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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말 잘못하면 감방 간다"더니 돌아온 건…

[2013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 입상작·③] 학교 비정규직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아름다운 재단이 함께 진행한 '2013년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에 입상한 글 5편을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세 번째 글은 한 사립학교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이사장 지시로 비리 문제로 비화할 장부 파기까지 하며 충성을 다 했는데, 어느날 6개월 짜리 계약서에 도장 찍지 않으면 나가라고 했다는 절절한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나는 비정규직 청소부이다. 오늘도 화장실에서 변기들과 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얘들아 안녕! 잘 지냈지? 오늘 하루도 잘 보내자." 청소는 하찮은 직업이 아니다. 환경을 깨끗하게 바꾸어 주는 고귀한 직업이다. 젊은 나이에 그것도 대학을 나와서 청소를 하는 나를 보면서 학생들이 혀를 찬다. 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느냐고, 무엇을 잘못했냐고, 불쌍하다고, 안되었다고, 한심하다고, 대단하다고, 끝까지 견디라고…. 나는 이 고단한 현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청소부 노릇을 한지도 벌써 7개월째로 접어들고 있지만 부정하고 싶은 이 현실을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2003년 12월 26일, 모 고등학교 행정실에 첫 출근을 했다. 첫날부터 야근을 했다. 이놈의 일복은 어딜 가든지 늘 따라다닌다. 이사장님이 아시는 분들에게 연하장을 발송해야한다며 몇 년 치의 주소록을 수정하는 일을 했다. 행정실 직원들은 6시가 되어서 퇴근을 하는데 나는 출근 첫날 10시까지 주소록과 싸우며 일했다.

2004년 1월 1일 자로 중고등학교수납과 전자문서 담당자가 되었다. 그런데 3월 중순에 행정 일을 도맡아 하던 여직원이 퇴직을 했다. 그 직원이 감사원 감사 때 공금횡령죄로 걸린 벌로 야간 업무를 맡겼는데 반발하고 자기 발로 나간 것이다. 어차피 있어봤자 징계를 당하게 생겼으니 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 바람에 나는 고등기술학교와 중고등학교 지출과 수납, 고등기술학교 급여, 재정결함, 전자문서업무를 배당받았다. 그 여직원이 있을 때 업무를 물어봐도 업무를 모른다고 했었는데 그만두는 마당에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줄 리 만무했다.

재정결함신청이란 것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재정결함이란 사립 학교에서 보조금을 신청하는 일이다. 즉 기준재정 수입액이 기준재정 수요액을 충당하지 못하여 부족액이 발생한 경우 그 부족액을 재정 지원하여 사립학교 운영의 정상화 및 내실화를 도모하기 위한 일이다. 1호에서 26호 서식까지 되어 있었는데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2~3개뿐. 행정실장님에게 물어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알아서 하세요"였다. 뭘 알아서 하란 말인가? 학교 일은 처음이고 용어도 생소한데. 무엇을 물어보려고 해도 다른 학교에 아는 사람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제출할 날짜에 서류를 싸들고 교육청 담당자를 찾아갔다. 사정을 말했다.

"학교 일은 처음인데 가르쳐 줄 사람도 없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분이 웃으면서 전체적인 맥락을 가르쳐 주고 신청일을 늦추어 주었다. 또 행정실장 연수 실무 책을 주면서 그 책에 적힌 대로 하라고 했다. 워낙 책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처음부터 하나도 빼지 않고 열심히 읽으면서 일을 했다. 학교 실정과 맞지 않는 내용도 최대한 맞추어 가면서 없던 장부도 만들었다. 일에 대한 애착과 중독이 있던 나는 하루라도 빨리 행정 일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일념 하나로 밥 먹듯이 야근을 했고, 일요일도 가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한다고 칭찬했다.

