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국의 이너서클' 2부 <20>-정치권력과 언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국의 이너서클' 2부 <20>-정치권력과 언론

언론인 출신 이원홍 전 문공부장관의 '언론관'

이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1985년 10월26일 경주 코오롱 호텔에서 이원홍 당시 문공부장관이 각 언론사 편집국장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언론관을 피력한 부분이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 일각에서 "요즘 언론에 문제가 많다"며 제2차 언론 숙정이 논의되던 미묘한 시점이기도 했다. 언론을 대하는 정치권력의 본질적 시선이 어떤 것인가를 읽을 수 있다.

이씨는 한국일보 편집국장, KBS 사장을 역임한 바 있는 언론인이었는데, 권력의 입장으로 돌아가서는 언론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가도 흥미의 초점이다. 그는 정열적인 언론인이었다는 평을 듣는가 하면, 권력의 선전 담당 하수인이라 하여 야당으로부터 '괴벨스'라는 별명도 들었다. 내용을 잘 음미해 보면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들이 흥미롭게 목격된다.

당시 편집국장으로 참석한 사람들은 나중 언론사 대표나 요직을 거친다. 동아일보 권오기(동아일보 전 사장. 전 통일원 장관), 조선일보 안병훈(현 부사장), 중앙일보 심상기(현 일요신문 사장), 경향신문 손광식(문화일보 전 사장), 서울신문 이한수(서울신문 전 사장) 등등. 필자주

신문과 위기관리 상황의 상충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다. 제가 보기로는 궤도를 달리 할 때가 있다. 자유가 반드시 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라고들 한다. 그러나 헌법상 기본권의 제약이 있다. 위기가 있을 때 그것을 극복하여 기존질서를 회복한다는 의미를 깔아 놓은 것이다. 헌법상 언론의 자유가 규제되고 있는 연유라고 본다. 물론 규제는 법률적인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것이다.

위기에는 대외로부터 오는 경제적인 것이 있을 수 있고 정치적인 속성으로 빚어지는 대내적인 것이 있다. 위기는 위기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 앞세워져야 그 관리가 나온다. 편집국장들은 '그것은 위기가 아니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정기국회에서 경험한 것으로 정치위기를 설명해 보자. 국회는 원래 시끄러운 곳이다. 시끄러워야 역할을 다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진실은 시끄러운 국회, 시끄럽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 국민에게는 위기를 조성한다. 그런데 현실적 요구로는 국회는 조용한 곳이 되어야 한다. 생산적이어야 한다. 진지한 곳이 되어야 한다. 언론은 그렇지 않을 때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게 그 역할이다.

각 당의 대표 연설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무슨 문제를 야기시키는지 국가적 발전 방향과 관련이 있는지 생각하면서 다루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처럼 대표 연설 고르게 다루는 나라는 없다고 본다. 또 연설이 독자에게 전달할 가치가 있는가, 정확한 사실인가, 이걸 검토해서 매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이번 국회에서 제기된 문제이다.

대법원장 탄핵 문제도 그렇다. 국회 표결은 특기할 만한 사건이다. 그러나 제안한 쪽 의미를 신문이 어떻게 소화하느냐는 좀 더 생각할 여지가 있다. '판을 깬다' 혹은 '파국이다'라는 표현이 신문에 많이 등장한다. 그렇게 가지 말자 하면서 그렇게 몰아가고 있지 않나 본다. 그런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보도 제작되고 있다고 정부 사람들은 생각하고 잇다.

유언비어를 국회 단상에 끌어 올려 확산시키는 역할, 이런 게 자제되고 있다고 하지만 완전치가 못하다. 위기를 조장하는 정치활동을 확산함으로써 파국과 위기를 역으로 확대하는 작용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사견 없이 중립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이 언론의 사회적 태도가 아닌가. 그래서 언론에 의한 위기관리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신문이 그렇게 위기에 대한 본질을 모르며 지각이 없다고 생각하나. 필자의 개인적 메모)

'판 깬다'는 인식 가지고 있다면 왜 그런 방향으로 제작 못하는지 그걸 말하고자 한다. 우선 신문은 철부지냐 그런 물음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보지는 않는다. 편집국장은 사내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다.

