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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회의 ‘삼국지(三國志) 바로 읽기'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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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회의 ‘삼국지(三國志) 바로 읽기' <24>

중국 4대 미인, 초선

***들어가는 글**

최근 재미있는 연구가 있었습니다. 모 대학에서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1백 년 전 조선 시대에 벌어진 살인 사건을 조사해본 결과 남성의 성적 독점욕으로 야기된 살인 등 남녀의 번식 전략 충돌 때문에 야기된 사건이 가족 구성원 간 살인사건 중 57%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즉 조선 후기의 가족간의 살인을 보면 그 가운데 반 이상이 남자들 자신의 성적인 독점을 위해 아내를 죽였다는 것이지요. 이 내용에 따르면 아내와 별거하고 불화가 심해지자 사위가 장인이나 장모를 살해한 사건이나, 생업을 위해 외지로 출타하면서 아내를 매형에게 부탁하였더니 매형은 오히려 아내를 주점에 일하게 한데 격분하여 매형을 살해했다든지, 혹은 불륜이 의심되는 아내를 살해한 사건 등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극단적인 예를 보면, 남편의 구타에 시달리던 한 여인이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상인 집으로 도망갔는데, 남편이 그녀를 따라가서 아내를 몽둥이로 살해하고 낫으로 귀ㆍ코ㆍ입술 등을 베었다고 합니다. 비록 자기 아내와 그 상인의 불륜을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정절(貞節)을 저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도망간 것을 단죄한다는 식이죠.

이 보고서에 따르면 1백 년 전 조선 시대에 벌어진 살인 사건 중 77%가 부부 간 의 사건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상하죠. 남자들이 상대적으로 다른 여인을 취하기 쉬웠던 환경인데도 자기의 아내에 대해서 일체의 타인의 (성적인) 접근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이니까요. 즉 일반적인 사람들도 아내라는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생식자원(자신의 후손을 미래에 까지 번식시킬 수 있는 사람)을 붙들어두기 위해 극단적인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요.

그래서 말인데요. 미인계(美人計)란 이 같은 남성들의 성적독점 심리를 역이용한 고도의 책략이라고 할 수 있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미인계는 어쩌면 가장 경제적이고 강력한 무기가 아닐까요?

***중국의 사대 미인과 초선(貂蟬)**

최근에 중국 사이버 미인이 탄생하여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연인즉 서시(西施)ㆍ왕소군(王昭君)ㆍ초선(貂蟬)ㆍ양귀비(楊貴妃) 등 중국을 대표하는 네 사람의 미인을 합성하여 이탈리아 사이버 미인 선발대회에 출전시켰다고 합니다. 중국 측 사이버 미인은 성도(成都)의 한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예로부터 4대 미인을 숭상하고 있지요. 춘추시대 월나라의 여인으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먹는다'는 서시, 한나라의 궁녀로 '기러기가 날개 움직이는 것을 잊고 땅으로 떨어졌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왕소군, '삼국지'에 등장하는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린다'는 초선, '꽃을 부끄럽게 만든 아름다움을 가졌다'는 양귀비 등이 중국이 자랑하는 4대 미인입니다.

[그림①] 서시(중국의 그림)

재미있는 것은 성도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이들의 아름다움을 합성하여 중국형 미인 두 사람을 만들어 '쟈오민'과 '샤오쟈오'로 이름 지었고 이들 중국 사이버 미인은 3차원 영상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림②] 중국 사대미인도(왼쪽부터 양귀비, 초선, 왕소군, 서시)

중국의 미인들은 이미 여러분들도 잘 아시니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미인으로 선정된 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초선은 어떨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초선은 나관중 '삼국지'가 (이전의 설화와 잡극을 토대로) 만들어 낸 소설 속의 여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초선이 중국의 사대미인이 되었을까요? 어쩌면 그 안에 중국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코드는 없을까요?

물론 비슷하게 보면 초선은 우리나라의 춘향(春香)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4대 미인으로 춘향이를 꼽지는 않지요? 일단 초선에 대하여 나관중 '삼국지'의 입장과 정사의 입장을 비교 검토한 후에 이것이 가지는 의미를 분석해 보지요.

***나관중 '삼국지'의 초선**

나관중 '삼국지'가 창조한 초선이라는 인물은 묘사에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먼저 나관중 '삼국지'에 나타난 초선의 부분을 보시죠.

동탁을 제거하지 못해 고민하던 왕윤에게 초선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비록 이 몸이 천첩이오나 소용이 되신다면 이 몸이 만 번 죽는다 해도 사양하지 않겠나이다(나관중 '삼국지' 8회)."

