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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민주화 내려놓은 박근혜, 민영화로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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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경제 민주화 내려놓은 박근혜, 민영화로 역주행"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 이병천 강원대학교 교수

"71학번으로 '유신 시대'에 대학을 다녔다. 나름대로 서클 활동도 열심히 하고, 데모와 농성에도 참여했지만 '운동권' 중심에 속해 있지는 않았다. 옥살이를 하지도, 학교에서 잘리지도 않았다. 용기가 많이 부족했다. 내 동기 중에 일찍 고인이 된 김병곤이라는 훌륭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런 친구에 비하면 나는 너무 미안할 정도로 순탄하게 대학 생활을 보냈다."

"공부를 하는 동안 80년 5월 광주 항쟁과 87년 6월 민주화 운동을 겪었다. 그 두 사건은 내가 다른 길로 가지 못하도록 나를 붙들어 줬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국가독점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는 내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로 사상적 전향을 하게 만든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8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역동적 변화를 둘러싸고 나는 진보 지식인으로 남았고, 이후 진보지식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한국사회경제학회 창립을 주도하는 등 나 자신의 길을 걷게 되었다."

유신 시대, 어쩌면 평범한 대학생활을 했던 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긴 호흡을 하며 진보지식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대학 강의는 물론 사설, 저술 등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적극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2년 3월은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등이 시대적 화두가 되면서 이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흐름이 생기던 때였다. 이 상황에서 장하준 교수 그룹들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는 낡은 화두라고 하면서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것은 당시 국민적 합의에 대해 일종의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보완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 정치적인 쟁점도 얽혀 있는 문제인데, 경제학 연구와 교육뿐만 아니라 정책 분야까지 영향력이 큰 장 교수 그룹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이것이 자신의 밥값이라 표현하는 강원대 이병천 교수. 그는 시대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시민으로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와 의식을 항상 정비한다.

교수라는 직업 탓일까. 인터뷰를 하다 보니 짤막한 강의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든다. 유익한 배움이고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인 이야기 와중에도 그의 인격에서 비롯된 말들은 마음을 건든다.


- 대학 강의는 물론 사설, 저술 등의 활동을 통해 한국사회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곧 그만큼 비판 혹은 비난받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데, 대중 앞에서 계속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사실 나는 별로 힘이 없는 사람이다. 체구도 작고(웃음). 비록 힘은 없지만 미력하나마 내가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사람은 누구든 식충이가 되지 않으려면 자기 밥값을 해야 한다. 그런데 특히 지식인들에게는 긴 호흡으로 시대 흐름을 읽고, 말이 없거나 말 못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요구도 대변해야 하는 특수한 역할이 있다. 근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신군부독재의 야만 등 큰 시련을 겪어야 했다. 또 지금은 민주화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되고 보통 사람들의 삶은 불안에 떨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마다 미래가 잘 안 보인다. 다들 '안녕들' 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좀 더 적극적으로 밥값을 해야 한다. 자기 몫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 이병천 강원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한 가지 더 보탠다면, 논어에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구절이 있다. 학이사(學而思)로 줄여 말하기도 하는데, 이 말은 '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스스로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내 공부의 길에서 큰 지침으로 삼아 온 경구다. 그동안 나는 사회적 진보라는 큰 흐름을 함께 하면서도 늘 자신의 생각 끝에 나오는 파격적 발언들을 하곤 했다. 이 때문에 비판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들어줄 만한 구석도 있다고 한다. 내게 어떤 힘이 있다면 선학으로부터 배우면서 또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 더 큰 배움의 바다로 나아가는 것, 시대의 물음에 대한 이런 화두타파적 자세가 나를 밀고 가게 해 준 어떤 원천적 힘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 2012년 <한국경제론의 충돌>(후마니타스 펴냄)과 <프레시안> 연재물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을 통해 장하준 교수를 비롯한 시장개혁론자라 분류되는 학자들의 경제학 서적에 대해 비판적 검토를 시도했다. 어떤 동기가 있었나?

