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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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경제 기사를 읽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경제의 흐름을 짚어 드리겠다고 했지만, 바다 물길처럼 경제 흐름도 큰 흐름과 작은 흐름이 겹쳐져 있습니다. 커다란 흐름은 보통 저 밑에서 조용히 흐르기 마련이지만, 때론 겉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거꾸로 어떤 흐름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 세상만사가 그 흐름의 반영으로 보일 지도 모릅니다. 해서 아주 엉터리 진단을 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럴 경우를 경계하면서도 큰 흐름을 짚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려 합니다.
들롱 교수도 장기침체 선언
"역사로서의 현재"(마르크스 경제학자 폴 스위지(Paul Sweezy)가 한 말)를 구성하는 큰 흐름 중 "장기침체"와 "패권교체"가 요즘 물 위로 떠오르는 일이 유난히 잦습니다. 버클리 대학의 브래드포드 들롱(Bradford DeLong) 교수도 장기침체론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네요.
(☞ The Long Short Run)
들롱은 2008년 이전에 대체로 0~2년의 기간에는 케인즈적 단기가, 3~7년이면 고전파적 균형이 들어맞고, 그 이상은 경제성장과 제도의 영역이라고 가르쳤답니다. 그러니까 3년이면 위기로 인한 실업문제는 대충 해결된다는 거죠.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모든 게 달라졌고, 이젠 일본의 상황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즉 지난주에 본 것처럼 현재의 마이너스 이자율 상황이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라는 겁니다. 이런 장기침체에 대한 진단과 처방으로 1) 글로벌 저축 과잉(버냉키), 2) 글로벌 투자 부족(삭스, 스티글리츠), 3) 5% 인플레이션 타겟(크루그먼), 4)안전자산의 전 세계적 부족(카발레로)을 들고 있습니다. (괄호 안의 대표적 인물은 제가 추가한 겁니다.)
하지만 모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라는 얘깁니다.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저명한 거시경제학자들이 모두 "장기침체"를 선언한 셈입니다.
중국의 새로운 전환?
지난주에 중국의 '3중전회' 결과에 대해 '뜨뜻미지근하다'고 표현했는데요. 뭔가 새로운 사회체제, 국제관계의 방향을 읽어 내기에 그렇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전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 스티븐 로치(Stephen Roach)의 눈에는 이번 대회가 중요한 전기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주요 자원 배분에서 가격이 "결정적" 역할을 하게 한다는 3중전회의 선언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거죠.
(☞ Bringing the Chinese Consumer to Life)
예컨대 국유기업 이익의 30%(연 4000억 달러!)를 사회안전망으로 돌리겠다는 것은 빈약한 건강보험, 퇴직연금을 보충해서 중국인의 소비-저축 패턴을 바꿀 겁니다. 과거에는 사회복지가 부족해서 중국인들이 '과도한' 저축을 했지만 이제 소비를 늘릴 수 있게 되었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서서히 투자-생산 주도 경제에서 소비주도 경제로 바뀔 것이고 중국의 거대한 경상수지 흑자도 줄어들겠죠.
리더십에 대해서도 낙관적인데요. 1) 지도부에서 테크노크라트의 약화(이공계 출신이 2002년 72%에서 현재 15%로), 2) 개혁중앙지도집단(소위)의 창설, 3) 시진핑의 신속한 당 장악을 들고 있습니다.
중국이 내수주도경제로 전환하는 것은 중국뿐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도 올바른 방향입니다. 이런 전환이 세계의 미래 모델, 동아시아 세력균형, 동아시아 공동체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좀 더 들여다봐야겠습니다.
TPP는 동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은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 특히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뒤흔들만한 사건입니다. 이미 2006년에 조지프 나이(Joseph Nye)는 미국의 대 아시아 전략으로 군사동맹과 함께 FTA에 의한 미국적 가치의 확산을 든 바 있습니다.