기자에 따라서는 상식선보다 앞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는 운동권 관계자와 밀접하기도 하다. 그런 상황이 보도에 있어 상식선을 넘게 하고 있다고 본다. 문제와 사상을 만드는 기자 가운데에는 오히려 문제를 야기시키는 쪽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 정부의 조정을 안 거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 본다.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하는 때가 있는데 편집책임자와 일할 때도 많다. 물론 홍보조정책임자가 지나치게 요구할 때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철부지'보다는 높은 수준이라 생각한다.

지면을 보면 운동권에 기울어 있는 집필자에 의해 메꾸어지고 있다. 그 반대자의 영토는 거의 확보하기가 어렵다. 비평을 쓸 때도 반대자를 난도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10월1일에서 22일까지 한국과 일본의 신문의 1면 톱을 비교해 보았다. 특정신문과 일본의 아사히신문을 비교해 보았다.(이씨는 일본 특파원도 했다) 우리는 2건 빼고는 국회다. 이 기간중에 국제 움직임이 상당했다고 보는데 한 쪽으로만 치우쳐 있다. 앞으로 신문 만들어 가는데 국제정보 전달 노력 더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렇게 말하면 정부 통제 탓이라 하겠지만 우리가 '안 된다'고 하는 건 몇 건 안 된다.

문공부 시각만이 옳다고 볼 수 없다. 단 시간 안의 목표는 이룰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언론을 의도하는 목표선까지 끌고 갈 수 있겠는가. 이런 의문이 생긴다. 다 말 들으면 전체 언론은 획일화되는게 아닌가. 현장이 개판인데 그걸 안 알리고 어떻게 비판을 하느냐. 지금까지 문공부가 해 온 것은 장관이 너무 언론계 내부를 잘 알아서 자라 목 나오기 전에 치자는 생각 아니냐.

장관실에서 협조 요구하는 내용 너무 구체적이고 양도 많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 생각으로는 신문이 이 정도 상황 인식만 해 줘도 홍보조정 필요 없다고 보고 있다. 판이 개판이라고 했는데 그 판이 개판이란 얘기는 안 하고 그 내용만 전달하려고 한다. 몇몇 신문은 했지만 다른 신문(대표적으로 동아일보)은 그런 내용만 알렸지, 그게 바로 개판이란 걸 알리지 않았다. 개판은 개판이다라는 눈으로 써 줘야 한다.

의장이 속기록 삭제한다고 했을 때 왜 그런 상황까지 갔느냐를 신문이 어찌 이해하려 들지 않는가. 밸런스 의식 때문에 이쪽 치면 저쪽도 친다 이건데 이것 고집하면 잘되어 나가기 힘들다. 예를 들어 대법원장 탄핵안 부결이 1면 톱으로 갔지만 탄핵 사유 자체가 비판되어야 한다. 물론 그 전에 대법원장 인사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장 취임 이전 일까지 들고 나오는 것은 비판했어야 했다. 결국 탄핵 건이 톱으로 간 것은 '어떤 것'을 전달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홍보조정 없으면 신문은 절대권력이다. 해방후 신문은 그렇게 40년 성장을 해 왔다. 신문에 대한 비판 감시 기능을 우리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신문은 무적이다. 정부 잔소리 이외에는, 정체불명의 전화 이외에는 적이 없다. (당시 체제쪽 언론사에는 전화폭력 단골 맨들이 있었는데 "야, 빨리 집에 가봐. 큰일 났어 집의 마누라가 딴 놈하고..."이런 식이었다) 언론의 자유를 감시하고 지켜보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자유가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신문과 잡지의 분리에 대하여 말하겠다. 미리 전제할 것은 정부가 각 언론사로 하여금 한 달 이내에 분리하거나 또는 1주일 내에 분리하라는 시한부 강요를 하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문, 잡지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원칙의 기조가 되어있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 가운데 언론계도 그런 부분이 있다. 언론 경영에 큰 지장이 없는 한 큰 기조를 잡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신문사가 하는 잡지는 우월적 지위에 있다. 아무리 경쟁해도 출판사가 그걸 무너뜨릴 수 없다. 지금 신문사 기자들에게는 20%의 세금 감면을 해 주고 있다. 그러나 신문사 밖에는 그런 혜택이 없다. 신문사라는 방대한 조직 인력 활용하면 중소출판사 지원하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지 않나 본다.