주로 장하준 교수 및 그 그룹들과 논쟁을 벌였는데, 이 논쟁은 박정희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한국경제의 이야기를 포괄하는 매우 범위가 넓은 논쟁이다. 그렇다면 이야기할 거리도 많고 동시에 공부할 거리도 많아지니, 이 이야기 마당을 펼쳐 놓는 게 여러모로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게 그들과 논쟁을 시작한 첫 번째 이유였다.

당시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 펴냄)가 출간되었던 2012년 3월에는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등이 시대적 화두가 되면서 이에 대해 어떤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흐름이 생기던 때였다. 이 상황에서 그들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는 낡은 화두라고 하면서 '복지국가'로 가야한다고 이야기했다. 이것은 당시 국민적 합의에 대해 일종의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나로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보완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학자들끼리만 이야기해서 끝날 일이 아니고 현실 정치적인 쟁점도 얽혀 있는 문제인데, 경제학 연구와 교육뿐만 아니라 정책 분야까지 영향력이 큰 장하준 교수 그룹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스웨덴 모델을 그대로 한국에 가져오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나는 생각이 달랐다. 복지국가를 이야기할 때 스웨덴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스웨덴의 복지를 한국에 그대로 가져올 수 있느냐도 만만찮은 문제이지만, 스웨덴의 경제를 모방·이식하는 것은 더 복잡하고 답답한 문제다. 한국의 대안 논의에는 경제, 노동, 복지 전반을 아우르는 총체적 발전모델에 대한 연구가 매우 취약하다. 스웨덴 식 경제모델은 기본적으로 대자본과 강한 노동이 타협한 모델로 오랫동안 중소기업의 발전은 저지되었다. 또 강력한 노동 부문이 자기 집단의 이익만 챙기지 않고, 다른 부문들의 이해관계도 끌어안는 보편적 시야를 가지면서 대자본과 타협을 했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자영업 등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고 조직노동의 힘이 미약한 우리의 상황과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만약 스웨덴 모델을 한국에 들여온다면, 우리 중소기업은 계속 얻어맞게 될 것이다. 요즘에는 스웨덴 모델보다 오히려 독일 모델이 더 주목받고 있는데, 그 이유 중 중소기업 문제가 있다. 스웨덴과 달리 독일은 중소기업이 매우 발전한 나라다. '히든 챔피언'의 나라라고 하지 않나. 나는 장하준 그룹이 이런 문제들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다고 봤다.

- 학자마다 자신의 논리와 이론 체계가 있다. 상대방과 논박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논리가 탄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작업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장하준 그룹과 충돌했을 때 가장 부담스럽거나 신경 쓰였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아무래도 '장하준'이라는 인물의 상징성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그는 젊지만 명성이 높은 캠브릿지 대학교 교수인데다 우리 사회 공론장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런데 장 교수가 말하는 내용은 많은 부분은 내가 공부하던 과정에서 한 번 겪어 본 것이기도 했다. 장 교수는 개발국가론의 흐름 위에서 한국경제와 동아시아 자본주의를 보고 있는데, 이것에 관해서는 그동안 내가 배웠고 이와 관련해서 글도 많이 써왔던 터라 그 장단점에 대해 대강의 가닥을 나름대로 갖고 있었다. 물론 장 교수 그룹에서 하는 이야기 중 97년 외환위기 이래 한국경제의 재편과 관련해 민주정부의 개혁이 실패했다고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진단이다. 경청할 대목도 적지 않다.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1972년 박정희 유신체제하에 대학을 다녔다. 당시 학내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이병천은 어떤 학생이었나?

나는 71학번으로 '유신 시대'에 대학을 다녔다. 나름대로 서클 활동도 열심히 하고, 데모와 농성에도 참여했다. 그렇지만 이른바 '운동권' 중심에 속해 있지는 않았다. 옥살이를 하지도, 학교에서 잘리지도 않았다. 용기가 많이 부족했다. 내 동기 중에 일찍 고인이 된 김병곤이라는 훌륭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런 친구에 비하면 나는 너무 미안할 정도로 순탄하게 대학 생활을 보냈다.

- 당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교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대에서 경제학 학사 후, 동(同)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모두 밟았다. 어떤 계기로 진보 지식인의 길에 들어서게 됐나.

