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종북 빨갱이는 외롭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대선 이후 이제는 사사건건 사회전반에 걸쳐 종북 빨갱이 논란이 아주 풍요롭게 전개되고 있다. 어느 하루도 뉴스에서 종북이 거론되지 않는 날이 없다. 국민의 삶을 다루는 것이 뉴스이기에 매일 같이 종북 타령이 뉴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국민의 절반이 종북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매우 적절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전근대적인 북한을 찬양하고 미화하는 진정한 소수의 종북주의자들과 달리 어느덧 국민의 절반이 종북주의자가 된 셈이라면, 그런 짝퉁 종북주의자가 아닌 다른 절반의 국민들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그들에 대한 답을 내리기 전에 분명한 것은 이런 종북 타령에 근거할 때, 우리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종북주의자 무리와 그렇지 않는 무리들의 잔치는 진정한 종북자들의 설 땅을 빼앗아 버린다는 점이다. 그들을 소중히 다루고 대접해야 할 국정원마저 소위 국민 절반의 짝퉁 종북주의자들을 감시, 관리하기 위해 힘 기울여 신경쓰다보니 정작 진정한 소수의 종북주의자들은 짝 잃은 기러기처럼 외로울 것이다. 진짜 종북주의자들과 함께 내란을 꿈꾸는 정작 있을지 의문스러운 몽상가들과의 관계를 저버린 채 불륜에 빠져 엉뚱한 짝퉁 종북주의자들과의 사랑에 빠진 국가정보원을 어찌할 것인가.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바이런이 '남자의 사랑은 인생에서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이지만, 여자의 사랑은 삶 그 자체이다'라고 했다지만, '그때그때 다르다'는 흘러간 개그를 우리사회에서 실천하고 있는 국정원 사랑을 보면 역시 순정파 사랑이 어울리지 않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잘못된 사랑의 상처가 남겨진 한국에서 이념과 사상은 즐겁다. 왜곡된 사랑이 꽃 핀 곳엔 종북이냐, 아니냐라는 오직 두 종류만의 매우 알기 쉽고 분명한 분류가 있을 뿐이고, 국민에겐 엄연히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사상의 자유마저 허락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대법원 판사와 국무총리까지 한 자가 민주사회의 근간인 국회 해산을 거론할 정도가 되었다. 오직 종북과 종북이 아닌 것으로만 무장한 이들의 시각으로는 이런저런 목소리를 내는 국회는 불륜행각을 즐기는 자신들 행태에 장애가 되는 거추장스런 자식에 불과하다. 민주사회의 피와 살인 혈육마저 버리는 자들의 시각과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또한 국가 민주헌정 실천에 앞장 서야할 정당의 대표자가 왜곡된 국정원 사랑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에 대하여 손발을 자르지 않아야 한다면서 제동을 건다. 병들어 잘못된 행태를 교정하고 치료하려는 행위를 손발 자르는 것으로 보는 태도야말로 같이 불륜에 빠져 허우적대는 집단 불륜 상태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 외에 다름 아니다. 이들에겐 소위 종북이 아니면, 모든 것이 허락된다. 민주헌정이건, 민주질서이건, 인권존중이건, 국론과 사회 분열이건, 사회약자에 대한 배려이건 별로 소중하지 않다. 오직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반대하는 자들은 종북주의자들이고, 이들은 제거하고 섬멸해야만 하는 흉측한 적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한국의 정치는 슬프다. 누구도 정치를 하지 않는다. 국민의 삶과 국가 발전을 위해 풀어야할 산더미 같은 문제나 빨리 마무리해서 시행해야 할 정책 등은 종북 타령 속에 서로 상대정당의 말꼬리 물고 늘어지는 국회 싸움으로 전개된다. 그 누구도 현 정치상황을 풀어갈 의지도, 생각도, 방법도 없이 그저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이렇게 한국정치가 쌈박질로 전락한 것은 당연한 지도 모른다. 명백한 불륜현장을 들킨 자들이 취하는 대부분의 태도는 오직 현장 상황을 싸움판으로 몰아가야 하는 것 외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 말싸움 상황에서 정작 질서를 잡아 열심히 살아가야 할 집안 살림은 풍비박산 나는 형국이다. 다시 말하면 요즘 우리사회가 이토록 시끄러운 것은 불륜현장을 들킨 자들이 자신들의 불륜에 장애가 되는 자들을 종북주의자들이라고 부름으로써 그들을 침묵시켜 불륜의 즐거움을 영영세세 누리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조금 부풀려 말해서 종북이라 불리면 어떤가. 어차피 짝퉁 종북인데도 불구하고 그리 염려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싸구려 종북 타령에 넘어가는 셈이다. 설령 종북이라 불리더라도 잘못된 불륜을 밝혀 집안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오히려 불륜을 멈추게 함으로써 진정한 종북주의자들에게 원래 약혼자인 국정원을 되돌려 주는 것일 터인데 말이다. 짝퉁 종북론이 통하면서, 아니 겁에 질린 소심한 짝퉁 종북주의자들의 두려움이 작동하면서 저들의 달콤함은 지속된다. 일제 시대 이후 구호의 무늬만 바꿔가면서 상대방을 침묵시키면서 항상 누려왔던 저들의 꿀맛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저들이 누리며 강요하는 이념과 사상의 자유는 오직 종북이냐, 아니냐의 오직 두 종류 외에 없으며, 이런 간단한 방법이 통하는 세상은 그들에겐 참으로 편하고 행복할 것이다. 국론이 분열되면 될수록 불륜을 손쉽게 포장할 수 있는 집안분위기가 된다. 비록 짝퉁으로 만들어 내어 어설프기는 해도, 진정 사상의 자유가 허락되어 21세기 세습 왕조의 북한을 사랑하는 황당한 종북주의자가 국민의 절반을 차지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를 구축하는 것은 그 어느 사회도 이루기 어려운 위대한 업적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사회전반을 알기 쉽게 관리하고 간단히 통제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인 어설픈 종북 타령은 대선 과정과 더불어 사회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 흔적 지우기에 아주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 국가 민주헌정 질서를 흔드는 내란죄에 버금가는 국가정보기관의 불륜행태도 손쉽게 잠재울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고, 입맛에 맞지 않는 자들을 도끼로 찍어 내듯이 제거하며, 정치적 의견이 다른 상대의 입막음에도 언제나 유효적절하게 적용된다. 국가의 민주헌정을 바로 잡고자 하는 국민마저 자기검열에 들게 한다.
