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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취재파일 - 한국의 이너서클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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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기자 취재파일 - 한국의 이너서클 <26>

그들의 언론관<2> "그게 다 '가짜놀음'이라"

지난 96년 7월 언론사에 일대 불상사가 발생했다. 부수 확장운동을 벌이던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지국이 충돌, 조선일보 직원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여론은 그 무렵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중앙일보가 금력을 앞세워 사세를 키워가던 과정에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 재벌의 언론소유를 비판하는 쪽으로 흘렀다.
손광식 본지고문은 당시 각계 고위인사들과 만나 이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녹취했다. 제3자의 시각은 냉정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언론재벌과 재벌언론간 격돌'라는 것이었다. 아울러 한국의 언론자유는 언론 스스로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게 아니라, 다른 민주화운동에 편승해 얻었다는 점에서 근원적 한계를 갖고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도 나왔다.
이 사건이 있은 지 5년이 지난 지금, 조선ㆍ중앙 두 신문은 한국의 양대신문으로 자리매김됐다. 5년전에 비해 지금 한국언론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다음 세 명의 녹취록을 곱씹어 읽어볼 일이다. 편집자

1.

보도를 보니까 신문사 사이에 불상사가 일어났더군. 중앙일보 지국장이 조선일보 지국을 습격, 직원을 찔러 죽였다는 거야.
오늘은 피해자 측인 조선일보가 총공격을 했어. '삼성 내부자 거래 집중조사-국세청, 이건희씨 집 인근 땅 전매과정 등' 기사로 두둘기고 3면 사회면 제2사회면을 통해 중앙일보의 무차별 판매전, 재벌언론을 파상공격했어. 동아일보도 '재벌의 언론 소유 시정하라'는 사설을 띄워 동참을 했지. 칼로 사람을 찌른 사건이 났으니, 더욱이 그게 언론사의 울타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니 방방 뛸 만도 하겠지.

그런데 두 회사의 한 회사에 대한 보도 폭격은 좀 웃기는 구석이 있어. 이 살인을 부른 내부구조를 파헤칠 생각은 안하고 ‘이놈은 죽일 놈’ 식의 예의 인민재판식이야. 그래, 다른 신문들은 판촉경쟁 안하나. 다 똑같이 하지. 그런데 문제는 중앙이 금력을 동원해서 극성맞게 시장을 휩쓸고 있어 모난 돌 정 맞기가 된 거 아니겠어. 지국장 살해 사건은 따지고 보면 미묘한 흐름 속에서 터져 나온 신문업계의 치부야.

나도 신문사 밥을 먹어 보아서 알지만 “좋은 신문 만들면 잘 팔린다” 이거 교과서에나 있는 소리라고 판매국장은 발을 동동 구르지. 그럼 뭐냐. ‘실탄’이지. 실탄공세를 해야 독자인 소비자가 움직인다는 거지. 선물 사서 돌리고 판촉사원 배달사원 한테 돈 퍼부어야 된다는 논리이지.

옛날에 배달소년 앞세워 신문 이미지 높이던 것 그거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야. 게다가 판매조직이라는 것은 본사 사원하고 또 달라. 각자가 자기 영업단위를 가지고 있어. 본사 판매조직도 회사에 속해는 있지만 거대한 신문판매시장 메카니즘 속에 발을 담그고 있지. 회사보다는 그 쪽 영향권에 있다는 말이야. 회사도 신입사원 뽑지만 우수한 인력을 판매 쪽에는 보내지 않아.

기자들을 징계할 때도 나가라고 할 수 없을 때 판매국으로 보내. 그래서 판매조직은 본사에서는 ‘소외지대’이면서 의무와 업무 하중은 엄청나. 그러니 조직 성원들은 매일이 갈등의 연속이야.

결국은 회사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의 충성을 읽는 매개체는 돈 뿐이야. 아마 모르긴 해도 지금 중앙 쪽에 있는 기자나 사원들은 갈등 반 감정 반 일거야. 하긴 조선, 중앙이 “콩기름으로 인쇄한다”고 떠들어 대자 “나머지 신문은 공해나 만들어 낸다는 말이냐”고 싸잡아 비판하던 동아일보도 이 사건이 나자 내부 회의에서 조율이 있었는지 방향을 ‘중앙 타도. 재벌언론 타도’로 바꾸었어.

옳은 논조야. 재벌이 언론해서는 안돼. 창과 방패 역할을 하거든. 더욱이 신문권력이 막강해진 지금 그 폐해는 깊이 짚어 보아야 할 만큼 상황적이고 구조적이고 교묘한 데가 있어. 따지고 보면 이번 사건은 신문의 상업주의와 패권주의가 충돌했다는 게 그 본질이라 할 수 있어.

