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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취재파일 - 한국의 이너서클 <28>권력과 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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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기자 취재파일 - 한국의 이너서클 <28>권력과 카리스마

"거기 총잡이두 일루 와서 한잔 해"

권력은 카리스마다.
평소 겸손했던 사람도 권력을 잡은 뒤에는 권위적으로 바뀌어간다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카리스마는 리더십 측면에서 보면 필요악이기도 하다.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이끌기 위해선 지도자에게 카리스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과잉'이다. "내가 가장 잘 낫다, 힘이 있다"는 자기도취에 빠지면 카리스마는 독(毒)이 된다. 그 폐해는 대통령의 경우는 국가 전체에, 장관의 경우는 부처 전체에, 재벌의 경우는 그룹 전체에 치명적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영화계의 카리스마'로 통하는 최민수씨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요즘은 dog(개)나 cow(소)나 카리스마 운운하는 바람에 카리스마가 있다는 소리를 듣기 싫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카리스마의 과잉 현상을 지적한 최민수다운 독설이다.

손광식 본지고문은 90년대 하반기에 두명의 고위관계자에게서 권력의 카리스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명은 고위 경제관료이고, 다른 한명은 재계의 고위 임원이었다.
이들의 증언은 권력집단의 카리스마가 어느 정도이며, 그 부작용이 얼마나 심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시대는 더이상 '제왕적 대통령'이 아닌 'CEO(최고경영자) 대통령'을 요구하고 있다 한다.
다음의 두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반면교사의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첫번째 이야기. 정치권력과 관료집단의 카리스마**

권력이나 권력자의 껍질을 벗기고 나면 ‘살아 남는 것’만이 남는다고 해. 그래서 부하들에게는 제1요소로 요구하는 것이 충성이야. 카리스마를 권력술로 본다면 그 핵심은 복종이야.

내 친구에 L모라는 친구가 있는데 환경처 차관까지 갔던 인물이지. 공복치고는 줏대도 있고 뼈대도 강했어. 전통이 워낙 아는 것 모르는 것 참견 잘하고 말 많이 하는 편 아냐. 한 번은 복지문제 보고가 청와대에서 있었어. 그런데 대통령 말씀이 워낙 과천을 헤매고 있던 데다가 요령부득이어서 이 친구 곤욕을 치렀다는 거야.
그래서 나중에 동료 관리들하고 저녁 하는 자리에서 술김에 “지가(전통이) 알긴 뭘 알아”하구 어쩌구 하고 그날 울분을 터뜨리지 않았겠어.
그랬더니 정보장교 출신 대통령답게 이 말이 전통 귀에 접수된 거라. 관료사회라는 게 그런 밀고와 충성이 헷갈리게 돌아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말야, 참, 정보 한 번 빠르게 꽂혔지.

화가 난 전통이 당시 안기부 차장으로 있던 성용옥에게 ‘손 좀 봐 줘라’했지. 그러자 안기부는 L모를 잡아들여 이틀밤을 새우며 조져댔어. 그런데 뭐 나오는 것이 있어야지. 암만 까고 뒤집고 털어도 20만원짜리 하나 밖에 나오는 것이 없어.

그래도 이 친구 재산이 있나 또 털어 보았지. 그랬더니 그 재산이란 것도 자기가 저술한 책 인세를 받아 평당 몇십원짜리 땅 사논 게 개발 덕에 큰 재산이 된 거라. 여기서도 아무런 혐의를 찾아내지 못했지.

할 수 없이 성용옥이 보고서 들고 청와대 들어가 “20만원짜리 뿐인데 때려 잡을갑쇼?”했지. 전통은 보고서 다 훑어보더니 “이 친구 공무원 치고는 꽤 괜찮은 친구로군 그래” 하면서 “없던 걸로 해” 그랬어. 그래서 이 친구는 살아났어.

이건 내 경우의 얘기인데 진념이가 장관으로 왔어. 물론 기획원 시절에는 ‘싼따루’ 사무관 시절부터 술도 같이 먹고 외박도 같이 한 그런 사이지만 이젠 장관 돼 그 부하의 관계라 달라질 수밖에 없지. 대범하고 화려한 데가 있지만 진념이도 속에는 꼬라지가 왜 없겠어.

석유값이 어떻구 유류정책이 어떻구 하지만 지가 유산스 베이스가 뭔지 알겠어. 실장인 내가 브리핑 챠트 만들어 보고를 했는데 ‘존심’ 상하게 조져대는 거라. 그래 하루는 저녁 먹을 기회가 있어 술을 퍼 먹고 구두끈을 매고 있는 진장관 뒤에다 대고 모르는 척 “지가 알면 뭘 얼마나 안다구...” 어쩌구 했지.

그랬더니 이게 두고두고 재앙이 되더군. 내가 관리사회에서 물 먹고 울타리 밖으로 쫓겨난 동티가 되었어.

요즈음은 박재윤 장관이 좀 심하다더군.
내외경제신문인가 어디서 ‘박장관의 직무유기론’인가 하는 걸 썼대. 이 칼럼 내용을 국회에서 모의원이 읽어내려 가면서 공개적으로 박을 공격했어. 내용인즉 박장관이 지역 발전소인가 하는 걸 구상하고 있는데 이게 허가낼 수 없는 거라. 그래 그 국회의원이 장관에게 어쩔 거냐 하고 물고 늘어진 거야. 박은 몰리다가 “제 소관이 아니고 한전 소관올시다” 하고 도망을 쳤지.

