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정부에서 그동안 누차 민영화 안 한다고 발표했는데도 민영화하지 말라고 파업하는 건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않고 국민경제에 피해를 주는 전혀 명분 없는 일"이라며 "철도 민영화는 정부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철도노조에서 국가경제의 동맥을 볼모로 불법파업을 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신뢰'의 정치인 박근혜 대통령은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전임 대통령의 말을 믿었던 모양이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운하 포기 선언' 후인 2008년 12월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대운하와 관계가 없다고 하니 믿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국민을 속이는 것인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진짜로 4대강 사업이 대운하인줄 몰랐던 사람은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부의 말을 신뢰해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 잘 되라고 정부가 추진한 수도이전 백지화에는 왜 반대했을까.
▲ 박근혜 대통령 ⓒ프레시안(최형락) |
정말로 묻고 싶다. '내가 안녕하면 끝'인가
박 대통령의 발언은 핀트가 나갔다. 첫째, "정부 발표를 신뢰"하라는 얘기인데, 이미 꺼내 놓은 패를 본 사람들에게 '속아달라'고 할 때 속을 사람은 별로 없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11년 수서발 KTX의 운영권을 민간기업에 넘기는 방안을 발표하고, 동부그룹, 대우건설 등의 대기업 투자 유치 설명회까지 열었다. '철도민영화'에 대한 거센 반발이 터져나오자 민간 기업 매각을 슬그머니 접었다. 이후 들고 나온 게 이번 '수서발 KTX 출자회사 설립' 방안이다.
똑같은 회사인데, 민간이 아닌 공공 부문의 투자만 허용하겠다는 안이다. 핵심은 상법상 '주식회사'의 설립 방침이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미 민간 기업 매각 청사진을 본 사람들이 '팔리지 않는 주식회사' 방안을 내놓은 정부에게 '신뢰'를 보낼수 있을까. 과거 신문 기고를 통해 "수서발 KTX는 코레일이 운영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가 이를 뒤집은 코레일 사장의 행태도 신뢰도를 깎아먹는다. 최연혜 사장은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라고 했는데 적어도 우리네 어머니들은 그런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둘째, 박 대통령은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불법 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할 일이다. 경찰은 이제 막 수사에 착수한 단계다. 사측이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법적인 절차를 지킬만큼 지켰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조합원 찬반 투표도 거쳤고, 사측과 공공부문 필수유지업무 협의까지 마쳤다. 이래도 불법 파업이라면 어떤 부분이 어떻게 해서 불법인지 설명해야 할 의무가 정부에게 있다. 백번 양보해도 '합법과 불법' 여부는 따져볼만한 사안이다. 이미 2011년 대법원은 예고된 파업은 업무방해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었다. 혹시 '내가 불법이라고 했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말인가?
셋째, 박 대통령은 철도 민영화는 정부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민영화는 진행되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철도청이 철도공사가 됐고, 철도공사는 시설공단과 분리됐다. 이제 제 2의 철도 운영회사가 들어서려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민영화로 흐르는 과정이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게다가 지금 정부는 '뜻에 부합하지 않는' 민영화 방침을 버젓이 내놓은 정부다. 지난 5월 코레일이 작성한 '경영 효율화 종합대책' 문건에는 정선선·진해선·경북선·경전선·경의선 등 8개 노선을 '민간개방 대상 노선'으로 명시하고 있다.
유권자는 바보가 아니다. 철도 파업에 대한 국민 지지는 유례없이 높은 상황이다. 철도파업 이후 <JTBC>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54%가 정부의 수서발KTX 법인 설립을 민영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응답자의 50%가 경찰의 철도노조 간부 체포영장 청구에 대해 '과도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여론조사 수치로 드러난다. 신뢰는 '신뢰하라'고 명령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정말로 묻고 싶다. '내가 안녕하면 끝'인 것인지. 박근혜 대통령님, 진짜,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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