ⓒ프레시안(최형락)
몇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우리 집안에서 공부라면 형이 단연 최고였다. 나는 형을 따라 경제학 공부를 하게 됐지만, 학부 때부터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졸업 후 바로 공부에서 손을 놓지 못했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며 석사과정을 어정쩡하게 병행했다. 석사 논문을 쓸 때 직장을 그만두게 됐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를 이끌어준 가장 중요한 안내자가 안병직 교수였다. 내가 유학을 가지 않았던 것도 안 교수와 만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뉴라이트 대부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 심지어 지하운동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진보 학계의 거목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느 누구보다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흡인력이 무척 강한 분이었다. 냉철함과 따뜻함을 겸비한 드문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선생과 헤어졌다. 어떻게 보면 앞서 말한 '학이사'의 정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힘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안 교수 밑에서 공부하는 동안 80년 5월 광주항쟁과 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겪었다. 그 두 사건은 내가 다른 길로 가지 못하도록 나를 붙들어 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한국의 시대 사건이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국가독점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는 내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로 사상적 전향을 하게 만든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그리고 8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역동적 변화 또한 내 사고의 전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변화를 둘러싸고 나는 '한국사회구성체 논쟁'에서 종속 심화론을 비판했었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에서 내 생각은 안 교수와도 심각한 입장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변했지만, 여전히 진보 지식인으로 남았고, 이후 진보 지식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한국사회경제학회 창립을 주도하는 등 나 자신의 길을 걷게 됐다.

그렇지만 오늘날까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부법으로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미혹되지 말라, 다수 대중의 요구조차 곧바로 추수하지 말라, 권력은 물론 대중에도 아첨하지 마라'고 한 것도 안 교수가 일러 준 것이다. 나는 종종 동료나 후배들한테 '남의 고대광실을 부러워하지 말고 비록 초라하더라도 자기 판잣집을 지어야 한다, 자기 등불을 밝혀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나로서는 안 교수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 노동시장 유연화에 따른 노동문제 해결책으로 덴마크에서 많은 부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노동자, 소상공업자의 축을 공고히 하고, 대기업, 중소기업, 지역경제가 함께 발전해 국민경제 포토폴리오를 다양성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중소상공인, 농민, 노동자 등 다양한 노동자 집단들이 기업과 협력·상생할 수 있다고 보는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그간 덴마크 모델이 주목받은 것은 전통 유럽모델이 어려움에 처했기 때문이다. 대자본과 정규직 노동자가 타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쪽이 생겨난다. 이것은 결국 양질의 일자리 축소로 이어지고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직성의 문제가 나타난다. 중소기업도 잘 발전하지 못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화두가 되었고 이른바 유연안정성 모델을 통해 이를 해결한 대표적인 나라로 덴마크가 제시되었다. 유연안정성의 첫 번째 의미는 자본 측에 해고의 자유를 더 많이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복지 안정성이 받쳐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더 주목하는 유연안정성의 또 다른 의미에는 독점적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활발하고 자유롭게 꽃을 피운다는 의미가 있다. 물론 이러한 덴마크 모델도 한국에 바로 가져올 수는 없다. 고려해야 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특히 한국의 중소기업 문제, 재벌대기업의 온갖 전횡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덴마크 모델이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덴마크는 중소기업과 협동조합 등 사회적 기업이 아주 번창한 나라다. 이것을 위해서는 독점을 통제하는 개방적인 기업체제, 금융 지원체제, 채무자 우호적인 파산법 등의 제도가 잘 깔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게 모두 안 되어 있다. 재벌대기업의 시장지배, 국민경제 지배는 잘 알려졌지만, 채권자 중심의 파산법 제도도 매우 큰 문제다. 창업해서 실패하면 빚더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게 우리 현실이다. 이는 새로 창업하거나 중소기업들이 발전하는 데 큰 장애물이다.

