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에 뜻이 없음을 거듭 밝혔다. 이로써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을 수복(收復)하려던 여권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정 의원은 3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에선 내가 직접 후보가 되는 것보다 능력 있고 자격 있는 우리 당 후보들을 돕는 것이 내 역할이 아닌가 한다"며 서울시장 불출마 의사를 재차 확인했다. 여론조사 결과 가장 경쟁력 있는 여권 후보라는 말에도 정 의원은 "제 역할은 우리 당이 이기는 걸 돕는 것이라고 본다"며 선을 그었다. 이어 정 의원은 "저는 서울시장에 나간다는 말을 한 적도 없다"며 여권의 기대를 불식시켰다.
정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달라"는 권유에도 꿈쩍하지 않을 모양새다. 오히려 "청와대는 청와대가 할 일을 하는 게 (여당을) 돕는 것"이라며 "(청와대가) 공천에 관여하는 것은 선거 승리에 도움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조선>이 기획 기사 '새해, 정치주역에게 듣는다' 첫 대상자로 정 의원을 만나 간접적으로 서울시장 출마를 강권한 셈이지만, 정 의원의 불출마 입장은 확고했다. <조선>은 기사가 발행되기 전날(2일)에도 정 의원 측에 출마 의사를 거듭 확인했다. 그러나 정 의원 측은 "언론사 신년 여론조사 결과와 무관하게 지난 연말부터 이런 (불출마)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못 박았다.
<조선>과 정 의원의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31일 진행됐다. 앞서 <조선>은 12월 28일과 29일 양일간 서울시장 후보 가상 대결 여론조사를 실시해 1월 1일 보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 의원의 맞대결은 50.2% 대 40.0%로 10.2%포인트의 격차를 보였다.(☞ 관련 기사 : 박원순, <조선> 여론조사에서도 '백전백승')
무엇보다 정 의원은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현재 서울 민심이 대선 때보다 악화됐다고 내다봤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서울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문재인 후보에게 5%를 졌는데, 지금 상황이 그때보다 좋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서울 득표율은 51.42%, 박근혜 후보의 서울 득표율은 48.18%였다. 두 후보의 격차는 3.24%포인트 차다.
정 의원은 서울 민심 향방에 주목하며 야권 후보 단일화를 예상했다. 민주당과 안철수신당에서 각각 후보가 나와도 "야권 지지자들은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찍게 된다"며 "결국 하나가 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야권이 총 결집해 공세를 펼칠 것이라는 시각이다.
7선 경력에 대권 도전 두 번, 그러나 정 의원은 새누리당 내 세가 크지 않다.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 대표 등 친박계가 주도하고 있는 당내 상황과도 한 발짝 떨어져 있다. 정 의원은 '계파적' 입장에서 쓴소리를 하는 이재오 의원과 달리, 당권과 대권 등 박근혜 대통령과는 '경쟁자' 입장을 고수했다.
정 의원은 박 대통령 집권 1년에 대해 '정치가 실종됐다'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이 "정치를 멀리하고 행정 위주로 일을 했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집권 여당 스스로 국정 어젠다를 만들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많이 부족했"으며 외부 상황에 따라가기 급급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을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대선 불복 시비에 휘둘렸다는 질타이다.
그러면서 정 의원은 올해 박 대통령이 "인사 문제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권 초기부터 문제가 됐던 박근혜 인사 스타일을 지적한 셈이다. 정 의원은 또 "개헌에 대해 청와대가 긍정적이면 좋겠다"는 말로 개헌 찬성 입장을 밝혔다. 이어 정부의 강도 높은 기업 세무조사를 꼬집으며, 정부의 세무 행정이 "법치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대북 관계에 대해서는 "북한 김정은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며 "단기간에 북한 정권이 극단적으로 불안정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 '정몽준 앓이' 하나…
한편, <조선>은 같은 날 '정몽준 불출마 의지에도… 새누리 "더 두고 봐야"' 기사에서 정 의원을 향한 새누리당의 오매불망(寤寐不忘)을 전했다. 정 의원의 확고한 불출마 의지에도 새누리당 관계자들이 "그래도 (서울시장) 출마 여부는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
<조선>은 정 의원의 불출마 배경으로 2017년 대선을 꼽았다. 신문은 정 의원과 가까운 인사의 말이라며 "(19대) 대선에 나서려면 2016년 말부터 준비해야 하는데, 서울시장 2년 하고 '이제 대통령 하겠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정 의원의 목표는 대권이라는 사실을 주지했다.
<조선>은 또 새누리당 내에서 정 의원을 지방선거 흥행용으로 쓰려 한다는 '불쏘시개론'을 거론하며,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이 당내 절대다수인 친박 진영에 좌우되는 만큼 정 의원 측이 "청와대가 정 의원에게 호의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대항마'로 정 의원만한 카드가 없다는 현실을 정부여당 모두 인지하라는 첨언이다.
이어 <조선>은 "정 의원 외에는 박원순 현 시장을 꺾을 만한 카드가 없는 상황이 되고 당 전체가 정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차기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서라도 '당심(當心)'에 따라 출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정몽준'으로 대동단결한다고 정 의원의 대권 열망이 사그라질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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