직원들은 학생들이 행정실에 오면 고개를 들지 않는다. 업무도 많은데 학생을 상대하면 자신의 일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은행에서 하던 습관이 몸에 배어서 벌떡 일어나서 인사를 하며. 웃으면서 맞이하고 안내하면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다. 학생들이 친절하다고 칭찬을 많이 했다. 이사장님도 나를 믿고 모든 일을 맡겨주시며 "네가 없으면 불안하니 휴가는 가지 말라"고 해서 몇 번은 휴가도 찾아 먹지 못했다.

한번은 학교가 비리 문제 때문에 시끄러워진 적이 있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이사장님에게 교무실 선생님에게 이상한 선생이나 의심 가는 선생이 있었냐며 몇 번이나 불려 갔었다. 또 교육청 감사에 대비하기 위하여 1달 넘게 야근을 해야 했다. 이사장님은 나를 불러서 "네가 맡은 업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절대로 주차권 판매와 식권 판매를 관계자들에게 얘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안심이 안 되시는지 여러 번 확인 하시면서 입단속을 시켰다.

"네가 말을 잘못하면 나는 감방에 간다.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

몇 년 동안 모아 놓았던 주차권과 식권을 없애느라 먼지를 마셔가며 절단기에 파쇄를 하고 장부를 없앴다. 결과는 부당 인사 발령과 퇴직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내가 생명의 은인이고, 감방 갈 것을 막아주었는데, 어떻게?'

교육청에서 9명의 선생과 1명의 행정실장만 보조를 해주겠다는 결정이 났다. 행정실 직원은 3명이었고 교사는 9명, 모두 12명이었다. 이사장님은 나에게 교육청에 가서 관계자 바지를 붙들고 가서 통사정을 하라고 시킨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나고, 호봉도 줄게 되었다. 정말 말이 안 된다. 남자 직원은 예술학교에서 받던 호봉 그대로 청암중고등학교로 발령을 내면서 나는 여자라고 차별하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변함없이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결과는 월급을 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12호봉이나 깎인 것이었다.

어느 날 행정실장이 부르더니 계약직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왜 내가 정식 직원으로 들어왔는데 무슨 계약직이냐 했더니 행정 직원 모두가 다 쓸 건데 한 선생이 먼저 쓰는 것이라고 안심을 시킨다. 위에서 시킨 거니까 찍기 싫으시면 나가라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1년 계약직에 도장을 찍었다. 하루가 지나서 교장이 왜 일 년으로 했느냐고 6개월로 다시 작성하라고 했다.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 그러나 힘이 없기에 당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 앞에 암담하고 한없이 작아지는 나, 강자의 횡포 앞에 없는 자의 슬픔이 몰려왔다.

2012년 2월 중순에 실장이 부른다. 겁이 덜컥 난다.

"한 선생, 교장선생이 내년 3월에는 한 선생을 재계약할 수 없데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왜요"
"교무실선생은 정년까지 일할 수 있지만 행정실 여직원은 아무리 일을 잘해도 정년까지 할 수 없어요, 또 행정실 여직원 2명 중 누구 하나도 선생님과 같이 일하기 싫어하고, 잡는 사람이 없는데요."


너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그동안 얼마나 몸 바쳐 충성했었는데…. 옛날 누군가가 해주었던 충고가 새삼 떠오른다.

"한 선생님 제 말 잘 들으세요. 제가 보니까 선생님 너무 열심히 일하시는데 그렇게 하지 마세요. 제가 이사장님을 잘 아는데요. 언젠가는 선생님 발등을 찍고 후회하는 날이 오게 될 거예요.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소용없어요. 이 학교는 뇌물로 큰 학교예요. 때마다 선물이나 잘하고 아부를 떨어야 오래 버틸 수 있어요. 명심하세요."