- 현재의 한국 경제 상황 속에 과연 이것이 실현될 수 있는가?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말하고 있지만, 그 실질적 실현조건은 배제한 채 낡은 재벌중심 경제 살리기로 정책기조를 잡았다. 이래서는 창조경제가 잘 될 리 만무하다. 미국 경제만 해도 대표적 신자유주의 체제이긴 하지만, 강력한 반독점법이라든가 채무자 우호적인 파산법의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또 미국은 법인세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범죄에 대한 제재도 엄정하다. 시장에서 자유를 주는 만큼 시장 생태계 발전도 중시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는 전혀 비교가 안 된다. 열린 시장경제를 하려면 노동시장 유연화만 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개방 및 책임의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의외로 한국식 시장경제는 미국식 시장경제보다 훨씬 낙후된 '올드 패션'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고르게 발전시키자고 할 때 그 핵심가치는 결국 국민경제의 '균형'과 '다양성'인데, 한국은 재벌의 발언권과 횡포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쏠림 현상도 극심하게 나타난다. 또 대외 충격에 취약한 것도 우리 경제의 심각한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어떻게 견제와 균형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느냐가 핵심 화두로 제기된 것이다. 먼저 재벌의 태도가 획기적으로 바뀌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즉 가진 자들의 최소한의 기본 덕목을 보여 줘야 한다. 무늬만이 아니라 진짜, 진심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비용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라는 말이 있듯이, 자기들 내부자들이 다 먹어 치우는 식의 소수 재벌에 의한 독식방식과 폐쇄성이 바뀌지 않는 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본가와 노동자의 상생은 어렵고 국민경제 균형발전도 기약하기 어렵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안에 사회경제적 갈등을 조정하며 협력해서 성공을 거두는 경험들이 축적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경험 기반이 얕다. 상호갈등하면서도 이것을 건설적으로 해결해가는 민주적 조정 능력이 우리 안에 얼마나 있는지, 이를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만약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에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가는 것을 꺼리지 않고 또 사회가 이를 떳떳하게 인정해 준다면, 한국의 경제와 교육 문제는 동시에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꿈같은 이야기이고 현실은 너나 할 것 없이 재벌 대기업의 좁은 문에 들어가려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중소기업은 수는 많지만, 생산성과 경쟁력이 약해 전망이 밝지 않다. 그럴수록 중소 제조업과 서비스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고 체질을 혁신하는 과제가 절실하다. 선진국의 산업구조를 보면 각종 서비스업, 문화산업, 정부의 사회 서비스 등으로 넓게 퍼져 있는데 한국의 서비스업은 압도적으로 도소매업, 음식, 숙박업 등에 몰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우선되는 관문은 재벌 독식구조의 타파와 그 개방성에 있지 않나 싶다. 정부도 사회 서비스를 비롯해 공공 부문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지금 민영화로 역주행할 때가 결코 아니다.

- 2012대선의 화두는 단연 경제민주화였다. 박근혜 정부는 한화그룹과 SK그룹 수사를 시작으로, CJ그룹·효성·LIG·동양·한라·KT 등 재벌기업에 대한 고강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세청도 현대자동차·롯데쇼핑·대우건설·국민은행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 중이다. 평소 재벌개혁을 통한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사람으로 이런 박근혜 식 경제민주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제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손을 놨다고 봐야 한다. 경제민주화 없이는 창조경제도 없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 출범 몇 개월 만에 경제민주화 종료 선언을 했다. 박 대통령의 오랜 지론인 시장만능주의적 '줄푸세' 정책으로 넘어간 것이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제시했고, 인수위 때만 해도 꽤 남아 있던 경제민주화 공약이 폐기됐다. 선거용으로 급조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현 정부의 강도 높은 대기업 수사는 포퓰리즘적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조치 자체에 의미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 사안에 대해 공적 규칙을 잘 세워 엄정하고 투명하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이것도 이행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의 범죄행위에 대한 조사란, 일시적 겁주기에 그치고 권력의 자의적·재량적 처분에 맡겨질 공산이 크다. 재벌의 경제범죄 문제와 관련해 큰 문제는 이들이 집행유예, 특별사면 등으로 너무 쉽게 풀려 나온다는 것이다. 그간 우리는 삼성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재벌 총수들이 휠체어를 타고 나오는 모습을 자주 봤다. 삼성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도 방해해 공권력을 무력화하는 행태를 보였다. 그런데도 송방망이 처벌이다. 박근혜 정부는 법치를 세우겠다고 했는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강화하고 제대로 시행한다면 '공정한 법치'의 신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 총·대선을 겪으며, 한국의 보수 세력도 거듭나지 않으면 파산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경제를 살릴 거라고 기대했던 이명박 정부가 실패했는데도, 같은 보수 세력 둥지에 있던 박근혜 후보가 국민의 지지를 얻었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다시 온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에 대한 주요 공약을 간단히 파기했다. 이건 국민을 속이는 배신 행위나 다름이 없다. 뿐만 아니라, 국가 정보원·사이버 사령부 등의 불법 선거개입과 정치공작 행위가 드러났는데도 사과는커녕 일을 크게 키우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시대착오적인 유신 독재의 추억에 사로잡혀, 민주화 시대에 신(新) 권위주의로 역주행하고 있다.

