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대통령 자리를 철저하게 벤치마킹하고 이너 서클이 돌아가는 틀을 파악하고 대통령이 된 사람은 전두환씨일 거야. 국사가 돌아가는 것은 몰라도 청와대의 움직임은 속속 들이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 권력자를 둘러싼 2중 3중의 호위 시스템에서 그가 경비단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직책상의 이유도 있지만 정보분야 출신이라는 점이 주요하다고 볼 수 있지.
그런 측면으로 본다면 10.26의 대정변 이후 일련의 상황이 권력의 최 근접 거리에 있었던 그를 권좌로 부추겨 갔을 것이라는 추리가 가능해지지. 민중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의 흐름과 또 다른 흐름인 이너 서클의 흐름 사이에서 민첩하게 이너 서클의 난기류를 올라탄 거야. 나중 그가 "대통령이란 국민에게는 그럴 듯 하게 보여주는 것일 뿐, 길이 아니면 아무리 아우성 치더라도 가서는 안 된다"는 통치관을 말한 적이 있어. 민중의 문법은 그의 사전에는 없었던 거야.
지금도 하나의 미스테리는 그를 실세 그룹의 선봉으로 삼고 있었던 신군부가 왜 '3김초려'를 했는가 하는 점이야. 당시 신군부는 한 사람의 순방밀사를 3김에게 보냈어. 미국에 있었던 DJ도 물론 접촉했지.
"국가가 위난의 시대로 들어갔다. 우리(신군부)는 정치를 모른다. 당신이 나서 정국을 수습한다면 우리는 뒤를 바치겠다."
이런 요지였어.
그러나 3김은 모두 이 제의를 거절했다는 거야. 사회는 격동의 와중에 들어갔지만 자신들의 시대가 왔다는 걸 정치 9단들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지.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어. 시국 안정이 되고 새로운 틀이 마련되고 나면 권력은 곧바로 이동하거나 자신이 혹여 대통령으로 옹립되더라도 허수아비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야. 3김은 윤보선을 밀어낸 다음 장도영이라는 허세를 몰아내고 집권한 박정희의 전례를 철저히 학습해 온 정치인들이니까.
이 때의 순회특사였던 최창윤 전 공보처 장관은 3김을 만나고 온 반응과 결과를 놓고 평가한 결과 그래도 순서는 JP, YS, DJ였다고 하더군. 신군부의 국가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결과이고 JP는 육사출신에 쿠데타 전력이 있었으니 그들의 정서가 평점에 엄청 작용했으리라 짐작이 가는 대목이야.
비밀 특사 최창윤이라는 인물이 전두환-노태우-김영삼에 이르는 3대 정권에서 계속 등용된 것은 개인적 자질도 있었겠지만 이런 보스와 보스의 연계구조에 있었지 않나 보여져. 결국 두 김은 나중 대통령이 되었지만 JP는 전두환-노태우 두 후배가 12년의 집권기간을 대리해 주었다는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어. 3김이 다 대통령 해 본 셈이지.
12.12 쿠데타의 과정은 법의 심판대 위에서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남겼지만 디테일한 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 피아간의 공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이 감쪽같이 접전 지역에서 사라진 거야. 국방장관은 미8군으로 은신했고, 그는 한 신문기자의 집으로 피신했어. 국방부출입 기자였던 C씨와는 물론 교분이 있었지. 그러나 그런 공적 교분보다는 양쪽의 부인이 아주 단짝이라 보통 이상의 사이였어. 두 부인은 경기여고 시절 단짝이었지. 나중 전 소장은 권력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C기자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아예 신문사 사장을 하면 어떻겠는가"하고 특혜를 제의할 정도였으니까.
정보출신 장교답게 그는 의표를 찌르는 숨바꼭질을 한 거야. 기자의 집이라는 노출되기 쉬울 것 같은 장소의 허실을 꿰뚫은 거지. 이것도 어쩌면 권력 주변에서 습득한 것인지도 몰라.
C 기자는 공적으로 드러난 인물은 아니지만 그의 부인과 이순자씨와의 관계 때문에 곧 권력 주변에서는 주요 인물이 되었어. 특히 권력기관 종사자들은 안면을 트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어. 그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간 데는 자의반 타의반이지만 이런 '정치적 스토커들'을 피하는 데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었어.
그러나 워싱턴도 자유로운 곳은 못 되었지. 본국의 최고 권력자와 통하는 인물이 왔다는 것이 알려지자 이곳에서도 예의 정치적 스토커들이 몰려들었어. 안기부, 보안사, 대사관, 교포사회의 이런저런 조직, 그리고 현지사업가 등등. 평소에도 술을 마다하는 사람이 아닌 데다가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 이 사람 저 사람 접촉하는 과정이 이어지니까 지병이 악화되었어.
미국에서 치료를 하려해도 워낙 비용이 많이 들어가. 결국 청와대 쪽에 SOS를 칠 생각으로 본인과 부인이 청와대 쪽에 접촉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야.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걸 아는 청와대 공보수석이 연결 차단을 했다는 거야. C기자는 귀국해서 연세대 병원에 입원을 했어.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지. 그러다가 거의 임종 무렵에 가서야 이순자씨와 그의 부인이 전화 연결이 되었어.
두 사람은 한 시간 가까이 울며 통화했다고 해.
"남편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
"왜 이제 알렸느냐."
"연락이 전혀 안되었다."
"그래, 어떻게 할 셈이냐?"
"미국 월터 리드 육군 병원에 입원을 해 보는 게 마지막 수단인데 사정이 어렵다."
"그럼 살리는 방도를 만들어 보자."
뭐 이런 내용이라고 해. 당시 비용으로는 미국행 치료가 1억 원 정도였어. 이순자씨는 이 비용 중 상당액을 부담하기로 했지만 C기자는 숨을 거두고 말았어.
이 에피소드에는 많은 것이 숨어 있다는 생각이야. 권력과 C기자의 인생이야. 권력자와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은 그가 의도해서 된 것이 아니야. 어느 날 보니까 자신이 권력자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 그리고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다른 생활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병이 악화되어 죽음에 이른 거야.
가정법이지만 전두환씨가 대통령이 안 되었더라면 오래 살며 자신의 직분을 다하는 인생이었을 거야. 역사와 시대와 상황과 개인의 운명은 미묘한 관계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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