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안보전문가 앤드류 바세비치는 <워싱턴 룰>에서 미국이 이렇게 긴 전쟁을 지속하는 이유는 몇몇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 세계의 모든 일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인 '워싱턴 룰'이라는 구조가 작동하면서 미국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프레시안>은 미국이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와 워싱턴 룰의 지속 가능성, 나아가 갈수록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동북아 국제정세 속에서 한미동맹 강화가 우리에게 최선의 선택인지를 알아보고자 <워싱턴 룰>을 번역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박인규 이사장과 성공회대학교 김민웅 교수의 '북 토크'를 마련했다.
이번 북 토크는 지난 6일 <프레시안>강의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박인규 이사장의 강연 및 김민웅 교수와의 대담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지난 6일 프레시안 강의실에서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워싱턴 룰>북 토크에서 박인규 이사장이 강연하고 있다. ⓒ프레시안(이명선) |
■ 박인규 이사장 강연 :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앤드류 바세비치는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나와 육군 장교로 23년 동안 근무했다. 1990년대 초 대령 예편 이후 마흔이 넘은 나이에 미국 외교사를 공부했다. 스스로를 가톨릭 우파라고 지칭했으며 미국 좌파에 대한 반감도 많다. 1990년대 말 까지만 해도 네오콘, 이른바 전쟁의 주역들과 가까웠다.
그런데 2001년 9.11 사태와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의 군사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의 각광받는 안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 국민들이 보기에도 미국의 군사주의가 문제 있다고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설득력 있는 논지를 제시했다.
바세비치는 미국을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정치인들이 미국을 혹사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서 <아메리칸 엠파이어(American Empire)>에서 그는 1990년대 냉전 이후의 미국 대외정책을 설명했는데, 19세기말,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필리핀 등을 식민지로 획득한 18988년부터 미국은 일관된 대외팽창정책을 써왔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문호개방'이라는 것인데 미국 기업들이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기업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발생되는 모든 문제를 군사력으로 풀겠다는 미국 군사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후 그는 2008년 <힘의 한계>라는 책으로 명성을 얻게 됐다. 이 책에서 바세비치는 미국이 지금처럼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군사적·정치적·경제적으로 지속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이 세계의 자유를 위해 대외적인 활동을 전개한다고 하는데 이 자유가 미국인들의 '마음껏 소비할 자유'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이 마음껏 소비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석유다.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는 중동지역의 안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미국은 중동에 군사력을 파견해 그 지역을 안정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딜레마가 있다. 미국은 1973년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징병제를 폐지했다. 국민들에게 군대에 가지 않을 자유가 생긴 것이다. 국민들은 마음껏 소비할 자유와 군대 안 갈 자유 모두를 누리고 싶어하는데, 이 두 가지가 양립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바세비치의 주장이다. 소비를 하려면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야 하고 그러려면 군사력을 동원해야 하는데 미국의 젊은이들이 군대를 가지 않으니까 부채가 쌓이게 된다. 결국 현재 미국의 대외 군사개입주의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미국이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워싱턴 룰>은 미국 대외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특징으로 미국예외주의, 세계주의, 군사주의를 꼽을 수 있는데 우선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이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신장한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옳다는 것이다. 세계주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군사주의는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군대를 통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워싱턴 룰'의 요체다.
워싱턴 룰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미국은 2차 대전 이후부터 세계의 패권국가가 됐다. 책에 따르면 미국의 패권 관철에 가장 중요한 수단은 전략공군사령부와 CIA(미 중앙정보국)였다. 전략공군사령부는 미국의 핵무기를 담당하는 부대다. 1945년 미국이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했을 때 미국은 앞으로 10~20년 동안은 원폭을 독점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소련이 불과 4년 후인 1949년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은 소련에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전략공군사령부를 대대적으로 정비한다.
CIA는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나라가 있을 때 노골적인 침공 대신 비밀공작을 통해 그 나라를 전복시키는 데 활용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1953년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 전복, 1954년 과테말라의 아르벤즈 정권 전복 등이다. 미국은 전략공군사령부를 통해 엄청난 핵무기로 소련을 저지하고 CIA를 통해 비밀공작으로 적대적인 정권을 전복시키는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해온 것이다.
