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을 닷새 앞둔 12월 14일 부산 서면 비가 주룩주룩 오던 날.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이던 김 의원은 부산 서면역 인근 쥬디스태화 앞에서 열린 대규모 유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대화록을 입수해 최초로 공개한다며 '울부짖듯' 문제의 '찌라시'를 읽어내려갔다. 6개월 후, 국정원이 무단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원문의 8개 항목, 744글자가 유사한, 일부는 토씨까지 똑같은 찌라시였다.
기자도 발 디딜틈 없이 사람들이 들어서 있던 그 자리에서 비를 맞으며 주머니 속에 녹음기를 켜 두고 있었다. 김 의원의 말이 너무 그럴듯해서 한 시도 눈과 귀를 뗄수 없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 자리에 모인 박 대통령 지지자들도 기자와 마찬가지 심경이었다. 박 대통령의 한 지지자는 김 의원의 연설을 들은 후 흥분해 "빨갱이들을 잡아 처단해야 한다"는 거친 언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의원이 지난 대선 때 함께 유제장에 섰다. ⓒ연합뉴스 |
그런데, 그 때 읽었던 국가 특급 기밀의 대화록이 '증권가 찌라시' 형태로 새누리당에 입수됐다. 이것은 보통 큰 문제가 아니다. 여의도 흔한 속설로 "찌라시는 90% 믿으면 안된다"는 말이 있는데, 틀렸다. 찌라시는 적중했다. 그것도 남북 정상간 은밀한 대화 내용을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정확히 맞췄다.
검찰은 증권가를 샅샅이 뒤져 '찌라시' 유통 경로를 찾아내야 한다. 그야말로 무단 유출된 국가 특급 기밀이 사설 정보를 다루는 업체 어느 곳으로 흘러들어갔고, 그것이 월 얼마의 헐값으로 여의도 증권가에 퍼져나갔는지 밝혀야 한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닌 상황이다. 국정원의 정보 관리 시스템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정보 구멍'을 찾아내고, 최초 유출자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국정원을 무용지물로 만든 '찌라시'의 실체를 검찰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김 의원이 주장한 '증권가 찌라시'가 실재한다면 수사는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정보망에 난 구멍을 찾기 위해서는 김무성 의원의 보고 라인을 역으로 추적하는 방법이 있다. 출처에 대해 김 의원은 모른다고 말했지만, 당시 박근혜 캠프 선대본부의 공개된 지휘 체계를 활용해 수사하면 된다.
이 부분도 생각해봐야 한다. 김무성 의원이 모르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는데, 6개월만에 우연히 진짜로 밝혀졌다면 어떤 법조항을 적용해야 하는지, 법무부는 조속히 태스크포스팀을 꾸려야 한다.
만약 김무성 의원의 말대로 찌라시 내용이 "정문헌 의원이 얘기한 것이나 월간지 기사, 블로그 글과 동일해서 대화록 일부라고 판단했다"고 한다면 정문헌 의원도 조사해야 한다. 월간지 기사와 블로그 글을 쓴 블로거도 수사 대상이다. 김 의원이 당시 '찌라시'를 "대화록 일부라고 판단"을 한 부분도 문제다. 김 의원은 국가 기밀이 유출됐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검찰이나 국정원에 당장 신고해야 마땅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범죄에 대한 '불고지'의 책임으로부터 김 의원은 자유로울 수 없다.
찌라시를 작성한 모종의 '업체'를 찾아냈다고 가정하자. 검찰은 다른 국가 기밀이 유출된 것은 없는지, 추가로 강도 높은 조사를 해야 한다. 혹여 로또 번호나 수능 문제 등이 찌라시 업체에 미리 유출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국가의 특급 기밀과 744글자가 똑같은 '찌라시'를 작성할 수 있는 그 업체의 능력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된다.
박근혜 후보 유세에 김 의원이 찌라시를 활용했다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에 대한 시민 대중의 분노를 '찌라시'로 부채질했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찌라시 유세'로 탄생한 정권이라는 말을 듣게 된 박 대통령에게 김 의원은 당장 사과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검찰은 김 의원의 진술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심해야 한다. 찌라시를 만든 기관이 대화록을 언제나 확인해볼 수 있는 기관일지 모르는 일 아닌가. 찌라시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사설 정보업체도 있지만 어떤 정보 기관이 만들어 특정 인사에게 배포한 찌라시일지 모른다는 가정도 검찰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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