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동북아 질서 속에서 한국의 선택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특정 국가에 올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능한 한 균형과 중용을 추구해야 한다. 평화가 증대되고 협력이 늘며 한국의 국가이익이 확대되는 방향을 고민하고 찾아내야 한다.
당장 중국의 진짜 속내를 정확히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 북·중 관계와 관련해서도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고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 진영의 목소리와 중국은 결코 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보 진영의 정세분석은 사실 현실에 견주어 보면 둘 다 정확한 결론은 아니다. 항상 현실은 양 극단의 중간 어딘가에 존재한다. 따라서 중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는 우리의 당위적 요구나 희망적 기대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 지난 7월 27일 북한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김정은(오른쪽)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리위안차오 중국 국가부주석. <교도통신>은 당시 김 제1위원장과 리 부주석이 나란히 단상에 모습을 드러내 북중 간 친밀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여전히 핵문제를 놓고는 양측이 불편한 심기를 갖고 있다고 분석하며, 향후 양국 간 줄다리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AP=연합뉴스 |
이미 우리 내부에서는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북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대북 정책이 전략적으로 바뀌었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아직은 중국이 북을 전략적으로 포기하기 힘들고 따라서 최근 모습은 전술적 변화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유엔의 대북제재에 신속히 찬성하고 실제 제재 이행에도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엄정하게 임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은 분명 달라진 게 사실이다. 3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 결의안 2094호가 통과된 것에 대해 북한이 중국을 겨냥, 공식성명으로 강도 높은 비난을 했던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아직도 북에 원유와 경제적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북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개발구와 경제특구가 사실상 중국의 지원과 도움 없이는 시작조차 불가능한 구상임을 감안하면 여전히 북·중 경제협력은 중앙 정부 차원에서 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양이 활기가 넘치는 것은 중국의 대북 경협 확대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결국 중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과연 북한 포기로까지 나아갈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사실 요동치고 있는 작금의 동북아 질서 속에서 중국의 입장은 북한을 완전히 포기하지도, 그렇다고 확실히 껴안기도 어려운 복잡한 상황이고 그것이 지금 중국 대북정책의 실상일 것이다. 즉 북한을 방기함으로써 북이 붕괴하거나 혹은 친미화되어 미국의 영향력하에 놓이는 것은 지금으로선 극력 막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북을 사사건건 두둔함으로써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주창하는 이른바 신형대국 관계에 난관을 조성하거나 중국의 대외적 영향력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 또한 피해야 하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 정책이 중국에 대한 명백한 재관여(re-balancing)이고 이에 따라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에 대해 미국이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히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이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여전히 중국에 소중한 완충 지역(buffer zone)인 셈이다. 아직도 북한은 중국에 전략적 자산의 가치를 갖고 있다.
2009년 5월 북이 2차 핵실험을 했을 때도 후진타오(胡錦濤) 지도부는 매우 격앙된 어조로 북을 비난했고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했다. 그러나 논란 끝에 중앙외사영도소조의 결론으로 북을 안고 가기로 했다. 그해 9월 중국은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을 북에 보내고 곧이어 10월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방북함으로써 이후 북·중 관계는 전략적으로 강화되었다. 미·중 관계의 근본 속성이 변하지 않는 한, 여전히 북한은 중국이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자산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과도한 군사적 도발과 위기 조성은 중국에 적잖은 전략적 부담을 주고 있다. 북한을 중국의 영향권 아래 둬야 하고 그래서 북을 지지하고 지원하지만, 북한이 중국의 지원을 믿고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며 한반도에 불필요한 위기를 조성하게 되면 이를 빌미로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개입과 영향력을 지속하고 확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중국으로서 골치 아픈 부담일 수밖에 없다.
2009년 북·중 관계 강화 이후 북한은 2010년 연평도 포격을 감행했다. 이는 한미 합동훈련을 강화하는 동인이 되었고 미 핵항모가 한반도에 진입하는 명분이 되었다. 중국은 미국의 대(對)한반도 군사력 투사를 지켜봐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2013년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전쟁위협과 군사적 위기 조성 역시 미국으로 하여금 B2 스텔스 폭격기와 B52 전략폭격기 등을 한반도에 진입시키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즉 북한의 지나친 위기조성과 군사적 도발은 미국의 대한반도 개입과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함으로써 중국에 상당한 부담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북한을 적당히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면서도 북의 과도한 군사적 도발 때문에 미국의 대한반도 개입이 정당화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북한을 완전히 포기하기도 그렇다고 항상 두둔하기도 어려운, 그 중간지점이 바로 중국의 대북정책의 현주소가 되고 있는 셈이다.
북·미 관계에 대한 중국의 입장 또한 애매한 것은 마찬가지다. 북·미 관계가 갑자기 진전되어 급속도로 가까워지거나 정상화되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대북 영향력이 약화됨을 의미한다. 2007년 2.13 합의 직후 김계관이 뉴욕을 방문해서 미국 고위관계자들과 만나 미국의 대중전략을 언급하면서 북이 미국을 도울 수 있음을 시사했다는 보도는 중국을 바짝 긴장케 했다. 반대로 북·미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고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위기조성과 군사적 위협을 지속하게 되면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개입과 영향력 확대를 막을 명분이 없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난처해진다. 북핵 위기를 명분 삼아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고 한미일 신삼각 동맹을 정당화하게 되고 이럴 경우 중국으로서는 가장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동북아 정세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를 감안하면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문제나 북미협상 등에서 미국과 적당히 갈등하고 적당히 대화하는 중간지점이 사실은 가장 바람직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중국은 북핵협상이나 북·미 관계가 북이 미국 품으로 넘어가는 정도까지 진전되거나 가까워지는 것도 막아야 하고, 또 그렇다고 핵문제나 북·미 대결이 심화되어 미국이 한반도에 강력한 군사적 개입을 해야 하고 그로 인해 한미동맹과 한미일 삼각동맹이 강화되는 상황도 막아야 한다. 때문에 지금 중국에는 북·미 대화가 적당히 진행되지만 급속히 북·미 관계 정상화로 진전되는 것도 내키지 않고, 북·미 대결이 가끔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통제불능의 긴장고조나 상황악화로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중국 입장에서 북·미 관계는 너무 진전되는 것도 너무 악화되는 것도 아닌 중간 정도의 어느 지점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즉 평화를 유지하되 북·미 관계 정상화까지는 아니고, 갈등이 필요하되 미국의 군사적 개입 정도까지는 아닌 수준이어야 한다. 이를 냉정하게 핵문제에 적용해보면 6자회담이 재개되어 북핵문제가 일정하게 관리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시작되는 정도가 중국으로서는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 된다.
최근 6자회담 재개에 열을 올리는 중국의 속내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 본질과 의도를 정확히 봐야 한다. 중국이 내심 북·미 관계 정상화를 원하지 않음은 결국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가 적극 나설 수밖에 없고 또 나서야만 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북한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중국의 영향력에 의존하려는 접근법은 그래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요동치는 미·중·일의 동북아 정세 속에서 우리는 일방적 기대와 주관적 희망만으로 국제정치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국제정치의 현실은 냉정한 것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주인이고 주인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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