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박 6일의 해외순방 일정을 마치고 22일 오후 귀국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산더미 같은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실질적 효과에는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노 대통령이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핵폐기시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합의하고 아베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도 무난히 진행하는 등 이번 순방의 성과가 적지 않았지만 두고 온 국내정치현안들은 더 복잡해진 느낌이다.
출구 없는 부동산 문제…여론은 점점 악화
먼저 노 대통령이 해외순방 직전 건교부 장관, 홍보수석, 경제보좌관을 사실상 문책인사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부동산 문제에 대한 여론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돈 줄을 죄기 위해 금감원이 야심차게 뽑았던 대출규제라는 칼은 '실수요자만 때려잡는다'는 아우성 속에 단 하루 만에 칼집으로 되돌아갔다.
그 뒤 정부는 "서울시는 공급확대를 위해 아파트 후분양 시행을 미루라"는 등 좌충우돌 하고 있을 뿐 "언젠가 집값이 잡힐테니 믿어달라"는 하나마나한 장담 외에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이전투구를 거듭하던 여야 정당들이 '부동산 특위'를 구성하기로 합의했지만 애초 "여-야-정이 모이자"는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제언과 달리 이 특위는 정부는 빼놓고 정당들만 포함하기로 합의됐다.
문제는 "청와대가 부동산 문제에 대해 끝까지 중심을 잡고 갈 것"이라는 장담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복귀해도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것. 최근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북핵 문제를) 잘 풀어도 부동산을 잡아야 여론이 돌아서지 않겠냐"고 맥을 짚었지만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진퇴양난에 처한 전효숙 내정자 처리
3개월 째 지지부진하고 있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내정자 처리 문제도 부담이긴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의 육탄저지 끝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양당은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의 원만한 처리를 위해 오는 29일까지 계속 협의한다"고 합의를 해놓긴 했지만 29일이 되어도 전 내정자 문제가 표결처리 되긴 현재로선 난망한 형편이다.
우여곡절 끝에 청와대가 헌법재판관 청문요청서를 먼저 국회에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청문회는 열리지도 못했지만 법적으로는 노 대통령이 임명장에 사인만 하면 전 내정자는 일단 헌법재판관 신분은 획득하게 된다. 맨 처음 조순형 의원 등이 제기한 '절차적 문제'는 해결되는 것.
하지만 한나라당이 "다음 대통령의 헌법재판소장 지명 권한을 침해한다"는 신종 논리를 들고 나오며 버티기로 나서자 청와대는 헌법재판관 임명장에 서명조차 못하고 있다. 자칫하면 3년 헌법재판관 생활을 하고 사퇴서를 쓴 전 내정자가 다시 재판관 6년 임기를 시작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
현재 청와대는 "국회가 정치력을 발휘해 이 문제를 처리하기 바란다"며 "절대로 자진사퇴나 내정 철회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문제 역시 돌파구가 없다. 여당 일각에서 "전 내정자가 자진 사퇴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 최선이다"는 의견이 솔솔 흘러나오긴 하지만 한나라당의 버티기 앞에서 힘 한 번 못쓰고 무릎을 꿇을 경우 노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 까지 모든 사안에서 한나라당 '선 결재'를 거쳐야 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사학법으로 다시 한 번 '빅딜'을 시도하기도 여의치 않고, 밀고 나가자니 동력이 딸리고, 후퇴하자니 명분이 딸리는 그야말로 질곡에 갇힌 셈이다.
기간당원 완화 방안, 노사모 내홍…여권에서도 내우외환
노 대통령을 둘러싼 여권의 환경조차 불과 일주일 전보다 훨씬 나빠졌다. 출국하기 직전만 해도 노 대통령은 동교동을 직접 찾아가는 등 DJ와 밀월을 과시하며 여권 내 자신의 입지를 확인시켰다. 이른바 '도로 민주당 반대'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노무현 정계개편 3원칙이 친노직계인 백원우 의원의 입을 통해 나왔을 정도.
친노 진영은 "전당대회에서 붙어보자"며 통합신당론자들과 각을 세웠고 노무현 배제론은 어느새 쑥 들어가고 '노 대통령이 정계개편의 전면에 서느냐 2선에 서느냐'가 논의 주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사이 우리당은 비대위 등을 거쳐 기간당원 자격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누가 봐도 결집력 높은 친노세력의 힘을 빼기 위한 정지작업이 분명한 이 방안에 대해 참정련 등 친노직계만 반발하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얼마 전 일부 언론을 통해 소상하게 보도된 노 대통령과 노사모 사이의 비공개 면담 내용이 알고 보니 노사모 대표가 몰래 녹취해 제작한 CD를 통해 유포된 것이라는 어이없는 사실도 대통령의 해외 순방 기간에 드러났다.
이 사건은 대통령의 발언을 녹취한 노사모 대표 김 모씨가 "공기 중으로 흘러갈 VIP(대통령)의 발언이 아까워서"라고 해명했고 청와대도 "정치적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경고 조치에 그쳤다"고 덮어둬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편하게 이야기 하려고 믿고 부른 노사모 회원들이 경호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하고 이로 인해 내홍이 발생한 사실이 친노진영의 현 실태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
노사모 초기에 깊숙이 관여했던 한 인사는 "그 사건도 사건이지만 규모나 퀄러티(질)면에서 지금 노사모는 옛날(2002년 대선 당시) 노사모와 엄청난 차이가 있다"며 "모르긴 몰라도 예전 같은 폭발력을 재연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계개편을 앞두고 당이 대통령의 힘을 빼기 위해 죄어오는데다가 친노진영 내부도 삐그덕 거리는, 한마디로 내우외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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