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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너서클' 2부 <21>-정치권력과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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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의 이너서클' 2부 <21>-정치권력과 언론

'85년 비망록'-문공장관ㆍ편집국장단ㆍ정치인 3각 논쟁

다음은 이원홍 문공부 장관이 85년 6월15일 제주 그랜드 호텔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오늘의 신문'이라는 주제로 주요 언론사 편집국장 및 정치인들과 세미나를 가졌을 때 오고 간 토론내용이다.

당시는 연초 2.12총선에서의 야당의 실질적 승리로 민정당이 궁지에 몰리고, 미 문화원 점거사건 등으로 전두환 정권의 지배력이 급속히 약화되던 시점이었다. 그런 만큼 이원홍 장관은 상당히 흥분된 어조로 신문들의 정부비판적 보도 논조를 비판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당시 '괴벨스'라는 악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이 장관의 언론에 대한 논리는 흥미로운 관점이 많이 드러난다. 어떤 것들은 지금도 언론의 문제로 남아있고, 권력의 눈으로 언론을 보는 입장은 내용상 변화는 있되 본질상으로는 같은 점이 발견되기도 한다. 필자주

이장관: 프로 저널리즘이란 무어냐. 직업윤리적인 기초 위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의식ㆍ가치관 등 철학적 기초 위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과연 여러분은 저널리스트로 철저한가, 이걸 묻고 싶다. 신문들은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친다. 그것을 극복하는 길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게 문제다.

신문이 내세우는 주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한 사람의 주장이 사회를 지배하는 흐름이 있다. 그 소리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세태다. 우리의 1인 주장과 월터 리프만의 칼럼을 비교해 보면 그 가치에 의심이 생긴다. 미국식 1인 여론은 팩트가 있는데 우리는 추상적 수필적이고 어느 한 쪽의 선전적인 주장이 많다. 많은 의견을 수렴하여 대표로 집필하는 사설같은 것도 논리성이 감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기초 위에서 12대 총선(85년 2.12총선)을 보도하는 우리 언론을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선거보도에서 가장 결함이 들어나는 부분은 객관성의 문제다. 신문의 경쟁보도는 오히려 상업적 측면이 지나치게 고려되어 객관성이 결여되고 있다. 선거라는 국가적 대사보다는 흥미에 기울어 선거의 공정성 개혁성이 매몰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 의회에 대한 보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지금부터 연구해 볼 만한 좋은 교재다. 왜 질문보다 답변이 중요한 내용이 되느가를 생각해야 한다. 편집성향을 보면 유독 한마디 돌출성 질문을 따가지고 큰 컷을 만들고 제목을 붙이고 있다. 그런 언론의 영향을 받고 운영되는 국회가 발전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십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지적 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성향의 제작은 우리나라뿐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 유신시대의 논리인 국회에 관한 보도규제 탓이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다음은 미 문화원 사건을 취급하는 각도이다. 나는 보도하는 우리 언론인의 시각이 사건을 사건으로만 보는 것, 농성을 단순한 사건화하는 쪽으로만 발동했다고 본다. 강도사건도 가정파괴같은 요소를 뽑아내야 하는 것처럼 미문화원 사건도 본질을 뽑아내야 한다.

그럼 미 문화원의 본질은 뭐냐. 전투경찰에게 돌 던지고 폭력적으로 점거한 사실이다. 아무리 평화적 농성이라 주장해도 행동이 폭력이면 어디까지나 폭력이다.

두 번째로 학생들의 주장의 문제다. 국가적 이익과 충돌하는 그 주장이 과연 옳은 것인가. 본질상의 이런 시각은 약해지고 그 아이들은 온순하고 모범적인 청년인 것처럼 만들어 냈다. 이익 충돌이 생길 때 신문은 어느 쪽에서야 하는가, 나는 대단히 불만이다. 매체들의 매출이 미 문화원 사건 이후 가판 등에서 30%나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신문 여론과 국민 여론의 격차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본다.

