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쟁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공약 실천에 따른 지방비 추가 부담액을 얼마나 줄여줄 수 있느냐'입니다. 둘째는 '국가 부채를 늘리지 않고 공약 실천에 따른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입니다. 셋째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민원성 예산을 어떻게 선별적으로 수용하느냐'입니다. 이 세 가지 쟁점 모두에는 이해 당사자들과 국회의원들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개입되어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2. 최근 들어 여당과 정부가 '준예산'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우리 헌법 제54조 3항에 따르면 "새로운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한 때에는 정부(가)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일부 경비만) 전년도 예산에 준하여 집행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준예산을 집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요. 준예산 집행이 예상되면 여당이 '날치기'라는 변칙 일탈을 통해 예산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여당과 정부가 준예산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야당을 압박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향후 감행할지도 모르는 '날치기'의 명분을 사전에 쌓아두기 위해서입니다.
3. 민주당으로서도 준예산은 가장 피하고 싶은 것 아닌가요?
⇨ 내년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신당 추진 세력과 경쟁해야 하는 민주당에 준예산 집행은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만약 준예산이 집행되면 언론은 '사상 최초 준예산'이라는 점을 대대적으로 부각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현재의 19대 국회는 '사상 최악의 국회'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논리적으로 사상 최초로 준예산 집행을 초래한 국회가 사상 최악의 국회라는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논리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미지입니다. 민주당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준예산은 피해가려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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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쟁점별로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첫 번째 쟁점은 '대통령 공약 실천에 따른 지방비 추가 부담액을 얼마나 줄여 줄 수 있느냐'입니다. 대통령 공약 실천에 따른 내년도 지방비 추가 부담액은 어느 정도 규모입니까?
⇨ 굵직한 것만 따져보면 기초연금 사업, 영유아 보육료 지원 사업, 가정 양육수당 지원 사업에서 지방비 추가 부담이 많이 발생합니다. 먼저 기초연금 지원 사업의 경우 정부가 기초노령연금과 같이 지방비 비율 25%로 대통령 공약을 원안 그대로 실천한다면, 내년 지자체가 추가 부담해야 할 예산은 2조7500억 원(1년분)에 이르게 됩니다. 지난 10월에 정부가 발표한 수정안을 실천한다 해도 기초연금 지자체 추가 부담은 7000억 원(6개월분/보건복지부 추계치)입니다. 또 2015년 기초연금 전면 시행이란 대통령 공약을 원안 그대로 실천한다면 지자체 추가 부담은 2조 9000억 원(1년분)에 이르고, 정부 수정안을 실천한다면 1조 5000억 원(1년분/보건복지부 추계치)에 이릅니다.
5. 영유아 보육료 지원 사업과 가정 양육수당 지원 사업에서 지자체 추가 부담액은 어느 정도 발생합니까?
⇨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4년도 성과 계획서에 따르면 내년 국가의 영유아 보육료 지원 사업비는 모두 3조765억 원으로 올해의 2조5944억 원보다 4821억 원 더 늘어납니다. 문제는 지자체 추가 부담인데요. 지난해 보육료 지원 사업비 중 지방비 비율이 51%였음에 비추어 볼 때 내년도 지자체 추가 부담액은 49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음으로 가정양육수당 지원 사업을 살펴보면 내년 국가의 가정양육수당 사업비는 모두 1조 1209억 원으로 지난해의 1120억 원보다 1조89억 원 더 늘어나는데요. 지난해 가정양육수당 지원사업비 중 지방비 비율이 52%였음에 비추어 볼 때 내년도 지자체 추가 부담액은 1조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세 가지 모두를 합쳐 보면 3대 복지 공약 실천에 따르는 내년도 지자체 추가 부담액은 지난해와 비교해서 2조2400억 원입니다.
6. 대통령의 복지 공약을 크게 후퇴시켰음에도 3대 복지 공약 실천에 따르는 지방비 부담액이 지난해보다 2조2400억 원 더 늘어난다는 거군요?
⇨ 그렇습니다.
7. 박 대통령은 임기 초에 자신의 대선 공약 실천에 따라 지방비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경우에는 중앙정부가 이것을 대부분 다 보전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요?
⇨ 임기 초에 박 대통령은 지자체장들에게 그와 같이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2014년도 예산안에는 그런 약속들이 거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8. 여야는 9일 지방소비세율을 지금의 5%에서 11%로 6%포인트 높이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합의는 지자체 추가 부담을 줄이는데 도움을 줄까요?
