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밤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우습고, 한편 참담하다. 밤을 꼬박 샜다. 원고 때문이다. 그날은 천성산(千聖山) 내원사(內院寺)의 지율스님(47)이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공사의 중단과 환경영향평가의 재실시를 요구하며, 청와대 분수대 앞길에서 단식을 시작한 지 50일째 되는 날이었다. 원고 주제는 지율스님의 단식에 대한 소회였다. 물론 내가 선택한 주제다. 장문의 원고를 시쳇말로 '올인'하다시피 하며 썼다.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의 평균적인 원고 분량의 서너 배는 됐던 듯싶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
유마거사(維摩居士)의 법문이다. 그날 밤의 내 원고는 이 '불이(不二)'의 법문을 의지해서 썼다.
이 법문은 세간에서 인용되는 관례와는 달리 그 속뜻이 대단히 미묘하다. 일견, 그 외연은 보살의 자비심을 설(說)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그 내포는 '공(空)'사상을 설하고 있다. 불가에 '동체자비(同體慈悲)'라는 말이 있다. 가장 근원적인 '자비'는 바로 '동체'로부터 나온다는 얘기다. '나(自我)'와 타자(他者)의 '동체', 곧 '한 몸'은,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무아(無我)'의 결과물이다. '나(自我)'라고 하는 존재와 '나의 것(所有)'에 대한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스러운 것, 그게 바로 '무아'다. 그 '무아'의 존재태가 이를테면 '동체'로 나타난다. '나'와 타자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 몸'이다. 그 '한 몸'에서 나오는 그런 '자비'가 '동체자비'다. 그런 의미에서 '자비'란 타자(他者)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자타(自他)가 일체인 탓이다.
천성산과 그 산에 의지해 살고 있는 생명붙이들은 지율스님과 한 몸이었다. 꼬리치레도롱뇽과 산개구리, 꼬리박각시와 푸른큰수리팔랑나비, 꿩의바람과 고란초, 괴불주머니의 아름다운 꽃들 그리고 일엽초 같은 이끼들은 지율스님의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지율스님의 50일 단식은 바로 그 '동체자비'의 실천이었다.
"처음 천성산 문제를 시작했을 때 산 정상부위까지 굴삭기가 올라오고 철쭉제 등으로 화엄벌이 파괴되는 현장에서 까닭 없는 눈물이 흘렸고, 그 눈물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산이 울고 있다고 느꼈고, 살려달라고 하는 애원의 소리를 들었으며,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었다. 만일 고속철도가 들어오고 늪과 늪의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진다면,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로 세세생생 곤충으로 태어나 목말라 하며 살 것이다."
백척간두로 나선 지율스님의 얘기다. '산이 울고 있다'고 느끼거나, '살려달라고 하는 애원의 소리'를 들었다는 말을 나는 '상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수행이 깊은 어느 구도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산과 그 산을 의지해 사는 생명붙이들과 하나가 됐을 때 이루어진, 일종의 '영적(靈的) 소통'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무아'의 다른 표현인 '공'사상과 '비이원성(非二元性)' 혹은 '일원론적 세계관'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날은, 날이 밝을 무렵이 돼서야 글쓰기를 마쳤다. 나중엔 눈이 피로해 컴퓨터의 모니터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났다. 원고를 다시 읽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원고를 보니 '생명'을 다룬 글이 역설적으로 '생명력'이 없이 죽어 있었다. 도무지 읽어내려 갈 수가 없었다. 이런 호랑말코 같은 놈! 스스로를 두고 욕을 했다. 결국 원고를 버리고 말았다.
글이 죽고 말았던 까닭이 뭘까. 그것은 '진정성(眞情性)'의 문제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고백하자면, 글을 썼던 그날 오후엔 새참으로 옥수수를 삶아 먹었다. 저녁은 늙은 호박을 한 덩이 따다가 멥쌀을 풀어서 호박죽을 써먹었다. 배가 불렀다. 결과적으로 그 '부른 배'를 갖고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어 있었을 그 스님의 '주린 배'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우스운 일이다. 글을 인문적 상상력으로만 쓰려고 했던 것은 터무니없는 오만이었다.
60년대 후반의 일로 기억된다. 그 무렵 발간됐던, 한 잡지에 실린 실화 한 토막이다. 6. 25전쟁 발발 후 사흘째 되던 날, 국군은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한강교를 폭파했다. 남하하던 피난민들은 퇴로가 막혀 버렸다. 그 와중에 운 좋게도 나룻배를 구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실화는 어느 날 밤 한 나룻배에서 일어난 이야기였다.
