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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식 독재, 무력한 야당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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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식 독재, 무력한 야당이 문제다

[주간 프레시안 뷰] 박근혜 정부, 통합진보당 카드 꺼낸 이유는…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현재 <프레시안 뷰>는 프레시안 조합원과 후원회원인 프레시앙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외 구독을 원하는 분은 프레시안 협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유료 구독 신청(1개월 5000원)을 하면 됩니다.(☞ <프레시안 뷰> 보기)


역시 '정면돌파'였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청구했습니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정치개입과 관련해 수사결과를 지켜보자, 그리고 (수사결과 여부에 따라) 재발방지에 힘쓰겠다며 정국수습에 나서는 태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유럽순방 중임에도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 청구라는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혐의 등과 관련해 문재인 의원에 대한 검찰 소환도 감행되었습니다. 이래저래 가뜩이나 어수선한 정국이 한층 더 혼란스러워지겠다 싶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치 정국에 따른 혼란의 지속이 결코 유리한 것만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집권 첫해를 마무리하면서 무엇인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회와 여야 간에 협력이 있어야 하니까요.

일각에서는 '태생적 한계'를 이유로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보고 배운 정치가 결국 '국정원-군-검찰'과 같은 권력기구를 앞세운 '박정희 식 독재정치'라는 것이지요.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그 일을 하며 롤모델로 삼은 것에서 혹은 경험한 것에서 썩 자유롭지 못한 것이 우리네 인간들이니까요. 지뢰밭을 건너는 것과 같을 수 있는 통치행위에 있어 자신의 롤모델과 경험에 대한 의존성은 더욱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믿어 왔던 사람과 방식을 더욱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제한적입니다.

먼저, 한국 사회가 '박정희 식 독재정치'를 재현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에 놓여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치스타일이 그것을 연상시킨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박정희 식 독재정치 재현의 명분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독재정치라고 하더라도 사회적 동의의 기반을 가져야 합니다. 독재정치를 해서라도 이뤄야 할 목표에 대한 '동의'말입니다. 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세계화를 거쳐 세계 10위권의 국가가 된 지금,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럴 정도의 저개발 국가가 아닙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지닌 큰 나라입니다. 또 '반공-반북'을 명분으로 정적과 저항세력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여가며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 탄압할 수도 없습니다. 이 역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전국교직원노조 법외노조화의 경우를 봐도 그렇습니다. 민주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적 가치를 부정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가 변란의 위기에 처해 있지도 않습니다. 고용 및 소득불안정 등으로 인해 삶을 영위해가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루하루의 삶을 전쟁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경제적 약자의 삶이 그렇습니다. 다른 어떤 사회구성원들보다도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성격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박정희 식 독재'가 아닌, 민주화 이후 특히 민주정부 10년을 거친 맥락에서 '박근혜 식 독재'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학술적 연구가 아닌 이상- 아무리 분노가 치밀어올라도 시간을 두고 살펴보고 민심에 바탕해 결론 내야 할 일입니다. 지금은 단지 독재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상태일 따름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대항의 전략은 달라야 합니다. '박정희 식 독재' 혹은 '유신회귀'라는 딱지를 서둘러 붙일 것이 아니라, 다수의 보통사람들이 스스로 어떤 독재인지를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선입니다.

사실 작금의 상황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를 파악하는 데 있어 더욱 필요한 질문은 '왜 하필 지금'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는가 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태생적 한계론이 말하고 있지 않은 부분이 이것이기도 합니다.

지난 10월 28일과 29일 양일간 '프레시안'과 '더 플랜'이 실시한 여론조사를 통해서 확인한 것처럼, 9월 이후 상승세 조짐을 보여 온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처음으로 40%대에 들어섰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를 저지할 반전카드가 필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선불복은 아니지만, 지난 대선이 공정치 못했다고 보는 여론 형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가정에 바탕을 둔 질문이긴 하지만, '리서치뷰'가 10월 27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경찰이 제대로 수사발표를 했으면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을 것'이라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자체가 박근혜 국정운영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불리한 쟁점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쟁점인 것이지요.