그러자 왕윤은 초선이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하여 동탁을 죽인다면 기울어진 사직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천하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하니, 초선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천첩이 어찌 대감의 일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겠나이까? 제게도 생각이 있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저를 동탁에게 보내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초선이 모란정과 화각(畵閣)에서 왕윤에게 말을 하는 장면을 보면 여느 우국지사(憂國之士) 못지않은 비분강개(悲憤慷慨) 함이 넘치고 있습니다. 초선은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대의(大義)에 보답하지 못한다면 비록 죽음을 당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고 말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안중근 선생님이나 이봉창 선생님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그림③] 여포와 초선(중국우표)

그런데 이 여인은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관중 '삼국지'에서는 동탁이 암살된 뒤에 여포가 미오성을 공격하고 초선을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는 것으로 일단 이 부분은 마무리됩니다. 그 후 초선이 모습은 사라졌다가 나중에 여포의 부인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그 부분을 한번 보시죠.

"원래 여포에게는 두 명의 처와 첩이 있었다. 여포는 먼저 엄씨에게 장가들었고 나중에 초선을 취하여 첩으로 삼았다(나관중 '삼국지' 16회)."

그 후 여포가 조조의 공격을 받고 성에 고립되어 수성(守城)만을 고집하고 있는데 진궁이 그럴 경우에는 더욱 사태가 위험하니 일단 성밖으로 나가서 피로에 지친 조조군을 공격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이 일을 여포는 엄씨와 초선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초선은 한사코 여포의 출정을 막습니다. 초선은 여포에게 "장군께서는 저희들을 버리고 함부로 군사를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라고 애원합니다(나관중 '삼국지' 19회).

나관중 '삼국지'의 시각은 진궁의 전략이 옳으며 성에 고립되어있는 것보다는 먼 길을 온 조조군의 일부라도 격퇴하는 것이 좋다는 방책을 지지하고 있지요. 그런데 주견이 없고 여인들의 치맛바람에 놀아나는 여포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초선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초선은 철저히 연약하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여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죠. 그리고 조조가 한나라의 대의를 가진 군대도 아닌데 철저히 조조를 옹호하려고 초선을 등장시킨 것은 더구나 아니겠죠.

이 부분에서 초선은 남편을 치마폭에 감싸 죽음으로 몰고 가 대사를 그르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비분강개한 초선의 모습은 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나관중 '삼국지'는 초선을 동탁을 제거하는 는 적절히 써먹었으나 폐기하는데 신중하지 못한 듯합니다. 즉 우국지사 초선은 동탁이 죽자 여포의 여자가 되어 아무런 탈이 없이 잘 살고 있다가 여포의 신세를 망치는 사람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상당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삼국지' 에서는 초선이 동탁이 죽은 후에 자살(自殺)하는 것으로 처리하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이 초선이라는 여인은 나관중이 만든 것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인물이죠. 원나라 때의 잡극 '연환계'에는 초선의 독백이 나오는데, 그 내용은 "소녀는 흔주(忻州) 목이촌(木耳村) 임앙(任昻)의 딸로 영제 때 궁녀로 선발되었다가 정건양에게 하사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 여포를 만나 여포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 헤어져 있다가 나중에 왕윤에 의해 여포와 재회하게 됩니다.

원나라 때 유행하던 소설 '삼국지 평화'에는 초선의 입을 통하여 "천첩은 본래 임씨이고 어릴 때의 이름이 초선이며 남편은 여포라고 합니다. 임조부(臨洮府)에 있을 때부터 서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삼국지 평화'에서는 왕윤이 동탁을 청하여 초선을 바치겠다고 하고 난 뒤 여포를 초대하여 부부를 만나게 하여 갈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차이를 보면, 나관중 '삼국지'는 초선이 여포를 전혀 몰랐던 것과 '삼국지 평화'는 여포와 초선을 부부로 설정한 것뿐입니다.

이를 보면 대체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면서 아예 여포와 초선이 부부로 되어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음 시대인 명나라 때 편집 재구성된 나관중 '삼국지'에서는 여포와 동탁은 더욱 추잡한 인물로 그려지고 초선은 성적인 노리개로 미인계(美人計)의 제물이 됩니다.