⇨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지방소비세율을 6%포인트 인상하면 대략 2조2000억 원 정도의 지자체 재원이 확보되는데요. 그것은 취득세 인하로 인한 지자체 재정손실액 2조 4000억 원을 보전해 주기에도 빠듯합니다.
9.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쟁점 중 두 번째는 국가 부채를 늘리지 않고 박 대통령 대선 공약 실천에 따른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입니다. 우선 먼저 지난해 대선 때 박 대통령이 공약한 재원조달방안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은 연간 27조 원의 복지를 추가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리고 그 재원 중 14조2000억 원은 예산 절감과 지출구조조정을 통해, 9조6000억 원은 조세개혁과 세정개혁을 통해, 나머지 3조1000억 원은 공공개혁과 복지개혁을 통해 확보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 공약이 원안대로 실천되리라 믿는 국민은 거의 없습니다.
10. 박 대통령의 재원조달 공약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라도 지켜져야 국민들이 덜 실망할 것 같은데요. 현실은 어떻습니까?
⇨ 박 대통령은 공약 재원 중 14조2000억 원을 예산 절감과 세출 구조조정으로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는데요. 어이없게도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전년에 비해 겨우 1조 원 줄이겠다고 합니다. SOC예산을 겨우 1조 원 줄여서 어느 세월에 예산 절감과 세출 구조조정으로 연간 14조2000억 원을 확보한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11. SOC예산을 이명박 정부 때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규모입니까?
⇨ 이명박 정부는 집권 5년간 연평균 23조4000억원을 국가 SOC 사업에 투자했습니다. 4대강 사업비 8조 원을 제외하면 5년 연평균 SOC 사업비는 21조8000억 원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내년도 SOC사업비로 23조3000억 원을 책정했습니다. 정부가 내년 SOC예산을 4대강 사업비를 제외한 이명박 정부의 연평균 SOC사업비 21조8000억 원 수준보다 더 낮추어야 할 것입니다.
12. 박 대통령은 공약 재원 중 9조6000억 원은 조세개혁과 세정개혁을 통해 확보한다고 했는데요. 이 약속은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나요?
⇨ 9조6000억 원의 세부내역을 보면 이렇습니다. 이중 3조 원은 비과세 감면 축소로, 또 다른 3조 원은 지하경제 양성화로, 2조6000억 원은 체납세금 징수 강화로, 9000억 원은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여 확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년에 정부가 이를 통해 확보하는 세수는 4조1000억 원에 그칠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체납세금 징수 강화로 2조6000억 원을 확보한다는 공약이 대선 공약으로서 의미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13. 박 대통령이 연간 27조 원의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자신의 공약 일부라도 실천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그러나 증세에 대해 여야 간 의견 차이가 크지요?
⇨ 민주당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대표적인 서민 증세라 규정하고, 부자감세 철회가 우선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정부와 새누리당은 정부가 세법 개정안을 수정하여 증세 대상을 근로소득자 연봉 5500만 원으로 상향했기 때문에 서민증세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또 법인세 감세 철회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표하고 있습니다.
14. 민주당의 주장,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 민주당이 부자감세 철회를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서민증세라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연봉 3000만 원을 버는 근로자의 경우 과세표준(연봉 중 비과세소득과 소득공제를 제외한 금액)이 1000만 원 내외이기 때문에 이 사람이 100만 원 소득공제를 받으면, 과세표준 1000만 원 내외에 해당하는 세율 6%의 적용을 받아 6만 원 정도 세제혜택을 받습니다. 반면 연봉 5000만 원의 경우는 과세표준이 2000만 원 내외이기 때문에 이 사람 역시 100만 원 소득공제를 받으면, 과세표준 2000만 원 내외에 해당하는 세율 15%의 적용을 받아 15만 원 정도 세제혜택을 받습니다. 또 연봉 1억 원의 경우는 과세표준이 6500만 원 내외이기 때문에 이 사람 역시 100만 원 소득공제를 받으면, 과세표준 6500만 원 내외에 해당하는 세율 24%의 적용을 받아 24만 원 정도 세제혜택을 받습니다. 따라서 일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여 전 계층이 소득공제 100만 원에 대해 15만 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통일한다면 서민들에게는 큰 이익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부자감세 철회라는 좋은 구호를 가지고 있으면서 왜 엉뚱하게 세액 공제로의 전환론에 딴죽를 거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100개 중에서 99개를 잘못하고 1개 정도 잘한다면 그 1개에 대해서는 침묵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100개 다 잘못했다고 비판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됩니다. 민주당에 역풍만 몰아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15. 새누리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가 가능합니까?
