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력자의 절제력은 정치적 반대자와 여자문제에서 허물어지는 게 보편적인 것 같애.
박통의 스캔들은 참 많았지만 은밀하고 부정확한 것도 많았어. 내가 직접 들은 얘기들로는 이런 것들이 있어. H양은 해운대 극동 호텔 나이트 클럽 댄서였지. 어느 날 새벽 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 클럽 지배인에게서 다급하게 전화가 걸려왔어. 빨리 호텔 앞으로 나오라는 거야. 대통령이 내려왔다더니 무슨 일이 생겼나 해서 나갔더니 호텔 앞 백사장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어. 극동호텔 그리고 이웃 해 있는 관광호텔에서 차출된 호스테스들이었어. 10. 26 사건 뒤 '소행사' '대행사'라는 말도 나왔지만 아마 이날은 '집단행사'의 날인 듯 해.
호스테스마다 한 사람의 경호원이 붙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지. H양도 호텔의 어떤 방에 인도되었어. 한참 있다가 경호실의 높은 사람인 듯한 사람이 나타났어. 자기들끼리 포커판을 벌이다가 온 것 같더라는 거야. 그 사람이 나간 후 집으로 가려고 방을 나서니 까만 제복의 경호실 사람이 문 양 옆에 버티고 서서 출입을 통제, 질겁을 하고 아침까지 기다렸다는 거야.
이 날 밤 행사 후 두 호텔에서는 미스터리 하나가 안개처럼 퍼져 나갔어. 박통의 방에 분명히 누군가 들어갔는데 아무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호스테스들이 잡아떼고 있는 거야. 하기야 그날 백사장에 집합했던 사람들에게 경호실 쪽에서 내린 명령은 첫째도 비밀, 둘째도 비밀이었으니 누가 감히 발설을 할 수 있겠어. 더욱이 대통령의 '행사'가 표적이 되었으니.
그러나 한두 달이 지나자 서서히 윤곽이 잡혀갔지. 누구는 누구 방에 식으로 전파되다가 보니까 몇 사람의 인물로 좁혀들었지. 그러던 어느 날 술이 취한 호스테스 몇이서 각자 자신들과 관계가 있었던 '흘러간 별들'을 놓고 데먼스트레이션을 하다가 사단이 났어. A양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떠들어 댄 거야. 그리고 일주일 후 A양은 극동 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사라졌어.
입 잘못 놀렸지만 요행인 케이스도 있었다고 하더군. 가수 K양의 경우야. K양은 월남 참전 용사 위문 공연 때 이미 스캔들이 있었던 가수지. 고위 장성들의 막사를 밤마다 순회했다는 꽤 신빙성 있는 얘기가 돌았는데 나중 물증이 하나 드러나 사실로 판명되었다는 거야. 그게 바로 당시로는 상당한 고가인 아사히 펜탁스라는 카메라를 '밤의 선물'로 받았는데, 입이 가려운 K 양이 떠들어 대 들통이 났다는 거야.
당시 주월 특파원이었던 H씨의 말에 의하면, 당시 종군기자 사회에서 그녀를 두고 '아사히 펜탁스'라는 별명을 붙인 데는 그런 비밀이 있었다는 얘기야. 어쨌거나 그 K양이 이번에는 대통령의 '소 행사'의 표적이 되었어. 그런데 궁정동을 다녀 온 이후 K양은 코가 높아졌지. '이래 보여도 나는 국모 급이다' 뭐, 이런 감정이겠지.
속으로만 그랬으면 좋은데, 사단이 났어. 광화문 근처에서 심야에 차를 몰고 가다가 음주 교통 위반 혐의로 교통순경에게 걸려들었어. 실랑이가 벌어졌지. 얼굴이 알려진 이런 인물들은 단속 경찰에겐 매우 흥미 있는 대상이지. 자연 옥신각신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감정도 격앙되었지.
권력 쪽과 가깝다는 시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자 K양은 디립다 소리를 질렀어. "야, 너 국모를 이렇게 할 수 있어?!"