(☞ [기로에 선 한국 통상]TPP는 미국 주도 '중국 고립' 전략… 한국, 관심 표명으로 중국 자극 우려)
그런 의미에서 위 기사의 지적대로, TPP는 미국의 "아시아 선회(Pivot to Asia)", 중국 포위 전략의 경제판이라고 할 만합니다. 원래 TPP는 2005년 뉴질랜드, 칠레,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 태평양 연안 네 개의 작은 나라들이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2008년 미국이 이 협정을 아시아태평양 거대 FTA의 장으로 삼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죠. 그 해에 호주와 페루가 협상에 합류했고, 2010년에는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그리고 2012년에 일본과 멕시코·캐나다가 참여하면서 12개국이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과 FTA를 맺은 한국으로선 먼 산 바라보듯 하고 있었지만, 일본이 참여하면서 그림이 달라졌습니다. 한국은 일본과 10년 이상 FTA 협상을 하고 있지만, 현대·기아 등 자동차 산업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지금 한국이 TPP에 들어가는 건 경제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FTA가 무역이나 투자에 대한 효과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다만 미국식 FTA는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등 국내 제도를 바꾸고 국가의 규제나 소유를 강화하는 쪽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막고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FTA가 발효되면서 우리 국내 법은 이미 미국식 지적재산권이나 서비스 산업규제, 그리고 투자규범에 맞춰서 변경되었습니다. 해서 '이미 버린 몸'이라고나 할까요? 이 점에선 TPP에 들어간다 해도 큰 변화는 없겠죠. 다만 자동차 업계의 두려움, 그리고 쌀 등 농산물 추가 개방이 문제가 됩니다.
▲ 지난 15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TPP 공청회에서 TPP 반대 시위를 벌이는 농민들. '대통령 외교놀음에 농민들은 죽어간다'는 문구를 한 농민이 들고 있다. ⓒ한농연 |
문제는 TPP의 외교·안보적 측면입니다. 세계의 세력판도를 뒤흔드는 중미 관계에선 다음 두 가지 상황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1) 중국이 두려워하는 건 미국에 의한 군사-경제 봉쇄다.
2) 미국이 두려워하는 건 중국 주도의 대미 배타적 블록이다.
그런데 지금 TPP와 군사적 힘겨루기가 동시에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죠. TPP는 명백하게 1)을 건드립니다. 중국이 할 수 있는 건 2)의 경제블록을 만드는 건데, 일본이 빠진 FTA나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ECEP)'은 힘이 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국 내에서도 TPP에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중국 정부도 강한 반대 의사를 내비치지 않는 거죠.
하지만 중화권 전문가들은 중국이 단기간에 TPP 참여를 선언할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국유기업 제도 개선, 지적재산권, 투자 조항 등 한미 FTA의 독소조항은 중국 경제에 더 큰 타격이 되기 때문이죠.
한중 FTA가 타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이 TPP에 들어가는 것은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겁니다. 해서 한국 정부는 서둘러 한중 FTA를 맺으려 할 겁니다. 이쪽에 내줬으니, 그 경쟁자에게도 내줘야 한다는 심리죠.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과 함께 TPP에 가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현재의 한중 FTA를 그 플랫폼(기본 틀)로 만들자고 제안하면 어떨까요? 만일 현재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그리고 협력 프로그램이 한껏 포함된 동아시아판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 경제와 사회에 대한 타격도 한결 줄어들고, 무엇보다도 1)과 2)라는 국제적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러시아도 포함시키면 금상첨화일 테죠.
TPP에 관해선 할 말이 많지만, 앞으로도 몇 개월은 중요한 이슈일 테니 차근차근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3분기 경제성장율 3%, 그러나 연간 소비는 1.9% 증가
12월 2일 한국은행은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3분기 전년 동기대비(작년 3분기에 비해서) 경제성장률이 3.3%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1분기 1.5%, 2분기 2.3%였으니까 분명히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거죠. 문제는 소비입니다. 대표적인 소비동향 지표인 전국 소매판매지수의 실질 상승률(불변지수 기준)은 2012년 4분기에 전년동기 대비 2.5%에서 올해 1분기 0.2%로 뚝 떨어졌다가 2분기에 1.1%로 회복되는 듯하더니, 3분기에는 다시 0.7%로 뒷걸음질쳤습니다.
