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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로 변한 민주노총 "청와대에 책임 묻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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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로 변한 민주노총 "청와대에 책임 묻겠다"

[현장] 체포영장 하나로 공권력 투입…한국노총도 규탄 목소리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유리문이 부서진 경향신문사 건물 1층 로비는 물론이거니와, 층층이 이어지는 파손된 집기와 뜯겨나간 문 등은 지난밤 격한 대치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인터넷과 전화가 일부 끊겼다가 복구됐으며, 현재도 일부 층간에선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경찰과 민주노총 사수 대오로 가득 찼었을 캄캄한 계단은 하룻밤 사이 민주노총을 방문한 각계 시민단체 대표자들과 기자들로 북적거렸다.

있지도 않은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겠다며 자행된 초유의 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권력 투입 사태. 23일 '폐허'로 변한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선 이를 규탄하는 민주노총과 각계 단체의 기자회견이 연이어 진행됐다. 회견을 진행할 집기마저 전날 대치로 모두 파손돼, 회견 장소엔 책상과 의자 대신 스티로폼 깔개가 깔렸다.

10시, 민주노총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이하 금속노조, 공공운수연맹, 공무원노조, 서비스연맹, 화학섬유연맹, 정보경제연맹, 비정규교수노조 등 민주노총 산별 간부들이 사실상 총출동한 이날 회견에서 민주노총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분노를 보여주겠다"며 28일 총파업을 재차 확인했다.

30여 분 짧은 시간 진행된 회견에서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부와 초유의 "난입" 사태에 대해 끓는 분노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들은 "박근혜 정권이 불통과 독선을 넘어 야만과 독재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며 "민주노총을 침탈한 정권의 폭거는 노동계 전체를 적으로 보는 독재적 행태"라고 강력 비난했다.

이어 이들은 "애초 경찰은 법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진압작전'은 무리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며 "'윗선'의 지시에 의해 무모한 작전을 강행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모든 사태의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회견에서 민주노총이 밝힌 향후 투쟁 계획은 22일 발표한 긴급 중집회의 결과와 대동소이하다.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이들이 도입하기로 했단 점이다.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23일 전국 확대 간부 파업을 긴급 조직하고 각 지역별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이를 통해 닷새 안에 총파업 태세를 완비, 28일에는 모든 조직을 총집결해 총파업과 100만 시민행동의 날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촛불집회는 매일 진행될 계획이며, '안녕들 하십니까'와 국가기관 대선개입 비상시국회의 등과 연대해 공분을 모아갈 작정이기도 하다. 철도노조의 3차 상경투쟁 역시 총파업이 예정된 28일로 예고돼 있다.

▲ 23일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는 민주노총 주최 기자회견 모습. ⓒ프레시안(최하얀)

"불법 침탈 경찰, 무슨 근거로 들어왔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민주노총 법률원 등 법률 단체들은 곧이어 열린 '형사고소 및 손해배상청구' 기자회견에서 이번 공권력 투입을 '불법'이라 보는 이유를 설명했다.

22일 약 12시간에 걸쳐 진행된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 과정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오전 9시경 경찰은 민주노총이 세 들어가 있는 경향신문사 본관 건물을 5000여 명을 동원해 봉쇄했다. 모든 출입구를 차단한 후에야 경찰은 체포영장을 제시했다.

건물주인 경향신문사와 입주자인 민주노총은 이에 항의했다. 경찰이 영장을 제시하는 자리에서 신인수 변호사는 "이 건물은 철도노조 건물이 아니다. 경향신문에 협조를 구했느냐"라고 물었고, 남대문 경비과장은 "협조를 요청했다"고 답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경향신문에 약속한 사전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이후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도, 수색영장도, 구속영장도 없이 '체포영장'만을 근거로 경향신문사 출입문과 각종 시정창치를 손괴했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는 시민과 민주노총 조합원 137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무차별적으로 체포됐다.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는 현재까지는 석방자가 없다.

민주노총과 각계 단체는 집회신고가 돼 있는 경향신문사 앞에서 기자회견 및 항의 집회를 진행하려 했으나, 이 역시 차단됐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경찰은 철도 파업과 상관없는 민주노총 각종 집기와 시설, 서류들을 손괴했고 천장까지 뜯어 철도노조 지도부를 찾기 위한 강압적 수색을 진행했다.

▲ 22일 민주노총 공권력 투입 현장. ⓒ프레시안(최형락)

이들 법률 단체는 이런 일련의 상황에서 경찰이 직권남용(형법 123조), 특수건조물침입(형법 319조, 320조), 불법체포 및 불법 감금(형법 124조), 집회방해(집시법 3조, 22조), 일반교통방해 (형법 185조)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형법 12조에 따라 체포, 구속, 압수, 수색을 할 때는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헌법상 '영장주의'를 전면으로 위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속영장도,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체포영장만으로 잠긴 유리문을 깨고 강제로 타인의 집에 들어가 강제 수색을 벌이는 것은 그 자체로 법적 정당성이 없으므로, 잇따라 발생한 각종 행위에서도 불법 행위가 적용된다는 설명이다.

비례의 원칙도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은 "형사소송법 199조에 따라, 수사상 강제 처분은 형사소송법상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그것도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안에서만 할 수 있다"며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몇 명을 찾기 위해 언론사 소유 건물에 수천 명 경찰이 난입한 일은 군사정권에도 없었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법률가 단체들은 경제적·신체적 피해를 입은 민주노총과 그 조합원, 체포 및 연행된 조합원들과 시민을 공동 원고로 국가를 상대로 대규모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이번 공권력 투입을 기획하고 실행한 모든 사람을 형사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이들은 손해배상 청구 금액을 집계하기 위해 피해 상황을 확인해가는 중이다. 신 변호사는 "피해 정도가 워낙 광범위해 당장은 정확한 산출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외부 기관에 맡겨 정확한 피해 규모를 산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은 "청와대와 경찰청장은 영장도 없이 군홧발로 민주노총을 밀고 들어와 쑥대밭을 만들어버린 데 대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명확하게 답해야 한다"며 "답을 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법조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 23일 민주노총. ⓒ프레시안(최하얀)

한국노총도 "있을 수 없는 일"... 긴급 대표자회의 개최

법률 단체의 기자회견 후에는 약 50명 정도의 전국 각계 시민사회 단체 대표자들을 대거 "불법 폭력 침탈을 규탄"하는 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민주노총을 향한 공격은 단지 노동계만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에 대한 공안 탄압"이라며 "민주노총 공권력 투입 사태는 정권 말기적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민주노총 공권력 투입 이후 민주노총 건물은 쏟아지는 각계 기자회견으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전날 대치의 여파로 정상적인 업무 수행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편, 민주노총 등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던 이날 오전 10시 30분께엔 양대 노총의 다른 한 축인 한국노총이 "민주노총 공권력 투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어제(22일) 자행한 폭력적인 민주노총 난입은 대한민국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작태'"였다며 "노정관계를 대화가 아닌 공권력을 해결하는 것이 현 정부의 수준이라면, 한국노총을 포함한 모든 노동계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를 요구한다"며 "1979년 YH 사건에서 알 수 있듯 노동운동을 짓밟는 정권은 국민의 신뢰를 잃어 위태로워진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오후 3시 긴급 회원조합대표자회의를 열어 이번 사태에 대해 논의하고 "중대결심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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