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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탈바꿈,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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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탈바꿈, 어떻게?

[김경민의 도시이야기]<22> 구로공단과 독일 공업지대가 보여준 전략의 차이

해외 많은 나라는 산업이 구조화되는 과정에서 도시 내 공장과 창고가 버려지고 방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구로공단이 정보통신산업(IT)의 클러스터가 되는 과정은 조금 달랐다. 비록 일시적으로 기존 건물의 사용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상당수가 재빠르게 오피스(사무용) 건물과 창고형 매장과 같은 새 용도로 탈바꿈했다. 지적도 상에는 1970년대 지어진 것으로 표시된 건물조차도 외관은 현대식으로 바뀐 것들이 허다하다.

▲옛 구로공단 지역에 남아있는 1970년대 건축물 ⓒ김경민

그러나 아직 공단 곳곳에는 한국의 '근대'를 상징하는 일부 산업 유산들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이 구로 정수장, CJ 공장, 코카콜라 부지, BYC 공장, 동부제강, 구로창고 등이다.

아래 사진에서 '마리오 아울렛'과 새로 지어진 오피스 건물 사이에 있는 허름한 건물을 보자. 1970년대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는 패션 매장과 창고로 사용되는 중이다. 그 아래 사진 속에 있는 '까르뜨니트 물류협력' 창고도 마찬가지다. 이 창고와 구로공단에 있는 웅진코웨이개발 건물은 공단 시절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 굴뚝 등의 외관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 가산동 '만승 아울렛'. ⓒ김경민
▲ 가산동 '까르뜨니트 물류협력' 센터 및 공장. ⓒ김경민

이런 방식의 산업 시설은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 그것을 하나의 문화로 재생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앞선 장점은 '활용'하기에 구조적으로 좋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창고나 공장은 오피스나 주택과 달리 층높이가 높고 면적이 넓다. 독특한 기계 시설들을 내외부에 갖추고 있기도 하다. 반면 한옥은 그 규모가 비교적 작다. 활용할 수 있는 내부 공간의 크기가 제한적이다 보니, 보통 작은 규모의 공방이나 찻집 또는 음식점으로 활용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한옥에선 백남준의 설치 미술 같은 규모 있는 전시를 하기 어렵다. 반면, 창고와 공장 건물은 그 규모가 큰 덕택에 활용도가 매우 다양하다.

더불어 산업 시설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미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미(aesthetic)라고 하면 '아름다움' 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황량함과 허름함이 풍기는 미도 있기 마련이다. 재활용된 산업 시설은 바로 이런 폐허미 또는 숭고미(sublime)라는 색다른 미적 감각을 제공한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미적 경험이 제공되는 것이다.

'폐허미' 살려 유네스코 등재된 독일 광산 도시

중국 상하이 등의 여러 외국 사례를 보면, 쓸모가 없어 버려진 공장이나 창고가 새로운 기능을 만나 탈바꿈한 경우가 상당하다. 그중에서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독일 라인 강 주변 공업 도시는 구로와 많은 면에서 대비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물론 구로와 라인 강의 장소적 특징이 서로 다르므로, 라인 강 주변 공업 도시가 취했던 전략을 그대로 구로공단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또한 구로공단은 이미 새로운 전환기를 경험하며 새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라인 강 사례를 당장 적용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러나 라인 강 주변 공업 도시들이 취했던 전략이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독일 라인 강 주변에는 과거 20세기 중반까지 수많은 철광석과 석탄 광산이 분포했다. 그래서 라인 강 일대는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유럽 최대 광공업 산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 독일 광산업의 채산성이 낮아지자 이 지역 광산들이 연이어 문을 닫았다. 실업자가 대량 양산됐고 도시는 폐허가 됐다. 이러한 쇠퇴 현상은 한두 개 소도시 차원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라인 강에서 60킬로미터 주변 도시들에서 광역적으로 나타났다.

▲ 독일 뒤스부르크 노드 공원(Duisburg-nord Park) 전경. ⓒ김경민
▲ 졸페라인 탄광 지역 전경.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남겨둔 공장이 보인다. ⓒ김경민

이 광범위한 지역 쇠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대안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우리였다면 아마도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거나 새로운 도시 인프라를 건설하는 건설 위주 정책을 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일은 매우 색다른 접근 방식을 시도했다. 새로운 산업 시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낡은 시설을 문화와 교육 공간으로 재활용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 독일 중앙 정부와 베스트팔렌 주는 이른바 'IBA 엠셔파크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기존 시설을 보전하면서 창의 문화 산업을 이 지역에 도입하는 전략이었다. 더불어 각 장소가 가진 특징을 발굴해, 디자인이란 부가가치를 얹어 재창조했다. 기존 낡은 시설은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오염된 토양은 식물을 이용한 치유를 보여주는 교육 현장으로 이용되었다.

허름하고 낡은 모습, 부서진 유리창 등으로 위험한 시설조차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자체의 폐허미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이를 미래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두었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졸페라인 탄광 지대는 근대 산업화의 모습과 그것에 내포된 가치를 보존한 지역으로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다음 주 수요일 발행되는 연재에서 구로공단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 주석
① Marjorie Hope Nicolson, 〈Sublime in External Nature〉, 《Dictionary of the History of Ideas》, 1974, New York.)
② 성종상, 〈산업시설재생의방향과전략연구: 그린과문화를통한재생사례를중심으로〉, 《문화정책논총》 17, 2005, p. 105~141.;임진영외,〈산업유산에서문화공간으로, 졸퍼라인탄광지대〉, 《Space》 41(12), 2006, p. 56~107.; , 10 Jun 2005, http://whc.unesco.org/en/list/975.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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