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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카데로 인권광장의 촛불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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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카데로 인권광장의 촛불을 기억하라!

[시민정치시평]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새겨보는 '진정한 선거'의 의미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세계인권선언>은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탄생했다. 사람의 나이로 본다면 올해로 65살이 된다.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은 법정기념일, 그러니까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일이 아니다.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 법정기념일에서 제외된 것은 2003년 11월 27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서부터이다. 규정 개정의 이유를 보면 "기념일의 지정 및 행사의 실효성이 적은 국민교육헌장선포기념일(12월 5일)과 세계인권선언기념일(12월 10일)을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일에서 제외하려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의 경우 정부가 아닌 관련 민간단체 주도로 행사가 열리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는 법무부 의견을 반영했다는 신문기사도 보인다.

<세계인권선언>을 기념하는 '세계적 추세'가 어떠한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2013년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맞추어 <천안함 프로젝트>의 정지영·백승우 감독이 시민들에게 '무료 다운로드'라는 선물을 드린다 하니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 아울러 이 영화를 무료 관람하시는 관객들께서는 65년 전 "모든 사람과 국가가 성취하여야 할 공통의 기준으로서" 선언된(세계인권선언 전문) 표현의 자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실 일이다. 잘 만든 영화를 상영관에 제대로 올려보지도 못한 두 분 감독을 위한 권리의 선언은 이러하다.

"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간섭 없이 의견을 가질 자유와 국경에 관계없이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도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으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세계인권선언 제19조)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2012년 대한민국에서는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사건이 현실 세계에서 발생했다. 빈약한 나의 상상력의 세계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전대미문, 기상천외의 국가기관 선거개입 사건. 주연 배우와 조연 배우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총감독의 실체는 여전히 묘연하고 영화 흥행의 최대 수혜자는 나 몰라라 하는 이 희대의 '컬트 무비'(아시다시피 'cult'는 숭배자들의 무리를 일컫는 말이다)를 보며, 나는 1948년 12월 10일 프랑스 파리의 사요궁(Palais de Chaillot)에서 선포된 <세계인권선언>의 다음과 같은 조항을 떠올린다.

제21조 1. 모든 사람은 직접 또는 자유로이 선출된 대표를 통하여 자국의 정부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Everyone has the right to take part in the government of his country, directly or through freely chosen representatives.)

3. 국민의 의사가 정부 권능의 기반이다. 이러한 의사는 보통·평등 선거권에 따라 비밀 또는 그에 상당한 자유 투표 절차에 의한 정기적이고 진정한 선거에 의하여 표현된다. (The will of the people shall be the basis of the authority of government; this will shall be expressed in periodic and genuine elections which shall be by universal and equal suffrage and shall be held by secret vote or by equivalent free voting procedures.)


ⓒ프레시안(최형락)

다소 길지만 원문까지 인용한 이유가 있다. 내가 보기에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는 최소한 2가지 관점에서 <세계인권선언>에 배치된다.

첫째, 국정원, 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경찰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은 유권자들의 '자유로운' 대표 선출권을 침해했다. <세계인권선언> 제21조 제1항은 '인민주권', '국민주권'의 원칙을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인권으로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이 선언하고 있는 국민주권은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 어느 정치공동체에 속한 모든 시민에게 집단적으로 해당하는 권리"다(조효제, <인권을 찾아서>, 187쪽). 이 조항이 대표 선출의 원칙으로 천명하고 있는 '자유로이 선출된'(freely chosen)이라는 표현이 결코 상투적인 수식어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국민들의 대표 선출권에 어떠한 형태로든 국가기관이 개입하는 순간 주권자들의 자유는 침해되고 오염되는 것이다.

둘째,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으로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는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과 정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진정한 선거'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 <세계인권선언> 제21조 제3항이 선언하고 있는 '진정한 선거'(genuine elections)는 우리가 익히 아는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라는 선거의 4대 원칙이 단순히 형식적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보장되어야 함을 천명한 것이다. 참고로 이 조항은 <세계인권선언> 채택을 위한 투표 과정에서 "공산권, 자본권, 왕정국가 등 거의 모든 나라의 찬성으로 통과된" 조항이라고 한다(조효제, <인권을 찾아서>, 188쪽).

지난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 당시, 에펠탑 앞에서 파리 교민들의 시위가 있었다. '박근혜는 한국의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닙니다'라는 플래카드와 함께 파리 교민들이 시위를 한 그곳은 '트로카데로 인권광장(Parvis des Droits de L'homme)'이다. 그곳은 바로 65년 전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되었던 사요궁 앞 광장이다. 광장 바닥에는 <세계인권선언> 제1조가 새겨져있다고 한다. 이 상징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진 파리 교민들의 촛불시위, 나는 이 시위야말로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사건이라 생각한다. 65년 전 <세계인권선언>에 참여한 모든 나라들은 '진정한 선거'가 일국의 차원을 넘어서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임에 동의했다. 파리 교민들의 촛불은 65년 전 선언된 '진정한 선거'가 국경을 넘어서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임을 제기한 것이다.

파리 교민들의 시위에 대해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겠다"고 한 김진태 의원이나, 박창신 신부의 미사 중 강론에 대해 "이런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의미에서 '반인권적'이다. 세계인권선언이 'Global Declaration'이 아니라 'Universal Declaration'인 이유를 아는가. 'Universal'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보편적'이라는 뜻이 나온다. '보편적'이라는 말에는 인종과 국가, 계급 등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 효력이 미치는'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65년 전 선포된 <세계인권선언>에 요즘 유행하는 '글로벌'이라는 말 대신 '보편적'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이유를 알만하지 않은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넬슨 만델라의 영결식이 바로 12월 10일이다. 나는 만델라에게 바쳐지는 온 세계인들의 추도와 헌사 또한 만델라의 삶 자체가 보여준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공감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만델라는 '행복한 노인'이다. 굿바이 만델라!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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