그 배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탔다. 그 중엔 어린 아기를 안고 탄 여인도 끼어 있었다. 마침내 어둠 속에서 나룻배가 출발해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인이 안고 있는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배에 탄 사람들이 긴장했다.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나룻배의 존재가 탄로 날 경우, 강변에 매복해 있는 북한군들로부터 사격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이를 울지 못하게 하라며 여인에게 화를 냈다. 여인은 젖을 먹이려 했지만, 아이는 계속 울었다. 그때 누군가가 일어나 그녀의 품에서 아이를 낚아챘다. 그는 곧바로 아이를 어둠 속의 강물에 던져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인은 망연자실했다. 한참 뒤 정신을 차린 여인이 품속에서 칼 하나를 꺼냈다. 그녀는 가슴을 풀어헤친 뒤 그 칼로 자신의 젖가슴을 모두 도려내버렸다. 어린 생명을 지켜내지 못한 자책과 함께, 그 젖가슴은 이제 더 이상 존재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린 '생명' 하나를 대하는 방식도 그 어미 된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들간의 차이가 이렇다. 세상 풍경이다.
'천성산 지킴이'로 불린 지율스님은 무엇보다도 천성산 생명붙이들의 '어미'였다. 50일을 넘어서는 무기한의 단식은 그 '모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지율스님은 "만약 '생명'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였다면 이렇게 싸움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지율스님의 단식과 더불어 가장 빈번하게 나오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안'에 대한 것이다.
두 해 전 <녹색평론>(2002년 3-4월호)엔 '생명의 대안은 없다'라는 제목의 르포 한 편이 실렸다. 필자는 작가 김곰치씨였다. 김씨가 한 비구니에게 물었다. 천성산을 뚫지 않는다면 다른 '대안'이 있는가?
비구니가 답했다.
"저는 대안을 말하지 않아요, 아니 못합니다. 왜냐면 천성산을 뚫는다는 말에 이미 너무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대안이라는 건 결국 천성산 대신 다른 데를 뚫거나 다른 곳을 지나가라는 소리잖아요. 제가 받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 상처를 다른 누군가한테 안길 수가 없어요."
그 비구니는 다름 아닌 지율스님이었다.
"저는 고속철도가 천성산을 뚫지 말고 우회하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천성산이 살겠다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면, 어느 누군가에게 너무도 귀할 수 있는 숨은 가치를 훼손시키라는 말이잖아요."
지식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걸핏하면 입에 달고 다니는 말 중 하나가 바로 '대안(alternative)'이다. "'대안'이 뭔가?" "과연 '대안'이 있긴 한가?" 그들을 보면 마치 '대안' 강박관념에 걸린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때로는 침묵도 언어의 한 유형인 것처럼,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행위' 그 자체도 때에 따라선 근원적인 대안이다. 그걸 한 스님이 보여주고 있었다.
지율스님은 단식 49일째 되던 날, '노무현 대통령께'라는 제목의 편지를 썼다. 그에게 편지를 보낸 까닭은, 그가 대선 당시 '천성산 관통터널 백지화와 대안 노선 검토'를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었다. 그 편지의 첫 구절은 "만일, 내 생에 하루가 남아 있다면 그 하루를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됐다. 그러나 청와대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없었다. 결국 이 땅의 정치권력도, 산업화와 개발로 상징되는 '근대' 이후 천민자본주의가 횡횡하는 땅이면 어느 곳에서든지 만날 수 있는 그런 '두억시니'가 되어가고 있는가. 한때 이 땅의 진보나 변방, 혹은 소수(minority), 농민ㆍ노동계급, '하늘의 절반'으로서의 여성들의 일부가 그를 지지했었지만, 지지할 때 가졌던 그 소망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고 있다.
지율스님의 단식이 오늘로 55일째다. 단식이 50일을 넘어서면 생물학적으론 이미 사선(死線)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성산> 홈페이지(www.cheonsung.com)의 게시판을 보니 처연한 글이 한 편 보인다.
"지율스님이 떠나고 계십니다!"
단식 50일을 앞두고 그녀를 방문한 지식인 그룹이 있었다. 그들 중엔 김지하시인과 문정현신부도 보였다. 김시인은 80년대 초반 이후부터 동학과 증산교 등의 사상을 배경으로 '생명'을 주제로 한, 거대담론을 이끌어냈었다. 그들이 지율스님을 만나 나눈 얘기가 한 인터넷신문에 실렸다.
김시인이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 지율스님께 단식을 그만둬라 계속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신부가 말했다.
"뜻이 있어 단식을 하는 분께 누가 감히 옆에서 단식을 하라, 마라 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일까. 그들이 하고자 했던 말의 뜻을 모르진 않다. 그러나 한편으론 한국지성의 현주소와 한계를 보는 것 같다. 누군가 눈 밝은 이가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지도 모른다.
"김시인과 문신부의 말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김시인과 문신부의 말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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