항소를 제기한 상태에서 이 건을 포기하는 경우 항소심 사건에 대해서도 공단이 업무상 질병을 인정한다는 심증을 주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적어도 2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항소해 다투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은 또 "현재 공단이 항소를 제기해 진행 중인 2심 사건과 비교할 때, 1심 법원은 유해요인에 백혈병의 발암물질을 명시하고 있으나 (중략) 여전히 발암물질에 노출됐다는 객관적 사실보다 추정적 판단을 하고 있음 점에 비추어 법원의 잘못을 주장해 볼 만하다"고 밝혔다. 공단의 요청에 따라 검찰은 지난 4일 항소를 제기했다.
이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이 불승인한 산재를 법원에서 인정받기까지 4년 가까이 기다려온 유가족들은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또다시 수년을 기다려야 할 전망이다. (☞ 관련 기사 : '삼성 백혈병' 또 승소…"근로복지공단, 이번에도 기습 항소?")
▲ 고 김경미 씨의 유가족과 반올림 회원들이 지난 10월 28일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복지공단은 항소를 포기하고, 삼성 백혈병 산재 인정 판결을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유족과의 면담에서 이재갑 공단 이사장은 "항소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이사장 면담 3일 뒤인 11월 1일 검찰에 항소 제기 여부 지휘를 요청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5일 성명을 내고 "이재갑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유족과의 면담에서 '항소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말했지만, 또 다시 기습 항소했다"며 "근로복지공단이 유족에게는 고통을, 삼성에게는 면죄부를 안겼다"고 맹비난했다.
반올림은 "2011년 고 이숙영, 고 황유미 씨 산재 인정 판결에 대해서도 근로복지공단은 유족의 절규를 뿌리치고 항소를 제기했고, 이 때문에 유족들은 2년 4개월이 넘도록 공단과 삼성을 상대로 힘겨운 법정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하고 3년이 지나서 고 이숙영, 고 황유미 씨와 똑같은 공장에서 똑같은 업무를 하다가 똑같이 백혈병에 걸린 고 김경미 씨 사건에 대해 법원은 마찬가지로 산재를 인정했다"며 "또 다시 불복한 근로복지공단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기관인가"라고 반문했다.
지난 2011년 최초로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를 인정받은 고 이숙영, 고 황유미 씨 판결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유가족 몰래 항소한 전례가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2011년 7월 4일 삼성전자 핵심 인사들을 만나 합동 대책회의를 열고, 당일 검찰에 항소 이유서를 제출했다. (☞ 관련 기사 : 근로복지공단, 삼성과 '반도체 백혈병' 협의 후 몰래 항소)
항소 이유서를 제출한 지 3일 뒤인 7월 7일 신영철 당시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유가족들과 면담에서 "항소 여부는 마음을 열어놓고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공단의 의견을 검찰에 전달할 것"이라며 "만약에 항소를 하게 된다면 사전에 유족·피해자 측에게 항소한다는 사실과 이유를 미리 알려주겠다"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로부터 3년 뒤, 근로복지공단이 고 김경미 씨의 산재 인정 1심 판결(9월 18일)에 불복해 '몰래 항소'하는 상황이 또 다시 벌어진 셈이다.
심상정 의원은 "10월 31일 국정감사 마지막 날에 이재갑 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에게 항소를 재고하도록 요청했고, 이사장은 법률적 검토를 통해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그 다음 날인 11월 1일에 공단이 검찰에 항소 제기 여부 지휘를 요청했다"며 "항소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심 의원은 "이러한 정황이 사실이라면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국정감사에서 위증을 한 것과 다름없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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