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직업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취재원으로 직접 만나기도 하고 핵심 인물에 대한 에피소드와 평판을 듣는다. 그래서 뉴스의 인물을 탐사하고 평가하는 데 관념적이라기보다는 실체적이고 감각적이다.
그러나 활자화되어 나오는 인물 탐사에는 함정이 있기 마련이다. 사실과 진실의 전달이 왜곡되는 면도 있지만 정형화된 그림들을 그려놓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사들이 회고록이나 기록문들을 써 놓기도 하지만 그 역시 어느 한 편에 기울어 있어 사실의 접근성은 모르겠으나 진실 규명에는 함정이 있기 마련이다.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주변으로부터 그들에 관한 많은 이야기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 나라의 이너써클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진짜 면모들이다. 캐릭터는 다양하고 스타일도 다채롭다. 세상에 전파되고 있는 이미지와 다른 면이 발견되는 대목도 있다. 새로 연재하는 '한국의 이너서클 2부'에는 나 스스로가 화자가 되어 프레시안 네티즌들에게 이너써클의 인물들을 탐색하고자 한다. 2부는 앞으로 매주 월, 수, 금요일 세 번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우선 '황제 대통령'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고 박정희 대통령 이야기부터 몇 회에 나눠 풀어보도록 하자. 필자주
내가 박정희 대통령을 조우하게 된 것은 1968년 외환은행 창립기념 때였어.
당시 외환은행은 한국은행 별관에서 문을 열어 은행 출입기자였던 나는 취재를 하러 나갔었어.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다가 비상문을 열고 현장으로 접근하려다가 경호원과 마주쳤지. 나를 보자마자 경호원은 옆구리를 냅다 지르더니 비상구 안쪽으로 몰아 넣는 거야.
순간 나는 바로 눈앞에 5척 단구에 까만 양복을 입고 계단을 또박또박 걸어 오르는 박대통령을 보았지. 이것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그래도 그 당시는 집권 초기라 나의 돌발적 행동(본의 아닌)은 옆구리 한방 가격으로 끝난 게 다행이야. 나중 그런 일이 있었다면 검정 콩알을 먹었을 일이지.
대통령이 총을 맞고 비명에 간 날은 학교 동창인 한 중견 공무원의 집에 있었어. 당시 신현확 부총리의 비서였던 장영철씨(훗날 노동부장관)도 저녁 식사에 함께 자리를 했었지. 어디선가 전화 연락을 받고 장씨가 황망히 자리를 떴어.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바로 그 때가 궁정동 안가에서 피격 사건이 일어난 직후였어. 김재규 정보부장이 육본 벙커로 총리 이하 국부위원을 소집하고 있었던 즈음이지.
이튿날 아침 긴급 뉴스를 들었어. 충격과 놀라움- 나타날 때도 사라질 때도 그 양반은 똑같은 쇼크를 주었어. 그의 피격, 사망이 뉴스를 타자 어떤 외국신문은 "그의 관상에서 비창감이 이미 읽혀졌었다"며 비극적 최후를 예견하고 있었다고 보도한 걸 보았지. 그 판독력에서는 아무래도 일본 냄새가 나.
외환은행 창립식 날은 내가 혼줄이 났지만 진짜로 욕을 본 사람은 따로 있었어. 당시 재무장관 황종률씨야. 한국외환은행법이 제정될 때 엄청나게 애를 먹었거든. 특히 야당은 이 법을 물고 늘어져 정치문제화가 되었어. 대통령은 빨리 통과시키라고 압력을 넣지, 야당은 결사반대를 외치니 진퇴양란에 빠질 수밖에.
다급해진 황 장관은 야당 중진인 고흥문 의원의 집으로 갔지. 때마침 야당 의원들이 모여 있었던 터라 자연 외환은행법 로비장이 되었지. 황 장관은 고 의원을 물고 늘어지고 고 의원은 계속 반대 입장으로 일관했어. 그러다가 황 장관이 실신을 하고 쓰러졌어. 인사불성. 당황한 고 의원 집에서는 앰뷸런스를 부르고 야단이 났지.
이 사건이 전적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 터이지만 외환은행법은 곧 통과되었어. 오죽 대통령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장관이 쓰러질 정도였느냐고 주변에서 말들이 있었지만 고 의원 쪽에서는 철저하게 입막음을 했지.
한국의 대통령을 가리켜 '황제 대통령' 운운하지만 진짜로 그런 권위를 철저하게 누릴 수 있었던 인물은 역시 박대통령이야. 언젠가 K장관이 진해 해군 함정에서 휴가중인 박 대통령으로부터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았어. 현안 인 문제에 대한 지시가 있을 것으로 믿고 부랴부랴 관련 서류를 챙겨 가지고 진해로 내려갔지.
박통은 씩 웃으면서 웬 보따리? 하는 눈짓을 주더니 "좀 쉬어가며 일하라"고 부른 거라고 했어. 그러더니 함상에 있는 철봉 틀을 가리키며 턱걸이를 해 보라는 게 아냐. 체력은 국력, 장관도 격무를 이겨내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 이런 생각이지. K장관은 철봉틀에 매달리긴 했지만 몸이 말을 들어야지. 이것 못하면 다음번 개각 명단에 오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젖 먹던 힘이 나더라고 하더군. 겨우 한 개를 하고 물러났지.
이번에는 C수석비서관에게 물구나무를 시켰어. 워낙 비대형 체형이라 C비서관은 땀만 흘리고 끙끙대다가 물러났지. 그 이후 장관들이 집에 철봉을 세우고 아령을 흔들며 체력 단련에 들어갔다고 하더군. C씨가 나중 외무부 장관으로 발탁된 걸 보면 '체력은 국력'이 장관 기용의 절대조건은 아닌 듯 해.
박통은 또 언젠가는 장관들을 모아놓고 한 달 후에 전체 부처 사격대회를 열겠다는 지시를 하기도 했지. 단, 부처 대표팀에는 반드시 장관도 선수로 껴야 한다는 조건이었어. 당시 장관들 중에는 군출신들이 많아 이들 군출신은 자신들이 1등을 할 거라고 호언장담했지. 그런데 이변이 벌어졌어. 대회를 여니 자그마한 체구의 관료 출신인 김용환 당시 재무장관이 1등을 한 거야.
김 장관은 원래 독종이었지. 김 장관은 박통 명령을 받자마자 재무부로 돌아와 곧바로 팀을 짠 뒤 한달 동안 업무후 태능에 가서 부지런히 사격연습을 한 거야. 박통이 의외의 결과를 보고 김 장관에게 술잔을 돌리며 아주 즐거워했던 것은 물론이고, 호언장담했던 군 출신 장관들은 고개도 들지 못했지. 매사 이런 식이었어.
어떻든 그 장면을 떠 올려 보면 암흑가의 한 단면을 보는 느낌도 들었었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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