그럼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쪽은 ‘상업주의 배격인가.’
그건 또 아니야. 결국 이 싸움은 헤게모니 쟁탈전이야. 싹쓸이를 하고 싶은 숨어있는 상업주의가 어느 쪽에나 팽배해 있지. 조선일보는 정통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진짜는 상업주의로 성공한 신문이야. 그 기득권에 대한 도전을 용서 안해. 도대체가 진흙탕 싸움인데 가다가 보면 누가 가해자인지 누가 피해자인지 뒤죽박죽이거든.

2.

야, 두 신문(조선 중앙)이 콩기름으로 인쇄한다고 선전이 요란하더니 이제는 콩가루 같은 언론계 치부를 드러내는 싸움이 한창이더군.
우리 눈에 비치는 건 말야 이게 국가 사회를 걸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 집안 싸움이라는 거야. 다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뀔 수도 있는 게 이번 신문 배달원 치사사건이지. 하긴 용어도 정확하게 써야 할 터이지만 이번 사건은 ‘살인’이 옳아 ‘치사’가 옳아.

뭐, 그냥 칼 들고 들어갔으니 살인이라구? 그건 그렇다 치구 내가 보기엔 무슨 언론의 공적 기능, 재벌언론의 폐해론 이런 게 제목으로 나와 있지만 그게 핵심이 아니야. 누가 시장 잡느냐는 쟁탈전이 핵심이야. 그러니 오히려 사건 이후 벌어지는 싸움이 몽땅 왜곡 보도, 왜곡 전파이지. 하긴 조선, 동아, 한국 등 조간 3사가 다 재벌언론에 대해 총공세를 펴고 있으니 누가 ‘그게 아니다’고 입도 뻥긋 못하고 있지만 결국 조선 이외에는 삼성 쪽이 광고로 ‘쇼부’를 칠 것이고 조선쪽도 ‘끝장을 볼 수 없는 싸움’이니 펜으로 두들겨 패 시위나 하고 특별광고와 진사를 받고 끝내겠지. 안 그래?

누가 경제 2류, 정치 3류 어쩌구 했다가 혼나기도 했다지만, 이번 사건은 언론의 저질성을 드러낸 '4류 신파극' 수준이야. 이런 소리는 공개적으로 했다간 인격살인까지 당할 정도로 언론은 폭력적이라 정식 글도 못 쓴다며. 또 그런 글이 어느 쪽 매체에 났느냐에 따라 ‘이용문건’으로 되어 오해를 받게 되기도 하구 말야.

우리 신문의 비극이 뭔지 알아. 그렇게 ‘열린 사회’ ‘비판정신’ ‘정론’ 어쩌구 떠들면서 자신들에 대해서는 보통 관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바로 그점이야. 신문을 비판해줄 때도 두리뭉실로 해야지 00신문 하고 제호를 걸어서 비판하면 알레르기 반응 왕창이지.

큰 신문일수록 더해. 너희들이 수백만 독자를 뭘로 알고 그러느냐 식이지. 그러니 우리는 ‘반성한다’ '자괴한다‘ ’스스로 비판한다‘며 사고(社告) 내고 목소리 높여도 그게 다 ’가짜놀음‘이라. 대중 비판에 대한 방패막이로 동원된 방법 밖에 안되는 거라. 하긴 정부도 뭐 일만 터지면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대책을 세운다 하지만 그거 다 똑같은 이치야.

3.

‘조-중전’이 어떻게 될 것 같애? 보나마나 뻔한 것 같지 않아? 왕초들끼리 만나서 “아랫것들이 잘못해 가지구...” 뭐 이런 식으로 끝나겠지. 끝장 보자고 하면 피차간에 이득 볼 것 없거든. 그러니까 새로운 긴장관계로 체면 살리고 끝나게 될 것인데, 제한적이지만 뭘 얻고 뭘 잃게 되는 걸까. 믈론 조선일보는 사회적 압력을 통해 ‘재벌언론’이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해 ‘금권 경영’에 상당한 쐐기를 박을 수가 있겠지. 더욱이 동아일보나 한국일보 등 이른바 독립언론의 곡사포 사격까지 있으니까 말이야.

대신 잃는 것도 있겠지. ‘조선일보 패권주의’나 ‘영원한 언론제국’ 구축이라는 헤게모니 장악 작전에서 상당한 상처를 입게 된다는 점이지. 자사 이익주의가 지나치게 노출되고 논객이나 기자들까지 동원한 삼성-중앙일보라는 재벌언론 공격에서 지나치게 지면을 도구화한 점이 이번에 드러났거든.

사실 지식층 독자들은 상당한 비판의 눈으로 사태를 보고 있어. 삼성-중앙은 표면상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얻는 것이 있다고 봐. 이번 사태를 통해 ‘언론 1위 그룹’ 진입에 성공한 측면이야. 조선, 동아, 한국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중앙을 공격하고 나선 것은 이미 중앙이 강자가 되었다는 사회적 인식을 확인 한 거나 같거든. 그러니까 1위 그룹 랜딩 피를 지불한 셈 치면 되는 거란 말들이지.

