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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취재파일 - 한국의 이너서클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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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취재파일 - 한국의 이너서클 <22>

북한의 이너서클

95년 10월29일 설악 프라자 호텔에서 91년 5월에 귀순한 고영환씨가 서울 언론재단의 초청을 받아 북한 권력내부의 실상을 말한 바 있다.
당시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김일성 주석의 급작스런 사망(94년 7월)과 이에 따른 미국에서의 북한 핵위협론의 급부상으로 인해 과연 북한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두고 여러가지 관측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고영환씨를 초청한 것도 이같이 안개속같은 북한의 향배를 가늠하기 위한 언론계 노력의 일환이었다.
고씨는 귀순전 주 콩고 북한대사관 일등서기관을 지냈던 북한의 고위급 외교관 출신으로 북한의 이너서클 움직임에 정통한 사람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김정일 체제가 3년이상 가고, 북한의 경제난 심화때문에 금명간 남북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견했고,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이 기록은 당시 세미나에 참석했던 손광식 본지고문이 강연내용을 녹취한 것이다.
이 기록은 탈북자의 증언으로 상당부분 '냉전적 과장'을 내포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이너서클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하겠다. 편집자

김정일 체제는 짧게는 6개월, 길게 보면 3년 이상 간다고 본다. 짧게 보는 이유는 '암살'이다. 10만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호위 사령부가 재분할된다는 소식에 근거가 있다.
우리 가족 안에 두 사람의 호위총국 장교가 있는데, 집안 제사 때 만나 알력을 하는 걸 보았다. 제1호위총국은 김일성, 2호위총국은 김정일을 각 호위하는데 김정일의 권력이 올라가는 것과 비례해서 2호위국의 권한도 올라가고 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암투가 있다.
재분할 과정에서 불만분자도 생겨날 거고 해서 암살의 잠재성이 있다고 보는 거다.

***북한 핵심계층의 좌절감 심화**

식량난도 점차 더 악화되고 있다. 평양엔 간염환자가 8천명이라고 하는데 단백질 부족 탓이다. 핵심계층의 좌절감도 있다. 동구 사태 이후 세상의 움직임을 보고 통일에 대한 의구심과 패배감이 짙은 게 사실이다.
대외적 여건으로는 북의 인구가 2천몇백만인데 비해 남쪽은 4천몇백만이다. 경제는 남쪽이 4-5배나 크고 미군이 4-5만명이나 있다.
김정일은 아버지보다 신축적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북에는 '쌍무지개'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문제가 발생하여 보고할 때 ‘양 쪽 다냐’‘정일이냐’의 문제다.

자이르 대통령 고문이 북한의 이름으로 동상 하나 세워 달라고 한 적이 있다. 김영남, 강석주 라인이 이걸 보고했다. 김정일이는 ‘오케이(OK)’를 했지만 김일성은 화가 독같이 나서 ‘모부투는 친미주의자’라고 규탄했다. “자이르 주재 대사의 사상을 검토해야 겠다”고까지 나와 정일에게 보고했더니 3일동안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1백만달러 준다면 해 준다고 해라"해서 이 문제가 풀렸다. 명분에 아버지보다 덜 집착한다. 용병술에는 뛰어난 점도 있고 김영남, 강석주등은 그의 측근이다.

***김정일은 명분에 아버지보다 덜 집착하는 스타일**

88올림픽 저지(불참유도등)때 폴란드의 야루젤스키 만났더니 “모스크바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그 쪽 하는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회의적이었다.
김영남이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적극적 활동을 (북이) 않는 한 폴란드는 참석할 것 같다. 우리는 더욱 노력할 것이다"고 슬쩍 넘어가면서 "지도자(김정일)의 영을 제대로 못 받들었으니..." 하면서 밥까지 굶었다.

김정일은 아버지에 대한 충성경쟁에서 승리했다. 김성애(김일성의 처)는 한 때 '민비'였다. 서슬이 퍼랬다. 이걸 정일이가 꺾었다. 집념이나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도 외교부에 '교시'를 하는데 주요한 것은 피한다. 이를테면 이런 정도다. 아프리카 어떤 대사관에서 부인들끼리 싸움이 났다. 핸드백을 산 걸 두고 돈의 출처 낭비 뭐 이런 걸로 시비가 붙어 칼부림까지 났다. 아마도 본질은 돈을 중간에 놓은 질투심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 사건이 보고 되자 김정일은 “부인들끼리 칼부림을 했다는데 주의들 하시오”이런 정도의 '교시'이다. 그는 외교 감각은 아버지만 못하다.

북한 주민들은 아버지(김일성)가 사회주의 기초를 잘 닦아 놓았는데 김정일이 72년부터 등장, "벽돌을 잘못 쌓고 있다"고 비판한다.
당 간부들은 종래는 "아이들 잘 길러 과학자 시키자"하더니 이제는 "딸 이쁘게 낳아서……"한다. '기쁨조'가 누리는 혜택을 떠 올리고 있다는 시류반응이다.

