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포털 사이트 <다음>이 조사한 2013년 검색어 톱 10에서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이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일본 만화에 열광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안타까운 자화상이다. 뿐만 아니라 이 '진격의 거인' 영향으로 우리 사회 각종 유행어에 '진격의~'라는 말이 잇달아 생겨났다.
그런데 '진격의 거인' 작가인 하지메 이사야마는 잘 알려진 대로 식민지 근대화론자이다. 그는 "일본의 통치로 조선인 인구와 수명이 2배로 늘었다"고 발언한 바 있으며, "한국이 생기기 40년 전부터 있던 일본 군대를 나치와 같다고 보는 것은 난폭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밝히기도 했다.
더구나 그는 2010년 '진격의 거인' 등장인물 중 한 명의 모델이 러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 장군 아키야마 요시후루인가라는 독자의 질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분을 모델로 하는 것은 황공한 일입니다. 그의 인품에 경외감을 갖고 있습니다."고 밝혔다. 요시후루는 1916년 조선주차군사령관으로서 고종 황제 특사이던 이준 열사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 참석을 제지했던 인물이다.
<프레시안> 애독자로서 필자로 하여금 더욱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프레시안> 기자분들의 글에서도 '진격의~'라는 용어가 적지 않게 '애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레시안> 기자분들의 글을 살펴보면, '진격의 박근혜'를 비롯하여 '진격의 엘리트', '진격의 갑(甲)', '진격의 극우' 등 많은 '진격의~' 시리즈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주박, 체념, 기모바지......
필자는 일본학 전공 교수의 프레시안 기고문에서 '주박(呪縛)'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이 '주박'이라는 용어는 일본이 만들어낸 일본식 한자, 즉 '일제 한어(日制 漢語)'로서 "주술의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심리적으로 사람의 마음의 자유를 잃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되어 있다. 같은 기고문에서 '정초(定礎)', '폐색(閉塞)'이라는 일본식 한자 용어도 사용되고 있다.
언론계 역시 '간지난다' 등의 일본 최신 유행어까지 들여와 보급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 정계를 한 동안 시끄럽게 했던 '귀태(鬼胎)'라는 말도 본래 특수한 의학용어였던 것을 일본의 한 작가가 다른 의미로 전용하여 사용한 용어이다.
한편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의 프레시안 기고문, "겨울이 다가온다···이제 체념하자"에서 중심어로 사용되고 있는 '체념'이란 용어는 일본식 한자를 그대로 직수입한 사례이다. 물론 장 부대표 역시 기고문에서 "우리의 일상어에서 '체념(諦念)'은 '좌절'의 동의어로 읽히지만, 본래 이 말은 '도리를 깨닫는 마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의 '생각하고 바라는 바'(염, 念)를 '살핀다'(체, 諦)는 것이다."라 하여 그 원래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있지만, '체념(諦念)'이란 본래 '심사숙고하다', '깊이 생각하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원래 한자의 의미와 전혀 다른 '포기하다'라는 의미의 일본식용어로 변용되어버린 것이다.
언어생활은 사고를 규정한다
일반적으로 '일제 한어'는 한자의 원의(原意)에 어긋나거나 어법에 맞지 않아 결국 우리 국어를 왜곡, 오염시키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일제 강점기에 이미 '정복자'의 언어에 의하여 철저히 지배되어온 우리 국어는 현재에 이르러서도 '일제 한어'가 지속적으로 직수입되어 널리 보급되는 수난을 맞고 있다.
일본식 용어를 무분별하게 직수입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아베 일본 수상이 노골적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 확보니 평화헌법 수정 등 일본군국주의의 부활이 날로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 참으로 깊이 성찰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함', '-음'의 공문서 방식도 일재 잔재
필자는 얼마 전 한 주간지에 '-함'이나 '-음'으로 문장을 끝맺음하는 공문서의 이른바 개조식 문장이 일본 강점기에 이식된 잘못된 문장 형태라는 점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공문서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더구나 대단히 좋지 못한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고 있다고 판단하여 활발한 논의를 기대했지만 전혀 반응이 없어 이에 관련된 글을 다시 여기에서 주장하고자 한다.