그렇다보니 지금의 여권 정치인들과 국정원은 자신이 만든 돌로 된 여인상을 지극히 사랑하게 된 피그말리온처럼 자신들이 만들어 낸 짝퉁 종북주의자들에 대한 사랑에 푹 빠진 것이 아닌가 한다. 어쩌면 이들은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등장하여 여인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피그말리온의 이야기에서처럼, 박근혜 여신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작품인 국민 절반의 짝퉁 종북주의자들을 살아있는 진정한 종북빨갱이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박근혜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대선 이후, 종북 타령이 이토록 사회전반 구석구석으로 스며드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전반에 깔린 종북 타령은 굴종외교와 국방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중국의 방공구역 선포에 따른 한국의 반응은 자국의 이익보다는 철저하게 미국의 대응지침에 순응하고 있다. 어찌할 줄 모르며 적당히 눈치 보던 초기 자세로부터 미국 태도에 따라 점차 강력해지는 한국 정부의 입장 변화를 보면서 미국에 대한 한국정부의 피학적 즐거움을 눈치채지 못한 이는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미국 허락 하에 설정된 드넓은 일본의 방공 구역에 비해 얼마나 초라한 한국의 방공 구역이었는가는 더 말할 나위 없고, 이는 일본 집단 자위권 선포에 대한 정부 반응에서도 읽을 수 있다.
동북아의 본처인 일본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는 미국에 붙어서 집안 권력을 유지하려는 한국정부는 자신을 냉대하는 미국에 대하여 스스로 합리화하고 포장하면서 미국과의 불륜 관계를 미화하고 국민을 추스르고 있다. 외교관계의 문제로 비화한 다른 나라에 비해서 도청까지 한 불륜 상대에게 '그렇지 마세요'라고 귀여운 앙탈까지 했다고 하지 않은가.
물론 세상이란 돈과 권력이나 매력이 없으면 불륜도 하기 어렵다. 굳이 불륜임에도 불구하고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상대방의 돈과 권력 혹은 매력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리는 헌신적 사랑이 아니라면 아무리 불륜이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고 스스로를 돌보는 자존감은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정부의 미국과의 애정행각은 자국민과 한국사회를 위한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 불법 도청을 하면서 천문학적 빚더미 해결을 위해 무기 판매 때나 미소 짓는 상대방에 대한 뜨거운 관계는 불행히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들을 위함이지 결코 국민이나 자국을 위한 것은 아니다.
최근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도 단지 미국의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고, 과거 미국쇠고기 수입협상에서도 자국민보다는 미국 입장을 철저히 대변했다. 이는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가 얽힌 상황 속에 현실적으로 남한 사회에서 미국 지지를 무시하는 정권이란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건강한 한국사회나 국민의 이익을 포기해서라도 권력을 잡고자 하는 파렴치한 자들이 있는 한, 우리사회는 언제나 그런 권력지향 정치집단과 건강한 민주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집단 사이의 분열과 갈등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살펴보니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와 비리 개선을 위해 목소리 높이는 이들을 종북주의자로 몰아가는 이들의 뜨거운 미국 사랑은 자존감 있는 사랑관계가 아니라 철저히 가학과 피학의 불륜관계다. 표면적 미소와 국제외교의 차가운 냉대 속에 끝없이 미국사랑을 외쳐야만 하는 이들의 피학적 낭만은 결국 자신들이 권력유지를 위한 몸짓이기도 하다. 이들로 말미암아 국가수호의 국정원마저 진정한 상대를 저버린 채 잘못된 불륜관계에 빠져들게 된다.
국내에서 허상의 종북주의자들을 만들어 비난하며 세몰이를 하는 집단들은 탐욕에 가득한 낭만주의자다. 넘치는 권력욕을 사랑으로 포장한 피학성애자 집단이기도 하다. 가학과 피학이 동전의 양면이듯이 권력을 위한 이들의 대외적 피학성과 국내 민주집단에 대한 가학성은 상통한다. 말뿐인 진보와 엉터리 보수로 이루어진 한국사회가 안정되지 못하고 시끄러운 것은 이들과 이들의 작품인 짝퉁 종북주의자들과의 소란한 동거가 권력이란 단어로 관통되면서 불륜의 긴장감으로 가득한 남한 사회의 살아있는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셈이다.
이제 국민 절반의 종북주의자과 다른 나머지 절반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들이 국론 분열을 위해 열심히 손가락질하면서 연일 뉴스에 등장시키는 종북은 바로 '사회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종과 북을 울리는 자'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과거 프랑스 혁명에서 드높이 외쳐졌던 '자유, 평등, 우애'처럼 건강한 민주사회와 국민을 위해 이제 우리가 외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것 없다. 불륜의 여신을 제대로 환영하는 우뢰와 같은 종북의 함성이다. '우리사회의 종북주의자들이여, 영원하라. 그리하여 부정과 부패를 타파하고 우리의 삶과 미래세대를 위하여 종북의 소리를 드높이 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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