주민들은 개혁, 변화는 ‘밥그릇이다’‘생활이다’라는 인식들을 하고 있다. 그런 바람인 것도 사실이다. 이걸 충족 못 시키면 급속하게 붕괴할 수밖에 없다.

김정일 이외에는 모두 통제와 감시 속에 있다.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장성택이 제일 쎄다. 이찬성이가 그 자리 10년 하다가 죽어서 장성택이 이어받고 있다. 장은 김일성의 딸 김경희의 남편이다. 이 사람 아들을 내가 잘 아는데 자기 아버지 말이 "도청을 하고 있으니 집에서 외부에 함부로 전화하지 말라"는 주의를 듣는다고 했다. 이 사람이 장가를 갔는데 도청한다는 생각에서 부부 잠자리 성능도 잘 발동이 안 되어 아버지에게 분가를 하게 해 달라고 했다고도 한다.

***북한에서 공산귀족들은 말 그대로 귀족**

북에서도 지배계층인 공산귀족들은 대우를 받는다. 그 친구 장가들 때 김정일이 그랜드 피아노 한 대를 선물했다. 그런데 이게 아파트에 들어가질 안았다. 그랬더니 김정일이가 아파트를 헐면 될 것 아니냐 해서 벽을 허물고 피아노를 집어넣었다.
북에서는 어버이가 주신 집을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큰 일이 난다.
장의 집에는 일제 도시바 냉장고가 5개나 있는데 그걸 다 채워 넣을 게 없다. 그러나 그 쪽 사회에서는 남아돌아도 남을 주어서는 안 된다.
결혼식 때 '지도자동지 선물목록'이라는 게 있었다. 김정일이 선물로 내린 품목 리스트다. 두 페이지 분량이나 되는데 글씨는 금박으로 되어 있었다. 이런 혜택을 받는 사람은 아마 1백 명도 안 될 것이다.

내가 '김정일체제 3년 이상'을 보고 있는 이유는 80년 중반까지 남쪽과는 간접교역을 안했다. 그런데 86년부터 홍콩을 경유한 간접교역을 허용하고 있다. 조금 지나면 미국의 문을 두드리고 일본과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은 북한에 급하게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할 수 없이 북은 남쪽의 문을 두드리게 될 것으로 본다.
아직도 김정일이 '정식승계'를 안하고 있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 때문이다. 인민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때 '주석 선언'을 한다는 계산일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외교'**

한 때 북의 박영수가 적십자 접촉 때 "남쪽 불바다 운운"하고 나왔을 때 나는 코웃음을 쳤다. 인민무력부는 "휴전선의 화력 뿜어대면 한국군의 궤멸이 가능하다" "미군과 붙어도 미군은 2, 3일 버틸 뿐이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주일 미군, 괌도의 미군이다. 그들이 한국에 사태가 나면 들어올 것인지 이게 미지수요 알파이다. 게다가 미 군함은 러시아 것과 틀리는 등 체계적으로 안 맞는다. 절대로 지는 싸움은 안한다는 게 북조선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어법이다. 즉 되려 북한이‘불바다 당할까’ 걱정이 돼서 한 말이다. 당시 연변에는 "주석궁 불바다 만든다"는 말이 떠돌던 때였다.

북조선이라는 나라는 변할 수가 없는 나라이다. 버티다가 “쌀 좀 주시오”할 때까지 기다려 보는 게 가장 현명한 길이 아닌가 본다.
1년8개월 동안 나도 북미회담에 나가 보았지만 김일성이 바랬던 건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였다. 그 중에서도 "미국과의 외교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선전하고 ,우리는 동독과는 다른 주체의 나라임을 선전하라"고 했다. 통일이 되면 '뻘건 나라'가 아니라 '파라스럼'하거나 '분홍빛' 정도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알리라고 해 왔다.

미국에 대해서는 선제 핵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 잠재되어 있다. 4강 중 가장 ‘만만한 곳’은 일본이라고 보고 있다. 북쪽에 접근했던 가네마루 신(일본 수상)이 정치적으로 당한 것도 미국의 견제 때문이라고 나는 파악한다. 여기서 '중심고리론'이 나왔다. "미국을 풀어야 다음이 풀린다"는 논리이다. "외교적 지략으로 미제국주의자를 굴복시키겠다"는 게 포인트인 것이다.

백성들도 " 거짓말은 믿는다"고 본다. 김정일은 히틀러 신봉자이며 독일식(나치)이 강하다.
최근 북한 입장에서 보면 ‘양보가 많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체 전쟁에서는 진다는 의구심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북한은 질서정연하다. '잘 가는 배'다. 그런데 지금 레이더가 없다.
한국은 어떤가. 그보다 10배나 큰 배인데 기우뚱거리면서 간다. 방향은 잘 잡고 있으나 속도가 느리고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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