우리 주변에서 '-함'이나 '-음'으로 문장을 끝맺음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다'로 문장을 끝맺는 일반적인 서술식 문장이 아니라 이른바 '개조식' 문장이다. 이러한 개조식 문장 방식은 일반적으로 문장을 짧게 끝내고 요점만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다고 이해되면서 공직 사회의 공문서는 물론 기업의 보고서에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일본제국 헌법과 '-함', '-음'의 문장방식
그런데 '-함', '-음', '-임'으로 문장을 끝맺는 이러한 형태의 문장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우리나라에 강요된 방식이다. 일본 메이지시대에서 「대일본제국 헌법」을 비롯하여 '권위가 요구되는' 법령의 문장이나 교과서 등에서 이른바 '문어(文語)'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문어' 문장들은 이를테면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함(天皇ハ陸海軍ヲ統帥ス, 「대일본제국헌법」 제11조)"나 "규정에 따라 청원을 행할 수 있음(規程ニ従ヒ請願ヲ為スコトヲ得, 「대일본제국헌법」제30조)" 등으로 끝을 맺고 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다'를 생략하고 '-함', '-음'으로 문장을 맺는 형태이다.
한편 우리나라 구한말 시기의 문서를 살펴보면 순한문 문장의 시기를 지나 한글이 사용되던 초기에는 거의 모든 글이 '-하니라' 로 끝맺음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일본 법률이나 서적을 그대로 직역하면서 일본 문장을 그대로 모방함으로써 비로소 '-함'이라는 글자가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공문서의 경우에도 일본의 공문서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였고, 이에 따라 '-함'으로 끝맺음하는 일본 공문서 양식이 그대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내각을 비롯한 각급기관에서 공문서를 작성할 때 일본인 고문이 모든 문서를 검토하고 결재하도록 하였다. 그 일본인 고문 중에는 심지어 일본 포병 소좌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서는 '-함', '-음'으로 끝맺음하는 이러한 문장 방식은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법률만이 아니라 공문서에서도 완전히 폐지되어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다.
'-함', '-음', '-임' 등으로 끝맺는 문장 방식은 우선 우리 국어의 온전한 문장 구성을 저해하고 기형화시킴으로써 우리 국어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 역기능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조식 문장은 문장의 작위적인 '강제' 완료로 인하여 오히려 글이 번잡해지거나 비문(非文)이 출현하고 의미 전달도 잘 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함'이나 '-음' 혹은 '-임'으로 끝나는 문장 방식은 스스로 서둘러 결론을 내려 끝을 맺음으로써 읽는 사람과의 대화와 소통을 지향하는 대신 명령자 혹은 규정자 입장의 권위주의적 특성을 보이며 결국 상호 간의 소통을 저해하기 쉬운 문장 방식으로 변질된다. 이러한 방식의 문장은 대부분의 경우 주어가 생략된 채 글의 내용이 과연 글쓴이의 주장인지 아니면 타인의 주장인지 알지 못하게 되어 책임 소재가 실종된다. 또 정식으로 주석을 표시하지 않은 채 타인의 주장과 논리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표절에 둔감한 사회를 조장시키게 된다.
본래 명사화소(명사형 어미) '-(으)ㅁ'은 '확정성'이나 '결정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문장 마지막에서 '-함'이나 '-음'으로 끝내는 문장의 경우 이러한 경향성은 더욱 강화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권위주의적 특성으로 인하여 권위적 관료주의 문화를 심화시킨다.
더구나 일본에서도 이미 사라진 일제 잔재가 국가 공직 사회에 의하여 여전히 주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과 희화성이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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