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유원식(柳原植) 장군은 박정희 대통령의 만주군관학교 동료이자 5.16때 최고회의 재경위원장까지 지냈던 박정희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유 장군은 5.16후 통화개혁을 주도하면서 미국과 정면충돌한 데 이어 박정희의 대통령 출마에 반대하다가 '4대 의혹사건' 연루 혐의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얼마 뒤 그는 무죄로 풀려났으나 그후 군복을 벗고 지난 87년 71세의 나이로 타계하기까지 협화실업이라는 기업을 경영하며 정치권력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
이 기록은 유 장군이 타계하기 직전, 손광식 본지고문에게 한 이야기를 녹취한 것이다. 편집자
박정희가 혁명 일으키고 난 다음에 미국하고 한번 된통 붙었지. 내는 반미주의자는 아니지만 미국놈들 안 좋아했는기라. 민주당때 한미경제협의회 안 있었나. 국가경제시책은 말할 것도 없고 주요 인사이동까지 사전에 싸인 받을 정도인기라. 그래 5.16혁명 후 ‘우리도 자주국민인데 이제는 미국이 하자고 한다고 다 들어줄 필요없다’는 생각이었제.
6.10 통화 개혁이 있었는데 아주 극비리에 진행하고 돈 인쇄는 영국의 토마스 딜라루사와 계약을 했는기라. 물론 미국쪽에는 알리지도 않았고 정보도 안주었제. 버거 미대사가 화가 났어. 킬렌 유솜 처장에게 기합을 주었는지 그 자가 이를 가는 소리도 들려. 아마 워싱턴으로부터 되게 당했는가 싶어. 하비브 참사관이 계속 전화를 해 내를 만나자고 해.
그래 내가 말해 주지 않았나. “내 비록 재정위원장이지만 한국의 대표다. 너의 쪽에서도 예우를 갖추거라” 했지. 킬렌과 버거대사가 다시 전화를 해 “당장 만나자”면서 미국 대사관으로 “올라오라”는 기라.
그래 “가까운 데서 만나자” 했드니만, 킬렌 처장 방에서 만나자고 해. 그러면서 “최고회의 전원이 와야 한다”고 하는 기라. ‘뭔가 심각하구나’ 했제.
***'그래 좋다. 미국이 손 떼면 우리는 모스크바로 간다'**
가서 만나니 버거는 워싱턴과 비협조관계를 질타하고는 “미국과 협조하고 원조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노’ 할 것인가” 협박을 하는 기라. “만약 ‘노’하면 외교관계를 끊어버리겠다”고 으르렁거려. 통역이 좋은 말로 이걸 전했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전 최고위원들이 안색이 굳어지는 기라.
버거는 이 대답을 2시간 안에 통고하라고 최후통첩을 하고 자리를 뜨려고 해. 그래 “오늘은 토요일이고 박의장에게도 보고를 해야 한다. 내는 이 문제에 권한 위임을 받은 바도 없다. 최고회의 의사만이라면 내주에 답할 수도 있지만 국민의사 묻자면 6개월 걸릴지 1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버텼지.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거에게 “당신은 내 친구이니까 개인적 판단을 말해주고 싶다. 10분 안에 전 주한미군 가족 철수령을 내리게 될지 모르겠다. 외교관계 없는 나라에 비용 들여가며 머무를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MAYBE FOREVER”한 기라. ‘그래, 좋다. 미국이 손떼면 우리는 모스크바 쪽으로 간다.’ 이것이 내 생각이었제.
버거는 이쪽의 의외의 반응을 보이자 “제네럴 유, 토크 모어”하고 물러나. 그래 다시 앉아서 얘기 더 했지. 워싱턴의 불만은 서너가지로 요약 할 수가 있었제.
"우리가 한국 원조한 나라인데 왜 영국에서 돈 찍어오고 알려주지도 않았는가. 유능한 정치인들을 정쟁법으로 묶은 저의가 뭐냐. 어떻게 사유재산(예금)을 봉쇄하느냐. 돈 뭉치는 하나인데 산업개발공사에 대주고 중소기업 육성에도 쓴다는 말이냐." 이런 불만인 기라.
그래서 "너희들은 유능하다고 보지만 부패한 정치인들이 한국에 많다. 이대로 가면 적화될 가능성 많다. 화폐개혁 못 마땅하게 보지만 케인스 경제학의 가장 진보된 수단이 이거다"고 맞받아쳤지.
한창 논쟁을 하다가 격하게 되니까 버거는 나보고 “유 아 바바리안!”하는 기라. 그래 "야, 내 밑에 박사가 6명이나 있다. 이 놈아야" 안했나.