내심 박근혜 대통령이 자기가 이미 내뱉은 말도 있고 시대흐름도 있고 하니, 보수 정부가 가질 수 있는 이점을 활용해 재벌 횡포도 다스리고, 복지도 확충하는 친(親) 서민적 정책을 시행해 국민의 지지를 높여가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라면, 아마 신 권위주의 정치와 민생 살리기 경제가 결합된 패키지를 가동할 수 있고, 그게 박근혜 스타일의 개혁적 보수라는 매우 무서운 얼굴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예상을 했었다. 그런데 전혀 그게 아니었다. 이것은 사실 묘하게 다행인 측면이 있다. 개혁 세력에게 다시 기회가 생긴 셈이니까 말이다. 보수 세력이 거듭나고 혁신할 수 있는 기회를 빨리 잃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다행이지만 대한민국 전체로 볼 때는 불행한 일이다. 또 이런 상황에서도 민주당 등 개혁·진보 정당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울해진다.

- 지금까지 '참여사회연구소'와 '복지국가정치포럼' 등 여러 시민사회 활동을 하셨다. 얼마 전 트위터를 통해 드라마 <굿 닥터>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순수함, 진심, 뚜렷한 가치관에 대해 깊은 감명을 표현한 것을 봤다. 시민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 어떤 '순수함, 진심, 가치관'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굿 닥터>는 근래 보기 드물게 훈훈한 드라마였다. 원래 드라마를 잘 챙겨보는 편은 아닌데 아내가 재미있게 보니까 따라서 보게 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 봤는데 워낙 재미있게 봤는지 드라마가 종영하고 나니 좀 심심해졌다(웃음).

여러 활동을 하면서 든 생각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의 차이를 받아들이면서 함께 일한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관용, 똘레랑스'라는 덕목이 중요하다. 이게 없으면 전체주의로 가게 된다. 이건 우리가 워낙 잘 알고 있는 부분이지만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은연중에 '이것은 내가 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을 내세우는 경향을 자주 보게 된다. 특히 정치인이나 지식인에게 이 증세가 심하다. 크든 작든 함께 일할 땐 이 '아만'(我慢)을 극복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10년 전에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시민과 세계>라는 잡지를 창간했는데, 권두언(卷頭言, 책 머리말)에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말을 썼다. 요즘 이 말이 자꾸 생각난다. '동진'이란 어려움을 같이 한다는 것이고, '화강'이란 자신이 잘난 것을 내세우지 않음을 말한다.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자기 삶의 시간을 투자하고 에너지를 쏟는 일이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투자고 일종의 헌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자기 노력과 수고를 내세우기 마련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 신뢰가 있어야 하고 일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생각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기도 하고, 성과가 바로 나오지 않기도 한다. 특히 시민사회와 연결된 일을 할 때 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에 고유한 '시민적 신뢰'를 쌓아야 하고 어려움과 성과를 같이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시민운동이든 연구소 일이든 중요한 과제는 보통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인데 이것이 참 쉽지가 않다. 한국 시민운동 전반이 이 문제에 봉착해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진 채 먹고 살려고 발버둥질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같은 배를 타고 간다는 감각이다. 'Common Sense'를 보통은 '상식'이라고 하지만, '공통 감각'이라는 뜻이 있다. '공통 감각'의 기반이 있어야 참여와 연대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시민정치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시장사회, 기업사회가 강제하는 이 서바이벌 경쟁을 이겨내고 'Common Sense'를 키워야 한다. 결국 참여, 연대, 협동, 협력 등은 공통 감각을 어떻게 기르고 배양할 수 있는가를 통해 가능해질 것이다.