이사장님의 특별 배려로 식당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한다. 겨울방학 동안에 건물 지하 1층을 몇억을 들여서 리모델링을 했다. 공사가 늦어져 방학도 늦추면서 공을 많이 들였다. 나보고 식당 책임자로 내려가서 메뉴 개발과 손님 유치, 영양사, 위생사 역할, 직원 교육, 매점, 식당 관리, 직원 관리, 식당 청소를 하란다. 살림도 하지 않던 나에게 식당일이라니? 실장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 "그래도 식당에 가서 설거지하라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그 나이에 어디에 가서 취직을 하느냐? 상민이 대학도 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생각하세요. 나 같으면 복잡한 행정 일보다 이게 더 낫겠네."

이사장, 교장의 딸랑이 노릇하면서 평상시에는 그렇게도 욕을 해대더니만 실장이 되고 나서 어떻게 저렇게 싹 변할까? 배신감! 말할 수 없는 모멸감! 버림받았다는 상실의 아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통곡이,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분노와 슬픔과 좌절이 한없이 몰려온다.

가슴에 피멍이 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나고,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이렇게 비참한 현실일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이건 부당한 일이다. 신고를 해야 하나? 법이 있는데 이렇게 당하고 있어야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고, 며칠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말을 했다. 정말 미안하고 죄송했다. 그 말을 들으시는 노모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질까? 그래 때려치우자.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왜 밀려나는 거지? 왜 버림받은 거지? 잘못을 하고 당하는 일이라면 내가 납득할 수 있는데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동안 받아왔던 차별대우와 여러 가지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사장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커피에 아이비 잎을 넣을까? 황산을 얼굴에 뿌릴까? 그렇게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나이 때문이라니 말도 안 돼. 내가 늙어서 머리가 허연 것도 아니고, 눈이 안 보이는 것도 아닌데. 법에 정년이 명시되어 있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사람을 가지고 놀다니. 너무 억울하고 분하여 얼굴과 손이 뻘게진다. 잘 생각해서 답을 달라고 한다. 하긴 이런 일이 하루 이틀째인가? 그래도 나는 꾀 안 부리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마." 이런 소리 안 듣는 게 어딘가? 교무실선생들 중 교감을 통하여 "너 언제부터 나오지 마!" 하는 소리에 눈물을 머금고 그만둔 사람이 한두 명인가? 너무 울어서 왼쪽 눈이 이상해졌다. 추천서를 들고 백병원에 갔더니 심한 충격으로 눈을 다쳤느냐고 의사가 묻는다. 다친 게 아니고 정신적 충격으로 너무 많이 울었다고 했더니만 레이저 수술을 25만 원을 주고 했다.

식당에 내려갈 때 행정실에서 하던 몇 가지 업무를 가지고 갔다. 8시부터 7시까지 근무에 월급 160만원, 보너스 없음. 시간 외 수당 없음. 교직원식당에 6가지 메뉴와 밥과 국을 수레에 싣고 가는 길은 너무 멀고, 창피했다. 같은 선생님들 보기에도 민망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덜덜거리고 잘 밀리지 않는 수레를 끌고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학생급식실과 매점을 오가며 일을 하였다. 다리가 퉁퉁 부었다. 매일 앉아서 일을 하였는데 종일 서 있어야 한다. 책상과 의자도 없다. 매점장의 책상과 의자에 앉아서 사무를 보았다. 학생들이 웬일이냐고 묻는다. 이사장님이 발령을 냈다고 했다. 식당을 활성화하기 위해 식당 책임자로 왔다고 했다. 욕들을 한다. 어른들이고 학교 사정을 너무 빤히 잘 알고 있는 재학생들이니까.

신입생들은 나를 영양사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줌마인데 그 소리가 듣기 싫고 생소하다. '선생님'이라는 소리가 귀에 익었나 보다. 석 달 동안 행정실장이 식당에 내려와 많은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서 소리도 지르고 많이 괴롭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사장이 "한기춘이 3개월도 못 버티고 제 발로 걸어나갈 거다. 잘 봐라. 내 말이 맞을걸"이라고 했단다. 못된 사람, 나쁜 사람, 나에게는 "너는 할 수 있어. 믿음도 있고 똑똑하니까 잘할 수 있을 거야" 하면서 온갖 감언이설을 하더니만.