바세비치는 CIA와 전략공군사령부가 국회나 정부의 감시를 받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했다. 냉전 당시 소련에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 보니 견제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소련이 계속 따라온다는 위협을 동력으로 삼아 미국의 군사력을 팽창시켜 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군사주의가 아무런 제재나 감시를 받지 않고 성장해 왔다.
미국이 군사주의로 가고 있다는 위험성을 알게 된 것은 1961년 아이젠하워의 군산복합체 연설 이후였다. 아이젠하워는 퇴임하면서 "미국이 위험하다, 평화적 목적으로 쓰여야 하는 많은 돈이 군수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아이젠하워는 군대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는 명장이다. 그런 그도 이미 1950년대에 미국 산업이 평화목적이 아니라 군수목적으로 과도하게 쓰인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에 재임할 때는 그것을 막지 못했다. 퇴임할 때가 되어서야 겨우 한마디 할 수 있던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후보 시절 미사일 부문에 있어 소련한테 뒤지고 있다며 군비를 확충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게 된 것도 워싱턴 룰이라는 구조 안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케네디를 대통령의 자리에 앉히고 싶었던 아버지 조셉 케네디는 <타임>과 <라이프>지를 만든 헨리 루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루스는 조셉 케네디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부적으로는 진보적이어도 좋으나 대외적으로는 공산주의에 유약하게 나가면 안 된다. 만약 유약하게 나가면 찢어 죽이겠다."
이런 발언에서 알 수 있듯 이미 1960년대 미국 내부에서는 공산주의에 유약한 반응을 보이면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일종의 컨센서스가 있었다. 그래서 케네디도 취임 초기 군사력을 엄청나게 확장한다. 미국이 군사주의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은 이미 1940년대 말부터 50년대 사이에 결정된 것이다.
▲ <워싱턴 룰>(앤드루 바세비치 지음, 박인규 옮김,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
이후 레이건 대통령이 나타났다. 1979년 7월 카터 대통령은 "미국이 초강대국의 위치에서 벗어날 것이니 적게 소비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자"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레이건이 나타나서 "마음껏 소비하라. 그러니 군사력을 키우자. 우리가 진 것은 군사력이 약해서 진 거니까"라고 말하면서 군사력을 엄청나게 팽창시킨다. 레이건 집권 당시 방위비에 들어간 돈이 2조 달러였다. 이후 미국은 모자란 돈을 메꾸기 위해 빚잔치를 벌였는데, 취임 초기에 9700억 달러였던 빚은 퇴임할 때는 2조 달러로 불어났다.
그런데 방위비에 2조 달러를 쓰고 빚잔치를 벌이면서도 미국 경제는 잘 돌아갔다. 미국이 기본적으로 전쟁경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는 방위산업체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인데, 미국 방위산업체의 특징은 50개 주 전역에 공장이 있다는 것이다. 이 공장들은 지역 경제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미국의 의회 의원들은 공장을 더 만들고 무기를 더 생산하라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레이건 재임 기간 군사주의가 더 확장됐다.
냉전 이후 미국, 군사주의 축소되나 싶었지만
냉전이 끝난 이후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군비 예산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1991년 이라크 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당시 석유산업의 국유화를 진행했고 이슬람권에서 가장 세속적이며 선진적인 정권이었다. 미국은 이라크가 중동지역의 패권국가가 되면 중동지역 전체의 석유 패권을 이라크한테 뺏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전쟁은 6주간의 폭격과 4일간의 지상군 투입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2003년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까지 이어졌다.
바세비치는 부시 대통령을 '무장한 윌슨주의자'라고 표현한다. 윌슨 대통령은 평화적 수단으로 인권, 민족자결주의 등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부시는 북아프리카부터 아프간까지 민주주의를 전파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무력을 사용했다. 부시는 이라크를 점령하면 이라크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해방자가 왔다"고 반길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실제 그렇지 않았고 여전히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전쟁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아프간 전쟁은 미국이 소련을 무너뜨리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다. 1979년 카터 대통령 재임 시절 안보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는 "이제 우리가 소련에 또 다른 베트남 전쟁을 선물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 때문에 엄청 고생하지 않았나? 소련도 아프간 전쟁에 들어오면 그렇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아프간 전쟁은 아프간 사람들이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이 돈을 풀어서 전 세계의 무슬림 전사들을 아프간으로 긁어모았다. 미국은 이 작업을 하는데 30억 달러의 돈을 쏟아 부었다. 소련 역시 아프간 전쟁을 하면서 국력이 많이 소진됐다.