- <굿 닥터> 주인공은 '서번트증후군'이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훌륭한 의사가 된다. 개인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연약한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하는 편인가.

다행히 내게는 박시온 같이 큰 시련은 없었다. 그러나 몸이 매우 허약하다. 한의학에서는 '양허(陽虛)'라고 하는데 꽤 심한 편이다. 무리하면 절대 안 되는데 분수를 모르고 과부하를 걸어 고생을 많이 했다. 요즘은 가급적 관심거리와 일을 줄이고, 최대한 매듭을 잘 지으려고 노력한다. 또 나는 정서적으로 관용이 부족하고 따뜻함도 부족하다. 돌이켜 보면, 스스로 굉장히 차가운 사람이 아닌가 싶고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어려움을 명상을 통해 자가 힐링한다. 가능하면 하루 한 번, 잠자리에 들기 전에 홀로 앉아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그 시간에 일체를 놓아 버리고 고요함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 <한국 경제론의 충돌> 서문 끝 부분에 '아내와 딸이 없는 삶과 공부 길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다'고 표현하며 가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아내한테는 늘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딸에게도 그렇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문제아인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엔 연구한답시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다. 집에도 책을 지저분하게 늘어놓는다. 그래서 집에서는 발언권이 무지하게 약하다(웃음). 이런 문제 덩어리에 관용을 베풀어주고 함께 살며 웃을 수 있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요즘 가만히 보면 아내와 딸이 너무 애틋한 것 같고 은근히 나를 왕따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집 남녀성비가 1:2로 원천적으로 내게 불리해 다른 대응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웃음).

ⓒ프레시안(최형락)

세상살이를 하면서 아무 조건 없이 기뻤던 순간들은 대부분 가족 안에서 일어났던 것 같다. 가족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이한 냄새, 순간들이 있다. 가깝게 늘 육신을 같이하는 만남이다 보니 가족이란 건 인간의 만남 중에서 가장 구체적인 만남이고 하늘이 준 귀한 선물인 것 같다. 그 귀함을 잘 알아야 한다고 본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내 개인적으로 무슨 특별한 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윗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한 부분이 있다. 이전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뭔가 미래 전망이 있을 것 같은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민주화 시대라지만, 먹고 살기 위해 생존경쟁, 서바이블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대가 되었다. 이 부분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시대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 부분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내가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 현대사 체험의 공유에 신경을 좀 써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물론 유신독재, 광주항쟁, 6월항쟁과 같은 이야기는 직접 겪은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역사적 사건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무엇을 뜻하는지 공부하고 자신들도 그 시대 체험을 간접적으로라도 공유하는 역사적 의식을 가졌으면 한다. 지금은 여러 면에서 세대 간 단절이 심하기 때문에 서로의 끈을 잇기 위해 각 세대들이 저마다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기 길을 가라는 것이다. 사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굳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을 잘 돌아봐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선택과 모습을 초라하게 볼 수도 있지만, 그건 전혀 상관할 게 아니다. 아무 문제가 안 된다. 내가 나의 길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면 된다. 물론 한국같이 출세지향, 학벌 최고 사회에서 이런 마음가짐을 갖기는 참 힘들다. 그래도 그 압력을 이겨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 길을 찾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 나중에도 후회하지 않는다. 자기가 일하는 일터가 보수는 적게 준다고 해도 여기가 괜찮다 싶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으면 그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는 것이다(웃음).

학교 학생들에게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졸업하고 세상에 들어가면 원하던 원하지 않던 반드시 타협하게 되어 있는데, 만일 그렇게 되더라도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스스로 잘 돌아보고 순수함을 잃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지금과 같이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 그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사회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중장기적인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중장기적으로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에도 관심을 가지고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관여할 수 있으면 좋은 일이다. 처지에 따라 직접 기여할 수는 없더라도 기본 양식이 있는, 공통감각을 가진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병천에게 자유란?