다음으로 광주문제다. 이 부분에서는 우리 언론의 이성과 인식의 방향이 다소 발휘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신문이 정권 경쟁 차원의 사건으로 보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광주사태와 같은 대립적 상황을 원치 않는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광주 역시 본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진상을 밝히고 보상을 한다든지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금까지 정부가 해 온 것이기도 하다. 데모저지 상황이 악화되고 거기서 촉발되었다는 논리가 있다. 그러면서 그 책임자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 주장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광주는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광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지역은 1945년 이후 계속해서 많은 소외를 받아왔다고 생각되는 곳이다. 그 근처는 또한 야당의 역사적 뿌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현실을 보는 시각이 예리하고 감성이 강한 지역이라고 본다.

여기서 10.26 이후 국가 누란의 위기를 당하기 이전을 잠깐 생각해 보자. 최통(최규하 대통령)이 들어서고 신현확 총리가 들어서고 그러다 그 종점이 광주까지 갔다. 광주에는 압축된 요소가 있다. 학원 자율화, 사북사태 등 임금문제, 거기에 가세된 것이 3K(3김씨)의 동향이다.

정치일정을 밝혀도 불투명하다고 주장하는 시각이 지배했다. 개헌특위가 일곱달 동안 문제를 혼란시켜 종점까지 끌고간 것, 이런 것들이 한데 뭉치고 뭉쳤다. 어떤 압력이 가해졌을 때 동맥경화증이나 뇌졸중처럼 약한 부분이 터지는 것처럼 지각에서 터진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본다. 2천6백명, 3천명의 희생자라고 하면 우리나라같은 가족제도 중심사회에서 4년이나 5년이 그냥 흘러 진실한 규명 노력을 하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서 <광주민중항쟁-시대의 어둠을 넘어서(황석영 저)> 거기에 보면 광주의 무장데모대가 인근 시ㆍ군을 장악할 때까지는 '광주 항쟁기'요, 무장데모대가 완전 장악했을 때는 '광주 해방기'다. 그렇다고 한다면 또하나의 해방해 보자고 즉 '해방기'를 목표로 내다보고 총칼 들고 나온다면 그걸 어떻게 묵과할 수 있겠는가.

4.19의 정당성은, 경찰의 발포로 희생되고 있었지만 데모대원이 총 한자루 잡지 않았다는 데 있다. 3.1운동의 정당성도 같은 선상이다. 여기서 광주사태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광주는 민족적 참회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 않느냐는 점이다.

정치 안보에 대한 언론의 시각에도 문제가 있지 않나 본다. 한국 언론은 어떤 사람이 평하기를, "하나는, '정 안되면 판을 쓸어도 할 수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판을 쓸어버리는 일은 안 오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고전적, 감정적, 관념적 민주주의 척도에서 우리 언론을 평가하면 전자에 속하지 않나 본다. 이것은 문제다.

우리 역사는 개헌의 역사다. 우리 헌정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부터 들어가야 헌법개정의 답을 찾을 수가 있다. 40년 헌정사 되돌아보고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좀 더 비판의 윤리의식을 가져야 하겠다 이 말이다. 지금 우리는 상대를 정복하기 위한 싸움을 하는 게 아니다. 상대의 주장에 가치를 부여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는가. 지금처럼 주장을 정복으로 오해시켜서는 안 된다. 정(正)도 없고 반(反)도 없다. 그러니 부딪쳐야 나오는 합(合)도 없다. 정ㆍ반ㆍ합의 변증법적 발전을 지금부터 언론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업적 노력이 주효해서 우리 신문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84년 총 매출액은 2천8백39억원에 이르고 있는데 81년의 거의 2배에 가까운 기록이다. 81년을 기준으로 연 평균 22%의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부채비율, 순이익도 좋아졌다. 지방지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상업적인 측면이 아닌 분단국가 한국인으로서 언론인의 직업관을 재점검하여 출발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좋은 부분 빼고 나쁜 부분만 얘기한 거다. 양해 바란다.

편집국장 A: 6.25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정치는 안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 문화는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신문이 안 변했다고 하지만 화학적 변화가 많다.