인쇄도 마찬가지다. 신문사는 외간물을 마구 해 준다. 그러나 밖의 인쇄소는 인쇄물 의뢰를 받지 못해 야단이다. 그런데 신문은 무엇이라고 떠드느냐 하면 중소기업 육성하라고 한다. 이런 걸 제대로 잡아주자 그런 거다. 우리 언론 성년기라면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전달한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걸 해라 그런 게 아니다. 이렇게 안 해도 신문사 경영 어렵지 않다고 본다.

위기관리라는 말 가운데는 유언비어 문제가 들어있는 것 같은데... 그런 것 거두절미하면 독자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유언비어가 발생한다. 이걸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령 이ㆍ장사건(이철희ㆍ장영자 사건)에 누구누구가 관련되었는가 국정감사하자. 또 광주사태 사망자 2천7백명이다, 2천8백명이다 하면서 정부가 은폐하고 있다며 그걸 국정감사하자고 한다. 그걸 자제한다고 유언비어가 생겨난다고는 보지 않는다.

홍보요청은 대부분 이런 류의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안 하면 컷(제목)을 뽑을 때 포괄적으로 뽑는 게 아니라 어떤 국회의원이 30분 질의를 하는 중 한 마디 한 것을 컷으로 뽑아 버린다. 굉장히 나쁘게 말하면 뭘 유도하는 것 같이 보인다. '광주사태 진상 조사하자' 이렇게 나오면 이 제목이 새로운 유언비어의 발생을 유도한다. 유언비어는 당돌하기 그지없는 것인데 그걸 만들어 내는 공장이 있다.

이 기회에 반복하는 형식으로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신문 만들기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저희들 입장에서 논평 읽어 볼 때 만화를 볼 때 이 신문을 만드시는 분들은 우리 사회에서 뭐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라는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이 대목에서부터 이 장관 목소리를 여러 옥타브 높이고 편집국장 석은 조용했다.)

학생들이 데모를 한다, 미 문화원 사건 재판정을 수라장으로 만든다, 그런 자들을 영웅으로 만든다, 기사와 만화로 그런 풍조를 만들어 간다, 이런 식이면 이 사회를 어디로 끌고 가자는 것인지 볼 때마다 북받쳐 오른다. 우리에게 방향이 있으면 그 방향 도움주고 아이디어를 주고 정부가 충실하지 못하면 그런 부분 비판해 주고 그런 게 신문 역할 아닌가.

어떤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좋다. 그 신문은 그걸 분명하게 밝혀 주어야 한다. 신문의 기반이 강하다고 그걸 가지고 흔드는 것은 독자를 오도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한 쪽을 치면서 잘못하지 않은 반대쪽까지 치고 칭찬에는 인색하고... 사설의 구조도 무엇을 흔들려면 꼭 무엇을 먼저 건드리고 이쪽을 마저 건드린다. 정부에 호되게 할 건 하고 평가할 것은 평가해 달라.

근대의 우리 신문은 불편부당이라는 원칙을 지키며 자라왔다. 그 다음에 민족 대변한다고 나선다. 그것이 2개의 기둥이다. 1930년대는 민족지와 중립지가 혼합된 형태였다. 현대 사회구조에 맞지 않게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지금 신문들 놓고 정말 민족지인가 독립지인가, 따져보면 정말 우린 많은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작위적인 여론의 형성, 이런 게 꼬리를 물고 있다. 말을 너무 솔직히 해서 미안하다. 이런 자리는 그래야 하는게 좋지 않나 해서 그렇게 했다.

최근 언론계 숙정 대상자 명단 통보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진상은 무엇인가.
제2의 숙정이니 그런 소리 있는 모양인데 그런 것 없다. 또 그렇게 할 생각도 없다. 상황 변동에 따라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각 신문사는 기자의 명예를 경영자와 그 회사가 지켜주어야 한다. 명예라 함은 기사를 잘 쓰고 그런 차원이 아니다. 우리 시회에서 지탄을 받는 신분을 의지해서 이런 저런 일을 하는 기자는 경영적 차원에서 처리해야 한다.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은 80년의 그것을 되풀이해서도 안 되고 전혀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