쉬운 듯 어려운 질문이다. 우선 아무리 좋은, 고상한 자유를 이야기해도 실현할 수 있는 조건과 기회가 없으면 공허하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자 케인스가 '유효수요'라는 말을 했는데, 우리가 맛있는 떡을 사 먹고 싶어도 사 먹을 돈이 없으면, 혹은 떡보다 훨씬 더 맛있는 것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자유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건과 사회적 기회를 가진 자유여야 한다는 말이다.

매우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는 이 엄연한 진실을 쉽게 망각한다. 이 문제를 노동 문제와 연결시키면, 사람은 노동의 세계 안에서 인간답게 안정적으로 일하고 이를 통해 보람을 느끼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 노동으로 얻은 소득이나 수입이 어느 정도 괜찮게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노동의 삶이 불안정하다면, 이를 복지가 튼튼하게 뒷받침해 줘야 한다. 나아가 노동과 생활의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노동 밖에서 자유롭게 정치적, 문화적, 친밀적 삶을 꽃피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자유란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우리가 선택하는 좋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자유인 것이다.

보통 자유라고 하면 간섭받지 않는 자유에 대해 말한다. 이 사적 자유는 귀중하고 우리가 가져야 할 기본 가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반쪽 자유이고 온전한 자유는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자유는 '공적 자유' 또는 '시민적 자유'다. 즉 자기만의 홀로 자유가 아니라 함께 하는 자유라는 것이다. 1+1=2가 아니라 3이나 5가 될 수 있는 상생적 자유의 사고가 필요하다. 자유와 공공성이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상장하는 '연대적 자유'의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를 원자처럼 흩어지게 하고 불안에 떨며 생존 경쟁으로 내몰리게 하는 지배적 힘과 구조적 폭력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 이 폭력은 보이는 것도 있고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그래서 나는 시민이란 이 구조적 폭력에 저항하는 자율적인 주체, 참여하고 연대하며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적 행위자라고 말하고 싶다.

또 다른 차원에서 자유를 이야기하자면, 빠른 속도에 저항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현대인은 분명 정보 부족과 불투명 때문에 고통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보의 홍수에 빠져 있다. 정보가 너무 많고 제정신을 차리고 판단을 할 수 없을 만큼 속도가 빠르다. 한국사회는 특히 심하다. 우리는 개발독재이래 '빨리빨리'에 중독되었고, 세계화시대 디지털 강국이 되면서 중독이 심해졌다. 이 지배적 흐름에 저항할 수 있어야만, 자유의 공간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속도를 늦추고 느림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이것은 현대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고, 생태적 가치와도 직결되는 대목이다. 전면적으로 느림의 사회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를 가능케 하는 다양한 해방의 공간 또는 시민적 진지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본다.

가장 근원적인 자유의 문제라면 마음에 걸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불경 <반야심경>에서도 말하듯 마음에 걸림이 있으면 공포가 있고 망상이 있고, 결국 자기 스스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게 궁극적인 존재적 자유의 문제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집착을 버리는 자유일 수 있다. 나도 늘 이 문제에 대해 언젠가, 어떻게 하면 번민을 다 털어버릴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

그런데 사람이 자유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이 무거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늘 소소한 작은 일들, 힘든 일에도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고 애쓴다.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글을 쓰더라도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공자의 말씀인데, '가장 높은 경지는 낙지자(樂之者)의 경지다'라는 말이 있다. '아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즐기는 사람 중에서 즐기는 사람의 경지가 최상의 경지다'라는 뜻이다. 종교들은 이리저리 어지럽게 갈라져 있지만, 위대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한결같다. 비록 세상은 팍팍하고 '안녕'하지 못하더라도, 각자 자기 자리에서 즐거운 마음, 그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인터뷰는 정치경영연구소 박주연 연구원이 진행하고, 정리는 손어진 연구원과 정인선 인턴이 맡았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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