결국 버거는 외교단절한다는 말을 취소하고 우리쪽도 협조하는 것으로 끝난 기라. 내 옆에서 긴박한 상황을 지켜보던 김세련 재무장관이 "휴" 하면서 “하늘이 우리를 도왔습니다. 장군님이 이 자리에 있게 한 게 정말 하늘의 도움입니다”안 하그카나.
***"5.16혁명전에 내가 먼저 혁명을 할려 했다"**
얼마 뒤 김정렴 재무차관이 뛰어 들어 오길래 "와 그러노" 하니까 박의장이 불러 갔더니 예금풀라고 지시했다는 기라. '아하, 이제 내가 최고회의 떠나가는구나' 생각했제.
버거가 뒤로 가서 박의장에게 산업개발공사에 들어갈 돈 4천만달러를 줄 터이니 봉쇄예금 푸는 등 미국측 요구를 들어달라고 해 타협이 된기라. 거기다가 버거와 일전을 벌인 후에 최고회의 안에서는 내가 표적이 된 모양인기라.
하루는 오정근이가 “유형, 조심해야겠습니다. 최고위원들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해. '이제까지 박정희는 (만군)친구였지만 권력싸움에 얽히는구나'고 생각했던 기라.
사실은 5.16혁명전에 내가 할려고 안했나. 15연대장 시켜주면 부산을 덮쳐 깔고 앉으려 했제. 박정희가 이종찬 참모총장에게 내 인사조치를 부탁했제. 그러자 이종찬이는 밴플리트에게 이걸 얘기한 모양이야. 밴플리트장군은 "왜 군인이 정치에 참여하려고 하느냐"면서 ‘노’한 기라. 그러나 벤 장군은 유엔군 사령부로 돌아가 "유엔군 생명, 재산에 위해가 없는 한 간섭하지 말라"고 지시했어. 그래도 이종찬이는 나한테 연대장 발령을 안내주어 불발로 끝난 기라.
박정희가 불출마 공약을 뒤엎고 출마를 한다는 보도가 나올 때이지 아매. 내가 기자회견에서 "박은 그의 애국심으로 보아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 그랬더니 모략이 쏟아져. 내가 박한테 돈을 요구했는데 그걸 안들어주니까 출마를 반대를 하고 있다는 모함이야. 그래도 나는 계속 ‘반대’입장을 밝혔지.
박정희가 만나자고 해. "만나려면 네가 와라" 하고 버텼지. 아매 박은 몹시 화가 났을기라. 아니나 다를까. 한밤중에 박종규가 부하20명을 데리고 집으로 습격을 안 했나. "가자" 그래. "몬가겠다"카니 권총을 빼들어. 실강이를 하다가 "가자" 하고 차에 탔제. 차중에서 박종규가 "혁명정신 잊어버렸습니까" 하길래 "이놈아, 혁명정신 잊어버린 건 너냐, 나냐" 하고 호령을 안 했드나. 그 당시 내가 붙잡혀 간 곳은 이태원에 있는 아지트인데 민간인집인기라.
박종규가 "우리는 장군님이 뒤에서 박장군을 도와드리는 줄 알고 있는데 왜 그러느냐" 하길래 "JP가 뒤에서 다 조정하니 내 할 일이 없데이" 했지. 박종규가 흥분하더니 "JP 죽여버리겠다"고 안하드나. 그날 안가에서 JP 만났제. "그래 느그들이 이런 저런 일 벌리는데 그기 다 잘못된 짓거리라" 야단을 쳤제.
***'4대 의혹사건'과 반혁명사건의 진상**
연행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3시야. 기자들이 몰려와 묻길래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뗐지. 이후 언론은 불출마 번복 등 박정희 잘못을 지적하기 시작카더라. 그리고는 '4대 의혹사건'이 터졌어.
이 4대 의혹사건이라는 기는 박이 자기 잘못을 덮어버리기 위해 터뜨린 것이지 저절로 터진 건 아닌기라. 당초는 새나라, 빠징꼬, 워커힐등 3대 사건이었는데 장태희란 놈이 나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알고 증권파동까지 끌어넣어 4대 사건을 만든기라. 이 의혹사건으로 나도 감방에 잡혀 들어가는 기라.
감옥에 들어가니 여러 놈이 들어와 있어. 반혁명사건까지 겹쳐 있었는 기라. 천병규, 박임항, 김동하, 이규광 등이 있는데, 천병규는 하루종일 뭘 열심히 먹고 있고 박임항이는 철창 밖을 노려보며 박정희 욕만 하고... 김동하는 하루 종일 땅을 치고 울부짖고 이규광이는 "나는 못 죽여"하고 악을 쓰고 있는 기라. "지가(박이) 2백만원 주고 반혁명 음모 꾸미라 카면서 박임항이 김동하 접촉카라 해 놓고 잡아넣었다"는 얘기제.