1년 1개월이 지났다. 노동절 날 행정실로 오라고 부른다. 또 뭘 괴롭히고 사람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부르나 싶어 올라갔다. 한 선생에게 1년 동안 일할 기회를 주었는데 운영을 잘 못해서 4월말 부로 식당에서 잘렸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다. 그런데 불쌍해서 대학건물 청소부로 발령을 냈으니 청소를 하든가 그만두든가 하란다. 식당에 내려갈 때 예상했던 일이라 작년보다는 충격이 덜한 것 같았지만 또 눈물이 쉴 새 없이 나온다. 식당집사님들이 그만두라고 한다. 아들과 부모님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간다. 이 모욕감, 곤욕, 배신감…. 몇 날 며칠 분하고 억울하고 잠도 못 자고 소설 같은 이 현실에 절망하고 있는데 부학장이 찾아와서 왜 청소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다닐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고 했더니 자신의 충성심을 얘기하며 왜 청소를 못하냐고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나도 67세인데 며칠 해봤는데 괜찮다고 한다.

엉겁결에 청소를 시작했다. 이건 아니다 싶은데. 청소 아주머니가 몇 달 동안 없었기 때문에 학교 전체가 먼지 투성이었다. 제일 먼저 1층 교직원화장실을 물을 세게 틀어놓고 울면서 청소했다. 집에서도 안 하던 청소. 하나님께서 내가 청소를 하지 않으니까 이런 일을 시키셨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내가 미쳤나 보다. 일주일 넘게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허리도 아프고 손가락도 아프다. 대학생들이 내가 청소를 하니까 송구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사장님이 5월부터 120만 원짜리 청소부로 발령을 냈다"고 했다. 학생들이 또 수군수군. 내 얘기가 좍 퍼졌다. 창피하다. 하지만 난 당당하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3일을 일하고 나니 몸에 이상이 왔다. 잠을 못 자고 밤에 아무도 모르게 울면서 밤을 지새우다가 아침이 되면 나와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청소했다. 현실을 부정하려고, 잊으려고.

어느 날은 생리가 있어 많이 어지러웠지만 학교에 갔다. 청소를 조금 했는데 너무 아파서 양호실에 가서 누웠다. 그랬더니 부학장이 점심 먹고 보자고 한다. 며칠 일해 놓고 시위 하냐고 묻는다. 아파서 그랬다고 했더니 아프면 집에서 누워있지 학교는 왜 나왔느냐고 아픈 사람이 점심은 제일 먼저 와서 먹느냐고 하면서 이사장이 한 선생 불쌍하고 사랑해서 건물 청소부 일자리를 줬으면 몸이 부서져라 일해야지, 나 같으면 몸이 부서져라 일 하겠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나를 주시하고 있단다. 성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다나. 내가 따져 물었다. "정년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사람을 이렇게 대할 수 있냐"고. 그러자 그건 밖의 일이고 우리 학교는 다르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학교가 더러워서 고등학생에게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 이사장 욕 먹이는 것이라고 한다. 너무 어이가 없고 분노가 치밀어서 미친 듯이 8시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 쓰러졌다. 교장도 청소 일에 관심이 있는지 화장실점검표를 만들어 붙이라고 했다. 참 대단한 학교다. 부학장, 실장, 교감도 청소에 대하여 눈에 불을 밝히고 나를 감시한다. 식당에서 김밥을 먹으라고 불러서 청소하다가 내려갔는데 교감이 전화가 왔다. 어디 있느냐고 한다. 식당이라고 했더니 빨리 오란다. 내가 마치 교실을 더럽혀서 학생들의 원성이 높다는 것이다. 교실은 몇 달째 청소를 안 해서 왕먼지가 뭉쳐있고 널브러진 휴지에 바닥은 거뭇거뭇하다. 또 분노하여 무언가 보여주겠다며 4개 층의 교실 11개를 쉬지 않고 빗자루질을 해댔다. 많은 먼지를 마셔가며.! 그 날 이후로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굽혀지지 않아서 한 달간 고생했다.

