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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취재파일 - 한국의 이너서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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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기자 취재파일 - 한국의 이너서클 <8>

김재익수석의 출사표

1983년 10월9일 아웅산 폭파사건때 안타깝게 타계한 고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은 살아 생전에 '전두환 정권의 경제 제갈공명'이라 불리던 경제두뇌이다.
김수석이 타계하기 전해인 82년에 손광식 본지고문은 그와 장시간 시국을 논할 자리가 있었고, 이 기록은 당시 김수석이 밝힌 경제개혁 방향을 기록한 것이다. 손고문은 훗날 "김수석은 학창의만 입히면 바로 공명의 모습이 재현될 정도로 단아하고 깨끗한 선비의 이미지를 풍기는 인물로 국가 경제에 미래를 예측하는 안목에서도 매우 탁월했다"고 평하고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접하는 김수석의 경제개혁 방향은 경이로울 정도로 '선구자적'이다. 이미 당시 그는 재벌체제에서 중소기업체제로의 경제체질 혁명, 시장개방을 통한 무한경쟁체질 단련 및 글로벌 스탠더드의 도입을 제시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완성하지 못한 경제개혁의 골자이다.
살아 생전에 김수석은 이를 관철하기 위해 재벌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을 제정했다. 아울러 역시 재벌들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정보통신방식을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전환, 90년대 남보다 앞선 한국의 정보통신혁명을 가능케 했다. 편집자

청와대에 들어와서 느끼는 건데 경제정책에서 중요한 과제는 '의사결정의 벽을 허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점이예요. 이제까지 장관들은 대통령에게의 1대1의 브리핑을 즐겼습니다. 이건 의사결정의 폭을 좁히고 누가 힘이 세냐에 따라 사안이 결정되는 정치적 결정을 결과하게 됩니다. 금리같은 것도 협의보다는 보따리를 싸들고 들락날락하다가 결말이 납니다. 그러니까 인풋(input)이 약해요. 아웃풋(output)은 생각할 겨를도 없지요.

최고통치자는 자생적으로 일이 어우러지게 유도하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여기에는 자기희생, 대단한 자기희생이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하루하루 자제해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간의 창의를 끌어내는 힘을 길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5차경제계획(82~86년)에는 조선, 자동차 정도만 언급하고 나가자 그런 생각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5차 프로젝트에서 민간기업에 많은 ‘여백’을 남겨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민간의 참여의 폭을 넓히자', 그런 경제철학을 담자는 거죠.

***"이제 우리가 생각할 것은 20개 재벌이 아닌 3만여개 중소기업이다"**

20여개 재벌기업에 대해서 국민들은 이름을 다 알고 있습니다. 이들 대기업군에게 창의적인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금융, 세제 모두 그쪽을 생각하다 보니 중소기업에게 많은 기회가 봉쇄돼온 게 사실입니다. 물론 과거의 정권이 중소기업 지원 안하려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백’이 없었습니다. 미리 정해 놓고 큰 덩치의 공장들 지원하다보니 20여개의 재벌에게 돈이 다 나갔습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쪽은 대기업 이외의 3만여개 기업입니다. 과거엔 청와대가 돈 꾸어 주는 양까지 회의에 걸어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었습니다.청와대에 들어와 한 기록을 보니 '특정기업에 돈 얼마를 지원한다'는 것이 회의록에 남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험논리로 보면 이래요. '창의적인 기업이 정부에 사업을 설명하고 돈을 빌릴 때 청탁압력없이도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중소기업은 살 수 있습니다. 이미 선진의 벽을 깨뜨린 국가들에서 입증된 바 있어요. 우리도 그길로 가려는 것입니다. 과거의 관성이나 재벌의 압력 혹은 관변 이코노미스트들의 비판이 있겠지요. 그러나 한번 앙심을 품고 이 일을 밀고 나가야 합니다.

전두환대통령은 지난번 구미공업단지에 가서 전자산업과는 관계도 없는 시중은행 민영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것은 보다 많은 금융을 유효하게, 보다 많은 기업가에게 배분하려면 은행에 대한 정부간여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본질적인 것부터 접근하자는 뜻에서였습니다.

물론 과거에는 제철이다, 조선이다 해서 몇 개의 기업을 길러 주는 게 유리한 시대도 있었죠.
그러나 지금은 보다 많은 기업이 움직여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미 우리 규모가 열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들만으로 지탱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상투적으로 ‘정책자금 줄여라’식의 소리를 하느니 보다 은행문제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지요.

***"경제에 관한 한, 통치권자는 욕먹을 짓을 해야한다"**

통치자들은 '욕먹을 짓'을 하기 싫어합니다. 그런데 전대통령은 세금 더 거둬들일 각오를 내놓았습니다.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해 놓아야 하고, 그것이 정당하다는 판단이 서면 욕을 먹더라도 길게 보아야한다는 생각에서죠. 만약 지금 세워가고 있는 방향이 실패하면 3만여 기업가가 뛰놀 마당에서는 소리가 안 들리게 되요. 그리고 5차 계획의 ‘여백’은 그냥 빈터로 남게 됩니다.

청와대 경제비서실은 그럼 무엇을 할 것인가. 중소기업 현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며, 지원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테마로 이끌어 내는 겁니다.
50 내지 1백개 기업을 대상으로 청와대가 총동원되다시피 해서 은행, 세무서, 상공부, 생산기술사업단을 대동하고 지방중소기업을 찾고 있습니다. 이건 새로운 지극을 연두에 둔 통치차원의 방법선택이죠.