나관중 '삼국지'에 나타난 초선 모습은 "앵두 같은 입술, 춤추면 얄미운 푸른 입술, 향기로운 혀, 날씬함은 놀란 기러기 같고,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나뭇잎(8회)" 등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동탁은 초선을 평하여 "신선 속에 노니는 선녀"라고 하고 있습니다. 초선의 모습은 당시 중국인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최고의 미인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림④] 달 아래의 초선(중국의 그림)

***실제로 초선은 어떤 여인?**

초선은 나관중 '삼국지'가 창조한 인물 가운데 가장 여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여인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나관중 '삼국지'에는 초선이 왕윤의 집 가기(歌妓)이며, 절세의 미인으로 가무를 잘하고, 총명한 여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왕윤은 초선을 어린 시절부터 길렀으며, 왕윤은 초선을 이용하여 동탁(董卓)과 여포(呂布) 사이를 이간질하고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암살하게 만듭니다. 동탁이 암살된 후 초선은 여포의 첩(妾)이 되어 여포가 죽을 때까지 여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 가운데 사실과 소설을 분리시켜보면 초선은 왕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빼면 조금은 실제 사건과 유사합니다. 그러면 초선이라는 여인의 실제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정사에는 초선이라는 여인이 일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사에는 동탁과 관련된 여성들 가운데 여포와 관계있는 사람에 대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동탁은 (화가 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창을 던졌는데 여포는 민첩하게 이를 피하기 일쑤였다. 여포가 사과하면 이내 동탁은 화를 가라앉혔다. 이로 말미암아 여포는 속으로 동탁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동탁은 여포에게 궁궐을 수비하도록 명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포는 동탁의 시녀와 사사로이 정(情)을 통하였는데 이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했다(卓常使布守中閤,布與卓侍婢私通,恐事發覺,心不自安 : 위서, 여포전)."

보시는 바와 같이 초선에 대한 이야기는 "여포는 동탁의 시녀와 사사로이 정(情)을 통하였는데(布與卓侍婢私通)" 라는 구절이 전부입니다. 이 일곱 글자로 소설의 반 권이 되는 초선을 만들어낸 것이죠. 즉 여포는 동탁의 시비와 사적으로 정을 통했다는 말입니다. 이 시비는 후일에 초선으로 이름 붙여져서 중국의 4대 미인이 되는 행운을 누립니다. 이것은 나관중 '삼국지'가 가진 위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춘향을 한국의 4대 미인이라고 말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림⑤] 성춘향

나관중 '삼국지'에 나타난 초선의 모든 이야기들은 소설로 만들어진 이야기이고 실제의 정황으로 초선(?)을 ①직업적인 측면, ②미모의 측면, ③성격적인 측면, ④동탁과의 관계 등 네 가지 각도에서 분석해 보도록 합시다(이 여인의 이름은 알려져 있진 않지만 일단은 그 동안 하던 대로 초선이라고 부르도록 합시다).

첫째, 초선의 직업에 관한 것입니다. 기록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동탁의 시녀라는 것인데, 이 시녀는 궁녀로 이전의 영제 때의 궁녀로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서 본 대로 원나라 때의 잡극이나 소설 등에서도 이 같은 분석을 내 놓고 있습니다. 황제가 죽으면 대개의 경우 황제의 정부인은 태후(太后)로 남고 황제를 직접 모시던 후궁들은 황궁을 떠나겠지만 일반 궁녀들은 시녀(직업여성)로서 그대로 머물게 됩니다. 이들은 각자의 업무에 따라 황궁의 가사(家事) 일을 계속하여 돌보게 됩니다. 참고로 잡극 '연환계'에서는 초선(貂蟬)이라는 말은 담비의 꼬리와 매미의 날개라는 뜻으로 이 물건들은 주로 고관대작의 관(冠)을 장식하는데 사용한 물건인데, 초선이라는 이름은 초선(고관대작)의 관을 관리하는 것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둘째, 초선의 미모에 대하여 고려 해보면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초선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초선은 한나라 영제의 황은(皇恩 : 황제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을 입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죠. 만약 그랬다면 대개의 경우 후궁(後宮)으로 지위가 올라가니 영제의 사후 황궁을 떠날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초선은 영제의 눈에 발탁될 정도의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릴" 미모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매력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죠. 여포는 오랫동안 전장(戰場)에 있었고 모래바람이 날리는 곳에 살았기 때문에 미모에 관한 한 그리 까다롭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아름답다고 다 매력적인 것은 아니죠.

