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열린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지난 6월 23일 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 피해자가 처음으로 '산재' 인정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한 것을 지적하며 "근로복지공단이 사실상 삼성법무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정동영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와 전화통화 내용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7월 4일 근로복지공단의 삼성반도체 산재 소송 수행자인 오 모 차장과 변 모 부장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한 모 상무, 김 모 부장, 정 모 차장 등의 핵심 인사들과 만났으며 항소와 관련해 사실상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전자가 합동 대책회의를 가진 것을 인정했다.
이 자리에서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전자 측에 소송 보조참가인에서 빠지도록 취하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삼성전자 측이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전자 측의 의사를 확인한 근로복지공단은 이날 오후 곧바로 검찰에 항소 제기 의사와 함께 장문의 항소이유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삼성 백혈병 피해자와 유족들은 지난 7월 5일부터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항소하지 말아달라"며 연좌농성을 벌였고, 7일 근로복지공단의 신영철 이사장은 피해자·유족 측과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신 이사장은 "항소 여부는 마음을 열어놓고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공단의 의견을 검찰에 전달할 것"이라며 "만약에 항소를 하게 된다면 사전에 유족·피해자 측에게 항소한다는 사실과 이유를 미리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공단은 이미 3일전에 검찰에 항소하겠다며 항소이유서까지 몰래 제출해놓은 상태였다.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다.
▲ 7월 7일 "항소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신영철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의 말을 믿고 이튿날 농성을 푼 '삼성 백혈병' 유가족과 피해자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이미 4일에 삼성 측과의 합동회의를 마친 후 항소이유서를 검찰에 제출한 상태였다. ⓒ삼성일반노조 |
정 의원은 "근로자의 재해보상과 보호를 위해 일해야 할 근로복지공단이 힘없는 노동자를 상대로 사실상 삼성법무팀의 역할을 수행한 것은 근로복지공단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것"이라며 "그럴 바에야 대놓고 '삼성복지공단'으로 이름을 바꾸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영철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에게는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거짓말하고 이들을 기만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며 "항소를 철회하고 스스로 사퇴하라"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신 이사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소송을 담당하는 경인지역본부 부장과 담당자가 삼선전자를 방문해 항소심은 보조 참고자에서 빠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이것이 어떻게 합동대책회의냐"고 말했다.
그는 또 "항소나 항소 취하는 검찰에서 결정하는 것이고 공단 경인지역 송무팀에서 항소를 하는게 옳다고 (판단)해서 검찰에 항소의견서를 제출했다"며 "유가족들과 만나서는 검찰 진행과 별도로 본부차원에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서 검찰과 협의해보겠다고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도 삼성과 유착관계를 가져왔음이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0년 '직업성 암 등 업무상 질병에 대한 인정기준 합리화 방안'이라는 연구 컨소시엄의 총책임자를 삼성전자 건강연구소 부소장이었던 김 모 성균관대 의대 교수에게 맡겼다. 공동연구팀에도 삼성계열인 성균관대 교수를 총 5명 중 2명이나 포함시켰다. 사실상 삼성연구팀에게 직업성 암 인정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한 셈이다.
정 의원은 "삼성전자가 백혈병 산재 피해자들과 직업성 암 인정기준을 놓고 소송을 벌이고 있고 사회적 논란의 핵심 당사자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기준을 마련하는 연구 컨소시엄을 사실상 삼성연구팀에게 맡긴 것은 '삼성노동부'를 자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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