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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역사 교과서…지방화로 풀릴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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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역사 교과서…지방화로 풀릴 문제들

[박동천 칼럼] 중앙정부의 결정은 항상 옳은가?

누구 입에서 처음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기초의원/단체장 정당공천을 배제한다는 발상이 여태껏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배제하자는 사람도 그렇게만 하면 전라도와 경상도의 일당구도가 사라지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지방선거가 부활된 1991년부터 2002년까지 네 번의 선거에서 기초의원 후보는 정당소속을 표방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에 비해 2006년 이후의 지방의회가 무엇이 잘못 되었기에 이제 다시 기초의원 정당공천을 없애자고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혐오는 대단히 뿌리가 깊고, 정당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일반적인 정치혐오증의 한 양상이다. 정치판이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지친 시민이 정치를 불신하고 정당을 혐오하는 것까지는 인지상정이라고 봐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민들의 지친 마음을 이용해서 정당혐오와 정치불신을 부추기는 짓은 한심한 일이라고 나는 본다. 한국 정치를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길은 지방정치를 활성화하는 데 있고, 따라서 지방의 정당정치를 활성화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방의원 정당공천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당이 그렇게 나쁜 거라면 왜 중앙정치와 광역선거에서도 정당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안 펼치는지 무척 궁금하지만, 이 질문 역시 여기서는 묻지 않겠다. 대신, 기초의원 선거에서 정당 소속을 표기할지 말지를 전국적으로 획일화하는 일인지를 묻고 싶다. 오히려 정당 공천 배제 여부를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주민들 의사에 맡겨서 결정한다면, 몇 년을 주기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이 바보 같은 쳇바퀴가 확실하게 끊어질 것이다. 아울러,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시와 군이 미국에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러한 선택이 해당 지방의 것이지 주정부나 연방정부의 것이 아님을 함께 말해주면 참 존경스럽겠다.

지방화를 통해서 풀 수 있는 일로는 송전선 문제도 있다. 서울 시민들이 쓸 전기를 서울에서 생산한다면 밀양과 같은 송전선 갈등은 생길 리가 없다. 서울 서초구에 필요한 전기는 서초구에서 생산하고 은평구에 필요한 전기는 은평구에서 생산하는 식이라면, 핵발전소 건설도 불필요해질 것이다. 각 지방의 주민들이 스스로 에너지 소비 방식을 바꾼다든지, 에너지 정책에 대한 엄격한 감시에 나설지언정, 전력을 낭비하기 위해 자기 동네에 핵발전소를 짓자고 나설 리는 별로 없다.

핵발전에 관해 찬성하든 반대하든, 현재와 같은 전력 생산이 에너지 낭비를 조장하는 방식이라는 데에 이견은 있을 수 없다. 산업용이든 생활용이든 전력을 필요한 만큼만 생산할 수 있으려면, 어떤 전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그리고 생산된 전력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시민들이 확인하고 정책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 시민들이 실제로 에너지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논의가 지방에서 일어나야 한다. 실제 독일에서 보수당조차 탈핵을 추구하게 된 배경에는 에너지 정치의 지방화가 있다.

현재 한국 사회를 두 갈래로 찢어놓고 있는 요인 가운데 하나인 교과서 문제는 어떤가? 싫든 좋든, 현재 한국에는 현대사 인식에 관해 여러 갈래의 시각들이 존재한다. 대중이 일본에 대해 아무리 반감을 가지고 있어도, 다카키 마사오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도 또한 한국의 대중이다. 박근혜는 과거사 인식을 트집 잡아 아베를 멀리하지만, 그러면서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버젓이 드러내는 교과서는 은근히 지원한다. 일제와 독재, 그리고 군국주의와 파시즘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역사적 논쟁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우리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주제다.

이런 주제에 대한 답을 중앙정부가 결정해서 "교과서"에 담아 학생들을 세뇌하면 이것이 역사교육일까? "친일" 교과서든 "좌편향" 교과서든, 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단기간에 정리될 수가 없다. 그런 논쟁이 정리되는 일은 현실정치판의 구도가 한 편의 압도적인 우세로 기운 다음에나 가능하다. 그 사이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의 "사관"도 덩달아 바꾸도록 방치해야 하나? 그래서 세대에 따라 서로 다른 사관을 주입받은 시민들을 양성해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 역시 해법은 지방화에 있다. 교과서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를 아예 없애고, 지방정부로 하여금 각기 사정에 어울리는 정책적 선택을 하도록 맡기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는 각 학교 차원에서 학부모와 학생과 교사의 의견들을 모아 교과서를 정하면 될 것이다. 이때에도 "친일" 교과서와 "좌편향" 교과서 중에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혀 상반되는 시각을 담은 두 개의 책을 학생들에게 읽히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만드는 것도 훌륭한 역사교육일 것이다.

광역단체든 기초단체든, 각 지방의 주민들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하나의 교과서만을 채택할 수도 있겠고, 지방 단위에서 검인정 체제로 갈 수도 있겠고, 지방 단위에서 자유선택제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물론 모든 시민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주입할 길은 없는데, 그 이유는 애당초 "올바른" 역사관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떨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처럼 해도 모든 시민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주입할 길은 없는 것이다. 단, 교과서 정책이 지방화 된다면, 이것을 가지고 중앙정치가 두 쪽으로 찢어져서 절대로 정답이 나올 수 없는 가짜 문제를 가지고 허송세월하는 어리석음만은 확실하게 방지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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