셋째, 초선의 성격은 나관중 '삼국지'와는 달리 상당히 정열적이고 모험적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동탁의 소유인 시비(侍婢)로서 여포와 정(情)을 통했다는 것은 당시로 보면 죽을죄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그녀가 목숨을 걸고 여포를 사랑할 정도로 정열적인 여인이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나관중 '삼국지'에 나오는 식으로 애절하거나 미인계로 희생되는 연약한 여인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여인과 여포는 각자에 대하여 목숨과도 바꿀만한 매력을 서로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넷째, 초선과 동탁과의 관계는 성적인 접촉이 없었을 가능성이 큽니다(잠자리를 함께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죠). 왜냐하면 아무리 간 큰 여자라고 해도 당시의 황제와 같은 동탁과 잠자리를 하면서 여포와 또 정을 통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죠. 동탁의 애첩이었다면 감시도 상당했을 것이며, 그녀의 작은 변화도 동탁에 의해 쉽게 감지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탁의 애첩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또 동탁의 성격은 불같아서 발각되는 날이면 그 날로 처형될 터인데 여인으로서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서 본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초선과 실제의 초선의 모습은 매우 다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으로 고민에 빠진 여포를 왕윤이 충동질하여 동탁을 죽이게 만드는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아실 테니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나관중 '삼국지'의 초선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중국의 매우 중요한 두 가지의 특성을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즉 하나는 중국의 역사에 있어서 유난히 여난(女難 : 여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이 많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인계만한 전략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인들의 오랜 역사인식인 듯 합니다. 이것은 강하고 이기기 힘든 적을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움을 통하여 이겨내는 중국인 특유의 유능제강(柔能制剛 : 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이긴다)의 철학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중국사를 보면 나관중 '삼국지'가 아니라도 유난히도 여인들이 정치를 망친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지요. 물론 이것도 너무 가부장적인 도덕관념이 치우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여태후ㆍ측천무후ㆍ서태후 등의 정치를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한족의 역사를 보면 유달리 미인으로 인하여 나라가 쇠망한 사실이 매우 많이 나타납니다. '삼국지' 시대 직전의 한나라 이전까지만 이 점을 간단히 살펴봅시다.

주나라 때 유왕(幽王)은 아름다운 여인 포사(褒姒)로 인하여 국운이 다하였고, 춘추시대에 하희(夏姬)는 뛰어난 방중술(房中術)로 세 차례나 왕비가 되었고, 일곱 차례나 결혼했으며 여섯 대신을 비롯, 수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뿌렸고 그녀가 거친 수많은 남성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들 상당수는 암살당하거나 죽었지요. 조희(趙姬)는 승상인 여불위와 사통하여 진시황을 낳았다고 합니다. 조희는 후일 노애라는 천민 사이에서 두 아이를 낳고 그들을 보호하려 오히려 진시황을 죽이려 시도하다가 실패합니다. 한나라의 여태후는 유방이 죽은 후 오랫동안 권력을 전횡하였고, 쌍둥이였던 조비연(趙飛燕) 자매는 성제를 방중술로 유혹하고 황제의 두 아들을 죽였으며, 과도한 성관계로 황제를 죽게 만들어 정국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나관중 '삼국지'의 경우에도 큰일들을 그르친 것은 모두 여인들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그 가운데 한족(漢族)의 입장에서 가장 옹호할만한 여인은 초선입니다. 나관중 '삼국지'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듯합니다. 즉 여인들로 인해 대사를 그르치는 경우가 많으며 동시에 미인계만한 전략도 없다는 것이죠. 미인을 동원하여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한 뒤 서로 이간을 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가장 고전적이고 안전한 전략성취의 방법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방식이 중국 이 외의 다른 민족들에게도 잘 통했을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세상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라도 그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가꾸려면 상당한 사회적인 인프라스트럭처(기반시설)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죠. 즉 미인계는 잘 발달된 농경사회에는 충분히 통할 수 있지만 북방의 유목민들에게는 그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미인계는 농경사회와 같은 정착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는 각종 수단이 발달해있고, 그 같은 사회적 인프라를 이용하여야만 그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서 1년에 한번도 목욕하기 힘든 몽골의 벌판에서는 양귀비도 그 미모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죠.

***초선과 문화 읽기**

초선이라는 여인은 소설과 사실이 혼동되어 나타난 가장 전형적인 경우입니다. 관우나 제갈량이 미화된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초선은 분명 역사상 실존인물이 아니라 완전히 소설 속의 인물일 뿐이기 때문이죠. 이것은 나관중 '삼국지'가 가진 위력과 위험한 속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합니다.