5월 28일 또 부학장 호출. 이사장 들먹이며 청소 강요, 내가 노예도 아니고. 청소 잘못된 곳을 지적질할 곳이 없으니 근무태도를 가지고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한다. 이 학교는 나에 대하여 이다지도 관심이 많던가? 점심시간에 평소에 양호실에서 쉬는데 교장 사모가 근무하는 날이라 여선생들이 쉬는 찜질방에 가서 쉬었다. 누군가 내가 쉬는 것을 일렀던 모양이다. 나더러 근무시간 내내 쉬지 말고 걸레를 들고 눈에 띄는 곳에 있으란다. 내가 화장실청소를 할 때면 학생들이 나에게 알려준다. 부학장이 또 왔다 갔다고.

올해는 여름은 얼마나 더웠는가? 가만히 있어도 폭염과 긴장 마로 땀들을 많이 흘렸다. 나는 여름방학 때 빈 교실 몇 번씩 청소하고 학교가 생긴 이래 청소한 흔적이 없던 곳 같은 반대쪽 계단과 지하 2층 전체를 구슬땀을 흘려가며 먼지를 맡으며 청소를 했다. 자기들은 문 꼭 닫고 에어컨 틀어놓으면서 나는 선풍기 하나만 달라고 해도 무슨 선풍기냐며 청소나 하란다. 어떤 날은 맘을 비우고 '그래 청소나 하자 내가 청소에 이런 재능이 있었나'하며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는 생각도 했다. 어떤 날은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왜 그놈들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그들의 노리개가 되었지?' 하며 한심한 생각도 한다. 나는 정말 바보인가 보다. 뭐가 무서워서 뭐가 두려워서 화장실 냄새를 맡으며 락스와 놀고 있지. 휴지와 대화하면서 말이지.

부학장이 어느 날부터인가 청소 감시를 멈추었다. 대신 중고 행정실에 남자 선생이 나를 감시한다. 건물의 한 부분을 죽어라 청소하고 잠시 쉬면은 전화가 오거나 올라온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왜 청소 안 하고 쉬느냐고. 추석 연휴 때 재량 휴업일에 나와서 청소를 하란다. 너무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학교에서 나가 농협에서 화를 식히고 다시 학교에 들어와서 퇴근하였다. 고분고분하니까 사람을 뭐로 보고. 재량휴업일에 놀았다.

추석이 지나고 출근하자 행정실로 오란다. 대학교와 중고 행정직원이 모여 조회를 한다. 실장이 왜 안 나왔느냐고 소명을 하란다. 내가 다 쉬는데 왜 나오느냐고 했더니만 "중고, 대학 각 1명씩 나와서 교대를 했는데 너는 뭔데 교장 말도 안 듣냐?"며 응분의 조치가 있으니 나가보란다.

오후에 이사장님이 부르셨다. "오늘 어떤 여자 분이 왔다가 갔다. 너보다 젊고 키도 크고 튼튼한 여자인데 너처럼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 여자 분이 대학건물을 둘러보더니 자기는 3시간이면 전체 청소를 마칠 수 있다고 했다. 하루에 2만1000원만 달라고 한다. 한 달이면 얼마지?" 하신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목구멍까지 이 말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여러 가지가 내포된 말이다. 그래서 월급을 깎겠다는 것인지? 해고하겠다는 것인지? 끽소리 말고 청소나 열심히 하라는 얘기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사장님도 나도 말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내가 먼저 "이사장님, 저 청소할 곳 많아요. 나가서 청소할게요"하고 도망치듯 이사장실을 나왔다.