이런 해프닝들을 다시 묶어 이번에는 매일경제에서 인사가 두달 이상 연기되고 있는 것과 한데 묶어 박스 기사를 썼어. 이걸 박이 보고 “무조건 기사 빼라”해서 공보관을 비롯하여 꼬붕들이 새벽 3시인가 4시까지 뛰었어.
그래도 안 되자 장대환 사장에게 부탁, 13판부턴가 빠졌지. 그 땐 이미 12판까지 신문이 다 나간 뒤라.

동양통신에 갈천문이라는 청와대 출입기자(나중 연합통신 편집국장·상무역임 작고)가 있었어. 키는 작았지만 당돌하고 배포도 있었지. 그래서 그랬는지 박통은 주석이 있을 때 즐겨 갈 기자를 옆에 앉히곤 했지.

육여사가 죽은 뒤 일인데 박통은 기자들과 주석을 마련한 일이 있어. 당시 차지철은 권력 주변 특히 경호실의 위상을 높이는 작업을 진행중이었어. 주연이 무르녹는 가운데 취기가 오른 갈기자 눈에 차실장이 들어 왔어.
“어이, 거기 총잡이도 일루 와서 한잔 하지” 갈 기자의 호연지기가 터졌지.

그러나 다음날 이 기개는 재앙으로 돌아왔지. 분을 삭이지 못한 차실장이 온갖 압력을 동원하여 갈기자의 ‘방자한 죄’를 응징하는 목적으로 청와대 출입정지를 시킨 거야. ‘기자도 내 앞에서 까불면 간다’ 이거겠지.

***두번째 이야기: 재벌의 카리스마**

왕년의 이병철회장 카리스마는 대단했지. 비록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실시’가 있을 뿐이야. 비판과 제동엔 용서가 없어. 또 절대 권력을 훼손하고 권력의 누수를 초래케 하는 자에 대해선 가차없는 응징이 있을 뿐이야.

이건희 부회장에 대해서도 그 기준은 엄격하고 철저했어.

한 번은 이부회장이 결근을 했어.
이병철 회장은 항시 그림자처럼 자신을 보좌하고 있던 홍진기 회장에게 이부회장이 어디엘 갔느냐고 물어 보았어. BC(이병철) 이후의 삼성 총수 이건희의 위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터라 홍회장은 자신의 사위인 이건희의 부재를 감싸고 나왔다.
“어제 회사 일로 술도 좀 하고 늦게까지 일을 하느라고 오늘 좀 늦게 출근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이병철 회장은 그걸로 그냥 끝내지를 않았지. 시간이 좀 흐른 다음 다시 홍진기회장에게 전화를 겋어 “지금쯤은 출근했겠제이”하고 다시 확인을 하면서 홍회장을 압박했어.

그러니 홍회장이 후끈 안할 수가 있겠나. 주변에서는 이런 절대권력을 둘러싼 긴장이 결국은 홍회장이 일찍 타계하는 데 상당한 원인 제공을 했을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어.

한 번은 내가 BC를 만났는데 “니 반도체 뭔지 아나?” 하더니 자신이 갖고 있던 지식을 동원, 그 장래성을 설명하고는 "삼성반도체 공장 준공 기사를 크게 취급하거레이" 하더군. 그러나 당시 내가 아는 상식이나 기사 비중으로는 경제면 3단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서 그렇게 처리해 버렸지. 그런데 일이 꼬이느라고 홍보실의 로비도 있었겠지만 서울신문이 그 기사를 1면 톱으로 처리했어.

아니나 다를까 징계가 내려왔지.
당시 나는 호암전기를 맡고 있던 터라 수시로 BC를 접견하고 있었는데 ‘출입금지’ 조치가 내린 거야. 말 안들은 놈 보기 싫다, 이거지.

이 양반은 사람을 스스로 곧잘 버리는데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튀어나가는 자에 대해서는 끝내 추적하여 별도의 응징이 있곤 했어.
손상모 전 국제상사 사장 같은 사람이 그런 케이스지.

이런 일도 있었지.
선친 이병철회장이 실용주의자라고 하면 이건희 부회장은 이상주의자의 면모가 있어. 그래서 기업 홍보 선전에서도 차이가 나. 이건희 부회장은 해외개발추진본부장겸 부회장이 되자 삼성 이미지와 관련된 광고를 만들었지. ‘기술의 삼성’ 이거야. 각 언론 매체에 이 광고가 일제히 풀려 나가고 사내 반응도 꽤 좋았지.
본인은 부회장 방에 패널을 만들어 걸 정도로 호감을 갖고 밑에 사람들에게 격려도 했지.

그런데 웬걸. BC는 오후에 이걸 보고 “누가 이걸 만들었는고?” 하더니 "이건 광고도 아이다“하고 일격에 깔아 내리는 게 아니겠어.
난리가 났지. 각 신문사에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 광고 취소 통고를 하는등 법석이었지만 윤전기는 벌써 돌기 시작한 거라. 그 다음에 어떤 조치가 내렸는지는 알 길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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