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정치에 눈뜬 덕후? '샤이니 종현'은 거들 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정치에 눈뜬 덕후? '샤이니 종현'은 거들 뿐!

[기자의 눈] 아이돌 덕후 세계에도 들이친 '안녕들' 바람

조금 부끄럽지만, 고백 하나 하련다. 난, 오늘부로 '일코 해제' 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붙이겠다. '일코'는 '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로, 어떤 연예인의 팬이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닌 척하는 걸 말한다. 즉, 오늘부로 일반인 코스프레를 그만두겠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덕밍아웃(오타쿠+커밍아웃)'.

온종일 정치 이슈를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추적하는 '기자질'은 꽤 고단하다. 피곤한 기자질 사이에 짬짬이 하는 아이돌 '덕질'은 일상의 소소한 낙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사진·영상을 보고 있으면 잠시나마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홀홀 가벼운 몸이 되는 것 같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기자 생활 와중에 아이돌에 빠져든 건 아마 그만큼 덕질이 정치와 가장 거리가 먼 영역에 속해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너도 곧 서른"이라는 주변의 야유에도 덕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렇게 한동안 낮에는 기자질, 밤에는 덕질을 하며 정치와 탈정치를 오가는 두 개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꽤나 견고할 줄 알았던 기자질과 덕질 사이의 벽이 붕괴됐다. 낮에 질리도록 보던 몇몇 단어들을 언제부턴가 밤에도 보게 됐다. 정확히 지난 토요일부터였다. 내가 사이트를 잘못 들어왔나 싶어 잠시 눈을 비볐다. 그러나 다시 눈을 뜨고 봐도 내가 들어온 곳은 밤마다 들락거리던 아이돌 팬 전용 사이트가 맞았다. 평소라면 '라됴에서 우리 **가 다했됴', '오늘 코디 쵝오... 덕후 쥬금' 따위의 글이 올라와야 맞았다. 그런데 이날 팬 사이트를 뒤덮은 건 '대자보 사진 보셨어요? 완전 개념돌', '덕후 여러분도 안녕들 하신가요' 따위의 글이었다.

팬 사이트에서 웬 대자보 얘긴가 했더니, 촉매제가 있었다. 그룹 샤이니의 멤버 종현이 트위터에 올린 프로필 사진 한 장이었다.(참고로 기자는 샤이니 팬은 아니다.) 그가 새로 바꾼 프로필 사진은 요즘 대학가에서 유행 중인 대자보였다.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안녕하지 못합니다'란 제목의 대자보는 성 소수자 문제와 함께 사회 전반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저는 어떤 이름으로 불린 순간에도 안녕하지 못합니다. 차별금지법 하나 제정하지 못하는,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일상적인, 젊은 세대를 봉으로 취급하는, 대학생이 학문이 아닌 취업에 열중하기를 강요하는 게 오늘날의 한국 사회입니다.… (중략) 우리 모두는 안녕한가요.'

▲샤이니 종현 트위터에 올라온 대자보 사진.

종현의 사진에 화답하는(?) 익명 게시글 하나를 실례를 무릅쓰고 통째로 옮긴다.

'저는 타 (가수) 팬이지만 종현군의 트윗을 봤어요. 사실 오늘 저 역시 친구들과 함께 학교 각 단과대, 정류장, 대학병원에 대자보를 붙였어요. 그걸 하면서 착한 ** 팬분이 따뜻한 음료와 핫팩 그리고 자신의 장갑을 주고 가셔서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내가 옳은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사실 불안한 감정도 많았어요. 저희 어머니가 대학병원에서 일해서 혹시나 딸의 선택이 어머니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많은 걱정을 했는데, 종현군 트윗을 보고 어머니께 사실대로 얘기했더니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시더라고요. 종현군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종현군 덕에 제 소신에 믿음이 생겼어요.'

짐작건대, 이 팬은 의료민영화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인 것 같다. 이 게시글에 달린 댓글도 소개한다.

'용기있는 행동을 하셨네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님도 진짜 멋지시네요. 저도 대자보 고민해봐야겠어요.'

이곳만 그런가 싶어 다른 사이트에 갔다. 마찬가지로 정치·사회 관련 글이 몰라보게 늘었다.

'민영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동안 그냥 지냈는데... '유전장수 무전단명'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네요'라는 글에는 철도·가스·의료 민영화를 우려하는 내용의 댓글이 80개가 넘게 달렸다.

사실, 종현은 트위터에서 대자보와 관련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사진 한 장 달랑 올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사진이 불러온 파장은 대단했다. '우리 오빠'와 '애기들'을 찬양하던 공간을 서로가 서로에게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대자보가 붙는 게시판으로 만들었다. 팬들이 마치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탈정치로 무장했던 공간에 균열을 만든 셈이다.

균열의 원인은 간단하다. 다음 댓글이 모든 상황을 설명한다.

'귀 닫고 살면 편할까 해서 다 닫고 살려고 해도 진짜 너무하다. 정치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그렇게 덕후들은 '일반인 코스프레 해제' 대신 '비정치인 코스프레 해제'를 했다.

"우리 오빠 대상 못 타면 어떻게 해?"… 공포에 떠는 '덕후'들

종현 대자보 사진 사태(?)가 보여주는 재밌는 광경이 또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개념돌'이 됐으니 그저 좋으련만, '개념돌' 종현을 보는 샤이니 팬들의 마음은 마냥 편치만은 않은 듯하다. 팬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개념돌의 팬인 내가 자랑스러워', 또 하나는 '괜히 이것 때문에 대상 못 타면 어떻게 해?'

샤이니 멤버가 사회 비판 발언을 했다고 해서, 연말 시상식에서 정말 (받아야 할) 상을 박탈당할지 아닐지는 기자인 나도 모른다. 그보다 중요한 건 팬들의 머릿속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다. 연예인이든 누구든 정부를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자칫 위험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팬들 사이에 은연 중에 퍼져있다. 그리고 그들은 '안녕들 하시냐'고 물으며 서로의 공포를 확인하는 중이다.

다시 한 번 상기하지만, 이들은 야당 국회의원들도 아니고 반정부 시민단체 활동가도 아니다. 정치와 무관한, 그저 한 가수를 사랑하는 팬들이다. 그런 그들이 가수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런 사회가 '공포 사회'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탈정치 영역에 있던 덕후들을 정치적으로 변하게 한 것은 이 사회, 이 국가, 이 정부다. '종현'은 그저 거들 뿐.

이 땅 위의 모든 덕후들이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로 이 말이 아닐까.

"우리 그냥 안녕히 덕질하게 해주세요, 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