편집국장 B: 사물을 양분하여 도식적으로 보는 건 잘못이다. 판을 쓸어도 좋다고 보는 쪽도 없진 않다. 기자들이 욕을 먹고 있다. 편집진을 기득권 세력 쪽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판을 깨도 좋다고 보는 기자 있으면 장관이 불러다 야단을 좀 쳐라. 국회 얘기를 했는데 미국 사람들은 질문할 땐 질문한다. 그런데 우리는 한창 자기 연설하고 끝에 가서 질문한다. 언론문화가 정치문화 끌고 간다고 본 것은 잘못이다. 정치과잉 보도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 해결 방법이 따로 없다. 인기품목만 쫓아다니지 않게 보도의 광역화가 있어야 한다. 지방취재의 영역을 넓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원홍 장관: 우리 신문에는 6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지면 제작이 선정적이다.
둘째, 신문에 대한 사회적 견제기능이 우리 사회에는 없다.
셋째, 공정거래 조건에 적합하도록 개혁해야 한다.
넷째, 기자의 연령이 너무 낮다.
다섯째, 전문성이 너무 빈약하다.
여섯째, 윤리위원회의 기능이 무력하다.

지방주재 기자 문제인데, 워싱턴 뉴욕에도 하나뿐이다가 요즘에 한 두 개 늘어나고 있다. 전국지는 USA Today 하나뿐이다. (필자주: 당시는 지방주재 기자 숫자를 규제하고 분업 조치가 강화되고 있던 때였다)

국장B: 우리는 뉴욕, 워싱턴을 하나로 합쳐서 서울로 보아야 한다.

국장C: 신문과 방송에 지금 엄청난 차이가 있다. 방송은 지방주재 기자가 있다. 통신 서비스(지방 뉴스)를 받으라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 증면문제도 있다. 실제로 증면했을 때 요즘같은 제약 아래서는 무엇을 어떻게 채워넣어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이원홍 장관: 지방주재 기자는 폐단이 많았던 과거의 제도가 아닌 발전적 방향으로 연구해 보자는 것이다. 나는 민주화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의문이 간다.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규명할 가치가 있는지....

국장B: 취재의 영토화 형성하는 게 정말 좋다고 보는가. 창피한 노릇이다. 국가 전체로 무슨 이득이 있는가.

이원홍 장관: 중앙지들도 플러스가 있다. 경영면에서 인건비가 절약된다. 취재를 지휘하는 국장들도 관리하는 범위가 축소된다. 지방지도 서울에서 다 써버리면 독자 다 떨어진다. 중앙지가 미주알고주알 식으로 각 도(道) 판을 만들어 내면 지방지는 안 팔려 경영면에서 타격을 입게 된다. 신문 발전을 위한 시험적인 의미가 있다고 본다.

편집국장D: 지방지는 지방 커뮤니티 페이퍼로 국한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우리 지역 사회가 지금 자질구레한 지방소식으로 만족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현실은 모든 것이 중앙집권화되어 있다. 지방지가 중앙지화한 이 마당에서 커뮤니티 페이퍼로만 가라니 말이 안 된다. 그 방향으로 가서 신문의 명맥이 유지되는가. 지방자치제가 되면 전망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정치발전과 관련해서 고려되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지방에서는 지금 정치문제에 가장 관심이 높다. 지방신문은 선출된 국회의원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모른다. 국회정도는 지방지도 취재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광주는 제가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몇 가지 말할 것이 있다. 아물어 가는 상처를 건드리는 게 아니냐고 보통들 얘기한다. 새로 발표한 것도 5.18 때와 다른 게 없지 않는가. 1천4백만원 보상금 주었다고 하는데 어제 오전 12가족이 시청에 가서 진상 요구하고 농성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올라왔다. 정부는 좀 더 소상하게 방향을 제시하고 더 구체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국방장관의 발표는 전과 별 차이가 없다. 여러 의문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주어야 할 것이다.

이원홍 장관: 모든 신문이 정치기사가 풍성해야 팔린다고 생각을 가지고는 어렵다. 지방신문의 발전방향을 위한 문제는 편집인협회, 발행인협회가 처리할 문제다. 한번 모여서 연구해 보자. 다음 광주문제. 광주를 민족역사 차원에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야기다. 정권 운동권 이데올로기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다. 우리 역사적 사실로 보면 광주와 전남 등에 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본다.