아프간 전쟁 당시 미국이 전 세계에서 모은 무슬림 전사들은 10만 명이 넘는데 이 사람들이 아프간 전쟁이 끝난 이후 미국의 적이 됐다.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이 들어가면서 무슬림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 사우디아라비아인데, 1945년부터 미국과 사우디는 석유와 안보를 교환했다.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맡아주는 대신 사우디는 미국에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던 1991년, 미국은 사우디도 이라크에 침공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우디로 군대를 파견했다. 무슬림 입장에서는 이교도인 미군이 사우디에 들어간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2001년 9.11 테러를 감행했던 오사마 빈 라덴이 1995년부터 테러를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출발한다. 아랍 지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라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이라크를 무너뜨리고, 더불어 이란까지 무너뜨리면 중동지역이 미국처럼 민주주의와 인권을 사랑하는 지역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이런 방식의 미국식 전쟁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전쟁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오바마는 이라크에 들어간 지상군의 피해가 워낙 많아 중동지역과 아시아에 더 이상 지상군을 보내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당시 국방장관인 로버트 게이츠의 이름을 따 '게이츠 독트린' 이라고 불렀다. 오바마는 지상군 대신 '드론', 즉 무인기를 통해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거의 매일같이 알 카에다에 소속된 테러 분자들을 제거하는 데 드론이 사용되고 있다. 주로 파키스탄, 예멘, 소말리아 등지에서 드론 공격이 실시되고 있다. 그런데 드론은 테러 분자만 죽이는 것은 아니다. 민간인들이 죽는 부수적 피해가 발생한다. 드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드론 공격을 할 때마다 40~60명의 반미분자가 생겨난다면서, 계속 미국의 적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군사주의 정책, 우리의 대응은
미국의 영구적인 전쟁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사실 우리는 미국 때문에 살아남고 살아온 나라다. 우리나라 사람의 70% 정도는 미국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이 보호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남한이 미국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크게 보자면 미국이 군사주의화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한반도다. 우리는 6.25전쟁을 남북이 싸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미국과 중국이 싸운 것이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은 70년대 화해했다. 이를 본 박정희 대통령이 큰일 났다고 생각하고 북한과 만들어낸 것이 7.4 남북공동성명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남북화해를 하지 못하면 남북 간 대결을 빌미로 미국과 중국이 대결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구축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망인 MD는 사실 북한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구축하는 것이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미사일 요격 금지조약은 필요 없다는 말을 했다고 미국에 혼쭐이 난 적 있다. 미국은 실제 이유를 숨기고, MD 구축의 명분으로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 위협을 내세운다.
그래서 남북이 대립하면 미·중 간 대립이 격화되고 동북아 냉전이 가속화되는 것이다. 남북이 화해하지 못하면 미·중의 군사적 대립이 심해질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놓고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주 최악의 경우 또 전쟁을 겪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군사주의가 워낙 굳어져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는 남북 간 화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 박인규-김민웅 대담 : 미국의 군사주의,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 김민웅(왼쪽) 성공회대 교수와 박인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 ⓒ프레시안(이명선) |
김민웅 : 미국은 냉전 시대를 '기나긴 평화(Long Peace)'라고 하는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 무수히 많은 나라가 전쟁을 했다. 이란의 모사데크, 한국전쟁, 중남미에서 벌어진 무수한 군사 쿠데타와 미국의 공작, 베트남 전쟁까지. 거대한 전쟁은 없었지만 워싱턴이 지휘한 무수히 많은 전쟁이 있었다. 이러한 전쟁이 가능하도록 뒷받침한 문서가 하나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군사주의 경제체제로 전환한 계기가 됐던 'NSC-68'이다.
