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전 사장이 물러나기 전, 코레일의 고위 관계자들 역시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간혹 수서발 KTX 설립을 밀어붙이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수서발 KTX 설립에 딴지를 걸던 일부 고위 인사가 정 전 사장 사퇴 이후 한직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그는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서도 "대충 아시지 않나요"라며 뼈있는 말을 던졌다. '슈퍼갑' 국토교통부에 당할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예상했던대로, 국토부는 자신의 뜻을 코레일에 관철시켰다. (관련기사 : 코레일, 국토부 '꼭두각시'? 수서발KTX 설립 강행) 불편해하던 이슈를 적극 홍보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코레일, 그 때문인가? 말이 꼬이기 시작했다.
▲ 철도노조가 8일 밤, 사측과 협상이 결렬된 후 청량리역에 나와 파업 결의대회를 벌이고 있다. ⓒ철도노조 |
"민영화인지 아닌지"는 "코레일의 의사"에 달려 있다?
KTX는 기본적으로 코레일이 운영한다. 그런데 현재 공사중인 수서-평택 구간 선로를 쪼개 새로운 KTX 운영회사를 만든다는 것이 '수서발 KTX 논란'의 골자다. 당초 이명박 정부는 이 노선 운영을 대기업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특혜' 비판과 '민영화' 논란이 겹치면서 무산됐었다. 이후 국토부가 내놓은 방안이 코레일의 자회사로 설립하는 것이었다. 일관성이 있다. 별도의 '수서발 KTX 주식회사'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분 매각을 염두해 둔 포석으로 여겨졌다. 지분만 매각하면 '알짜배기' 노선이 민간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처럼 '철도 민영화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국토부는 코레일의 지분율을 높이고 공적 자금만 투자받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한 후 "민영화 우려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코레일은 8일 배포한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민간에 지분을 매각하도록) 정관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참석주주 3분의 2 이상, 전체 주식의 3분의 1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며 "이번에 코레일 지분을 41%로 확대함으로서 코레일의 의사에 반하는 정관 변경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매각이 절대 불가하니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장담하는 근거가 고작 "코레일의 의사"인 셈이다. 뒤집어말하면 "코레일의 의사"가 바뀌면 언제든지 정관이 바뀔 수 있고, 언제든지 민간 자본에 매각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는 인정한 셈이다.
과거 수서발 KTX 법인 설립에 반대하다 갑자기 쫒겨난 정창영 전 사장을 보면, 그 "코레일의 의사"라는 것은 바람 앞의 낙엽에 불과할 뿐이다. 철도노조가 이번 수서발 KTX 설립을 국토부가 추진하는 "민영화의 전단계"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영화 철회"했다는 코레일, 朴 공약 뒤집고 '민영화 추진'했다는 것 자인
다른 부분을 살펴보자. 코레일의 말은 계속 꼬여간다. 이 자료를 통해 코레일은 "수서발 KTX는 국민이 우려하는 민영화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서, '코레일의 의견을 수용해 민영화를 철회하고 코레일 주도하에 점진적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서승환) 국토부 장관께서도 밝힌바 있다"고 했다.
장관이 "민영화를 철회"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현재까지는 민영화를 계속 추진해왔다는 것인가?
비슷한 예로 이 자료에는 "또한 최연혜 코레일 사장도 민영화가 다시 추진된다면 선로에 드러누워서라도 민영화를 막아내겠다고 밝힌바 있듯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다시 추진된다"니, "국민의 뜻에 반하는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탄생한 박근혜 정부가 거의 1년 동안 "국민의 뜻에 반하는 민영화"를 추진해왔다는 것인가? "대선 공약을 뒤집었다"는 민주당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는 민영화 논란이 일때마다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강변해왔다. 그런데 이제와서 "민영화를 철회"했다느니, "민영화가 다시 추진된다면"이라든지 하는 표현들을 쓰고 있다. 국토부와 코레일이 '민영화 반대 주장'에 되려 힘을 실어주고 있다. 왜 노조와 야당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느냐고 한다. 코레일은 스스로 낸 '보도자료'를 뜯어보길 바란다. 거짓을 말하는 이들에게 기울일 '귀'는 없다. 유권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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