편집국장 E: 국회 3당대표 연설이 있었을 때 기자를 서울로 출장 보냈다. 그리고 바이라인을 달아서 보도했다. 이게 홍조(홍보조정) 차원에서 문제가 되었다. 몹시 당황했다. 안기부 쪽에서도 국회 출입하고 있느냐는 문의가 있었다. 홍조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기동취재반을 서울로 파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냥 넘어가고 말았지만..... 바이라인도 쓸 수 없는 것인가. 대구 KBS에 대한 학생 화염병 투척 사건 보도문제로 곤란을 겪었다. 안기부 쪽은 물론이고 심지어 반대쪽까지 '보도 유보'를 요구해 왔다. 문공부에서는 아무 말이 없어 우리는 그대로 보도했다. 이 경우 문공부에 전화 걸어야 하는데 말이 없어 걸지 않았다. 이 뉴스는 중앙지에도 보도되어 별문제가 없었는데, 지방지도 문공부 말 없으면 안기부 등 요구 안 들어주어도 되는 게 아니냐.

이원홍 장관: KBS 화염병 투척 사건은 KBS와 각 언론사가 협조관계로 해결 수습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가령 대구매일에서 이런 사건 터졌다면 KBS에 이걸 좀 홀드(보도유예)해 달라고 할 것 아닌가. 이 경우 KBS도 그걸 들어주는 게 적절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언론사끼리는 잘 타협을 하는데, 자질구레한 데서 협조가 잘 안되고 있는 것이다. 바이라인 문제는 홍조실장에게 연구해 보도록 하겠다.

개인적으로 우리 문화에 대해 두 가지 고민해 보는 문제가 있다.
첫 번째, 여성문제다. 우리나라 가정의 기본은 여성인데 이것이 잘못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신문에는 활동하는 여성이 부각되고 올라가고 있다. 안정적인 사회발전 위해서는 고래의 여성상인 정숙, 효도, 종부하는 그런 모습 키워나가야 할 것이 아닌가 본다. 너무 활동성, 기여성, 능동성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닌가.

두 번째는 문화의 문제다. 이건 아주 큰 문제로 문공부 자체도 의견의 일치를 못 보고 있다. 과연 우리 문화의 정통성이 무엇일까 하는 문제 말이다. 농가 탈춤 같은 민속적인 것인가. 아니면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상층문화가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민족문화의 개념을 어디다가 두어야 할 것인가. 어느 사회이든 그 사회를 지탱하는 상층문화가 있기 마련인데 우리에겐 선비문화라는 인격을 골격으로 하는 문화가 있다. 이걸 재생시켜야 한 차원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보는데 다른 쪽에서는 통속적 문화가 근간이라고 보고도 있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전부 민속화되고 상층문화의 인격 품격은 쇠퇴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본다. 그 원인은 하나다. 하층문화가 본받고 따라야 할 스승문화가 없는 데 있다. 그래서 언론이 좀 잘못가는 길을 바로 잡아주었으면 한다.

편집국장F: 장관의 발언은 강한 소신이 있는 것 같은데, 국장들은 소신이 없지 않았는가 싶다. 그런데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취재 영역은 신문 고유의 권한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관계기관에서 조사 받는 거 이것 지양되어야 하지 않나 본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정부와 언론이 조정 협조를 한다고 했는데 외교 안보 문제 같은 것에서는 예외가 있을지 모르나 기사 하나하나에다 사진 단수 등 간섭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선거보도에 관해 말했는데, 공정성 공명성 면에서 오히려 제대로 다 보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지난 선거에서 물량공세 향응하는 걸 보았는데 신문이 이런 걸 외면해도 좋다는 말인가. 국회의원 질문 내용을 왜 쓸데없이 많이 취급하냐고 하지만 안에 앉아서 볼 때 다르다. 몰랐던 일들이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 것들도 많다.

이원홍 장관: 톱에서 틀린 것은 톱으로 고쳐준다는 정도의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언론윤리위원회나 중재위원회가 견제기능 제대로 작동시킨다면 홍조기능 없어지는 때가 오지 않겠는가. 그래서 언론중재위의 역할을 강조해 온 것인데 서울신문에 요청했더니 제호 밑에 몇 번 그 요강이 들어가더니 흐지부지되더라.