박인규 :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대외 정책은 봉쇄정책이었다. 소련이 팽창주의적 성향이 있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1947년부터 이러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2차 대전이 끝난 직후라 군사력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발전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군사력 확충의 계기가 되는 중요한 사건 두 가지가 발생한다.
우선 1949년 소련의 원폭 개발이다. 원래 미국이 원폭을 개발한 이유는 히틀러의 원폭 개발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맨하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처음 원폭을 만들었는데 알고 보니 독일은 원폭 개발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럼 거기서 끝냈어야 했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원폭을 가졌으니 세계가 자신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본에 원폭 2개를 투하하며 자신들의 위력을 소련에 보여줬고, 앞으로 10~20년 후까지는 자신들만 원폭 보유국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소련이 일본 원폭 투하 이후 불과 4년 만에 원폭을 만들어 낸 것이다.
또 하나의 사건은 1949년 10월 중국의 공산화였다. 미국 패권에 위협을 가하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1950년 4월 NSC-68이라는 계획을 만들었다. 이대로 놔두면 미국의 패권이 위협받으니 군사력을 대대적으로 확장해야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전쟁 때문에 힘들었던 국민들은 다시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또 이 계획을 추진하려면 당시 지출되던 국방비의 4배를 써야만 했다. 국민들을 설득할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6.25가 발발했다. 그러면서 NSC-68이 자연스럽게 실행됐다. 이들에게 6.25는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이 공산권 확장을 위해 저지른 전쟁이었다. 이렇게 6.25를 정의함으로써 소련의 팽창에 대응해야 한다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딘 에치슨은 "코리아가 나타나서 우리를 구해줬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6.25에 대해 "하늘이 보내준 기회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6.25에 따른 전쟁 특수로 일본경제가 단숨에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전쟁을 하면 일반 국민들은 고생하지만 정치지도자와 군 장성, 방위산업체는 엄청난 이익을 얻는다.
김민웅 : NSC-68 계획을 만든 폴 니츠는 봉쇄정책을 군사화시켰다. NSC-68은 미국 자본주의 경제를 군사적으로 전환시킨 결정적 문건이었다. 당시 NSC-68과 같이 등장한 것이 CPD(Clear and Present Danger,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였는데, 이는 미국의 냉전정책을 구성하고 CIA를 비롯한 관련 기관들을 군사적으로 증강시키는 기본 개념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기구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CIA, 펜타곤, 정치인 등등. 그런데 여기에 숨어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군산복합체 역할이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하는 방위산업체와 전쟁
박인규 : 미국 경제는 이미 전쟁에 중독됐다. 미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 방위산업체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 없으면 미국 경제가 돌아갈 수가 없다. 2차 대전은 세계 대공황 때문에 일어났다. 또한 대공황 위기를 극복한 것이 2차 대전이었고 이후에도 미국 경제는 군수경제 중심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미국이 1차 대전 직전부터 항공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군산복합체의 핵심은 항공기다. 베트남 전쟁 때도 미국의 방위산업체들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면 미사일, 전투기의 수요가 떨어질 것 아닌가. 따라서 방위산업체들에게는 전쟁이 있어야 수익을 낼 수 있고, 국가적으로 봤을 때는 방위산업체가 잘 돌아가야 경제를 굴릴 수 있는 것이다. 1990년대 냉전이 끝났을 때 국내의 많은 학자들이 미국이 평화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리영희 선생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민웅 : 미국 내부에서는 냉전의 '전쟁경제체제'를 만들지 않으면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수명이 끝난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미국의 군사주의체제가 작동되는 측면에서 우려스러운 점은 전쟁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기획된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미국이 중국에 대한 포위정책을 분명하게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사안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다. 일본이 20년 동안 어려운 처지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미·일 간 군수산업체제의 동맹 결속력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박인규 : 일본은 중국을 두려워하는데, 미국의 힘이 퇴조하니까 더 겁이 나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도 중국에 대항할 만한 군사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 집단적 자위권은 쉽게 말하면 중국에 대응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이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우리는 사정이 좀 다르다. 우리가 군비를 증강하면 북한이 따라서 군비를 증강한다. 또 중국을 자극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신무기 들여오는 것이 오히려 안보가 위태로워지는 역작용을 일으킨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국 경제가 많이 안 좋았다. 이후 미국이 외국에 무기를 팔기 시작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원조형식으로 무기를 대외에 제공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이후에는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의 손으로"라는 닉슨 독트린이 등장했다.