한 소리깨나 치고 앉아있다는 정도로 생각한 경찰은 파출소로 연행해서 딱지 뗄 것 떼고 벌금 먹일 것 먹이고 끝을 냈지. 하룻밤 곤욕을 치렀지만 가요계에서 자취를 감추는 비극은 없었어. 이 사건은 나중 돌고 돌아 경호실 안테나에까지 꽂혔다는 후문이 있었는데, 경찰 쪽에서 '국모'라는 말을 그녀의 허풍 정도로 믿고 있는 눈치여서 끝처리를 그만두기로 했다는 거야. 때론 진실이 거짓이 되어 화를 모면케도 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지. 대통령의 권위손상을 가져오는 말을 했다가 설화를 당하는 일은 일차적으로 권력 정보사회에서 그것을 진실로 접수하느냐 안 하느냐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이번에는 대통령의 '심야행사'가 있던 밤 광화문 파출소 순경이 당한 얘기야.. 이 스토리는 태릉 골프장에서 같이 골프를 쳤던 K사장한테서 들은 이야기야.
K사장은 학창 때 주먹깨나 쓰던 보스 급이었지. 완력의 세계는 서로 통하는 법이어서 경호실에도 친한 친구가 있었지. 경호원도 급수가 있어 행사별로 담당 운전기사가 있는데, K사장의 친구는 이를테면 특수업무 담당이었어. 바로 대통령의 단독 '심야행사' 보디가드야. 그러니까 정치감각도 있어야 하고 판단력이나 행동이 기민해야 하지. 하루는 집에 있는데 대통령이 급히 나오라고 호출을 했어.
"차지철(경호실장)이가 너 부른 것 아는가."
"모릅니다."
"그럼 대기하거라."
'아, 오늘 밤 심야 단독 행사를 하시러 나가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차를 댔지. 청와대에서 빠져 나온 검은 세단은 한강쪽을 향해 스피드를 냈지. 그런데 광화문 4거리에서 교통 순경이 요란하게 호루라기를 불며 차를 막았어. 그 때만 해도 삼엄한 통금시대라 돌연히 나타난 세단은 당연 정지 명령 감이지. 최특권 차량이니 액셀레터를 밟을 수도 있지만 그랬다가 비상이라도 걸리면 대통령이 모처럼 잡은 행사 스케줄은 깽판이 날 판, 진짜 진땀나는 순간이었어.
다급한 경호실 친구는 문을 열고 나와 경찰의 정강이를 걷어차면서 엄지손가락을 계속 치켜세웠어. 창졸간에 험악한 분위기가 되는 걸 보고 뭔가 켕기는 걸 느꼈어 그래도 긴가 민가 하는데 뒷좌석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사람이 살며시 얼굴을 올리는 걸 보았어. 예의 검은 안경이 솟아나는 걸 보는 순간 아차, 대 실수. "충성"소리를 냅다 지르기 무섭게 세단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지.
이 날 밤이 나중 항간에 소리 없이 퍼졌던 대통령과 배우 J양의 스캔들이 생산되던 밤이었어.
그런데 또 한사람 봉변을 당한 사람이 등장해. H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우연히 동승하게 된 한 부인이 깜짝 놀랐어. 전혀 의외의 시간에 의외의 인물(박통)을 의외의 상황에서 보게 되었으니 어쩔 줄 몰랐지. 아파트에 소문은 나 있었지만 '실제상황'을 목격하리라고는 전혀 뜻밖의 사태라 기절을 할 지경이지. 그때 경호원의 목소리가 들렸지. "뒤돌아보지 마세요! " 혼비백산해서 내릴 수밖에.
그것으로 이 해프닝이 마감되었으면 좋으련마는 속편이 기다리고 있었지. 비밀관리 담당 경호원들이 아파트에 나타났어. "어제 밤은 아무 것도 보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혹여 당신이 어떤 사람이나 장면을 보았다고 말한다면 상당히 재미가 없을 것이다. 남편의 직장은 어딘지 알고 싶다." 대충 이런 내용의 말을 했어. 무시무시한 협박이지. 후문이 과장된 건지 모르지만 그 부인은 심장병으로 시름시름 앓기까지 했다고 했어.
몇 가지 에피소드를 그림으로 엮어 보면 야쿠자나 마피아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라. 사실 권력의 내부는 그럴듯한 외양에 비해 치기가 넘치는 구석이 많다는 느낌이 들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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