어느 날은 금요일에 이번 주 일요일 실습이 있으니 일요일에 나오라고 한다. 싸우기 귀찮아서 일요일 8시 30분에 나왔다. 아무도 없다. 9시부터 시작되는 모양이다. 나쁜 놈들 9시에 출근하라고 하지. 쉬지 않고 대학 건물과 중고등학교 두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바쁘게 청소와 휴지 수거를 했다. 오전 오후로 나뉘어 학생들이 이동하는 바람에 쓰레기가 많았다. 몇 주가 지났는데 또 일요일에 실습이 있으니 나오라고 한다. 못 나간다고 남자 직원에게 말했다. 마음은 편하지 않았지만 출근거부를 하였다.

월요일 출근하자 실장이 "왜 일요일에 안 나왔어요? 한 선생은 교장 선생님 명령도 안 지켜요? 안 나온다고 분명히 말해야 다른 사람을 쓰던가 하지" 하면서 구시렁거린다. "몸이 아파서 안 나왔어요" 하고 청소만 했다. 부학장이 10시에 보자고 한다.

"한 선생, 왜 일요일에 안 나왔어요?"
"제가 왜 일요일에 나와야 하지요? 저는 노동자로서 쉴 권리가 있어요. 청소를 시작하면서 몸무게도 3kg이나 줄고 어깨며, 무릎이며 관절이 아파 죽겠어요. 그리고 휴일 일을 시키려면 수당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수당을 왜 줘요. 한 선생 불쌍해서 이사장님이 일을 줬으면 감지덕지해서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야지. 사람이 양심이 없어요. 한 선생 아니라도 사람 쓰고 토요일 쉬라고 하면 아무 소리 없이 일요일에 일해요"
"부학장님! 엄밀히 말하면 그 실습이 대학과 무슨 연관이 있나요? 그것은 별도로 그 사람들에게 돈 받고 하는 거니까 필요하면 그 돈에서 사람 사서 청소시키시면 되잖아요. 제가 청소다 해 놓았는데 월요일 아침에 와서 정신없이 청소하는 것은 제가 봉사하는 것이잖아요?"

부학장 갑자기 흰 A4용지 한 장과 볼펜을 내밀며 "그렇게 청소하기 싫으면 오늘 날짜로 사직서를 써요"한다. 기분 같아서는 멋지게 사직서를 쓰고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제가 왜 써야 하지요?" 잠시 정적이 흐른다. 부학장님 어투를 부드럽게 하면서 "그럼 앞으로 윗사람 말 잘 들을 거요? 안 들을 거요?" 나는 침묵했다. 부학장님 화를 내면서 "이사장이 그렇게 한 선생을 사랑하고 배려하면 사람도리를 해야지 불쌍해서 정규직원대우를 해 줬더니 책임자 회의를 해서 한 선생 월급을 깎을 테니 알아서 해요" 나는 화가 너무 나서 "알아서 하세요." 하고 문을 꽝 닫고 먼저 일어나서 나왔다. 너무 어이가 없으니까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니라 너털웃음이 나왔다. 신 나게 찬송가를 부르며 일했다. 대학생 몇 명을 붙들고 부학장이 한 얘기를 들려주며 하소연을 하였다.

행정실장에게 일요일에 나와서 일하면 수당을 주느냐고 물어보았다. 무슨 수당이냐고 한다. 왜 안주냐니까 교장에게 가서 말하란다. 갈까 말까 온종일 고민하다가 자존심 상해서 그만두었다. 나오지 말까? 또 얼마나 볶기고 모진 소리를 들으려고 포기하였다. 일요일에 나와서 청소를 바쁘게 쉬지 않고 했다. 나는 청소부로 무능력자로 비정규직으로 굳어지고 있다. 길들여지는 바보가 되고 있다.

2013년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 입상작 보기
▲ 노조 설립 반년 만에 34일 파업, 그리고 승리…비결은? / 티브로드
▲ 죽어라 일하고 80만 원, "누가 뭐래도 내 소원은 비정규직" / 식당 노동자
▲ "네가 말 잘못하면 감방 간다"더니 돌아온 건…/ 학교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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