(세미나는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는 두 의원을 초청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언론계 출신. 김용태 민정당 의원은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이고, 조세형 민주당 의원은 경향신문 부국장과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김용태 의원: 민주화의 실체는 바로 자유민주주의다. 그런데 다른 쪽 생각은 인민민주주의라는 생각인 것 같다. 언론에서 얘기하는 '장외세력'은 야권만 아니라 여권내에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내가 보기에는 민정당이나 여권이 판을 깨겠다는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판은 의회정치 등이) 이만큼이라도 되어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람에 의한 정권 교체라도 최소한 이루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은 민주화 상황이 성숙해가는 다음 단계의 일이 아닌가 우리는 판단하고 있다. 신문은 여야 관계에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제는 가치판단을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편집국장 F: 안정의 개념은 '바다'다. 바다는 격랑이 일게 마련이다. 안정의 개념은 동태적으로 파악해야 하지 않는가. 두 K(양김씨)를 상징적으로 조작하거나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집권당이 상징조작을 많이 해 왔다. 효과가 있었다고 보는가. 정치를 스파링 파트너와 권투하는 것 정도로 간주한 과거의 인식이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보지 않는가. '이만큼'이라고 했는데 언론이 '이만큼' 표현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거꾸로 생각해 볼 일이 아닌가. 가치관의 상충을 느낀다. 한국 신문은 가십을 많이 다룬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다면 가십에 의해 의원 행태가 변화한다고 보는가.

정부는 기회있을 때마다 21세기 운운하는데 그 주역은 학생들이다. 학생들의 주장 세력 가운데 삼민투가 있다. 삼민투는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 보는 견해는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개인적 질문이 하나 있는데 신문 기자하다가 왜 정치인이 되었는가. 대변인(당시 김 의원은 민정당 대변인)과 신문기자를 동업자로 치는데....

김용태 의원: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언론계에서 대성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모델을 삼아야 할 선배가 많은 것도 아니고 ... 편집국장까지 하면 갈 데까지 다 간 것 아닌가. 빠져주는 것도 발전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언론계 떠난 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고 생활로 말하자면 마감시간에 안 쫓기고...

가십이 정치인 자신과 정국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는 데 어느 만큼 동감이다. 유신 이후 가십이 없어진 적이 있는데, 정치부장 때 부활에 앞장 선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국회에서 야당 고함 지르는 것 이런 것들이 대충 가십으로 취급되는데, 어떤 쪽은 민주투사되고 어떤 쪽은 비신사적이 되고 만다. 그래 정치인들은 고함을 작위적으로 지르고 행동양식도 가십에 지배받게 된다.

삼민투를 우리는 좌경이라 단정짓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 가운데 정치, 언론, 집회의 자유는 정치적으로 발전, 수용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세형 의원: 해방 이후 편집국장 자리는 대체로 20여명이 갈리지 않았나 본다. 신문 제작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가장 가능성이 있는 시기가 아닌가 본다. 오늘 세미나 주제를 '한국의 민주주의와 오늘의 신문'이라고 했는데 이런 극복 고민의 과제가 있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발전의 촉매제가 되고 활력소가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가장 큰 고민은 자기운명의 결정권에 있다. 다른 힘에 지배되고 소외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로부터 오는 환멸이 반발을 일으킨다. 정당한 몫은 인정되어야 하며 참여 기회는 확대되어야 하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 운명의 결정을 몇몇 소수 집단에게 그들 자의대로 하게 놔줄 수 있겠는가. 민주화는 이제 정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회, 경제, 문화 전 분야다. 물론 모든 분야 가운데서 정치분야가 가장 시급하다. 정치가 모든 분야를 결정적으로 지배하기 때문이다. 필요조건인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그동안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나머지 에너지만 소비했다. 치르지 않아도 될 대가가 엄청났다. 소수 정치 엘리트집단의 오류에 있다. 이제는 민주, 참여, 여론 정치를 해야 하는 단계다.