⇨ 정부와 여당은 법인세 부자감세 철회 없이 연간 27조 원의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지나친 억지입니다. 제가 국세청이 발간하는 <국세통계연보>를 토대로 추계한 바에 따르면, MB정부 감세로 대기업들이 6조1600억 원의 혜택을 받았고, 중소기업이 1조 9600억 원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정부와 여당은 시급히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부자감세를 철회해서 연간 6조 원 이상의 재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야 현 정부 들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국가부채 문제와 박 대통령 공약 재원 문제를 일부나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보기 : <"부자 감세 없었다"? 현오석, 조세 ABC도 모르나>)
16.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우리나라 기업들의 조세부담이 많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근거가 있는 것인가요?
⇨ 기업들의 주요 직접세에는 법인세와 고용주 부담 사회보험료가 있는데요. 2010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 주요 직접세 비율은 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회원국 평균 8.2%보다 2.2%포인트 낮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OECD 평균에 비해 29조 원(2013년 GDP 1335조 원 가정) 정도 세금을 덜 내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 2010년 국가 별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와 고용주 부담 사회보험료 비율 비교. ⓒ홍헌호 |
17. 그런데 정부가 지난 5월에 발표한 '공약 가계부'를 보면 복지 확대를 위해 지출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대선 공약보다 그 지출을 8배 늘린 분야가 있습니다. 그것이 연구개발(R&D) 분야인데요. 그 내용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시죠?
⇨ 지난해 12월 새누리당은 홈페이지에 공약 항목별 재정 소요액을 공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2017년까지 R&D 투자를 GDP 대비 5%로 확대하기 위해서 임기 중에 1조403억 원의 정부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5월에 발표한 공약가계부를 보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임기 중에 8조1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부가 대통령의 복지공약은 그 일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면서 공약 가계부에서 R&D 투자 규모를 대선공약보다 8배 가까이 뻥튀기한 겁니다.
18. 우리나라 R&D 투자 규모가 지나치게 적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 천만의 말씀입니다. OECD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R&D 투자(정부+민간) 비율은 4.03%로 34개 회원국 중 2위였습니다. OECD 평균 2.37%의 1.7배입니다. 또 같은해 GDP 대비 정부 R&D 투자 비율도 1%로 회원국 중 3위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GDP 대비 R&D투자 비율을 5%로 올리겠다는 '밑도 끝도 없는 목표'를 설정하고 공약가계부에서 R&D 투자 규모를 대선공약보다 8배 가까이 뻥튀기한 겁니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19. 정부가 R&D 투자를 과도하게 늘릴 경우 대기업들이 자체 R&D 투자를 기피하는 구축효과가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 않나요?
⇨ 산업연구원이 2008년에 발표한 보고서, '대기업·중소기업 간 정부 R&D지원 효과 비교'에 따르면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R&D지원은 이들 기업의 자체부담 R&D활동을 촉진합니다. 그러나 대기업에 대한 정부 R&D지원은 대기업 자체부담 R&D활동을 구축(crowding-out)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 지난해에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지역구에 유리한 쪽지예산을 남발해서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는데요. 올해에는 그것이 좀 줄어들까요?
⇨ 유감스럽게도 올해는 그것이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쪽지 예산은 300명의 의원 중 예결위 위원이 아닌 250명이 예결위 위원 50명에게 보내는 지역구 민원성 예산을 말하는데요. 그것이 쪽지로 전달되기 때문에 쪽지예산으로 불립니다. 올해는 의원들이 지난해보다 더 극성스럽게 쪽지예산을 보낼 것 같은데요.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소속 정당 후보자들이 지역구에서 이겨야 자신의 재선에 유리하기 때문에 물불 안 가리고 쪽지 예산에 집착할 가능성이 있는데요. 국민들은 다음 선거에서 이와 같이 질 낮은 행태를 보이는 의원들에 대해 엄정한 심판을 해야 할 것입니다. 헌법상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지 지역구의 대표가 아닙니다. 국회의원은 모름지기 국익에 봉사해야지 자신의 사익과 재선에만 몰두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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