한은이 제시한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는 1.9%로, 성장률 전망치 2.8%보다 0.9%포인트 낮습니다. 내년 전망치에서도 소비는 3% 가까이 증가하는 걸로 상정되어 있습니다만, 소비가 살아날 전망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민간소비 증가율이 성장률을 밑도는 국면은 2008년부터 6년째 이어지고 있는데요. 가계부채와 사교육비, 의료비, 집 관련 비용 등 불필요한 지출이 중간층의 소비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GDP의 50%가량을 차지하는 소비가 계속 줄어든다면 앞으로 수출 증가율이 더 떨어져서 투자가 감소하는 경우, 2~3%의 성장률도 달성하기 힘들어집니다. 다행히 중국이 옆에 있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세계의 거시 경제학자들이 일제히 장기침체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의 반짝 경기도 주식시장의 거품에 이끌린 거라는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의 얘기도 흘려들으면 안 되겠죠.
'줄푸세'에 목매는 무능한 정부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경제 정책은 매우 중요합니다. 앞에서 우리는 적어도 방향을 제대로 잡은 중국 정부의 모습을 봤는데요. 우리의 박근혜 정부는 어떨까요? 이미 복지 정책을 대폭 후퇴시킨 이 정부는 야심 차게 추진했던 부동산 정책도 철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엉뚱하게 부동산 경기를 일으키겠다고 세워진 정책인 만큼 이런 정책 변화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안도를 해야 할까요?
(☞ 철저한 시장 외면에 백기 든 '박근혜 부동산 정책')
박근혜 정부의 모든 정책에는 '행복'이라는 낱말이 붙어 있는데요. 원래 2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던 '행복주택'은 애초에 '철도 유휴부지 등 국공유지에 짓는 임대주택'으로 규정됐었죠. 하지만 철도 유휴부지와 역 근처 공영주차장 및 유수지 등을 모두 긁어모아도 3만 8000가구 공급에 그쳤고, 정부는 아예 행복주택 개념을 바꿔버렸습니다. 행복주택이란 '직장과 주거지역이 가까운 곳에 젊은 층이 사는 저렴한 임대주택'이라고….
출시 이후 단 2건만 판매된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 I'도 사실상 폐지되고 은행이 자율적으로 취급하는 틈새상품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의 1998년 교수 시절 논문을 정책으로 만들었지만, 무능만 증명한 셈이죠. 하지만 집값을 올려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기조는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 이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정책은 바로 '민영화'입니다. '줄푸세'의 가운데 '푸'에 해당하는 정책입니다. 지난주에는 의료, 철도 민영화에 관한 말씀을 드렸는데 이번엔 가스입니다. 가스 역시 네트워크 산업(전기, 가스, 철도, 우편, 수도 등)에 속합니다.
정부가 민간사업자의 액화천연가스(LNG) 직도입 확대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가스 수급 안정성이 악화되고, 요금도 인상될 거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는 12월 2일 국회 앞에서 '실질임금 쟁취 및 가스 민영화 저지를 위한 경고파업' 기자회견을 열고, '도시가스법 개정안'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할 경우 필수인원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낸 '천연가스 직도입 확대가 가스 및 전력 시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는 "직도입 사업자는 천연가스 가격이 낮은 시기에는 값싼 연료를 도입하겠지만 가격이 오를 때에는 직수입 대신 가스공사를 통해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나는 하층, 신분상승 기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품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죠. 12월 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사회조사'에서 1년 전보다 소득이 '증가했다'는 응답은 16.6%, '동일하다'는 응답은 57.2%, '감소했다'는 응답은 26.1%였습니다. 2011년 조사 때는 '증가했다'는 응답이 18.1%, '동일하다'는 응답이 56.7%, '감소했다'는 응답이 25.2%였으니까 2년 새 상황이 더 나빠진 겁니다.
국민 절반(46.7%)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988년 처음 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죠. 나아가서 일생 동안 노력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28.2%로 '없다'는 비율(57.9%)의 절반에 불과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그리도 강조하는 행복은커녕 희망마저 잃은 거죠.
그동안 한국경제의 성공 비결은 '신분상승의 희망'이었습니다. 해방 이래, 지주(地主)가 없어지고 교육열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거대 지주계급이 생겨나서 평생 일해도 내 집을 가질 희망이 없어지고 교육은 이제 신분상승의 통로가 아니라 벽이 되었으니, 희망을 가질 수 없겠죠. 우리 사회는 정말 위험한 상황에 빠지고 있습니다. 키르케고르(Kierkegaard, 덴마크 철학자)의 말대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그런데도 더 많은 경쟁과 시장을 외치고 있는 이 정부, 나아가서 언론과 지식인들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겨울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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