나관중 '삼국지'는 대중들에게 그 내용들을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관중 '삼국지'는 가공의 인물들이 역사의 뼈대를 가지고 허구의 살을 입고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입니다. 나관중 '삼국지'는 상당한 부분을 정사(正史)의 탈을 쓰고 있어 허구가 사실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허구의 인물 초선이 중국의 4대 미인이 될 정도로 일반 대중들이 초선을 실제인물로 느끼게 됩니다. 웬만한 삼국지 마니아가 아니면 초선의 실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많지 않지요.

나관중 '삼국지'는 허구와 사실을 가장 적절히 조합하여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인물, 또는 가장 매력적인 인물을 합성한 것이죠. 마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여 사이버 미인을 만들 듯이 말이죠. 관우나 제갈량, 조조도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성공한 소설이나 영화 또는 연극은 결국 독자가 보고 싶은 인물을 가장 자연스럽게 잘 그린 것이라고 하겠지요. 쉽게 말씀드리면 성공한 대중 예술은 시대적 욕구와 대중들의 욕구를 적절히 반영한 것이죠. 나관중 '삼국지'가 수천 년 동안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역사를 토대로 허구가 만들어졌고, 이 허구들은 대중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캐릭터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라마 '허준'이나 '장희빈' 등에 빠지는 이유는 생생한 역사적 사실이면서 대중들의 욕구를 잘 포장한 드라마이기 때문이죠. 자연스럽게 사실처럼 보이는 허구이죠.

초선의 이야기를 통해 실제와 허구가 적절한 조화되었을 때 허구가 어떻게 실제로 되살아날 수 있는가를 우리는 봐야합니다. 흔히 나관중 '삼국지'를 사실 70%, 허구 30%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안에 바로 '논리의 함정'이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70%의 사실을 보면서 30%의 허구도 사실로 믿게 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나관중 '삼국지'는 정사의 연대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과 허구를 분별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다는 것이죠. 결국 초선이 중국의 4대 미인이 되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논리의 함정에 갇혀 제대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나관중 '삼국지'는 사실이 60%도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나관중 '삼국지'를 사실로 믿는 이유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나 욕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나관중 '삼국지'와 같은 내용을 사실로 믿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말입니다. 즉 '소설은 소설일 뿐, 실제의 역사는 아닌데' 사람들은 그것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좀 어려운 말로 하면 형태심리학(Gestalt psychology)에서 사용되는 '기대의 원칙(expectation principle)'에 부합한다는 얘기죠. 즉 인간이 무엇을 지각할 것인가는 그가 무엇을 찾고 있는가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배가 고픈 사람들은 후각이 예민해질 뿐만 아니라 음식과 관련된 사물들을 빨리 인지한다는 말입니다.

[그림⑥] 형태 심리학자 레빈(K. Lewin : 1890∼1947)

얼마 전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가 종영된 유명 드라마 '허준'을 보십시오. 실제 허준에 대한 개인적 기록은 거의 없는데, 우리는 허준의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 지도 알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허준의 연인으로 나온 예진아씨를 실제 인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것과 같은 이치이죠.

이런 점에서 보면 나관중 '삼국지'는 요즘 유행하는 맞춤 드라마의 형태와도 매우 유사합니다. 즉 요즘에는 드라마를 만들 때 대중들의 심리상태를 모두 분석하고 파악하여 인물을 창조해내고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죠. 나관중 '삼국지'가 잡극을 토대로 형성된 점을 생각해보세요. 잡극이란 바로 중국식 맞춤 드라마라는 것이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잡극이 유지되고 돈도 벌 수 있기 때문이죠. 이것이 초선이라는 중국 최고의 미인을 탄생시킨 배경일 것입니다.

동양사회에서는 남녀관계 즉 남자들의 복잡한 여자관계에 대하여 비교적 관대한 편입니다.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는 말이나, '배꼽 아래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일본 속담을 보더라도 남자들의 성추문(性醜聞)들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동양사회는 유교적인 질서가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군자(君子), 즉 이상적 남성형은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군자는 결코 욕망이나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지요. 군자가 성추문에 휩싸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은 일생을 돌이킬 수 없는 수치의 기록일 수도 있습니다. 제갈량이 존경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제갈량의 사생활이 깨끗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동양사회가 남녀관계에 대해서 관대할 수는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지만 제가 보기엔 반드시 그렇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남녀관계가 복잡하거나 성추문이 생길 경우 '모자라는 인물'로 낙인이 찍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성추문이라는 것은 군자의 도리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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