미국은 또 한편으로는 이란을 중동지역의 미국 대리인으로 내세우면서 엄청난 무기를 팔았다. 1974년 오일쇼크 이후 엄청난 돈이 중동지역으로 들어갔는데 그 돈을 회수하기 위해 사우디나 이란 같은 나라들에 무기를 판 것이다. 미국이 만들어내는 첨단 무기들은 개발비가 많이 든다. 이걸 미국이 혼자 감당할 수가 없으니 무기 개발 비용의 절반 정도를 사우디나 쿠웨이트에 전가한다.
김민웅 : 1970년대 닉슨 독트린 이후 미국이 기존에 팔지 않았던 무기를 팔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조기경보기(AWACS)는 외국에 절대로 안 팔았던 무기였다. 그런데 이것을 팔기 시작했다. 미국이 이 무기를 특정 국가에 팔기 시작하면 다른 나라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한 무기를 사야 한다. 결국 미국은 이 무기 하나로 새로운 시장 하나를 얻는 것이다. 미국의 1년 국방예산은 군수산업 1년 매출이다.
▲ 김민웅(왼쪽) 성공회대 교수와 박인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 ⓒ프레시안(이명선) |
박인규 : 요즘 한국에서 '킬체인' 이야기를 많이 한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패트리어트같은 미사일로 막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한테 실질적인 북한의 위협은 핵미사일이 아니라 휴전선 근방에 배치된 장사정포다. 이게 10000문 정도 된다. 1994년도에 전쟁이 날 뻔 했는데 당시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더니 북한이 서울을 향해 장사정포를 쏘면 민간인 피해가 100만 명 정도 나온다고 하더라.
이 장사정포가 한 발에 20만 원 정도 된다. 반면 우리가 북한에 대응하는 무기는 너무 비싸고 효용성도 떨어진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우리 군이 원점타격을 한다고 F-15전투기에 20억 원짜리 미사일을 장착하고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장착하는 데 40분이 걸려서 미장착 상태로 출격했다고 한다. 북한은 20만 원짜리 장사정포로 위협하는데 우리는 그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는 20억짜리 미사일만 갖고 있는 것이다.
결국 킬체인으로 비롯되는 핵미사일 대응체계가 실제로 북한 위협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이 김대중 정부 때부터 우리한테 MD를 팔려고 시도했다고 한다. 근데 당시 천용택 전 국방부 장관이 "북한과 사이가 좋아지면 미사일 필요 없는데 뭣 하러 사?"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 자꾸 신무기를 들여오라고 하는데 신무기를 운용할 능력도 없고, 그것이 북한의 위협을 막는 현실적인 대응책도 아니다. 특히 이번에 우리가 전작권 환수 연기를 요청했기 때문에 미국이 우리한테 무기를 많이 팔려고 시도할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정부의 제대로 된 전략이 있는지 우려스럽다.
얼마 전 국방부 정보본부장이 미군을 빼고 남북이 1대1로 싸우면 우리가 질 것 같다고 말했다는데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본다. 1991년 리영희 선생이 남북 군사적 비교를 했을 때 "북한이 하드웨어로는 도저히 전쟁을 치를 수 없는 상태다, 전쟁을 하려면 석유가 있어야 하는데 중국이 끊으면 북한은 전쟁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2005년 백낙청 선생은 1대1로 붙으면 우리가 질 것 같다고 하더라. 이는 무기 성능 때문이 아니다. 우리 힘으로, 독자적으로 안보 전략을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그런데 우리나라 군대는 임진왜란 이후로 자기 힘으로 나라를 지켜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미국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무기가 많다고 안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안보의 핵심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물론 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무기가 있겠지만.