경영합리화, 품질관리 이것 안하면 죽는다는 생각입니다.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보다 양의 경쟁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질로는 엄청난 격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간단합니다. 공산주의가 견지하는 국영체제의 함정 때문이에요. 품질경쟁력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드러나 있으면서도 숨겨진 ‘비방’입니다. 품질과 생산성은 하나의 기본조건을 요구합니다. 물가가 안정되어야 하는 거지요.

'돈 안 찍겠다’는 생각은 물가안정의 조건을 만들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부에서는 "수세적 정책이다", "여성적 정책이다"하고 비판들을 합니다. 아무것도 안 할려고 한다고 비난하지만 이건 보통 용기 없으면 못하는 일입니다. 저 자원 많고 잠재력이 높은 남미국가들이 하려다 못하고, 하려다 못하고 한 게 바로 이 정책입니다. 저들이 우리보다 몰라서 못 한 게 아니지요. 너무 정부가 주물러 놓는 게 많기 때문에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돈 안 찍겠다’는 그래서 힘듭니다.
독일 부흥의 명재상 에르하르트는 물가안정을 위해 화폐개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미군정에서 그를 체포하려고 한 일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도 돈줄 졸라매는 것 싫어합니다. 에르하르트는 나중에 성공하지만 관료체제의 저항도 많이 받았고 욕도 무척 먹었습니다.

***"독일처럼 외국인투자를 자유화해 국내기업의 엉덩이를 차야"**

최근에 "상공부 쪽이 정책을 잘못한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옛날 박대통령 시절엔 산업지원하면 재까닥해 주더니 그게 없다"는 거죠. 중화학업체가 호소하면 금융지원이다, 세제감면이다, 수입봉쇄다 하면서 아주 기동성 있게 움직여 주었는데 요즘에는 그게 없다는 불만입니다. 여기에 대답을 하라면 "그래, 언제까지 그렇게 길러 줄 것이냐?" 이겁니다. 개방하니까 국내기업 쓰러진다는 쪽으로만 보는 데 ‘경쟁의 위협’을 주자는 쪽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나라로 독일이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를 자유화해서 국내기업의 엉덩이를 걷어찼습니다.

이제 살아남을 기업이 할 일은 한국의 기준이 아니라 비정한 국제기준에 기업전략을 맞추는 데 있어요. 특혜는 바라지도 말고 혼자 힘으로 뛰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흐름이 일어나고 있는 단서를 잡고도 있습니다. 어떤 은행장은 1백80여개의 거래기업을 골라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대출을 집행하고 있고, 어떤 화학회사는 생산성 지도로 경영성과가 30%가 올라가 경영핀치를 완전히 벗어나고 있습니다. 부산에 가면 빽줄 없이 1억원을 융자받아 급신장하고 있는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의 구조 개혁은 어떤 면에서 시운을 타고 있다고 봅니다. 호황기가 아닌 때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황기에 이걸 했다면 여기저기서 혼란이 생기고 비판 비난이 들끓었을 거예요. 잘 되는 기업 죽인다고.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모델은 스웨덴이 돼야"**

궁극적으로 우리는 GNP(국민총생산)가 수십 배인 미국이나 일본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유형을 찾는다면 스웨덴 정도지요. 스웨덴은 GNP 900억달러로 우리의 약 1.5배 정도입니다.근 20년 동안 8백만 인구가 GNP 최상위권을 누리고 있어요. 그 비법은 개방정책에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최고 수익을 올리고 있는 회사는 IBM 스웨덴입니다. 이 회사는 100% 미국이 투자했습니다. 스웨덴은 무엇을 얻었는가. 그건 세금과 매년 35명씩 배출되는 최고급 엔지니어들입니다. 이들이 쏟아 놓는 노하우는 엄청납니다.

올해 물가 20%선을 놓고 안정이라 할 수 있느냐하는 비판론이 제기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가에는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가격 통제를 안하는 가운데 20%가 된 것과 통제를 해서 나타나는 20%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은행인사를 보는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차원에서 인사에 관여했는지 사적으로라도 은행장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렇게 다져가는 과정에서 전체 금융수뇌부가 교체되면 상당한 자율성이 확보되어 갈 것입니다. 과거의 관성 경험으로 사물을 보면 개혁은 안 됩니다. 개혁의 주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낡은 체제에 밀려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지금 발상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지난 79년 문제 제기와 방향설정이 되어 온 것입니다. 단지 그것을 실현시키고 개화시키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는 신이 아닌 이상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년도, 후년도 이 방향은 같을 것입니다. 한국경제가 움직여 나갈 것인가는 이 길을 앙심먹고 가느냐 안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경험 없는 신세대들은 개방경제, 외국자본에 대해 거부반응인 것을 알고 있어요.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주체적 민족경제는 평가되어야 합니다. 자원없는 나라가 무엇으로 성장할 것인가라는 반론은 이제 낡은 관점입니다. 경제에 관한 한 이젠 무국경 시대가 되고 있다는 큰 흐름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81년 IBRD(세계은행)보고서는 2차 오일 쇼크에서 성공과 실패는 무엇이며 실증적 케이스는 어떤 것인가라는 명제 아래 한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은 이 쇼크 기간 중 높은 저축율과 해외저축(외국투자)으로 위기를 극복했고 그 잠재력으로 해서 결국 2차오일 쇼크를 극복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스웨덴 공업정책위원회 라이덴위원장이 청와대를 방문한 바 있는데, 이 양반은 향후 20년 두각을 나타낼 나라로 일본, 싱가폴과 한국을 꼽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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