▲ 11월 8일 자 '손문상의 그림세상'. 박근혜 대통령은 1972년 박정희 독재 정권에서 유신 헌법 초안을 작성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2013년 소환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남재준, 서청원 등 30년대 태어나 80년대 활동한 60세가 넘은 '新 386'을 연이어 부활시켰다. 대신 민주화 이후 '노동자'의 권리를 강조하고 있는 시민단체, 교사 및 공무원 노조, 정당을 탄압하고 있다. ⓒ프레시안

그럼,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문제가 부각된 이후의 정국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요. 이를 전망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런 카드를 '들고 나온 이유'보다는 그런 카드를 '들고 나올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약체 야당, 자신의 고유한 의제를 설정하고 그것을 꾸준히 개진해가고 있지 못한 채 박근혜 정부가 던져준 의제에 매달려 허덕거리고 있는 야당의 무능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11월 1일~2일 실시한 정기조사결과에 따르면, '교착상태에 빠진 대치정국과 관련해 누구의 책임이 더 크냐'는 물음에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이라는 답은 34.9%에 그친데 비해, 민주당 등 야당이라고 답한 것은 45.7%에 달했습니다(모름/무응답은 19.4%). 이와 같은 조사결과는 대치 정국의 책임소재가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와 함께, 국민들이 야당에게 대치 정국을 돌파해 낼 '실력'을 요구하고 있음을, 하지만 그것이 충족되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야당에 대한 국민적 평가와 그간의 야당의 행동양식을 고려해 다시금 갈등을 유발할 쟁점을 과감하게 제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낚일 것이 확실하니까요. '집권 세력이 소모적인 정쟁을 유발하려 하지만, 우리는 민생을 위해 꿋꿋하게 간다'는 식의 대응을 야당이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지요.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이름으로 결국은 조직이라는 재화를 가진 자신들만의 위기를 강변하는데 그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외쳐도 보통사람들의 지지를 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는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의 정국운영 전략, 특히 '대야 전략기조'는 매우 일관되고 간단합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시비 걸기'와 '종북주의 척결'이 그것입니다. 그런 선상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는 이미 내란음모 수사 착수 때 새누리당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거론된 바 있습니다. 즉 '예비했던' 의제였다는 것이지요. 이를 볼 때, 박근혜 정부의 의제운용이 꽤 '기술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NLL 시비에 이은 사초실종 논란과 내란음모 수사에 이은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에 이르는 과정을 찬찬히 새겨보면 그렇습니다. 그 사안들을 무기로 출범 직후의 인사파동과 윤창중 추문 사건, 복지공약 후퇴와 검찰총장 사퇴압력 논란 등 정부를 곤혹스럽게 할 문제들을 요리조리 잘 피해 온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시비 걸기'와 '종북주의 척결'은 박근혜 정부에게 '방어벽(방어 의제)'의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쟁점들을 통해 보수층을 결집시키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으로 바꿔버리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야당이 민생을 중심으로 한 자신만의 의제를 제기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아닌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를 펼치지 못하는 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박근혜 정부가 주도하고 조장하는 대치 정국은 지속될 것입니다.

뜬금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안철수 의원 측이 신당 창당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특검 실시를 주장하고 나서는 등 정치행동을 개시했고, 야권이 국정원 문제와 관련해 연대기구 구성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여당과 야권 간에 힘의 균형을 가져올 야권의 조직적이고 질서 있는 대응이기 때문입니다. 야권의 '실력 발휘'도 이것에 바탕을 둬야 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이 정국 향방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려면, 단지 국정원 문제나 통합진보당 해산청구와 같은 문제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의제를 같이 다루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는 민생 개선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효과적이고 장기적으로 추진해 갈 '경제민주정부'의 구성을 위한 야권 재편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계속 과거 노무현 정부를 시비 대상으로 삼고, 종북주의 척결을 내치의 주된 무기로 삼고 있다는 것, 또 그와 관련된 의제의 기술적 운용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허약한 정부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내건 국민행복과 그것을 위한 국민통합과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나갈 자신감과 능력을 아직(?) 갖고 있지 못함을 뜻합니다. 또 대야 전략 기조가 일관되고 단출하고 예견이 가능한 것인 만큼 야당이 효과적인 대응전략을 세우고 구사하는 것이 어려운 것만도 아닙니다. 이는 '야권이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정국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은 야당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면서 '너의 길을 걸어라, 그리고 남이야 뭐라고 하든 그냥 내버려두어라'라는 말을 격언으로 삼아 꿋꿋이 전진하는 야권의 건투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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