남북 화해만이 동북아 신(新)냉전을 막을 수 있다
김민웅 : 미국이 미사일 이야기를 할 때 군사력의 비대칭성에 대해 강조한다. 우리도 "우리는 핵이 없기 때문에 비대칭성이 고착됐다"고 하면서 신무기 도입의 근거를 만든다. 그런데 동북아에서 향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동해와 서해에서 함포 사격을 하면 서울이 타격을 입게 되고, 그 뒤에는 아무리 많은 무기를 갖췄어도 우리가 헤쳐 나가기 힘들다. 그래서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미국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 없이 그 때 그 때 나오는 정책을 바탕으로 미국을 이해하는 것 같다. 우리가 미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박인규 : 일단 미국에 반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미국은 어쨌든 동북아에서 일종의 안정자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1971년 키신저가 중국에 가면서 미·중 간 화해 기류가 형성됐는데, 당시 중국 지도부에게 일본에 미군이 있는 이유는 일본을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보호하려는 측면도 있지만 일본의 군사적 도발을 억누르려는 측면도 있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그걸 중국도 받아들였다.
1991년 북한의 김용순 노동당 비서가 북미 관계 정상화 이야기를 꺼내면서, 정상화되면 주한미군이 그대로 남한에 있어도 좋다고 했다. 이 이야기의 이면에는 미군이 남한의 군사 도발을 막아준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 정도로 동북아에서는 미군이 갖고 있는 안정자 역할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잘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03년 이라크 파병 때문에 말들이 많았다. 이라크 전쟁은 굉장히 나쁜 전쟁이다. 당시 한 방송사에서 논쟁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라크 전쟁은 분명히 나쁜 전쟁이지만 한미관계 때문에라도 거부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토론자에 나온 사람이 자유와 인권을 위한 전쟁이라고 이야기하더라. 미국을 이렇게 봐서는 안 된다.
미국이 전쟁경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 있었다고 한다. 냉전 종식 이후,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그리고 또 한 번의 기회가 오고 있다. 미국이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 무기 사용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지점이다.
미국은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썼다는 이유로 제한적인 공습을 하겠다고 밝혔다. 예전 같으면 영국이 같이 했을 텐데 영국 의회에서 이를 표결에 부쳤고 결국 부결시켰다. 그래서 미국의 군사적 조치를 막았다. 미국의 시도를 영국이 막은 적은 처음이다. 이후 미국은 시리아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또 하나는 이란과 미국의 관계 정상화다. 지금 협상 중인데, 이 사건으로 미국의 행보가 달라질 수 있을지 주목할 만하다. 시리아나 이란 문제를 협상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인데, 물론 여기에는 오바마의 결심보다는 주변 상황이 오바마를 이끈 측면도 있다. 미국이 예산 자동 삭감 조치를 시행해서 군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김민웅 : 미국은 군사력만으로 보면 지금도 절대 강자다. 전 세계에서 24시간 동안 항모와 전투기를 띄울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유럽 전체 군사력을 합해도 미국을 이길 수가 없다. 그런데 지역에서 상황이 변모하니까 절대적 군사력도 상대화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미국은 워낙 큰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 외교사의 비극은 우리에게 비극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고 있고 한반도에서 남북관계를 잘 풀면 그것이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문제를 풀 수 있는 주체가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현재 박근혜 정부를 보면 한반도 문제를 푸는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박인규 : 바세비치는 "후버가 대공황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부시가 미국의 영구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공모했다"라고 말했다. 국민들이 빚을 지면서도 마음껏 소비할 자유를 위해, 군대를 안 갈 자유를 위해 전쟁에 대한 결정 권한을 정치권에 넘겨버렸다는 것이다. 바세비치는 이러한 상황이라면 미국의 군사주의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며 국민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올해 우리는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았다. 북핵 문제가 시작된 지도 20년이 됐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정전협정이 비정상적이고 문제라는 의식이 거의 없다. 우리 삶을 규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남북관계다. 지난 대선부터 지금까지 NLL 가지고 얼마나 장사 많이 했나? 일부 보수 정치세력들이 국내 정치 이득을 위해 남북관계를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근데 국민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각자 먹고 사느라 바쁜 국민들은 정전협정을 어떻게든 끝내고 평화체제로 가야 한다는 열망이나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다. 현 체제가 매우 비정상적이고, 이 상태로 진행될 경우 6.25와 똑같은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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