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미 독재로 점철된 역사를 통해 충분한 교훈을 얻은 바 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국민은 2007년 대통령 선거 한번 잘못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광우병 파동으로부터 시작해 수십조를 들여 전 국토를 훼손한 4대강 사업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독단으로 인해 국민이 받은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2012년 대선은 매우 중요했다.
그런 국가 대사인 대선을 며칠 앞두고 국정원 직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이 제기됐다. 선거개입 증거를 삭제하려고 국정원 직원은 '셀프 감금'을 했고 당시 여당 후보인 박근혜 후보는 '자신은 아무런 도움을 받은 바 없고, 20대의 가녀린 여성인 국정원 직원은 무죄인데도 감금의 고통을 당했다'며 당당하게 민주통합당에 역공을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국정원녀의 선거개입 의혹은 국정원 심리전단 팀의 조직적 선거개입으로부터 국가보훈처, 군 사이버 사령부 등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국기 문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반면 무죄임을 당당하게 역설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대해 사과는커녕 언급조차 회피하고 있다.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수사 방해부터 '채동욱 찍어내기' '윤석열 파동'에 이르기까지 곳곳이 지뢰밭이다. 윤석열 팀장이 물러선 후에도 젊은 검사들의 소신 행동으로 120만 건이 넘는 트윗, 리트윗 글이 있다는 수사 결과가 나왔지만 앞으로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검찰 수사를 믿을 수 없다면 특검이라도 해야 할 텐데 민주통합당은 특검도 관철시키지 못했다.
2012년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은 3·15 부정선거보다 더 심각한 상황인데 왜 그 해결 과정이 지지부진할까?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종북', '대선불복'이라는 낙인찍기가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 여론의 힘으로 돌파해야 하는데, 민주주의 국가의 기강을 뒤흔든 선거 부정을 지적하면 '종북'세력이라 하고, 선거법 위반 수사를 제대로 하자고 하면 '대선불복'이냐고 몰아세워 국민 여론을 분열시키려는 세력이 있다. 국민을 대변해야 할 야당 민주통합당은 '종북'과 '대선불복' 이야기만 나오면 정면 돌파보다는 자기 한계 긋기에 정신이 없다.
'종북'이라는 낙인찍기는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진다. 선거부정 수사를 제대로 하고 국가정보기관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배반한 국정원을 개혁하자는 촛불집회 옆에는 항시 수구전위대들의 맞불집회가 열린다. 해병대 복장으로 보이는 하의에, 군 운동복을 연상시키는 상의의 단체복을 입고, 임대한 간의 의자를 정렬시켜 놓고 군대 정렬하듯 일사불란하게 앉아 있는 나이 지긋한 집회 참여자들이 있다. 이들의 모습에서 수십 년 전 각 급 학교의 학생들을 비롯해 주민들을 동원했던 각종 집회와 행사 즉 전체주의 국가 시절의 악몽이 중첩되며, 수십 년 전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 같은 오싹한 전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때 드는 의문 하나! 그 시절 동원비용은 '국가'가 댔는데 저들의 비용은 어디서 나는 것일까? 촛불집회를 보면서 촛불 비용이 어디서 나는지 궁금했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의문은 촛불 집회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모금으로 해소되는데, 이들 수구단체의 집회 비용에 대한 의문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여지없이 이런 집회에서 나오는 단골 구호는 '종북 세력 몰아내자'이다. 동원된 것 같은 그들이 전체주의 사회의 일원 같은데 오히려 자발적으로 모여 민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들에 대해 종북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낙인은 일반시민을 민주주의 권리 행사로부터 격리시키는 마법을 부린다.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주장이 '종북'이라면 종북은 좋은 것이고, '종북'이 반민주적인 것을 의미한다면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써서는 안 되고 국가기관을 통한 선거개입, 수사방해, 동원된 맞불집회를 여는 그들이 종북이라는 정면돌파가 필요하다. 민주시민에게 '종북'이라는 낙인찍기는 상징조작을 통한 개념의 악용이다. 대한민국이 북한 체제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이 진정한 국가안보라면,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세력은 이적세력이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범법 행위를 수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하자는 것은 체제를 수호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이적세력인 것이다.
또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자 하면 '대선불복'이라는 카드를 꺼낸다. 민주통합당이 결정적인 주장을 하면 '대선불복'이냐고 몰아세웠다.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고, 반민주적 통치의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라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민주통합당의 장하나, 양승조 의원에 대한 국회의원 제명을 추진한다고 한다.
새누리당에게 질문 하나!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일어나고 그것이 선거의 당락을 좌우할 정도였다고 해도 선거결과를 승복해야 하는가? 대통령은 임기 중 어떤 경우에도 물러나서는 안 되는 '위대한 영도자'인가? 대통령이 '선거에서 도와줄 수만 있다면 열린우리당을 돕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한 것만으로도 탄핵을 의결한 정당이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 명백하다. 철저한 수사는 당연한 법치의 실현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대통령이 물러날 정도라면 물러나는 것이 민주주의다. 지금은 그 정도의 선거부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 철저한 수사를 하자는 것인데 그 주장 자체를 '대선불복'으로 몰아세우고 국회의원 제명을 시도하며 입막음을 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태다. 새누리당은 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는가?
하지만 '대선불복'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국회의원 제명 시도는 반대하지만 장하나, 양승조 의원의 발언은 당론이 아닌 것으로 서둘러 해명하며 선긋기에 나섰다.
지금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부정선거 범죄행위와 관련하여 악용되는 '종북'과 '대선불복'이라는 상징조작은 회피가 아니라 정면돌파의 대상이다. '종북'과 '대선불복'을 앞세워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반민주세력의 이적행위를 정면돌파하지 못하는 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먼 미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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