두달 동안 옥에 갇혀 있는데 계속 내를 회유 안했나. 밤중에 중앙정보부로 데려가더니 "박을 반대하지 말라"카면서 술도 먹이고 밤에는 슬그머니 감방 문 열고 "산책이나 하라" 안카드나. 김종오까지 나서서 "박정희 장군 내세워야 합니다. 참아주십시오"하는 기라. 그래 굽혔제. "알았다. 이젠 말 안하겠다"고 했제. 그러니까 이젠 내를 석방해야 하는데 구실이 없어. 병보석 시킬려도 병이 없는 기라. 수도 육군병원에 내를 입원시키고는 매일 설탕물을 사발로 갖다 안겨. 당뇨병 환자 만들어 내보내자는 기라. 암만 먹어도 안되니까 병원장 협박해서 가짜 진단서를 만드는기라. 그래 석방되었제. 나와서 성모병원에 누워 있자니까 이런 저런 얘기 들려와.
"남산에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는데 잡아넣어야겠다"고 장태화가 꾀를 냈다는 소리를 들었제. 또 임익두(금통위원)가 찾아와 증권파동과 관련해서 자기는 금통위에 내가 압력을 넣었다는 소리를 한 적도 없다고 해. 그걸 모두 녹음을 해 두었는 기라.
***"김대중이, 니 득표에 이겨도 발표에 지고 발표에 이겨도 취임은 몬할기라."**
결국 무죄로 안 끝났는가. 2심 재판이 끝날 무렵 박정희가 보자고 해. 최고회의 의장공관에서 만나 새벽 1시반까지 얘기 안했는가.
"공화당은 정당이 아니다. 당은 정치 이념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야 하는긴데 자유당 민주당 찌꺼기, 부정한 놈, 징역한 놈, 잡놈들을 오뉴월 똥파리같이 모인 게 공화당 당원이다." 내 할 말 다 했제. 박정희는 말 없이 듣고만 있더니 "모레부터 대통령 선거다"라 캐. 아마 내 생각이 어떠냐는 것과 협조를 부탁하는 뜻이 아니겄나.
그래 "근소한 차로 당선될 거다. 도서에서 오는 표가 40만표인데 육지까지 오려면 2,3일 걸려. 무슨 짓 몬하겠나. 또 농촌에서 30만표 만들어낼 수 있어. 그러니 당신이 당선될 게다. 당선되면 혁명 전의 박정희로 돌아가라. 그동안의 박정희의 이런저런 일들은 집권수단으로 이해 할 기다. 국민의 희망은 혁명전의 박정희로 돌아가는 것일 기다" 했지.
집에 돌아와 여편네가 묻길래 만난 얘기를 해 주지 안았나. 여편네는 “당신, 딱해 1백만 당원이라는 공화당 욕했으니 국무총리라도 할 수 있는 처지일 터인데...”안카드나. 여편네 소갈머리하고...그래 "쌍년" 하고 욕을 했제. 하지만서도 다음 날부터 맴이 흔들리는기라. '내 친구는 오직 하나, 박정희인데 가를 버릴 것이가, 들어가 과오를 적게 도와줄 것인가' 괴로워지는기라.
하루는 초저녁에 잠이 깜빡 들었는데 “원식아!”하는 벽력같은 소리가 들려. 키가 8척에 도포를 입은 노인이 “너, 그사람들과 어울리지 마라. 십....에 끝난다. ”
다시 물어 보려 하니 온데 간데 없어져. 깜짝 놀란 눈을 뜨니 전기불이 환해. 일어나 앉아서 참선을 했제. 이기 누구인가, 조상의 영혼이 현몽을 하신기라. 다시 어울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는 기라. 항일투쟁 하다 돌아가신 아버님(柳林: 상해임시정부 요인) 모습이 안 떠오르드나.
나중 언젠가 김대중이가 출마할 때 책 한권을 가져오지 안했나. 보니까 두 가지 흥미 있는 게 있어. 하나는 대중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균형분배라.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 쌀 생산량의 3분지1이 모자라. 다 균형분배하고 남은 넉달은 뭘로 먹고 살기가. 대중정치해서 이 소리 저 소리 생산 없는 시끄러운 소리만 나면 정치되겄나. 니 득표에 이겨도 발표에 지고 발표에 이겨도 취임은 몬할기라. 취임식 하기 전에 머리에 ‘콩알’박혀. 이리 말해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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