중앙은 95년 4월부터 조간화, 증면, 섹션화 등 일련의 경영전략을 들고 나와 엄청난 돈을 퍼부었는데 그 수확을 이번 사건으로 거둬들였다고 본다면 상당히 아이러니컬 한 면이 있어. “중앙이 크긴 컸어” 라든가 “동아를 앞질러 조선과 2강이 되었다”며 하는 거리의 논평 분석은 가볍게 보아 넘길 대목이 아니라는 거야.

물론 중앙일보쪽에서 볼 때 이번 사건에서 가해자라는 입장과 피해자쪽에 기울어 있는 사회적 정서랄까 그런 거나 동업지들이 자신들을 적으로 돌렸다는 한시적 위기는 물론 마이너스 효과라 할 수 있겠지.

중요한 것은 ‘조-중전’을 통해 한국언론이 어떤 변화를 스스로 모색해 내느냐에 있다고 봐. 재벌이 언론에서 손을 떼는 계기가 될까. 난 천만에 말씀이라고 보지. 이미 파워 쉬프트 현상(권력 이동)이 일어나고 있어.

정치권력 못지않게 언론권력이 생겨났어. 조선일보가 아무리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역시 하나의 ‘제국’이야.

재벌, 그 쪽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이 “재벌이 언론 먹고 또 그 힘으로 권력까지 먹는 잠재적 위기”를 설파하기도 했지만 숱한 정치 가족의 영향력 있는 자리를 자의든 타의든 조선일보 출신이 차지하게 하고 국가나 사회적 논리를 조선일보식으로 강요해 온 입장이나 패권 논리를 같은 식으로 공격할 수도 있는 것이지.

‘기업은 2류 정치는 3류’라는 이건희의 북경발언이나 정주영의 대선출마를 ‘정치권력에 대한 경제세력의 도전’으로도 파악하지만 제1급 신문으로 막강한 파워를 휘둘러대는 조선일보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어. 지금 누가 사주 방씨 일가나 조선일보나 그 울타리 속의 ‘가족’을 감히 건드릴 수 있겠어. 카지노 사건이다, 언론사 세무조사다 하는 과정에서 정치권력이 조선일보의 울타리 근처에다 대고 협박만 하고 철수하곤 하는 게 다 참고자료야.

‘바라건대’라는 희망지수를 띄워 가면서 “이 나라 언론 발전에 한 이벤트로 만들자”고 많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글쎄 그게 생산이 될까. 언론의 ‘자유’ ‘독립’ ‘제4부’라는 관념적 목표는 실제화 시키는데 우리 언론엔 아직 구조적 함정이 있어.

언론의 ‘자유’로 말하면 투쟁의 역사를 통한 산물이어야 하는데 우린 엄격하게 말해 남이 가져다 준 산물 아니겠어. 민주화, 권력분산, 노동운동에 업혀 떨어진 과실줍기였다는 말이야. 피동적이었으니까 ‘자기 생산물’이 못 되고 일부 오늘의 경영적 성공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헤게모니는 남이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어. 더욱이 그 피동적 속성은 현재 경영 제작을 이끌고 있는 상부구조가 기자들 쪽보다 더 커.

그러니 위로부터의 개혁은 더 어렵지. 경영전쟁은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의 언론전쟁은 아니야. 그 정당성에 대해 사회적으로 어떤 지지를 만들어 내기에 역부족이자 방향마저 강 건너를 더듬는 격이야. “재벌은 언론에서 손떼라”고 하는데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이게 문제야. 손떼면 문 닫아야 할 곳이 수두룩해. 세계일보 사설이 조선, 중앙 양쪽을 다 치고 나온 것이 한 반응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중앙, 경향, 세계, 국민, 문화 등 재벌권 신문은 메시지를 수용해야 해.

신문은 신문답게 만들어야 한다 이 말이야. 축소, 은폐, 무비판이란 출자세력에 대한 급부, 다시 말해 불공정 게임의 폐해가 보통이 아니거든. 물론 제작진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겠지. 더욱이 기자 집단은 노조를 중심으로 줄기차게 사내 비판을 하고도 있겠지. 그러나 봉건적 가치개념인 충성심의 울타리를 탈출하기에는 인식의 지평이 열리지 못하는 현실적 상황이 있다고 봐.

그게 뭐냐. ‘모가지’다, 이거야. 은폐, 축소, 무비판을 통한 자본 세력 방어 조치는 바로 오너에 대한 충성이며 그것에 대한 반대급부가 언론사의 사장, 주필, 편집국장, 그리고 데스크 등 주요 지위로 이어 지게 되고 혹여 그렇지 않은 과정을 통해 요직에 앉더라도 자리보전을 보장하는 수단이 되고 있어. 모그룹 회장이 신문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우리 그룹이 잘 못하는 일이 있으면 가차 없이 조져라”고 말했다지만 그건 ‘짜고 치는 고 스톱’의 룰을 전제로 한 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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