임금의 덕정은 옛날이야기다. 이제는 민중이 바라는 바대로 하는 게 선이요 진리이다. 지난 2.12 총선의 위대한 점은 특정정당 불신임이나 몰표가 아닌, 국민이 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행동적인 면이다. 그것도 온갖 압제와 부자유의 조건에서 이루어졌다. 국민들은 이미 민주주의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신문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보시장 역할을 충분하게 해 주어야한다. 그래야 판단의 기준이 선다. 2.12 이후 신문은 종래보다 훨씬 활발해졌다. 그나마도 신문 자신이 광장을 넓혀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하다.

'장외'가 아닌 '장내'에서 수렴하라는 소리는 당위론이지 현실론은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다. '장외'가 있고 '실세'가 있는 걸 인정해야 한다. 신문은 실제하는 현실 정보를 추적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신문의 고민거리중 하나가 바로 이 문제다.

그렇다면 신문은 정보시장의 구실만 하면 되는가. 그렇지 않다. 국민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권력을 위탁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게 선거법을 고쳐야 한다. 법률, 제도, 환경의 포괄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여야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여고 야냐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불편부당은 중립의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확실한 가치관에서 선택이 있어야 한다. 여론은 인기와는 또다른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인기있는 신문은 아니지만 여론을 주도하고 존경을 받고 있다. 주관적이고 취사 선택이 분명하다. 한국의 신문은 우선 정치의 민주화에 소신을 보여야 하고 그것을 국민에게 설파해야 한다. 신문도 함께 고민하고 갈등해야 한다.

신문은 쵸콜렛을 만드는 제조업과는 다르다. 그 속성상 독과점성으로 해서 '공기'라는 호칭이 더욱 실감나고 있는 때다.집회, 연설, 토론, 결사, 압력단체 등등 매체기능 결핍 상태에서 우리 신문은 권력 쪽의 홍보매체로 존재하고 있다.

신문은 4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권력주의 형이다. 정부의 규제를 받고 정부 존립과 의지에 봉사한다. 따라서 규제와 감시가 수반된다.

둘째, 소비에트 형이다. 정부와 당의 소유물이며 지시와 명령에 따른다.

셋째, 자유주의 형이다. 인간은 모두 이성적이며 선하다는 전제 아래 쓸 것은 전부 쓴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로 남는다.

넷째, 모든 국민들이 진실한 정보를 전달 받을 수 있게 균형있게 다룬다. 그리하여 공기로서의 의무와 공익성을 지킨다.

우리 신문은 지금 어느 단계인가. 권력주의 형과 소비에트의 형이 혼합된 상태다. 그런 악조건에서 이만큼 신문을 만들고 있는 데 경의를 표한다. 신문은 밖에서 보니 더 한층 크고 거대하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하지만 언론까지 포함해서 모든 분야에서 가부장적 사고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시장기능에 맡기면 자동조절 기능이 작동된다고 본다. 물론 지금 야당이 정권 잡는다고 그날부터 민주주의 다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주필 A: 정치는 실세가 있다. 실세는 바로 군이다. 그리고 학생세력이다. 그런데 야당은 장외로 나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여기서 정치의 불모성이 나온다. 군이 정치한다고 다 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화된 군, 정치화된 학생들, 이들이 실세가 되어있다. 여가 야를 장외로 몰아가려고 하는 쪽보다 야가 여를 장외로 밀어내게 하는 쪽이 더 낮은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뿌리가 땅에 닿지 않는 이론 같다.

조세형 의원: 물론 당위론과 현실론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야에는 많이 있다. 하지만 장외와 야당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주장의 수심도 있다. 유신때 우리 체제 맞는 거냐, 아니면 하나의 과정이냐고 물을 때 권력 쪽은 대답을 못하더라. '난 민주주의 못하겠다'는 세력이 있는데 그것이 지금의 지배논리인가. 그런 세력집단에 신문이 편을 들면 안된다.

주필A: 야당이 집권하더라도 안기부를 통해 '오너라 가너라' 하고 '너 왜 민주주의 하지 않느냐' 하는 경우도 있지 않겠는가.

조세형 의원: 우리는 반(反)민주주의를 옹호해 주지 말라는 얘기다.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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